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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초연 <파르지팔>에서 전 세계 바그너 전문 배우들을 만나세요!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바보, 파르지팔
오페라가수의 무대가 가장 많은 독일, 그 가운데 우뚝 서 있는 한국인들이 있다.
올해로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 탄생 200주년. 그의 마지막 작품이 곧 한국 무대에 오른다. 웅장한 오케스트라와 100여 명의 초대형 합창 등 바그너 스스로 오페라가 아닌 악극이라 칭했던 <파르지팔>은 1882년 독일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에서 초연됐으며 바그너는 바이로이트 축제극장 무대에서만 공연하라고 말했다는데...그래서였을까? 한국에서 <파르지팔>을 만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08년도에 이미 예술의 전당에서 무대에 올리려고 했었죠. 그 땐 바그너의 증손녀 카타리나 바그너가 바이로트극장의 <파르지팔>을 가지고 내한하려고 했는데 예술의 전당 화재로 연기가 됐죠.”
예술의전당은 개관 20주년 기념으로 <파르지팔>을 무대에 올리려고 했으나, 2007년 12월 오페라극장 화재 사고로 무산되고 말았다. 그리고 바그너 탄생 200주년을 맞아 다시 한 번 시도되는 <파르지팔>, 이번 무대에도 우여곡절은 있었다. 당초 파르지팔과 쿤드리 역을 맡기로 되어 있던 배우들이 교체된 것.
“쿤드리 역을 맡은 배우가 부상을 당해서 다른 배우로 교체됐어요. 그런데 다행히도 새로운 쿤드리 역 배우도 저와 외국에서 활동을 같이 했어서 무척 반가웠죠. 그래서 상의해서 하고 있어요.”
2년 전 이미 국립오페라단으로부터 <파르지팔>의 클링조르 역 제의를 받은 양준모는 쿤드리 역의 메조 소프라노 이본 네프와 새롭게 호흡을 맞추는 중. 게다가 파르지팔 역을 새로 맡은 크리스토퍼 벤트리스 역시 걱정할 필요 없는 바그너 작품 전문 배우다.
“처음 캐스팅이 완료되고 나서 첫 인사를 하러 갔는데 파르지팔을 맡으신 테너 선생님이 사정이 생겨서 그만 두셨고 크리스토퍼 벤트리스라는 분이 오셨어요. 그런데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배우였죠. 함부르크극장에서 제가 한스 피츠너의 팔레스티리나
바그너는 자신의 오페라를 통해 관객이 뭔가 하나씩은 깨닫기를 바랬나보다. <파르지팔> 역시 마법사 클링조르가 성배를 차지하기 위해 성배수호단의 왕 암포르타스에게 빼앗은 성창(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한 병사가 그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예수의 옆구리를 찔렀다고 전해지는 창)으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고, 그 상처가 낫기 위해서는 연민을 통해 깨우침을 얻게 될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바보’가 나타나야만 했으니.
“성배와 성창을 뺏으려는 사람이 바로 저예요. 클링조르라는 악역이죠. 성창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바보’라고 하는데 그때 나타난 사람이 파르지팔이고요. 그래서 제가 파르지팔을 타락시키려고 하죠. 하지만 실패해서 성창을 빼앗긴 뒤 저는 죽고 파르지팔은 기사단을 일으켜 세우고 죽어가던 암포르타스를 치유해준 뒤 왕위를 파르지팔이 받게 되면서 끝납니다.”
기자가 줄거리를 다 말했다고 영화마냥 스포일러 기사라고 치부하지 마시길. <파르지팔>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부터.
그러니까 <파르지팔>을 기다려온 팬들은 공연 전 스트레칭을 충분히 하고, 반나절 정도 바그너에 빠질 준비를 하셔야 한다는 뜻이다. 다만 310분 전체가 공연시간은 아니라는 것. 105분간 ‘거행’된 1막이 끝나면 화장실은 식사 후에 다녀오시는 게 좋겠다. 1시간이라는 충분한 인터미션이 주어지므로. 그리고 2막 후에 다시 20분의 인터미션. 왜냐 불평 마시라. 유럽선 다 그렇게 한단다.
“원래 <파르지팔>은 1막이 끝나고 30분의 티타임, 2막이 끝난 뒤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저녁식사를 하고 3막을 보죠. 그래서 한국에서 올리기 위험 요소가 있는 작품인데 한국에도 바그너의 팬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어서 충분히 성공하리라 믿습니다.”
배우들도 물론 대작을 위한 인터미션이 필요하다. 뮤지컬처럼 잠깐 땀 닦고 잠깐 숨 고르며 다음 막을 위한 재정비에만 몰두하는 것과는 참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고.
