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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베토벤의 마지막 연주 - 베토벤, 피아노 3중주 7번 B플랫장조 Op.97 ‘대공’(Archduke)

그들의 신분과 나이를 뛰어넘는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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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은 대공에게 무려 14곡의 작품을 헌정했습니다. 특히 피아노3중주 7번 B플랫장조에는 아예 ‘대공’(Archduke)이라는 별칭까지 붙어 있습니다. 대공은 군주가 되기에는 유약한 사람이었지만, 그 부드럽고 따뜻한 성품은 음악에 대한 사랑과 베토벤을 향한 존경으로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루드비히 반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출처: 위키피디아]

베토벤이 태어난 해는 1770년입니다. 그의 생년을 새삼스럽게 거론하는 이유는 당시 유럽의 사회적 변화를 다시금 반추해보기 위해서입니다. 베토벤이 태어난 직후의 가장 큰 사회적 사건은 아마도 농노제 폐지라고 해야겠습니다. 계몽군주로서 많은 개혁을 단행했던 황제 요제프 2세가 농노제를 폐지한 것은 1780년대의 일이었습니다. 이어서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났고, 나폴레옹 군대가 유럽 사회를 전운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자, 이렇게 당시의 큰 변화를 복기하는 이유는 귀족사회의 몰락을 설명하기 위해섭니다. 그렇습니다. 광활한 영지와 농노제도에 의해 유지됐던 귀족들의 사회경제적 기반은 급속히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전쟁까지 벌어졌던 까닭에, 빈둥거리며 음악과 미술을 즐기던 한량의 시절은 ‘아, 그리운 옛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도 틀리지 않습니다. 귀족들의 경제적 기반이 어느 한순간에 와장창 무너졌던 것은 아니지요. 서서히, 조금씩 조금씩 몰락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토벤은 여전히 귀족의 후원을 받는 음악가로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베토벤은 ‘귀족의 후원’을 기반으로 창작을 할 수 있었던 거의 마지막 세대였던 셈입니다. 게다가 그는 선배인 하이든처럼 귀족에게 절대 복종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베토벤이 당시 귀족들과 ‘후원자이면서 거의 친구’ 같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귀족들의 권력이 앞 시대에 비해 현격하게 약화됐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베토벤은 귀족 집안의 딸들에게 연정을 품기까지 했던 것이지요. 물론 그 욕망 속에는 ‘내가 너희보다 못할 게 뭐가 있냐’는 베토벤의 강한 자의식도 스며들어 있었을 겁니다. 그런 개성과 당시의 사회적 변화가 베토벤에게 탈계급적인 연애를 꿈꾸게 했던 것이고, 아울러 귀족들과의 교분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하겠습니다.

베토벤의 생애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귀족 후원자들의 이름을 이 자리에서 다 거론하기는 힘듭니다. 일단, 페르디난트 에른스트 발트슈타인 백작(1762~1823)이 떠오르는군요. 누군가요? 본에서 태어난 베토벤에게 ‘음악의 도시’ 빈에서 활동하기를, 다시 말해 ‘큰 물’에서 놀기를 강력하게 권유했던 후원자입니다. 베토벤이 피아노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을 헌정했던 사람입니다. 또 베토벤을 거의 아들처럼 아꼈다고 전해지는 리히노프스키 공작(1758-1814)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상당히 유능한 피아니스트였는데요, 베토벤이 빈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리히노프스키 공작이 자신의 집에서 살게 해줬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리히노프스키는 베토벤에게 생활비도 대줬습니다. 1794년부터 시작된 이 후원 관계는 자그마치 12년간이나 계속됐습니다. 베토벤이 본 시절부터 친구였던 의사 베겔러에게 1795년 보낸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지요. “언제나 나의 가장 따뜻한 친구인 공작께서 작년부터 내가 쓸 수 있는 600플로린의 지출을 확정해 놓았다네.” 베토벤은 이 집에 기거하면서 많은 음악가들과 교유를 나눴고 귀족 집안의 자식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 후원 관계에 금이 간 것은 1806년입니다. 당시의 상황을 <내 인생의 클래식 101> 9월 2일자,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61’ 편에서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베토벤은 오스트리아를 점령한 프랑스군을 위한 음악회에서 연주하기를 거부한 채 비가 쏟아지는 밤거리 속으로 홀연히 사라져 버리지요. 그때 베토벤이 리히노프스키 공작에게 남긴 편지, 이 자리에서 다시 소개합니다. “당신이 공작일 수 있는 것은 가문과 우연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의 힘으로 이뤄졌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리고 미래에도, 수많은 공작들이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오직 나 한 명뿐입니다.”

물론 베토벤이 그렇게 자존심을 내세울 수 있었던 데에는 중요한 배경이 깔려 있습니다. 당시의 베토벤, 22세에 빈으로 입성해 어느덧 36세를 맞은 베토벤은 어느새 당대의 거장 하이든과 거의 어깨 나란히 할 만큼 유명한 음악가로 성장해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고양된 자의식뿐 아니라 음악가로서의 사회적 기반도 매우 탄탄한 상황이었습니다. 어떤 사건에 대해 이해할 때는 이렇듯이 전후좌우 맥락을 함께 살필 필요가 있지요. 그렇지 않으면 개인을 신비화하거나 우상화하는 오류에 빠질 수 있습니다. 베토벤은 분명 위대한 음악가였지만, 그도 역시 한 사람의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인간이었습니다. 그의 드라마틱한 삶과 천재적이라고까지 보이는 음악조차도 당시의 시대적 상황, 또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습니다.

