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얼어붙게 만드는 연애 말살 소설 - 『IN 인』
『IN 인』은 소설을 쓰는 다마키를 통해서, 도대체 작가가 쓰는 ‘소설’이란 무엇인지를 찾아간다. 자신의 모든 것을 망가뜨리면서 빠져들었던 사랑의 정체를 파헤치면서, 자신이 왜 소설을 쓰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 ‘소설’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그 미스터리를 찾아간다. 다마키는 세이지의 사악함에 대해 알고 싶은 동시에 「무쿠비토」를 통해 보이는 미도리카와라는 남자의 추악함을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무엇이 진실인지는, 그녀도 모른다.
글 : 김봉석
2013.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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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리노 나쓰오의 『IN 인』. 도시락 공장에서 일하는 네 명의 주부가 토막 살인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그린 『OUT』의 반대편에 있는 작품인가, 라고 생각했다. 『OUT』의 주인공인 중년 여성 마사코는 ‘세계의 모든 것과 싸우고 있’는 인간이었다. 아니 그 어디에도 끼어들지 못하고 홀로 걸어가는 여인. ‘현실을 구석구석 핥으며’ 살아가야만 하는.

『IN 인』의 스즈키 다마키는 작가다. 그녀가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의 제목은 ‘인(淫)’이다. 이전 세대의 거장인 작가 미도리카와 미키오가 쓴 「무쿠비토」란 소설에 등장하는 ‘○코[○子]’가 누구인지, 다마키가 취재를 하고 자료를 통해 찾아내는 형식의 소설이다. 사소설인 「무쿠비토」는 미키오가 ○코와 불륜을 저지르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내와 격정적인 싸움을 벌이는 내용이다. 즉 『IN 인』(淫)은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을 허구인 소설로 옮겨낸 작품을 바탕으로, 소설 속의 등장인물이 과연 실제의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소설인 셈이다. 주제는 말살이고.

주제는 연애에서 일어나는 말살이다…무시하고, 방치하고, 도망쳐 자취를 감추는 등등 제 처지만 생각하고 일방적으로 상대와의 관계를 끊어 상대방 마음을 죽이는 것을 말살로 규정했다.

그런데 다마키가 『IN 인』을 쓰게 된 이유는 단지 소설 속의 주인공이 궁금해서 만이 아니다. 다마키는 출판사의 담당 편집자인 아베 세이지와 연애를 했다. 서로 가정이 있으면서도 그들은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선을 넘을 때마다 오히려 흔들렸다. 아무리 선을 넘어도 세상은 바뀌지 않았고, 그들 역시 변하지 않았다. 격렬하게 싸우고, 알 수 없는 감정에 휘말리고, 현실이 아닌 것 같은 기묘한 상황을 만나기도 하면서 그들은 결별했다. 무엇보다 그들은 크게 상처 입었고,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헤어진 지 1년 만에 다마키는 아베를 만나기로 약속한다.

본인을 만나 꼭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이 연애의 ‘끝’을 확인하고 싶다는 욕망. 그리고 또 하나. 그를 직접 만나 묻고 싶은 것도 있었다. 세이지의 ‘사악함’에 관해서였다.

『IN 인』은 다마키가 ○코가 누구인지 찾아내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어린 시절부터 미도리카와를 만났고, 그들은 사랑을 했다고 말하는 여인이 있다. ○코라고 지목된 여인의 과거를 아는 사람을 만나,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그리고 미도리카와의 부인을 찾아가 직접 물어보기도 한다. ○코는 누구였냐고. 그러니까 『IN 인』은 뭔가 끔찍한 범죄가 소재인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기이한 것은, 『OUT』에서 살인을 하고 시체를 토막 내는 그들의 마음과 『IN 인』에서 ‘사랑’을 두고 그리워하고 미워하는 그 마음의 거리가 결코 멀지 않다는 사실이다. 아니, 지금 읽고 있는 『IN 인』의 그들이 가진 마음이 어쩌면 더욱 더 섬뜩하고, 두려운 마음이 든다. 도대체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지옥이 아닌 현세가 맞는 것일까?

아마 부인 심정은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을 겁니다. 내가 천국 쪽에 있었는지 어땠는지도 모르겠어요. 지옥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지옥도 있을지 모르니까요…지금 내 입을 통해 나오는 이 말들이, 이게 진짜가 맞나 싶어 나 스스로 믿어지지 않을 정도랍니다. 도대체 나는 선생님에게 어떤 존재였을까요?

