3·11 후쿠시마 이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후쿠시마의 미래> 이홍기 감독과 함께한 단체 관람
지난 3월 18일, 서울 광화문의 인디스페이스에서는 현재진행형인 3·11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됐다. 후쿠시마 관련한 세 권의 책, 『3·11 이후를 살아갈 어린 벗들에게』 『원전의 재앙속에서 살다』 『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 오키나와』를 출간한 출판사 돌베개, 녹색연합, 여성환경연대 등이 함께 다큐멘터리 <후쿠시마의 미래> 단체 관람 행사를 열었다. 지금 세대에서 끝나지 않을 원전의 재앙을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3월 11일과 4월 26일, 어떤 연관이 있을까. 전자는 이제는 ‘3. 11’이라는 고유명사로 불리는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원전) 폭발 사태가 있었던 날이다. 후자는 1986년 사상 최악의 방사능 누출 사태가 벌어졌던 옛 소련(현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원전 폭발이 일어났다. 세계는 이날을 계기로 전과 후가 나뉘었다. 체르노빌 참사가 원전이라는 인류 최악의 위험을 경고한 사건이었다면, 후쿠시마는 원전의 위험성을 망각하고 있던 인류에게 가한 마지막 경고였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옆 나라에서 일어난 비극 이상의 것이었다. 한국 시민들의 일상과 사고를 바꾼 거대한 사건이었다. 생각해보라. 이전까지 원전과 방사능이 일상적으로 얘기됐던 적은 없었다. 지금 우리에게 원전과 방사능, 핵은 거부할 수 없는 일상의 위험이 됐다.
이홍기 감독
그 무섭고 위험한 사태 이후에도 일본 정부는 변하지 않았다. 되레 그것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일본 정치권의 거짓과 회피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후쿠시마와 체르노빌을 오가면서 원전의 실태를 보여주는 <후쿠시마의 미래>(이홍기 감독)는 한 마디로 ‘무서운’ 영화다. 원전 폭발로 삶과 일상이 어떻게 바뀌고, 얼마나 무서운 재앙이 인류를 스멀스멀 휘감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가장 두려운 것은 사실과 진실을 은폐하려는 움직임이다. 영화에서 체르노빌을 탐사한 후쿠시마의 한 시민은 후쿠시마의 검은 구름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진실을 가린 거짓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영화는 원전의 재앙에서 멀어지기 위해서 일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할 것을 권한다. 집이나 회사에서 사용하지 않는 플러그부터 뽑는 것부터 말이다.
영화가 끝나고 관객들의 박수가 터졌다. 영화가 끝나고 박수 소리를 듣는 것이 처음이라는 이홍기 감독과 김혜정 활동가가 함께한 GV가 진행됐다.
“원자력은 극히 위험한 쓰레기를 배출하면서도 그것을 처리할 능력이 없고, 그 관리에는 영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긴 시간이 걸리는 결함투성이 기술입니다.”(『3 11 이후를 살아갈 어린 벗들에게』, p.196)
후쿠시마나 원전 관련 현재 상황을 좀 더 알려주고, 영화에 못 담은 이야기들이 있다면. 3?11 3년이 지났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김혜정 : 이 영화를 세 번째 봤는데, 볼 때마다 새롭다. 우리나라 정치인이나 정책을 펴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 변하지 않을까. 3년 전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했을 때, 너나할 것 없이 충격이었다. 나는 1988년 반핵운동을 시작했는데, 후쿠시마 원전 사건이 발생했을 때 물도 마시지 못하고 가위에 눌려 잠도 이루지 못했다. 당시 활동을 잠시 쉬면서 시골에 있었는데, 원전이 터진 다음날 환경운동연합으로 달려갔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반핵운동 현장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사회에 다시 탈핵운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다. 영화에선 체르노빌 원전사고 전과 후가 있다고 말했는데, 한국사회의 환경운동은 후쿠시마 전과 후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 인생은 후쿠시마 이후 달라졌다고 할 만큼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이홍기 : 이전까지 내 작품은 한 인물에 밀착해서 시대나 사회가 안고 있는 아픔이나 기쁨을 세상 사람과 공유하고 고민했었다. 이번은 이전과 달리 인물이 아닌 사건을 중심에 두고 한 사건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초점을 맞췄다. 나는 방사능에 대한 정보도 잘 모르고 지식도 없었는데, 시간이 지난 뒤 촬영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후쿠시마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2년 후 촬영에 나섰다. 그렇게 촬영을 함께 다니면서 느낀 게 있다. 원전 2개가 터졌으면 지구는 끝이다. 그런데 뭘 더 보전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지구는 끝났다. 그 정도로 심각하다는 것을 목격했다. 눈에 안 보이고 냄새도 맛도 없으니 더 무서운 거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더라. 세계적인 석학들과 인터뷰를 했지만, 돌아오는 건 눈물 밖에 없었다. 여러 작품을 했지만, 이렇게 많이 울기는 처음이었다. 답이 없다. 그렇게 끔찍한 현장이었다.
