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진짜 사나이>가 이외수 작가의 해군강연 부분을 통편집 하기로 결정한 즈음, 이외수 작가는 “사살당한 기분”이라는 마음을 드러냈다. 앞서 이 작가는 해군 제2함대 장병들에게 ‘병영생활과 국방의무의 중요성’에 대해 말했다. 그런데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이 과거 이 작가가 트위터에 썼던 발언을 문제 삼아 방송금지를 요청했고, MBC는 통째로 이를 편집했다. 하씨는 이에 “상황종료”라고 트위터에 올렸다.
이 작가는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마음고생을 또 얼마나 했을까. 그런 하 수상한 시절, 감성마을을 찾았다. 늦가을의 정취가 남은 11월 23일,
『마음에서 마음으로』 출간 기념 ‘깨어 있는 삶, 사랑하는 삶, 아름다운 삶으로 안내하는 이외수식 마음 도통법!’이라는 주제로 북콘서트가 열렸다. 홍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불타는 밧데리’가 흥겨운 연주와 노래로 무대를 연 뒤, 하늘색 바지, 가을색 재킷 등을 입은 이 작가가 등장했다. 통편집의 심정일까. 이 작가가 입을 열었다.
“문학을 하기에 어려운 시대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고 대한민국이 문학하기 좋은 나라는 아닌 것 같다. 문학뿐 아니라 예술을 하기 좋은 나라도 아니다. 해군에 가서 강연했는데, 통편집 당한 그것을 여러분에게 선물로 주겠다(웃음). 거기 가서 첫 마디가 ‘대한민국에서 젊은이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요?’였다. 여러분들은 ‘국민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로 생각해주면 되겠다.”
대한민국에서 국민으로 산다는 것
이 작가는 감성마을이 자리한 화천에 있는 하나원 이야기를 꺼냈다. 이곳은 새터민이 남한으로 와서 교육을 받는 곳이다. 어느 날, 이 작가가 초청을 받아서 그곳에 갔다. 1시간 정도의 강연이었는데, 자신이 했던 강연 중에 가장 어려웠단다.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유머도 꺼내고 소크라테스 등의 명사의 발언도 언급했지만, 그들은 그 어느 것에도 호응하지 않았다는 것. 이 작가는 당황했다. 말이 통하질 않으니 답답함과 외로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100명이 넘는 청중이 있었지만, 작가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같이 느껴졌다.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그래서 북한에 지렁이가 있어요? 예. 개구리도 있어요? 예. 그때부터 얘기가 풀리더라. 자연을 매개체로 대화를 시작했다. 개구리 얘기는 나중에 하고, 대한민국은 OECD 중 경제력 12위를 자랑한다. 어마어마한 부자라는 얘기다. 오늘 여러분에게 외국인은 아는데 한국 사람은 모르는 세 가지를 말해주겠다. 이 얘기는 아리랑TV의 PD가 외국인에게 듣고 알려준 얘기다.”
첫째는 한국이 얼마나 부자인줄 모른다는 것. 아버지 세대, 젊었을 때부터 허리띠 졸라매고 돈 버는 일에만 집중했다. 자신들이 겪었던 고통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의도였다. 그리고 한국은 부자나라의 대열에 올랐다. 정치가 아닌 국민들이 열심히 부지런히 일해 온 덕분이었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국민들은 일체 합심해서 위기 극복에 온 힘을 기울였다.
“한국은 지금 잘 산다. 더 이상 허리띠 졸라매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못 살고, 더 벌어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 것은 너무나 물질에 천착하고 있어서다. 물질이 행복의 척도가 되거나 보장하지 못한다. 록펠러라는 거부가 있었다. 54세에 암에 걸려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주변을 보니 아무도 안타까워하거나 슬퍼하지 않았다. 저 많은 돈이 어디로 가고, 나에겐 얼마나 떨어질까, 이것만 생각하고 있는 거라. 오로지 돈만 바라볼 뿐 죽음을 앞둔 그에게 슬픔을 표하진 않았다. 그래서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그리곤 암이 나았다. 어쩌면 물질에 대한 집착이 정신의 암일지도 모른다. 록펠러는 93세까지 살았다. 경제력 12위 국가에서 경제가 죽었다는 게 말이 되나. 경제, 안 죽었다.”
