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크 송 VS 콘셉트 송
원더걸스 「Tell me」부터 박지윤 「성인식」까지
그러고 보면 5년 사이 가요계의 판도도 상당부분 변했습니다. 후크송 일변도를 걸으며 비판도 많이 받던 음악시장이 이제는 ‘콘셉트’라는 활로를 찾으며 다시금 다양화를 모색하고 있으니까요. 이 리스트에서는 최근 5년 사이 가요계의 가장 큰 변화라 해도 과언이 아닌, ‘후크송에서 콘셉트 송으로의 무게 이동’을 주제로 다뤄보려 합니다. 이 글이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추억을 곱씹는 것은 물론, 지금의 변화하는 음악시장을 함께 조망하는 기회가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1. 원더걸스 - Tell me
서태지, 동방신기, 비, 그리고 빅뱅이 컴백을 했지만 2008년 가장 많이 사랑 받은 노래는 원더 걸스의 「Tell me」였습니다. 당시 후크송 열풍의 시발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복고적인 편곡과 반복되는 후렴도 회자가 되었지만, 그보다 더욱 인기에 크게 작용한 것은 춤이었습니다. 마냥 쉬운 춤도 아니었는데 국민적인 호응을 이끌어냈죠. 이제는 어느 덧 5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선예는 곧 한 아이의 엄마가 된다고 합니다. 돌이켜보면 「강남 스타일」을 제외한다면 아직까지도 「Tell me」급의 광풍은 없었던 것 같네요.
머릿속에서 구간 반복이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Sorry sorry」입니다. 한번만 들어도 머릿속에 각인되는 전자 리프와 오토튠 후렴은 ‘듣고 난 후에도 들리는’ 묘한 현상을 불러오죠. 아침에 들으면 침대에 누워서까지 들리는 이 노래는 중독을 넘어 전염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립니다. 이후에 비슷한 맥락인 「Mr. Simple」, 「미인아」등 슈퍼주니어 음악 스타일의 방향을 잡아준 노래이기도 합니다. 안무가 따라 하기 쉬워 여러 플래시몹에서도 이 춤을 추는 광경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었죠.
무대 위에서 화려할 것 없이 청바지에 흰 티만 입겠다는 건 정면승부를 해보자는 말 아닐까요? 한때 뮤직뱅크 최장기간 1위로 유명했던 소녀시대의 「Gee」입니다. (지금은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1위라고 하네요.) 여느 때처럼 깜찍하고 상큼한 소녀이미지를 곡에 잘 녹여냈지만 「Kissing you」보다는 자연스럽고 「소녀시대」보다는 트렌디했던 것이 결정적이었죠.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와 가사까지 합세하여 소녀시대는 톱 아이돌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여기에 ‘라’라는 글자 여섯 자만 적어놔도 여러분들은 멜로디컬하게 흥얼거리실 겁니다. 그만큼 연상효과가 강력한 곡이었죠. 좋은 멜로디를 시작부터 틈틈이 부르고, 후렴까지 반복에 반복이니 곡이 기억에 안 남을 수가 없습니다. 카라의 전성기를 열어준 곡이 「Pretty girl」이라면 전성기의 정점에는 ‘미스터’가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슈퍼 주니어의 「Sorry sorry」못지않게 무의식에 흔적을 남기는 곡입니다. 흥미롭게도 첫 소절이 강강수월래에서 나왔다는데 다시 들어보지 않는다면 알 길이 없습니다. 기억나는 것은 후렴구뿐이니까요. 이러한 강력함이 대중들에게 티아라의 존재를 각인시켰습니다. 동물 장갑을 끼고 하는 안무 역시 인상적이었는데요. 안무만 생각해도 떠오르는 후렴 ‘bo peep bo peep’의 뜻은 ‘까꿍’이라고 하네요.
「미쳤어」는 아직 신인 티를 벗지 못하고 있던 손담비를 가요계의 주요 가수로 한 단계 격상시킨 노래입니다. 작곡가인 용감한 형제는 이 곡을 두고 원래 엄정화를 상상하며 만든 노래라는 언급을 한 적이 있죠. 이효리도 눈독을 들였던 곡이지만, 최종적으로는 손담비에게 기회가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인상적인 의자 퍼포먼스와 함께 곡의 분위기를 잘 살렸죠.
중독적인 후렴구 탓에 일반적인 후크송의 범주에 포함되곤 하지만, 「어쩌다」는 노랫말의 개연성을 포기하던 당시의 추세와는 달리 섬세한 심리묘사가 돋보였던 곡이었습니다. 유행과 기존 가사 미학이 적절한 안배를 이룬 곡이라고 할까요. 가사를 쓴 김이나 작사가의 능력이 보이는 대목이죠.