“나오는 방사성 쓰레기를 처리할 기술이 없는데도 시스템을 가동해 버리는 무모함이야말로 지혜의 결여이며 야만적인 행위입니다.”(『3 11 이후를 살아갈 어린 벗들에게』, p.194)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모두 정보가 가려져 있어서, 진실에 여전히 접근하기 어려운 것 같다. 촬영 에피소드를 들어보고 싶다.
이홍기 : 기획 단계부터 다 거부 당했다. 나는 이전에 TV에서 일했던 사람인데, 3?11이후 방송과 신문에서는 지진과 쓰나미에 집중돼 있었다. 원전 사태에 대해서는 소홀했다. 일본 현지도 시간이 지났지만, 똑같은 상황이다. 주민들의 삶의 패턴이 갑자기 바뀌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차를 끓여서 여유롭게 신문을 보고 아이들 학교를 보내던 일상에서 여기저기 방사능 측정을 하고 청소를 하는 일상으로 바뀌었다. 오염물질을 닦아내고 나서 출근을 한다. 머리에서는 그 생각밖에 없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는데, 얼마 전 일본 기자로부터 3천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심각하다. 어디를 갈 수도 없고. 체르노빌 현장을 다녀온 나라고 공포가 없겠나. 함께 간 17명 중에 5명이 아프다. 나는 어금니 하나 뺀 걸로 안심하고 있으면서도 겁이 난다. 샤워를 하는데, 7~8번씩 씻어봐라. 아프지 않겠나. 돌아다니면서 신발, 옷, 장비도 다 버려야 하는데, 닦고 닦아서 촬영을 하기도 했다.
김혜정 : 영화를 보면, 체르노빌에 다녀온 후쿠시마 주민이 방사능보다 진실을 은폐하려는 거짓이 더 두렵다고 했다. 사실 <후쿠시마의 미래>는 2주기 전후를 다루는데, 그 후 1년 진실이 더 규명되고 일본정부가 책임 있게 방사능 대책을 세운 것이 아니었다. 더 나쁜 방향으로 가 있다. 그것이 중요하다. 28년 전의 체르노빌 원전 사건은 30km 반경이 통제구역이지만 일본정부는 10km까지 귀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본 정부와 국제원자력기구가 비밀협약서를 맺었다. 한쪽이 정보를 공개하길 원치 않으면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일본의 원자력기구는 방사능 폐기물 오염 양을 측정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다는 정책을 채택한 상태다. 아베 정부는 방사능 관련 정보를 통제?장악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건을 통해 독일 등 다른 나라는 변했지만, 일본은 이를 하나의 해프닝으로 치부하고 원전을 재가동을 하려는 거대한 음모와 계획을 현실화하고 있다. 위기 해결을 놓고 체르노빌과 일본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가. 원자력 산업계의 본질, 권력이 가진 야만성을 후쿠시마가 보여주고 있다. 한국 사회가 이를 통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후쿠시마의 미래는 일본에서는 암흑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은 일본 내 조직된 시민의 힘이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일본에는 고속증식로 ‘몬주’를 포함해 열여덟 곳에 55기나 되는 원자력 발전소가 있고, 각각의 발전소에는 까마득하게 긴 시간 동안 우리 생활에서 격리, 보관해야 할 방사성 물질이 대량으로 존재합니다.”(『3 11 이후를 살아갈 어린 벗들에게』, p.9)
영화에서 체르노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버섯을 채취했다. 방사능 결과는 어떻게 나왔나?
이홍기 : 다른 작물에서는 (방사능이) 나타나지 않았다. 버섯에서도 (기준보다) 낮게 측정이 됐으나, 청정지역에도 식생활이 피폭의 영향이 받아서 아이들의 이곳저곳이 아팠다. 일본에서는 암에 걸려야 원전과의 관련성을 보고 있으나, 다른 곳이 아파도 (방사능 여파를) 의심해야 한다는 것이 취재의 결과다.
김혜정 : 기준치 여부를 떠나 현재도 오염된 상태라고 볼 수 있고, 이런 상태의 버섯을 매일 먹는다면 암에 걸릴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과거 중국에서 일어난 사건 때문에 거의 모든 버섯에 100크렐 선에서 방사능 물질이 검출되었던 바 있다. 버섯이 방사능을 흡착하는 정도가 높다. 독일 등 유럽에서는 야생 버섯을 먹지 말라고 권하고 있다.
한국 사회도 안전하다고 할 수 없는데, 먹거리에 직간접적으로 어떤 영향을 준다고 보나?
김혜정 : 일본에서 식품을 많이 수입하고 있다. 후쿠시마현 등의 수산물 수입을 제한하고 있으나 가공품, 농축수산물 등은 후쿠시마현에서 생산한 것을 수입하고 있다. 수산물은 수입이 줄었으나 가공식품 수입량은 계속 늘고 있다. 일본 식품에 대한 수입 제한 조치는 일부 현만 해당하고 있다. 일본 현지에서도 조업 재개를 했고, 채소 재배 단지를 짓고 기린 등의 식음료 회사들이 후쿠시마에 회사를 지어서 시판을 하고 있다. 이런 것이 한국으로 다 올 수 있는 상황이다. 또 다른 문제는 후쿠시마의 오염된 해역에서 일본 배가 잡으면 일본산, 중국 배가 잡으면 중국산이다. 국적은 의미가 없다. 어느 해역에서 잡았느냐가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일본산 수산물에 대해서만 검역 체계를 엄격히 하는데, 수입 수산물 전반에 대한 검역 강화와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언제 이런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팀을 꾸린 것인가?