둘째로 든 것은 얼마나 위험한 나라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 이 작가는 간혹 군인들 점호 소리에 잠을 깨고 대포 소리 때문에 어쩔 때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때도 있다고 전했다. 이 작가가 보기에, 우리는 시한폭탄을 베고 자는 것과 같다. 그 역시 북한 체제를 인정하지 않는다. 삼대를 세습해가며 장기독재를 하기 때문이다. 굉장히 전근대적인 발상이고 오랜 세습으로 체제가 곪다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곪고 있는 것이 북한이라는 것. 그럼에도 누군가는 이 작가를 종북좌빨이라고 부른다.
“북한은 예술을 체제찬양에만 활용한다. 우리나라도 닮아가서 불안해죽겠다. (웃음) 세습체제, 인권의 말살, 예술이 정치에 종속된 그 체제를 인정하지 못한다. 그러니 내가 왜 말도 안 되는 그 북한 체제를 따르겠나. 예술가는 세상을 썩지 않게 하는 방부제가 돼야하고 시대를 감시하는 감시자가 돼야 한다. 누구나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줘야 한다. 지금까지 내 소설을 통해 시대를 외면한 적은 없다. 언제나 그런 이야기를 소설 속에 틈틈이 했다.”
마지막으로 한국이 얼마나 잘 버티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 해외에서 보기에 한국은 강대국들 사이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꿇리지 않고 잘 버티고 있단다. 정치 빼고는 다 발전하고 있다고 평하고 있다. 다만 물질은 풍요로워졌는데, 정신은 빈곤해졌음을 이 작가는 지적했다. 물질의 풍요와 정신의 빈곤 사이에 너무 차이가 커서 우울증 환자가 늘고 자살자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 그런데도 정부는 개선할 생각도 분석할 생각도 않음을 꼬집었다.
“깨진 균형을 잡기 위해 웰빙 운동을 펼쳤는데, 그것마저도 돈벌이에 활용됐다. 요즘 웰빙 열풍이 지나니 힐링이래. 온 국민을 환자 취급하는 거다. 기분 나쁘지, 힐링. 사람이 어떻게 완전무결하겠나. 더러는 아프고 신체적 균형이 깨지기도 하는 거지. 힐링 열풍은 우리가 뭐가 잘못된 거 아니냐는 생각을 갖도록 만들었다. 한국 국민은 자긍심을 가져도 된다. 한국은 상당히 간판을 중시하는데 이건 버려야 한다. 뭘 하든 잘하고 행복하면 되지. 성공했다는 것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거다.”
개구리 소년의 교훈
이 작가는 처음에 언급했던 개구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가 화전민 촌의 시골 초등학교 분교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근무했을 때였다. 전교생 17명. 농사를 짓지 못하니 아이들은 봄여름가을엔 못 먹어서 버짐이 폈다. 겨울에만 뽀얘졌다. 이유를 보니 개구리를 잡아먹어서였다. 하루는 4학년 한 아이가 개구리를 잡으러 가자고 그를 졸랐다. 학교 앞 개울로 나갔다. 아이가 개구리 튀는 방향을 가리키면, 그는 거기에 매미채를 대는 역할이었다. 아이가 돌을 들추면 한두 마리가 튀어나왔다. 한 달을 쫓아다녔다. 100%였다. 아이가 여기라고 하면 100% 개구리가 있었다. 신기했다.