「10점 만점에 10점」으로 조금은 가벼운 느낌의 보이그룹 이미지를 어필했던 2PM은 이 곡을 통해 비로소 그룹이 지향하는 진짜 퍼포먼스 그룹으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퍼포먼스도 퍼포먼스였지만, 무엇보다 중요하게 작용한 것은 당시 후크송이라는 트렌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프로듀서 박진영의 감각과 근성이었죠. 그는 직접 이 곡의 작사 작곡을 해내며 한동안 후크송 전성시대의 중심에 군림할 수 있었습니다.
소문만 무성하던 YG의 여자 빅뱅은 바로 2NE1이었습니다. 2009년 빅뱅과의 콜라보레이션을 거쳐 발표된 이 노래와 함께 처음 그 존재를 드러냈죠. 시종 ‘롤리팝’을 반복하는 노래는 동명의 핸드폰 광고를 위한 협업이었고, 이를 통해 기업은 연예소속사와 자신들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호혜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주입식 후크송을 마케팅에 적극 활용한 사례 중 하나죠.
처음 「I want you back」으로 데뷔했던 시크릿은 「magic」을 통해 비로소 사람들의 관심을 잡아끄는 데에 성공합니다. ‘매직’과 ‘어머’를 반복하는 캐치한 가사는 한 번만 들어도 흥얼거릴 수 있을 만큼 강한 주입식 효과를 가져왔죠. 입소문의 다른 원인도 물론 있었습니다. 하반신을 드러낸 채 격렬하게 몸을 흔든 전효성의 춤은 군 전투력 상승에 혁혁한 기여를 했다는 후문도 있으니까요.
깔끔하고 현대적인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Dream Girl」. 이후 발매된 3집의 두 번째 파트 < The Misconceptions Of Me >가 전작과 상반되는 어두운 색을 지닌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입니다. 그 중심에 좀비 소년의 달콤한 로맨스를 그린 「Why so serious?」가 있죠. 거친 기타 리프와 찢어지는 듯한 멤버들의 보컬, 극적인 퍼포먼스는 마치 좀비 떼들의 등장처럼 긴장도를 높이지만, 그 속에는 인간 소녀에게 첫눈에 반한 소년의 수줍은 심장이 두근대고 있습니다. 영화 < 웜 바디스 >의 OST로 쓰였다면 찰떡궁합이지 않았을까요.
같은 소속사 선배 샤이니가 좀비로 변신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이번에는 열세명의 늑대 인간들이 나타났습니다. 라이브 스테이지에서 인간 나무를 만들어버린 최고의 퍼포먼스와 독특한 가사의 결합은 ‘사랑에 빠진 늑대인간’이라는, 어떻게 보면 얼토당토않은 동화를 성공적인 아이돌 팝으로 표현해냈습니다. 혹자는 이를 보고 ‘병맛’이라 하지만, 이렇게 수준급의 ‘병맛’ 퍼포먼스라면 눈과 귀가 모두 즐거울 수 있죠.
데뷔 6개월 만에 이들을 주목받게 한 것은 파격적인 콘셉트 송이었습니다. 그 자체로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다칠 준비가 돼 있어 (On and On)」로 인해 빅스는 고정 팬들뿐만 아니라 새로운 대중들의 관심까지 얻었습니다. 서클렌즈를 끼고 송곳니를 낀 멤버들의 모습은 영락없는 뱀파이어입니다. 수려한 퍼포먼스에 반해 노랫말이 조금 더 연관성을 갖추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다만 소속사도 이를 고려했는지 후속 싱글로 소설 <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의 등장인물을 차용한 「hyde」를 공개했습니다.
‘음악방송에서 폴댄스를?’ 상상으로만 생각하던 퍼포먼스를 실제 음악방송에서 선보인다는 것 자체가 충격적이었습니다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북 치는 병정으로 분해 많은 인기를 얻었던 「Bang!」 이후 다소 평범한 콘셉트를 선보이던 애프터스쿨에게 「첫사랑」은 돌파구로서의 의미가 큰 곡입니다. 다수의 멤버 교체와 이렇다 할 히트곡의 부재로 전환점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불가능할 것만 같던 폴댄스를 TV에서 선보이게 된 것이지요. 그러나 연습과정에서 나타난 혹독한 훈련과 몇몇 멤버들의 부상은 대중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이토록 확고한 콘셉트 그룹이 있었을까요? 오렌지 캬라멜의 등장은 이전까지 어떤 아이돌 그룹도 시도하지 않았던 영역을 과감히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선병맛, 후중독’이라는 콘셉트를 확립한 「마법소녀」와 「아잉♡」만 해도 충격이었는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아시아 프로젝트’라 하여 해외시장까지 공략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곡이 바로 「상하이 로맨스 (上海之戀)」인데요.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중국 전통 의상인 치파오를 입고, 때로 이소룡의 상징인 노란 타이즈를 입는 등 코믹한 분장이 대중들의 호감을 끌었습니다.