기리노 나쓰오는 지옥을 찾아간다. 아니 그 현실을 찾아간다. 『IN 인』은 소설을 쓰는 다마키를 통해서, 도대체 작가가 쓰는 ‘소설’이란 무엇인지를 찾아간다. 자신의 모든 것을 망가뜨리면서 빠져들었던 사랑의 정체를 파헤치면서, 자신이 왜 소설을 쓰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 ‘소설’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그 미스터리를 찾아간다. 다마키는 세이지의 사악함에 대해 알고 싶은 동시에 「무쿠비토」를 통해 보이는 미도리카와라는 남자의 추악함을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무엇이 진실인지는, 그녀도 모른다.

미도리카와는 자신의 치부와 욕망을 숨김없이 고스란히 드러내 「무쿠비토」란 소설에 섬뜩한 존재감을 부여했지만 그게 진실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른다. 남편의 진실, 아내의 진실, 애인의 진실, 아이들의 진실. 각자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의 집합이 사실이라는 이름의 지나간 시간이다. 미도리카와는 이 소설이 진실이라고 밝힌 적은 한 번도 없다. 죽을 때까지 허구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등장인물들의 소름끼치는 갈등이 저절로 ‘진실’처럼 보이게 만들어 제멋대로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로 이런 것이 소설의 불공정성이다.

다마키는 세이지의 마음을 알고 싶다. 하지만 그 마음은 대체 무엇일까? 그녀가 알고 싶은 것은, 그 순간 세이지의 의도일까? 아니면 시간이 흐른 후, 세이지가 돌이켜보는 그 순간을 듣고 싶은 것일까? 세이지의 ‘진실’이란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진실은 진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소설에 쓰는 바로 그 시점에 그건 픽션이 됩니다. 그걸 알고 있는 작가는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매력적으로, 그리고 재미있게 만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실로 착각할 픽션이 필요한 거죠. 그래서 작품은 모두 픽션입니다.

그런 점에서 다마키가 돌이켜보는 세이지와의 사랑은, 픽션이다. 다마키와 인터뷰를 했던 한 여인은 밉살스럽게 말한다.

스즈키씨는 작가의 본성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말이죠. 무서우리만치 차가운 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문제도 남의 일처럼 보는 거죠…작가란 인간의 욕망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이라서 강이 시작되는 샘물을 찾아내듯 욕망의 근원인 약점을 바로 간파해내죠…사실 나는 작가한 마이너스적인 부분을 원동력으로 삼아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스즈키씨는 어떠세요? 호호호. 마음속이 시커멓습니까? 그렇다면 소설을 열심히 쓰셔야겠네요.

『OUT』의 마사코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받아들이고, 고독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그것은 곧 작가인 기리노 나쓰오의 길이기도 하다. 너무나도 냉혹하고, 거친 길이지만 갈 수밖에 없는 유일한 길. 그런 점에서 모든 소설은 결국 미스터리다. 작가가 보는 진실이 무언인지를 독자가 찾아내야만 하는 미스터리. 작가 자신이 찾아내지 못한 진실이라면, 독자 역시 외면할 수밖에 없는 고독한 모험.

그의 죽음이 나를 얼마나 병들게 만들고 무너뜨리는지 끝까지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야만 작가라고 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추스르더라도 숨쉬기조차 버겁게 느껴지는 이 적막감은 언젠가 나를 견디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버텨낼 수 없게 된다고 하더라도 가슴 속에 담아두고 홀로 견디는 길 이외에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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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인 기리노 나쓰오 저/권일영 역 | 살림출판사
『IN』에는 사랑이 휩쓸고 지나간 뒤에 연인들의 가슴 속에 남은 스산한 심리가 무서우리만치 사실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주인공 스즈키 다마키가 쓰려고 하는 소설 ‘인’ 그리고 1970년대 미도리카와 미키오가 발표한 「무쿠비토」를 교차하며 정열적인 사랑의 끝에 그 흔적을 ‘말살’하려 하는 인간의 심리가 괴물적으로 비쳐진다. 소위 시쳇말로 하는 불륜 소설이 아니라 ‘연애 말살 소설’이라고 칭하게 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끈적한 어둠의 맛’을 기대한 기리노 나쓰오 팬에겐 색다른 충격을, 그녀를 잘 몰랐던 독자에겐 괜찮은 작가를 만나는 기쁨을 선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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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리노 나쓰오 #IN #인
4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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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d1318