“두 시간 가까운 인터미션 시간이 주어질 때도 있는데요. 그럴 땐 목소리를 아끼기 위해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내거나 호텔로 돌아가서 잠을 자다 오거나 합니다. 공연 시간이 길기 때문에 공연 전에는 소리를 함부로 낼 수가 없어요. 잘 쉬어주어야 하죠. 무대 위에서는 소리를 100% 다 내게 되면 마지막까지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힘을 나눠야 해요. 1막에는 이만큼, 2막에는 이만큼...배분을 해야 하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자리에 오른 사람들에게는 대개 넘치는 시련이 따른다. 성악가 양준모도, 연광철도 마찬가지.
“독일권에서는 바그너의 작품을 동양인에게 주지 않아요. ‘너희들에게는 자격이 없어’라고 생각하는 편인 거죠. 바그너 자체가 반유태인적이었고, 북유럽의 영웅을 작품에서 주로 다뤘기 때문에 머리가 까맣고 동양적으로 생긴 사람이 그런 역할을 하게 되면 좀 우습게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한국 배우들에게도 역할을 잘 안 줬는데 요즘에는 한국 사람들이 너무 노래를 잘 하기 때문에, 특히 연광철 선생님은 전 세계에서 스타급 가수고요. 그래서 바그너의 오페라를 한국에서 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도 이런 오케스트라, 이런 가수들, 이런 합창단으로 이렇게 어려운 대작도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줄 수 있는 포인트죠.”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의 주역 가수이면서 베를린 슈타츠오퍼국립오페라단의 주역 가수였던 연광철은 현재 독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유명한 오페라 가수다. 그 역시 냉정하고 따가운 시선을 견딘 초년병 시절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에서 최고의 바그너 가수로 칭송받으며 한국에서 초연되는 <파르지팔>에서 구르네만즈 역을 맡았다.
자신과의 싸움에 만나는 극한 서러움은 두 가지 양상으로 발산된다. ‘됐다, 관두자’ 혹은 ‘어디 누가 이기나 보자’ 그는 후자 쪽이었다.
“‘동양 애들한텐 관심 없어, 동양 애들은 연기도 못해, 노래도 음악성도 다 똑같아’ 이런 얘기를 들으니까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그러면서 저는 ‘성악가’라는 생각보다 ‘배우’라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외국에서 활동한지 7년 정도 되는데 연출가들을 많이 찾아가서 저의 단점에 대해 조언을 해달라고 했어요. 그러면 듣는 말이 ‘너는 무대 위에서 연기하지마’ 였어요. 연기를 하려고 생각한 순간 더 어색해진다는 거죠. 관객들은 물론 노래를 들으러 오시지만 가장 먼저 무대를 보게 되거든요. 목소리가 곱고 아름다운데 연기를 못하면 관객들에게 미안한 일이죠. 그래서 연기에 더 치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콧대 높여 말하는 ‘성악가’, ‘오페라 가수’보다는 ‘배우’, 혹은 ‘소리쟁이’라고 여긴다. 자신 역시 작품을 극대화시키는 하나의 요소에 불과하다는 생각으로.
기자의 정보에 의하면 그의 아내는 국악을 전공한 전 국악방송 PD. 음악적으로 뭔가 많이 동떨어진 느낌인데, 그들은 어떻게 만났을까?
“초등학교 동창이에요. 동창회에서 서로 알게 된 뒤에 제가 통영에서 열린 ‘윤이상 국제음악제’에 초청받아서 독창회를 하러 왔을 때 아내가 저를 취재하러 왔다가 만나면서 만남을 이어왔죠. 그런데 제가 독일에 있으니까 저희는 주로 인터넷 화상채팅으로 3년을 연애했어요. 그러다가 결혼을 했는데 아내가 자신의 모든 걸 내려놓고 저 하나만 보고 독일로 왔죠. 그 부분이 가장 미안해요.”
전공이 상반된다고 해서 음악적으로 부딪칠 일은 없단다. 심지어 그가 오히려 국악을 더 좋아하는 모양이다.
“저는 특히 집에서 혼자 살풀이 음악이나 굿거리 이런 걸 듣는 걸 좋아해요. 유럽에서 첫 공연이 끝나면 파티를 해요. 그 때 저는 항상 한복을 입고 가요. 제가 주인공 역이 아니어도 그날은 제가 주인공이 돼요. 한복을 입고 찍은 얼굴이 신문에 나는 거죠.”
일로 사람을 만나고 현장을 쏘다닌 지 벌써 15년.
취미는 일탈, 특기는 일탈을 일로 승화하기.
어떻게하면 인디밴드들과 친해질까 궁리하던 중 만난 < 이예진의 Stage Story >
그래서 오늘도 수다 떨러 간다. 꽃무늬 원피스 입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