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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빼앗는 살인이라는 행위는 무어며 또 그 죄는 무엇일까

연쇄 유괴사건의 범인 ‘지우’를 쫓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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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 는 뛰어난 오락소설이 갖춰야 할 모든 것을 지녔다. 개성적인 주인공, 기발한 사건과 반전, 매력적인 조연, 때로 황당할 정도로 뻗어나가는 스케일 등등. 『지우』 는 그녀들의 다음 행보와 이야기가 궁금해서 계속 읽게 되고, 지우가 과연 어떤 세계를 건설하고 싶어 하는지 알고 싶어 다음 권을 집어 들게 된다.

혼다 테쓰야라는 작가의 이름을 처음 만난 것은 드라마와 영화에서였다. 드라마 『스트로베리 나이트』『히토리 시즈카』, 영화 『무사도 식스틴』. 『스트로베리 나이트』 는 탁월한 직감을 가진 형사 히메카와 레이코를 주인공으로 온갖 극악한 범죄를 다루고 있다. 쾌락범죄부터 목적의식적인 고위 관료 살해까지. 『히토리 시즈카』 는 ‘악녀’라고 부를만한 여인의 기이한 행적을 중학교 시절부터 추적한다. 『무사도 식스틴』 은 검도를 하는 두 여고생의 우정과 대결을 그리고 있다. 『히토리 시즈카』 가 차갑고 날카롭다면 『스트로베리 나이트』 는 우울하면서도 곳곳에 유머가 담겨 있다. 『무사도 식스틴』 은 상큼한 청춘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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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로베리 나이트』 『히토리 시즈카』 『무사도 식스틴』 은 모두 여성이 주인공이다. 혼다 테쓰야는 남성이면서도 여성을 잘 그리는 작가다. 혼다 테쓰야가 그리는 여성의 캐릭터는 대단히 개성적이고 강렬하다. 『스트로베리 나이트』 도, 『히토리 시즈카』 도, 『무사도 식스틴』 도 보면서 그녀들에게 강하게 끌렸다. 히메카와 레이코는 강간을 당하고 칼에 찔린 트라우마가 있다. 그녀는 범죄자의 마음을 알고 있다. 범죄의 희생자였고, 이후 그녀의 마음속에 분노와 살의가 들끓기 때문이다. 시즈카는 어릴 때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누구도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다. 지금 상태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누군가는 상처입고 고통 받아도 돌아보지 않는 어른들을 미워했다. 그래서 시즈카는 자신만의 윤리를 만들어낸다. 『무사도 식스틴』 의 카오리와 사나에는 상극이다. 검도를 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카오리는 지는 것을 싫어하고, 무사로서의 삶을 지향한다. 사나에는 평범한 가정에서 다정하게 자랐다. 언제나 밝고 부드럽다. 그런 카오리와 사나에가 만나 라이벌이 되고, 친구가 된다.

『지우』 를 읽으면서 혼다 테쓰야의 『스트로베리 나이트』 『히토리 시즈카』 『무사도 식스틴』 이 계속 떠올랐다. 『지우』 는 2005년에 나왔고, 『스트로베리 나이트』 는 2008년부터 시작했다. 『무사도 식스틴』 은 2007년, 『히토리 시즈카』 는 2008년작이다. 『지우』 는 이후 작품들의 인물이나 주제들이 곳곳에 산재되어 있다. 『지우』 는 연쇄 유괴사건의 범인 지우를 쫓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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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괴, 인질극 등을 전담하는 경시청 특수범수사계에 소속된 가도쿠라 미사키와 이자키 모토코. 가도쿠라와 이자키는 『무사도 식스틴』 의 카오리와 사나에처럼 상극의 여성이다. 가도쿠라는 늘씬한 미모의 여성이다. 그리고 다정하다. 가도쿠라 미사키가 지닌 인간미는 내세울만한 개성이었다…그녀라고 무섭지 않을 리 없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다만 그녀는 공포를 이겨 내는 인간미를 지녔다. 이를 범인에게 표현하는 용기를 가졌다. 이자키 모토코는 레슬링과 유도 선수였고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강인한 여성이다. 가도쿠라와는 어쩌면 저렇게 다를까 싶을 정도로 정반대이다. 공포 따위는 조금도 느끼지 않고 적의를 드러내어 상대를 압도했다. 가도쿠라는 누구에게나 그렇듯 이자키에게도 호감을 표시하고 다가가지만, 이자키는 질색을 하며 피한다. 가도쿠라를 싫어한다.