국민 아이돌 소녀시대의 노래죠. 곡 자체는 사랑하는 사람의 지니가 되어 소원을 들어주고 싶어 하는 내용인데 정작 더 회자가 됐던 것은 콘셉트입니다. 여군 장교를 연상시키는 무대 의상과 화보, 뮤직비디오가 인상적이었지요. 이 콘셉트가 예전 군국주의 체제의 군복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작은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는데요. 어쨌든 귀가 즐거운 멜로디에 콘셉트의 힘까지 빌어 적지 않은 인기를 누린 곡입니다.
브라운 아이드 걸스 멤버 가인의 적극적인 여성상을 콘셉트로 내세운 솔로곡입니다. 기존의 여성 가수들이 주로 남성을 기다리거나 섹스어필을 통해 남성의 접근을 유도하려는 수동적인 여성상을 보여주었던 것에 반해 이 곡에서 가인은 주도적인 여성상을 보여줍니다. 스스로의 욕망을 꽃에 비유해 활짝 피어난다고 표현한 것도 인상적입니다. 곡의 콘셉트에 지지 않기라도 하려는 듯 강렬한 색채와 높은 수위의 뮤직비디오로 이슈를 일으키기도 했지요.
여성 아이돌 그룹들의 큰 언니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최신곡입니다. 이 언니들이 이번에는 영화 < 킬빌 >을 제대로 차용했습니다. 곡의 소재나 가사부터 뮤직비디오까지 영화에 담긴 요소들이 옹기종기 모였습니다.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멤버들이 각자 영화의 등장인물로 분한 뮤직비디오가 특히 인상적이었지요. 노래 역시 귀에 들어오는 멜로디와 속도감 있는 랩으로 영화 못지않은 긴장감을 보여주었습니다.
현재 가요계 최고의 이슈 입니다. 난해한 가사와 노래, 안무, 의상 등으로 승부를 거는 소위 ‘병맛 콘셉트’의 최고봉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네요.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충격과 폭소를 금할 수 없는 이 콘셉트로 크레용 팝은 가파른 상승 가도를 오르고 있습니다. 말초적인 재미만을 노리는 이런 경향을 긍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지만 기존 아이돌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스타일만큼은 이들의 신선함을 방증해 줍니다. 현재 가요 시장에서 뭔가 꺼려지지만 계속 끌리는 이른바 ‘길티 플레져’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싱어송라이터로 변신한 박지윤에게 커다란 인기를 안겨준 곡입니다. 곡 전체에 풍기는 요염한 분위기처럼 콘셉트도 도발적이었는데요.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에게 도발적인 고백을 하는 갓 성인이 된 소녀가 콘셉트였지요. 곡뿐만 아니라 각선미를 노출시키는 무대 의상부터 뮤직비디오, 안무까지 그 대담함으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프로듀서 박진영의 감각이 십분 발휘된 곡으로서 시간이 흘러 나중에 다시 콘셉트 곡 리스트를 작성한다고 해도 꼭 포함시켜야 할 정도로 유의미한 곡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수록 앨범: < The Wonder Years >
2. 슈퍼 주니어 - Sorry, sorry
수록 앨범: < Sorry, Sorry >
3. 소녀시대-Gee
수록 앨범: < Gee >
4. 카라 - 미스터
수록 앨범: < Revolution >
5. 티아라-Bo peep bo peep
수록 앨범: < Absolute First Album >
6. 손담비 - 미쳤어
수록 앨범: < Type B >
7. 브라운 아이드 걸스 - 어쩌다
수록 앨범: < My Style >
8. 2PM - Again & again
수록 앨범: < 01:59pm >
9. 2NE1 - Lollipop
수록 앨범: < 1st Mini Album >
10. 시크릿 - Magic
수록 앨범: < Welcome To Secret Time >
11. 샤이니 - Why So Serious?
수록앨범: < The Misconceptions Of Me >
12. EXO - 늑대와 미녀
수록앨범: < XOXO (Kiss & Hug) >
13. VIXX - 다칠 준비가 돼 있어(On and On)
수록앨범: < 다칠 준비가 돼 있어 >
14. 애프터스쿨 - 첫사랑
수록앨범: < 첫사랑 >
15. 오렌지 캬라멜 - 상하이 로맨스 (上海之戀)
수록앨범: < 상하이 로맨스 (上海之戀) >
16. 소녀시대 - 소원을 말해봐 (Genie)
수록 앨범: < 소원을 말해봐 >
17. 가인 - 피어나
수록 앨범: < Talk About S >
18. 브라운 아이드 걸스 - Kill bill
수록 앨범: < Black Box >
19. 크레용 팝 - 빠빠빠
수록 앨범: < 빠빠빠 >
20. 박지윤 - 성인식
수록 앨범: < 성인식 >
관련태그: 원더걸스, Tell me, 소녀시대, 크레용 팝, 빠빠빠, 샤이니, 브아걸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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