“한 달 동안 쫓아다니면서 이렇다 할 답이 안 나오더라. ‘넌 어디에 개구리가 있고 어디로 튈지 어떻게 아니?’라고 물었더니, 아이가 날 한심하게 보더니, 말하더라. 딱 보면 알아요(웃음). 기술 전수가 안 돼. 나는 그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더라. 아이들과 산과 들을 다니며 간식을 자급자족했다. 신기하게도 그네들이 이름은 몰라도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한다. 먹을 것과 못 먹을 것에 대한 공통된 기운이 있다.”
이 작가는 도시의 삶을 돌아볼 것을 권했다. 농촌을 떠나 향한 도시는 인간끼리의 커뮤니케이션만을 위해서 발달한 곳이다. 자연조차도 인공이었다. 정보 전달은 인간에게서 막혔다. 인간과 자연의 소통이 안 되는 곳이 도시였다. 자연에서 살면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 산길을 가다가 자기도 모르게 길을 멈출 때가 있다. 그리곤 그 앞을 뱀이 지나간다. 몸이 눈보다 빨리 알고 멈추는 거다. 이 작가는 인간은 삼합체라는 점을 강조했다. 물질, 기, 신. 즉, 물질적 에너지, 정신적 에너지, 영적 에너지, 세 가지의 집합체라는 것.
“아이가 딱 보면 아는 그 원리를 터득하면 도인이 되는 거다. 책 제목을 왜 ‘마음에서 마음으로’라고 지었을까. 20세기는 이성의 시대였고, 21세기는 감성이 시대를 주도한다. 이성은 두뇌를, 감성은 가슴을 앞세우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가슴보다 마음이다. 한 번 자신을 진단해보라. 생각을 갖고 많이 살았는지, 마음을 많이 갖고 살았는지. 마음으로 사물을 바라볼 수 있다면 어마어마한 부자다. 세계를 가질 수도 있고, 우주를 가질 수도 있다. 어떻게 합일이 될까? 책 사면 된다(웃음). 사랑해야 한다. 사랑하면 마음이 나온다. 머리로 사랑 못한다.”
북토크쇼(Q&A)
직장을 다니면서 글을 쓰고 있다. 쉽지 않다. 조언을 부탁드린다.
이외수 :
나도 직장 다니면서 글을 쓴 적이 있다. 입시학원 국어선생을 할 때 출판 의뢰가 들어와서 잠깐 쉬었다. 그때 『꿈꾸는 식물』 을 완성했다. 병행하기 위해선 잠을 줄여야 한다. 이게 상당히 어렵다. 나는 직장 상사를 잘 만나서 이해해줬고, 학생들도 양해를 해줬다. 『꿈꾸는 식물』 은 하루 2시간씩 자면서 썼다. 몸에 병이 나지 않았을까 생각하는데, 습관이 되니 이보다 더 자면 머리가 아프더라. 젊었을 땐 5시간 정도 자면 건강을 해치지 않는다. 살아보니 하느님이 그냥 뭘 주는 게 없더라. 아주 인색하더라. 그런데 24시간은 누구에게나 다 공평하다.
하창수 :
나는 직장생활을 출판사에서 했는데, 근무하면서 단 한 줄도 쓰지 못했다. 아내의 허락을 받고 전업 작가를 시작했는데, 글을 쓰지 못한 건 직장생활에 충실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직장생활이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일이라 나는 잠을 줄여 가면서 글을 쓰지 못했다.
한 번도 소설을 쓴 적 없는데, 쓸 수 있을까? 작가는 어떻게 소설의 영감을 얻나?