두부가게를 하는 평범한 가정에서 듬뿍 사랑을 받고 평범하게 자라난 가도쿠라와 달리 이자키에게는 어두운 상처가 있다. 이자키의 상처는 『스트로베리 나이트』 의 히메카와를 보는 것만 같다. 『스트로베리 나이트』 에서 히메카와를 싫어하는 공안 출신의 카쓰마타는 그녀를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타입’이라고 말한다. 세상에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이 있다. 가도쿠라는 죽일 수 없는 타입이다. 이자키는 죽일 수 있다. 어떤 죄책감이나 망설임도 없다. 이자키는 말한다. 사람을 죽이지 않기 위해서 경찰에 들어온 것이라고. 만약 경찰이 아니라면 너무도 쉽게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아서. ‘살인’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은 『지우』 에서 반복된다. 인간의 목숨이란, 자신의 목숨이란 무엇일까. 목숨을 빼앗는 살인이라는 행위는 무어며 또 그 죄는 무엇일까. 그 질문은 『히토리 시즈카』 에서 되풀이된다.

『지우』 는 같은 부서에 있던 가도쿠라와 이자키가 각각 다른 부서로 전출되면서 이야기가 광활해진다. 가도쿠라는 연쇄 유괴사건을 수사하는 팀에 배치되어 지우를 쫓는다. 이자키는 경시청 특수급습부대에 배치되었다가 지우를 만나게 된다. 중국에서 밀입국한 부모가 데리고 온 지우는 호적도 없고, 신분을 증명할 것도 없다. 부모가 강제 송환된 뒤 지우는 끔찍한 삶을 살았다. 아무리 밝게 비추려고 해도 마음이 몽땅 사라졌으니까 거기엔 어떤 빛도 들어가지 못해. 마음이 있던 곳에는 휑한 공허함만 있을 뿐이지. 그리고 지우는 이 세상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다른 존재가 되었다. 그 녀석은 세상의 규칙 하나하나에 반문하는 것 같아. ‘정말 그래? 정말로 그래야만 해?’라고 말이지. 그럴 때면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우리가 정해 놓은 규칙대로가 아니어도 괜찮지 않나? 좀 더 자유롭게 살아도 좋을 텐데…

혼다 테쓰야는 『지우』 에 대해 이렇게 자평한다. 액션과 미스터리를 물론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와 폭력이 담긴 최고의 오락 작품이라고 자부한다. 조직과 조직의 대립, 여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알력도 그렸다. 작가로 데뷔한 후 초기에는 전기소설과 호러 등을 주로 썼던 혼다 테쓰야는 『지우』 를 발표한 이후 형사물과 범죄소설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지우』 는 뛰어난 오락소설이 갖춰야 할 모든 것을 지녔다. 개성적인 주인공, 기발한 사건과 반전, 매력적인 조연, 때로 황당할 정도로 뻗어나가는 스케일 등등. 『지우』 는 그녀들의 다음 행보와 이야기가 궁금해서 계속 읽게 되고, 지우가 과연 어떤 세계를 건설하고 싶어 하는지 알고 싶어 다음 권을 집어 들게 된다. 가도쿠라는 현재의 세계에서도 잘 살아갈 수 있는 유형의 인간이지만, 이자키는 미묘하다. 그리고 지우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지우는 이 세계를 뒤엎고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려 하고, 이자키는 끌려 들어가고, 가도쿠라는 힘껏 그들을 뒤쫓아 간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공감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어딘가 뒤틀린 것이라고. 단지 일본만이 아니라.

각성제로 평균 이상의 힘을 얻은 카리스마적 존재가 민중을 움직인 예는 널리고 널린데다 요직에 있는 인간이 그 중압감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 각성제의 힘을 빌려 난국을 극복한 예 역시 일일이 세지 못할 정도다. 본래부터 각성제는 일본 태생이다. 일본에서 개발하고 일본에서 제조했다. 그만큼 순수하게 일본적인 약물이다……일본인은 각성제를 원한다. 좋아 죽는다. 각성제는 피로를 덜어주고 강한 집중력을 제공한다. 그런 약물을 전후의 일본인은 각별히 사랑해 왔다. 그것도 일반 사회에 속한 주인들이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말한다. 일반 세계와 뒷골목 세계가 따로 존재하느냐고. 각성제에 찌든 일본 사회 전체가 거대한 뒷골목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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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 혼다 테쓰야 저/한성례 역 | 씨엘북스
개성 강한 여주인공을 내세운 작품들로 많은 사랑을 받은 작가 혼다 테쓰야가 새로운 캐릭터들로 무장한 경찰소설로 다시 찾아왔다.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히메카와 레이코 형사’ 시리즈보다 더욱 방대해진 스케일이 돋보이는 『지우』는 총 3부작으로 구성된 소설로, 각 권마다 주 배경이 되는 단체인 ‘경시청 특수범수사계(SIT)’, ‘경시청 특수급습부대(SAT)’, ‘신세계 질서(NWO)’가 부제로 붙어 있다. 음모와 반전, 은밀하게 깔려 있는 복선과 배신의 그림자가 드리운 가운데 누구를 믿어야 하고 누구를 의심해야 할지 모를 팽팽한 긴장감이 독자들을 바짝 조여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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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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