2013.06.30

굉장히 독특한 분위기의 소설일 것 같군요. 읽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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즌이

2013.05.31

연애말살소설과 불륜소설이 어떻게 다를까요. 글을 보니 정말 한끗 차이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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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8509

2013.03.28

한 번 읽기엔 좀 무서운 책이네요. 기사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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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 1

<기리노 나쓰오> 저/<김수현> 역

출판사 | 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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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리노 나쓰오> 저/<김수현> 역

출판사 | 황금가지

IN 인

<기리노 나쓰오> 저/<권일영>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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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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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리노 나쓰오

1951년 이시카와 현 가나자와 시에서 태어났으며, 호적상 본명은 하시코 마리코(橋岡まり子)이다. 세이케이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지만, 당시 몰아 닥친 석유 파동 때문에 영화관, 광고대리점 등 일정치 않은 직업을 전전하다 24세에 이른 결혼을 하였다. 하지만 전업 주부로 생활 하면서도 언제나 가슴에 품고 있던 소설 창작욕을 살려 1984년 로맨스 소설 『밤이 떠나간 자리』로 데뷔한다. 그 후 약 10년간 노바라 노에미, 기리노 나쓰코 등의 필명으로 로맨스 소설, 청소년 소설, 만화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1993년 『얼굴에 내리는 비』로 일본 추리 소설의 등용문인 제39회 에도가와 란포 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미스터리 추리 소설 작가로 뛰어들었고, 일본에 없었던 새로운 여성 하드보일드를 구축했다는 평가와 함께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추리소설 집필을 위해 그 동안 활동해 오던 로맨스, 코믹 장르의 집필을 중단하였다. 그리고 1995년 신주쿠 가부키초를 무대로 한 여성탐정 ‘무라야 미로’ 시리즈로 독자적인 세계관을 구축했으며, 여자 프로 레슬링을 소재로 한 『파이어볼 블루스(1995)』를 출판하여 이름을 알렸다. 마침내 1998년 발표한 『아웃』이 일본 추리 작가 협회상에 선정되며 일본 전역에 ‘기리노 나쓰오’ 열풍이 일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남성 작가들에 의해 주도되던 추리 미스터리 소설 분야에서 여성 작가의 입지는 매우 좁았다. 그러나 평범한 주부들이 잔혹한 범죄에 빠져드는 과정을 실감나게 묘사했다는 호평을 받은 『아웃』을 통해 일본에 새로운 여성 하드보일드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은 출판 7년째 되는 해인 2004년에 세계적인 추리상인 에드거 앨런 포 상 최고 소설 최종 후보에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미네이트되는 쾌거를 거두기도 하였다. 1993년 제39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한 『얼굴에 흩날리는 비 顔に降りかかる雨』는 대도시에서 고독하게 살아가는 여성 탐정의 비정한 삶을 그린 소설로, 이후 작가는 무라노 미로 시리즈를 연달아 발표하게 된다. 무라노 미로 시리즈는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 天使に見捨てられた夜』과 미로의 아버지 젠조의 젊은 시절을 그린 『물의 잠 재의 꿈 水の眠り灰の夢』, 단편집 『로즈가든 ロ-ズガ-デン』까지 이어진다. 무라노 미로 시리즈는 2002년 『다크ダ-ク』에서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기존의 탐정소설의 패턴에서 벗어나 미로라는 한 사람의 여성이 시대와 호흡하는 이야기를 쓰겠다고 결심한 기리노 나쓰오는 『다크』에서 의붓아버지를 죽였다는 혐의로 한국으로 도망쳐온 미로, 그녀를 쫓는 게이와 시각장애인 여자, 그런 미로를 돌보는 광주항쟁의 상처가 드리워진 한국 남자들의 끔찍한 복수담을 통해 추락한 인간의 추악한 내면을 통렬하게 그려냈다. 기리노 나쓰오는 일본 주요문학상을 연달아 수상해 1999년 『부드러운 볼』로 제121회 나오키 상을 수상하였고, 2003년엔 『그로테스크』로 이즈미 교카 문학상을, 이어 2004년에는 『잔학기』로 제17회 시바타 렌자부로 상을 수상하였다. 2004년 『아웃』이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에드거상 후보에 올라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2008년 『도쿄도』로 제44회 다니자키 준이치로상, 2011년 『무엇이 있다』로 제62회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했다. 2015년 문화예술 및 스포츠 방면의 인재에게 수여되는 자수포장을 받았다.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은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지에서 번역 출간되어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