루돌프 대공(Archduke Rudolph) [출처: 위키피디아]

자, 이제 또 한 명의 중요한 후원자로 루돌프 대공(1788~1831)을 결코 빼놓을 수 없습니다. ‘대공’(大公)이라는 말 그대로 그는 황제의 아들이자 형제입니다. 오스트리아의 황제였던 레오폴트 2세의 막내아들, 아울러 베토벤 시절의 황제였던 프란츠 2세의 막내 동생입니다. 1803년부터 베토벤에게 피아노를 배웠지요. 하지만 베토벤은 존귀한 신분의 대공에게도 그다지 예의를 차리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역시 베토벤의 제자였던 페르디난트 리스(1784~1838)는 이런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대공의 수행원들은 베토벤이 지켜야 할 형식적 의전을 강요했지만 베토벤은 그것을 참을 수 없어 했다. (중략) 대공은 베토벤이 멋대로 행동하더라도 그냥 내버려주라고 지시했다. 그것이 바로 베토벤다운 점이라고 설명했다.”

베토벤이 보기에 대공은 그저 어린 제자였을지도 모릅니다. 자신보다 열여덟 살 아래의 제자에게 베토벤이 극진한 예의를 차렸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대공은 몸이 아주 약하고 간질병까지 있었다고 하는데요, 다행히도 ‘건방진 베토벤’을 전혀 고깝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괴팍한 피아노 선생을 진심으로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불안증 증세를 보이며 빈을 떠나겠다는 소리를 공공연히 내뱉던 베토벤을 안정시키기 위해 1809년에 평생토록 연금을 지급할 것을 약속하기까지 합니다. 루돌프 대공과 킨스키 공작, 로프코비츠 공작이 매년 4000플로린을 베토벤에게 지급한다는 합의서를 썼는데요, “베토벤 씨가 이 연금에 상당하는 보수를 받는 직책에 임명될 때까지 계속 지급한다”고 약속했습니다. 아울러 그런 임명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는 “평생토록 지급한다”는 단서까지 달려 있었습니다. 그러면 당시의 4000플로린은 요즘 시세로 얼마일까요? 학자들 사이에 약간씩 이견이 있기는 하지만, 대략 대학교수 연봉의 세 배쯤으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한데 그 약속을 지킨 사람은 루돌프 대공이 유일합니다. 다시 말해 대공은 베토벤을 처음 만난 순간(대공이 15살 때)부터 세상을 떠난 1827년까지 의리를 지켰습니다. 베토벤도 그의 진심을 몰랐을 리가 없지요. 그는 많은 음악을 작곡해 대공에게 헌정하는 것으로 우정에 답했는데요, 그 곡들이 하나같이 베토벤의 음악적 생애를 빛내는 걸작들입니다. 뭐가 있을까요? 일단 피아노 소나타 26번 ‘고별’이 떠오릅니다. 나폴레옹 군대의 침공으로 빈을 떠나야 했던 대공과의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음악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요. 피아노 소나타 29번 ‘함머클라비어’도 대공에게 헌정한 곡입니다. ‘황제’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피아노 협주곡 5번, 또 베토벤의 종교음악 걸작으로 손꼽히는 ‘장엄미사’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밖에도 여러 곡이 있지요. 베토벤은 대공에게 무려 14곡의 작품을 헌정했습니다. 특히 피아노3중주 7번 B플랫장조에는 아예 ‘대공’(Archduke)이라는 별칭까지 붙어 있습니다. 대공은 군주가 되기에는 유약한 사람이었지만, 그 부드럽고 따뜻한 성품은 음악에 대한 사랑과 베토벤을 향한 존경으로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베토벤도 자신의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루돌프 대공에게 신분과 나이를 뛰어넘는 우정을 느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대공에게 자신의 정신적 고충, 실연의 아픔을 털어놓는 편지를 보내기까지 합니다.

베토벤이 대공에게 헌정했던 피아노3중주 7번은 흔히 ‘대공 트리오’로 불리지요. 제가 4년쯤 전에 썼던 글이 한 편 있는데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해변의 카프카』(문학사상사)에 등장하는 장면을 인용하면서 베토벤의 ‘대공 트리오’를 설명했던 글입니다. 그중 일부를 잠시 옮겨 봅니다.

