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영국 요크셔주(州)의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난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는 20세기와 21세기 현대 미술에서 중요한 예술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앨런 존스(Allen Jones), 리차드 해밀턴(Richard Hamilton) 등과 함께 1960년대 영국 팝아트(pop art)(각주 1) 의 대표적인 작가 중 한 명으로 간주되지만, 다루는 매체의 폭이 넓어 하나의 양식으론 정의하기 어렵다. 그는 2000년대 이후 아이패드와 같은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디지털 아트와 드로잉, 회화, 사진, 판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현대 미술의 여러 전환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심지어 1966년 런던 로열코트 극장(Royal Court Theatre)에서 상연한 알프레드 자리(Alfred Jarry) 원작의 오페라 <위비 왕(Ubu Roi)>의 무대 디자인은 물론 여타 공연에선 연출가로도 활동했다. 따라서 호크니 예술에 대한 평가 또한 팝아트의 정형화된 형식과는 무관한, 파격적 실험을 끊임없이 시도하며 자신만의 미적 문법을 구사해온 그의 모든 경험에 기반 해야 한다.
1) 1970년대 이후 한국 미술계는 서구의 팝아트와 현대 미술 사조를 받아들이기 시작했으며, 호크니는 이러한 흐름의 중심에 있던 작가 중 한 명이다. 그의 강렬한 색채, 대중 문화적 소재, 그리고 상업적 이미지의 재해석은 한국 팝아트의 발화에 기여했다.
호크니 작업의 예술성은 강렬하고 생동감 있는 색채에서 나온다. 그의 색채감각은 1961년 제작된 팝아트 작품 <알카 셀쩌(Alka Seltzer)>와 소비 중심의 문명사회를 비판한 <환상적 양식의 차 그림(Tea Painting in an illusionstic style)>(1961) 등을 비롯한 초상화, 수영장 연작 등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1960년대부터 70년대까지 거주한 로스앤젤레스 시절 그린 초기작 <더 큰 첨벙(A Bigger Splash)>(1967)에서 보다 명확해진다. 빛과 색을 생생하게 화면에 옮긴 <더 큰 첨벙>은 위아래로 나눠진 푸른 바탕에 물이 튀어 오르는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직접 촬영한 사진을 그대로 묘사하기 위해 몇 주 동안 세밀한 붓으로 섬세하게 그렸다. 이 작업은 <일광욕 하는 사람(Sunbather)>(1966)이나 <닉의 수영장에서 나오는 피터 (Peter Getting Out Of Nick's Pool)>(1967)와 함께 우리에게 호크니라는 이름을 알린 여러 작품 중 하나다.
그의 그림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 공간의 구조와 연결된다. 20대 때 이집트 여행에서 경험한 평면성은 전통적인 원근법을 따르지 않고 여러 시점을 결합하여 새로운 공간적 감각을 창출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고, 프란시스 베이컨, 피카소 등의 작가들로부터의 영향과 중국회화에 대한 관심도 현재의 화풍 형성에 한 몫 했다. 큐비즘과 자연주의를 거쳐 자신만의 독자적인 시각언어를 창출하게 되면서 그의 작품세계는 시공간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자신의 부모를 모델로 한 <나의 부모(My parents)>(1977)처럼 뭔가 고독하면서도 따뜻한 여운의 작업들과, 빛이 그림의 주체로 부각되는 50개의 캔버스 유화 작품 <워터 근처의 큰 나무(Bigger Trees Near Warter)>(2007)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요크셔 지역의 풍경을 담은 <워터 근처의 큰 나무>는 12미터 대작으로, 이후 왕립예술원에 내걸렸고, 2008년 런던 테이트 모던에 기증됐다.