이외수 :
리얼리티라는 말이 있다. 소설 속의 현실은 소설적 리얼리티다. 소설이 합리성을 가지는 것과 세상살이를 그대로 묘사하는 건 다르다. 또 사물을 있는 그대로만 보지 말고, 없는 것에 갖다 붙이고 있는 것에서 빼봐라. 입이 달린 바위를 생각해보는 식으로. 그렇게 하다보면 발상이 생긴다. 얼마 전 초등학교 3학년이 쓴 동화책을 봤는데, 남의 꿈속에 들어가는 능력을 가진 아이의 이야기였다. 굉장히 재밌었다. 현실에 천착하고 있으면 현실에서 볼 수 있는 것만 소설에서 쓰게 된다. 그러려면 옆집 아저씨나 뒷집 할아버지를 보고 쓰는 게 낫다. 다른 사물들과 이야기도 많이 해라. 냉장고에서 소리가 나면, 왜 그래? 많이 아파? 외롭다고? 뭐 줄까? 이런 식으로(웃음). 글을 쓰려면 가슴이 열려야 한다. 빼고 덧붙이다보면 살이 붙는다. 만물과 대화를 하는 것, 글쓰기의 좋은 트레이닝 방법이다.
하창수 :
이 책을 보고 주변 작가들이 얘기를 많이 하더라. 그전에 이외수 작가는 선배 작가였을 뿐이었는데, 이 책을 통해 새롭게 봤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 문장 공부에 새롭게 다가가게 했다고. 이 책을 참고를 하면 좋은 글을 쓰는데 참고가 될 것이다.
외계인과 정말로 내통하나?
이외수 :
굉장히 조심스럽다. 왜냐. 증명할 수가 없다. 처음 개설했을 때 ‘달친구’라는 것을 증명해 달라고 하니, 그 친구들이 아니라는 것을 너희들이 증명해보라고 하더라. UFO를 타고 와서 가까운 곳에 있으라고 했더니, 달에 있는 생명체들 100%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하더라. 왜 오느냐고 물었더니,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조금씩 접근하면서 충격을 안 주려고 애쓰는 마음이 보인다. 지구는 여러 행성 가운데 가장 사랑받는 행성이라고 얘기하더라. 생명체와 물, 색채가 다양하다고. 다른 행성은 색채가 단일화 돼 있는데, 지구와 같은 행성은 없단다. 정말 아름답고 보존의 가치가 있어서 다른 행성에서 다치지 않도록 보호한다고 하더라. 그런데 정작 지구인들은 지구를 파괴하고 다른 행성체가 걱정하게 만든다. 예전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소통을 했는데, 요즘은 3개월에 한 번 정도, 얘기를 나누고 싶을 때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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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는 정말 아름다운 행성입니다. 우주의 많은 지성체들이 지구를 보호하려고 합니다. 지구인들이 이 사실을 알고 자신의 행성을 아름답게 가꾸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그들과의 대화는 입증할 수는 없지만, 부정할 수도 없는 진실입니다.”(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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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창수 :
18~19세기 작가들은 외계인과의 소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었다. 18세기는 뉴턴의 과학이 일반인에게 스며든 시기인데, 과학과 정신의 충돌을 작가들이 놓치지 않고 기록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은 어떻게 해야 하나?
이외수 :
소설가가 되기 전 화가 지망생이었다. 열심히 그릴수록 물감이 빨리 닳았다. 물감 튜브를 찢어서 면도날로 갉아서 알뜰하게 썼을 정도인데, 돈이 없어서 미술을 포기했다. 그리고 소설로 전향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엔 예술에 대해 너무 몰랐던 거다. 예술을 좁게 본 거지. 시야를 넓게 가지고 그 일에 도전하는 기간을 평생으로 잡아라. 다른 것을 하면서 조금씩 계속 꾸준히 해라. 이것에는 못 당한다. 평생을 걸고 즐기겠다고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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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외수 저/하창수 편 | 김영사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멘토들의 멘토, 160만 팔로어를 지닌 트위터 대통령으로 불리는 이외수. 그러나 세상이 명명한 이름 뒤에는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한 이외수의 마음속 깊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었다.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에서 길어올린 깊은 사유와 성찰의 세계, 눈물겨운 절망과 상처를 딛고 꽃피운 영적이고 우주적인 인식은 아직 한번도 꺼내놓지 않은 이야기였다. 한칸 방 안에서도 우주를 만나는 작가 이외수, 그가 세상과 간절히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가 후배 소설가 하창수와의 대담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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