이홍기 : 시작은 사건이 터지고 나서다. 촬영 팀을 꾸리기 전에 우리나라의 원전 상황을 봤는데,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리나라에는 23개의 원전이 있는데, 세계에서 면적당 개수가 가장 많더라. 이밖에 5개 지역에서 공사를 시작하고 있고, 삼척과 영덕은 신규 원전예정부지로 지정?고시돼 있다. 계획하고 있는 것을 합치면 42개다(주. 정부는 2024년까지 42개의 원전을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어마어마하다. 이걸로 뭘 하려는 거지? 그러고도 전기가 모자란다고 하고. 일본은 더 이상 뭘 할 수 있는 땅이 아니다. 그런 걸 취재하자고 결심하고 조사해보니 정보가 별로 없더라. 기본적인 정보마저 내놓지 않다보니, 방법을 찾아야겠다 싶었다. 현지에 도움 요청을 많이 했다. 그런데 위험한 지역에 취재를 가려니 팀을 어떻게 꾸리겠나. 결국 제대로 팀을 못 꾸리고 2명이 갔다. 장비도 최소한으로 갖고 갔다.
일본 사회에서 탈핵반핵 운동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일본의 시민운동에 대해 듣고 싶다.
김혜정 : 후쿠시마 원전 폭발 3주기 때 일본에서 4만 명이 모였다더라. 후쿠시마 일대에서 운동을 하는 곳은 많다. 일본의 원자력은 현재 하나도 가동되지 않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일본에 원전이 필요 없음이 증명된 셈이지. 많은 시민들이 탈원전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일본 정치권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반대함에도 정부 정책을 결정하는 정치권의 변화를 못 끌어내는 것을 보면 운동의 힘이 약하다고 볼 수 있다. 후쿠시마 시민 중에도 (원전 사건이) 잊히길 원하는 사람도 많다. 후쿠시마 일대에선 직접 사망한 사람보다 자살한 사람이 더 많지만, 미디어는 통제되고 정보를 안 풀다보니 많은 후쿠시마 시민들도 포기하거나 사회적 논란이 잦아드는 와중이라 운동의 힘이 붙지 않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2020년 도쿄올림픽이 유치됐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정부가 탈출구로 쓰는 방법이다. 시민들이 한편으로는 원전에 대한 대책을 세우라고 요구하면서도 이것이 도쿄올림픽 유치에 영향을 미칠까봐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고 있다. 지금 이것이 일본의 하나의 현상인 것 같다.
후쿠시마에서 떨어진 도쿄와 체르노빌에서 멀리 떨어진 키에프의 분위기는 어떤지 알고 싶다.
이홍기 : 도쿄는 거의 잊어버렸다. 그게 당연한 것이나, 잊어버린다고 잊어버릴 수 있는 일이 아니지. 두려워서 서로 이야기를 안 하는 형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키에프는 완전히 잊어버렸다. 아픈 사람만 손해다. 인과관계를 현재는 과학적으로 증명하지 못했다. 이를 연구하는 과학자 두 분이 50년 정도 더 연구해봐야 하니까, 조금 더 연구하면 된다고 하더라. 연구가 끝나면 아마 노벨상을 탈 것이다. 아베 정권을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선 고이즈미 전 총리는 아베의 정치적 스승이다. 제자를 앞에 두고 정면에서 그를 반대하면서 반핵을 주장하는 이유가 뭘까. 고이즈미 전 총리는 북유럽에서 만든 다큐 영화 한 편을 보고 마음이 바뀌었다고 하더라. 핵폐기물을 다룬 <영원한 봉인>이라는 영화인데, 기회가 되면 봐주면 좋겠다. 핵 연료봉이 지구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방사능을 과학적으로 없앨 방법은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건 원인이 되는 방사능 물질을 이동시키거나 흩어 놓는 것뿐, 이것을 사람들은 ‘오염 제거’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남은 평생을 원전에서 퍼져 나온 방사능 물질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먹을 것에는 아주 적은 양일지라도 방사능 물질이 포함되어 있고, 어디를 가든 오염되지 않은 땅은 없습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앞으로 어떻게든 살아가면 좋을지 생각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3 11 이후를 살아갈 어린 벗들에게 다쿠키 요시미쓰 저 /윤수정 역| 돌베개
저자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단지 과학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적 모순이 총체적으로 집약된 문제임을 정확히 지적한다. 전후(戰後) 고속성장, 원자력에 대한 그릇된 환상, 저성장 고령화 시대 돌입, 핵연료 재처리와 고속증식로 추진을 핵심으로 하는 원자력 정책 등, 일본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는 우리나라 젊은 세대에게 더욱 많은 것을 일깨워 줄 책이다.
[관련 기사]
-한국 방사능 온천, 문제 없나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20일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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