인물화 역시 호크니 만의 특성이 녹아 있다. 인간의 정체성과 일상적인 순간을 포착하는 섬세한 시각이 두드러지는 그의 인물화의 주인공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패션 디자이너 셀리아 버트웰(Celia Birtwell)과 하얀색 고양이를 그린 <클라크 부부와 퍼시(Mr and Mrs Clark and Percy)>(1970~1971)처럼 가족, 연인, 지인, 큐레이터, 아트딜러에 이르기까지 평범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화상이 가장 많아 3백여 점에 이른다. 호크니가 다룬 주제 중엔 성적 정체성과 같은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인 것들이 적지 않다. 특히 10대에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알게 된 이후 20대인 1960년대부터 동성애자임을 공공연히 밝혀왔다. 그러면서 <닉의 수영장에서 나오는 피터> 작품 등을 통해 성적 소수자들의 정체성을 탐구한 작품들을 발표했다. 두 명의 인물이 밀착해 있는 장면을 묘사한 <달라 붙어있는 우리 두 명(We Two Boys Together Clinging)>(1961), <예쁜 소년(Doll boy)>(1960) 등이 그 예에 해당한다. 그는 사랑했던 팝스타 리처드 클리프(Cliff Richard)가 등장하는 그림을 그리거나 샤워를 하는 장면을 묘사하면서 사회적 금기를 깨고 자신의 성적 지향성을 피력했다. 하지만 호크니의 작품들은 단순히 어떤 선언이 아니었다. 다른 예술가들에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용기를 심어주었으며, 현대 미술계의 중요한 담론을 형성하는 데도 기여했다.
호크니는 전통적 기법을 재해석하고 새로운 기술과 매체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현대 미술의 혁신적 변화를 이끌어온 인물로도 평가된다. 그가 ‘Joiners’라고 칭한, 여러 작은 폴라로이드와 사진 인쇄물들로 나열 구성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다시점적 사진 콜라주’ 기법의 작업(1970~80년대 주로 사용되었으며 <퓌르스탕베르 광장(Place Furstenberg)>(1985), <우리 엄마 볼턴 애비(My Mother, Bolton Abbey)>(1982) 등이 주요 작업에 속한다. 큐비즘의 영향을 받은 작품에서부터 디지털 드로잉과 스테인 글라스를 결합한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여왕의 창문(The Queen's Window)>(2018)과 같은 작업에 이르기까지 그의 실험정신은 과거나 현재나 달라진 게 없다. 이 가운데 전통적인 예술의 만남과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현대 예술에서 디지털 기술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 받는 호크니의 디지털(아이패드) 드로잉은 새로운 매체에 대한 거부감 없는 태도를 잘 나타낸다. 그는 매일 새로운 풍경이나 정물을 빠르게 기록할 수 있다는 장점에 매료되어 수많은 디지털 작업을 만들었으며, 그것은 전통적인 회화에서는 달성하기 어려운, 여러 작품을 연속적으로 그리거나 변화를 기록하는 방식으로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스케치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각주 2)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그의 발자취는 국내외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화가이자 조각가인 에릭 피슬(Eric Fischl)도 그 중 한 명이다. 피슬은 “호크니의 작품이 시금석이 되었다.”고 회상한 바 있다. 밝고 화사한 구성적 풍경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다니엘 헤이드캠프(Daniel Heidkamp) 역시 자신에게 자극을 준 작가로 에드워드 호퍼와 데이비드 호크니를 꼽는다. 이 밖에도 미국의 조던 캐스틸(Jordan Casteel)과 도론 랭버그(Doron Langberg) 등이 호크니 예술의 자장 아래 놓여 있다.(각주 3) 호크니의 진정한 유산은 그의 영향력에 의해 새롭게 도약하는 작가들에게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간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생존 화가’라는 거장의 ‘이름값’에 주목한다. 그런데 그럴 만하다. 그의 작품은 전 세계 주요 예술경매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8년 한 명의 남자가 수영장 바깥에 서 있고 또 한명은 수영을 하고 있는 장면을 옮긴 작품 <예술가의 초상(수영장과 두 인물) Portrait of an Artist(Pool with Two Figures)>(1972)은 약 9천만 달러(약 1000억 원)에 낙찰되며, 당시 생존 예술가의 작품 중 가장 비싼 작품으로 기록되었다. 지금도 그의 아이패드 드로잉 소품 한 장에 약 9만 달러(약 1억 2000만원)를 오간다. 이는 현대 미술 시장에서 호크니의 작품이 갖는 상징성과 경제적 가치를 잘 보여준다.
2) 실제로 그는 동일한 장소에서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풍경을 아이패드로 기록하며 시간적 변화를 담았다. 현재도 디지털을 포함해 사진, 비디오 등 다양한 매체를 실험하며 예술의 확장성을 모색하고 있다. 3) 하지만 이들은 데이비드 호크니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각자만의 독특한 시각과 매체 활용을 통해 현대 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다. 호크니의 혁신적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현대적 문제와 표현 확장에 전념하고 있다.