『해변의 카프카』에 호시노라는 청년이 등장한다. 고등학교를 겨우 마친 화물 트럭 운전사다. 어느날 그가 찻집에 들른다.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호시노는 왠지 그 소리가 마음에 들어 주인에게 묻는다. “아저씨, 저게 무슨 음악이죠?” “베토벤의 ‘대공 트리오’랍니다.” “예? 대포 트리오요? “아니요, 대공 트리오라니까요! 베토벤이 오스트리아의 루돌프 대공에게 헌정한 곡입니다. 대공은 열여섯 살에 베토벤의 제자가 돼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베토벤을 깊이 존경하고 여러모로 도움을 줬지요. 베토벤은 마흔 살 때 이 작품을 완성했는데, 이 곡을 끝으로 피아노 트리오에 두 번 다시 손대지 않았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대공 트리오’는 베토벤이 쓴 마지막 피아노3중주입니다. 그런데 하루키는 대공과 베토벤의 나이를 계산하면서 약간 혼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공이 베토벤의 제자가 됐던 해는 1803년, 그러니까 대공이 열다섯 살 때였고요, 베토벤이 이 곡을 작곡했던 해는 1811년이니 마흔 한 살 때였습니다. 어쨌든 베토벤이 대공을 위해 이 곡을 쓸 무렵, 그의 귀는 거의 들리지 않았습니다. 보청기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었지요. 그런데도 이토록 장대한 규모에 귀족적인 품격이 넘치는 곡을 썼습니다. 역시 베토벤입니다.


원래 피아노3중주는 집안이나 살롱 같은 작은 공간에서 주로 연주됐던, 말하자면 여흥적 성격이 강한 장르였지요. 하지만 베토벤의 ‘대공’에 이르러 그런 관념은 여지없이 깨집니다. 이 곡은 피아노가 리드하는 1악장 첫 주제부터 웅장하며, 그 규모는 마지막 4악장까지 흔들림 없이 이어집니다. 한데 그 웅장함은 악기의 편성이나 소리 자체의 규모와는 차원이 다른, 일종의 정신적 웅장함이라고 보는 것이 옳겠습니다. 특히 이 곡은 베토벤 후기의 음악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명상과 절제’의 모습을 마침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드라마틱한 격정보다는 내면을 향한 고요한 침잠이 두드러지는데, 느릿한 템포로 흘러가는 3악장이 유난히 그렇습니다. 종교적이고 묵상적인 분위기, 듣는 이에 따라서는 왠지 허무하고 쓸쓸한 정조를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

공식 초연은 1814년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약간의 청력이 남아있던 베토벤이 직접 피아노를 맡아 이 곡을 초연했습니다. 당연히 연주는 엉망이었겠지요.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루이스 슈포어(1784~1859)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합니다. “화려했던 비르투오조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포르테에서 어찌나 세게 건반을 두드렸는지, 피아노 현이 덜거덕거릴 정도였다.” 그것이 ‘피아니스트’ 베토벤의 마지막 연주였지요. 베토벤은 그날 이후 다시는 공식적인 연주회에서 피아노를 치지 않았습니다.

p.s. 알프레드 코르토(피아노)와 파블로 카잘스(첼로), 자크 티보(바이올린)가 연주한 음반(EMI)은 역사적 명연으로 손꼽힙니다. 1928년 녹음한 모노 음반이지만 한번쯤 들어봐야 할 연주입니다. 현재 매장에서 품절 상태여서 아쉽습니다. 소설가 하루키가 『해변의 카프카』에서 언급했던 음반은 루빈스타인(피아노), 하이페츠(바이올린), 포이어만(첼로)으로 이뤄진, 이른바 ‘백만불 트리오’의 1941년도 연주입니다. 이것도 역사적 명연(RCA)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역시 현재 품절 상태로군요.

보자르 트리오(Beaux Arts Trio)/1964년/Philips

온화하고 기품 있는 연주로 평가받는다. 보자르 트리오는 1954년에 미국에서 결성된 피아노 트리오다. 피아노의 메나헴 프레슬러, 바이올린의 다니엘 길레, 첼로의 버나드 그린하우스로 이뤄졌다. 3중주로는 물론이거니와 각자가 솔로 연주자로서도 이름을 날렸다. 그들이 남긴 ‘대공’은 녹음 이후 5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중요한 연주로 남아 있다. 물론 리드미컬하고 매끄러운 연주로 들리지는 않는다. 어떤 이들은 템포가 좀 답답할 수도 있다. 그러나 LP 시절부터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연주다. 피아노 3중주 5번 ‘유령’을 커플링했다.



아쉬케나지ㆍ펄만ㆍ하렐(Vladimir AshkenazyㆍItzhak PerlmanㆍLynn Harrell)/1982년/EMI

이 세 명의 연주자는 베토벤을 따로 또 같이 연주해왔다. 피아니스트 아쉬케나지는 바이올린의 이작 펄만과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또 첼리스트 린 하렐과는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를 같이 연주해 음반으로 남겼다. 성품마저 따뜻한 세 명의 협연이 ‘대공’에서도 역시 따뜻한 앙상블을 빚어낸다. 적절한 템포와 악기 사이의 균형감 등 여러 측면에서 호흡이 잘 맞는 연주다. 이제 원로급이 된 세 연주자가 40대 시절에 레코딩한 음반이다. 신선함과 서정미, 흐트러지지 않는 앙상블을 맛볼 수 있다. 매장에서 종종 품절되기도 하지만 필청 음반으로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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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문학수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시절에는 음악을 멀리 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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