호크니에겐 예술적 안식처가 되어주는 공간이 있다. 바로 노르망디(Normandy) 작업실이다. (각주 4) 호크니는 2019년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에 작업실을 마련했고, 그곳에서 다양한 풍경을 주제로 한 작품을 제작했다. 이전의 영국 요크셔 지역에서 제작한 풍경화 작업과 연결되면서도, 프랑스의 독특한 빛과 풍경을 담아낼 수 있었던 이곳은 그에게도 새로운 전환점을 제공했다. 그는 노르망디에서 자연의 변화와 계절의 흐름을 기록하며, 나무, 들판, 하늘 등의 풍경을 다채로운 색채와 선명한 형태로 표현했다. 물론 아이패드를 활용한 디지털 드로잉 또한 이어갔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강타했을 때에도 호크니는 창작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 속에서의 고립, 그 고립 속에서 느낀 자유를 더욱 강하게 화폭에 투영했고, 깊은 사색과 희망, 평화를 새겼다. 코로나 시국에서 찾으려 했던 희망은 한국에도 전달됐다. 2021년 5월 서울 코엑스 케이팝 스퀘어에서 한 달 간 상영된 영상 미디어 작품 <태양 혹은 죽음을 오랫동안 바라볼 수 없음을 기억하라(Remember you cannot look at the sun or death for very long)> (각주 5)이다. 디지털 아트 플랫폼 ‘서카(CIRCA)’의 글로벌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된 이 프로젝트에서 호크니는 2분30초 분량의 영상을 서울과 로스엔젤레스, 뉴욕, 도쿄에서 동시 송출해 전세계에 다시 일어서는 힘(Resilience)의 필요성을 알렸다.
4) 이 작업실은 그의 후기 작품 세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는 노르망디의 풍경과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을 통해 그의 실험정신과 색채적 감각을 새롭게 발전시켰으며, 이 시기에 제작된 작품들은 전 세계 여러 뮤지엄에서 전시되어 큰 주목을 받았다. 5) ‘해돋이’를 주제로 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봉쇄에서 풀려나기 시작한 국가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제작되었으며, 영상엔 노랗고 거대한 태양이 대지를 비추는 형상이 담겨 있다.
호크니는 1970년 서른넷의 나이에 런던 화이트채플 갤러리에서의 개인전 이후 꾸준히 작품발표를 해왔다. 주요 전시로는 1999년 파리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에서 열린 <공간, 풍경>전, 2006년 런던 국립 초상화 갤러리(National Portrait Gallery)에서의 기념비적인 전시와 2016년 <82점의 초상화와 1개의 정물>이라는 시리즈를 선보인 영국왕립예술원 전시 등 지금까지 셀 수 없이 많은 개인전과 그룹전을 열었다. 그의 필모그라피에는 베네치아의 카 페사로 미술관(Ca' Pesaro),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 Bilbao), 미국의 LACMA(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영국의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 등에서의 전시도 들어 있다. 이 전시들은 호크니의 드로잉을 비롯한 디지털 작업, 전통 회화가 결합된 독창적인 접근 방식을 보여주었으며, 자연과 계절의 주제를 현대적인 시각으로 풀어낸 호크니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게 했다. 그의 전시는 2019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도 개최됐다. 영국 테이트 미술관과 공동 기획한 이 전시에는 1950년대 초부터 2017년까지의 회화, 드로잉, 판화 133점을 선보이며 작가의 시기별 작품을 조명했다. 아이패드 드로잉을 비롯해 다양한 매체로 제작된 풍경 작품이 소개되었으며, 호크니가 자연의 변화를 어떻게 기술적으로 포착했는지에 대해 알 수 있는 작품들이 다수 출품됐다.
호크니는 세상을 보는 방식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해왔다. 현실을 그대로 수용하기보다는 다른 관점, 심층적인 본질을 탐구하고 자신만의 해석을 더해가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장르 간 학제 간 영역 없는 실험적인 태도와 중단 없는 도전은 구순을 앞둔 현재도 진행 중이다.
* 본 콘텐츠는 AI 학습 및 데이터 활용을 금지합니다.
홍경한 (미술 평론가)
미술 평론가, 전시 기획자. 미술전문지 월간 <미술세계>, <퍼블릭아트>, <경향아티클> 편집장을 거쳐 강원국제비엔날레 예술총감독(2017~2018), DMZ문화예술삼매경 예술감독(2021~2022)을 지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이사(2018~2022), 대림미술관 사외이사(2015~2019) 등을 역임했다. 현재 <경향신문>과 <메트로신문> 고정 필진이다. 《공공미술, 도시를 그리다》(2017) 외 다수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