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총을 처음 만난 것은 당시 그가 편집장으로 몸 담고 있던 <복음과 상황>에서 인터뷰를 청했을 때였다. 당시 나는 녹즙 배달 일을 그만둔지도 좀 지났고 대학원 학위는 못 따고 수료한 직후였으며 아버지를 여읜지 얼마 안 된 때였다. 요즘 석사 개나 소나 다 있는 것, 이라고 할 정도로 몸값도 떨어졌고 서른 가까운 나이에 토익 시험 한 번 안 본 인간이 어디 취직할 데라곤 없다는 것을 잘 알았을 때였으며 심각하게 안정적인 직업을 위해 군 하사관 모집 공고를 열심히 보다가 나이가 한계치라는 것을 알고 포기할 때였으며, 사실은 취직이고 군입대고 내가 조직생활은 전혀 못 할 테니 『여자라면 힐러리처럼』 『스물일곱 이건희처럼』 뭐 그런 책을 쓰지 않는 한 앞으로도 가난뱅이로 사는 수밖에 없겠군, 하는 각오를 매우 다질 때였다. 당시 내 현실이라는 것은 꿈꾸는 다락방도 못 되고 꿈꾸는 반지하, 뭐 이런 거였으니 이 맘몬의 시대에, 무서운 자본주의가 펄펄 날뛰면서 이걸 사지 않으면 넌 평생 불행할 거야, 이걸 당장 사먹지 않으면 넌 심장마비에 걸릴 거다, 이걸 사지 않으면 넌 뚱땡이가 될 거다, 하고 요령좋게 협박하는 시대에서 새 물건 안 사고, 공터든 어디든 돈 없이 재미있게 놀아 보이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에 대한 최대의 저항이라고 결심을 굳건히 하고 있던 때였다(물론 그 다음에도 물건을 좀 사긴 했다. 여자라서? 각오가 약해서? 둘 다라고 하자!).
그럴 때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을 만났으니 오랜 벗을 본 듯 남같지 않고 반가웠다. 새 물건 사서 쓰지 않는 것이 저의 사역입니다, 하는 그의 말에 우와, 나 말고도 풍차에 마구 돌진하는 사람이 있구나 하여 매우 기뻤다. 그런데 이런, 이 집 풍차는 우리 집 풍차보다 훨씬 컸다. 나야 내 몸 하나, 그리고 어머니 정도 건사하면 되지만 마흔이 넘었으면서 중학생처럼 말간 얼굴을 한 이 아저씨는 아이를 넷이나 낳은 애아버지였고, 한 달에 190만원으로 여섯 식구가 살아가는 매일매일이 도전인 삶을 살고 있었으며 게다가 전업주부 노릇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니 이럴 수가. 게다가 이토록 다감한 말씨를 구사하는 사람이 대구 남자라는 것이다, 내가 대구 출신이라 대구의 남자 혹은 음식에 대해 누가 물으면 대구에서 어찌 선한 것이 나겠느냐, 하고 농담 삼아 대꾸하곤 했는데 박총의 전작 중 하나인
『밀월일기』를 보면 돈 없이 다정다감하게 사랑하는 엑기스가 다 들어 있다. 그러니 전국에서 휴대전화 통화료가 가장 낮은 도시라 해도 이렇게 다감한 남자를 길러 낸 도시라니, 이젠 고향에 대한 자조적 농담도 못 하게 되었다. 예의 인터뷰 건 때문에 만났을 때도 참 다감한 사람이구나, (김규항에게 그를 아냐고 묻자 한번 만나본 적이 있다며 그 사람에겐 심한 말 하면 안되겠더라, 하고 아주 흥미로운 견해를 피력했다) 싶었지만 전작
『욕쟁이 예수』에서는 예수님을 정말로 좋아하고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앞서 말한
『밀월일기』에서는 역시 예수님을 일상 안에서 마음 속에 모시는 정성스런 마음, 고교 때부터 연인이었던 아내에게 주기 위해 풀를 보고 난 후 예수님에 대한 이토록 다감한 사랑, 고등학교 때부터 연인이었던 아내에게 주기 위해 시간을 들여 풀꽃을 꺾는 다감한 손길을 보면 혼자 대구 남자의 50인분 이상을 혼자 감당하고 있으니 누가 대구 남자를 무뚝뚝하다 말할 것인가. 게다가 나는 지구의 인구폭발로 인한 자연자원 등의 고갈을 염려하면서 동시에 대한민국의 낮은 출산율을 개탄할 수 있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으므로 나처럼 내 유전자를 받은 아이를 세상에 내어놓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들을 생성시키는 것도 전쟁이나 기근이 드문 현 상황에서 지구가 나름대로 내놓은 해결책이라고 생각했고 애 많이 낳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그의 이번 신간
『내 삶을 바꾼 한 구절』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압바 많이 사랑해요~ 라는 고백과 아버지에게 축복 기도를 해 주고 학교를 간다는 네 아이들의 모습이 참 아름다워서 내 마음대로 그에게 몰래 면제권을 부여했다. 나 아이 두 명 낳을 것 안 낳는 셈으로 쳐서 저 집은 넷 있어도 괜찮아, 하고 기분 좋게 ‘까방권’을 부여한 셈이다.
그는 핸드폰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에게 연락하려면 이메일이나 070으로 시작되는 집으로 연락하는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어쩌다 모르는 시내전화 번호가 걸려오면 가끔 그일 때가 있다. 나야말로 대구 여자답게 무뚝뚝해서(여기는 날씨가 그렇듯이 여자들 성격도 극단적이다, 아주 애교가 있거나 아저씨거나. 나야 물론 아저씨 쪽이지만) 사람들을 먼저 잘 찾지 않는 편인데, 최근 마음이 썩어 문드러지는 고통을 몇 달 째 겪고 있는 중이라 나보다 하나님과 친할 것 같은 그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다. “현진씨, 무슨 일이에요? ” 얄밉게 사투리 기운도 전혀 없이 다감한 박총의 목소리를 듣자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선생님, 어떻게 기도해야 하나요? ” 모태신앙이지만 초신자보다 못한 신앙을 지녔고 은혜의 체험도 없으며 하나님이라고 하면 새누리당 의원 누군가처럼 생긴 고집불통에 난 너 지켜보고 있어, 꼭 벌줄 거야, 이런 인식밖에 갖고 있지 않던 나는 목사인 아버지 때문에 하나님도 한통속인 것 같아 그가 미웠는데 이렇게 바닥까지 떨어져보니 진짜 하나님이 있는가, 있다면 그동안 낸 헌금이 얼만데 한번 매달려나 보자, 이런 갈급한 마음에 현명한 소리 해 줄 다른 어른들 다 집어치우고 그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애쓴 것은 정말 하나님의 안배인지도 모르겠다. 평생 못 잊을 콕 짚어 주는 대답을 얻었기 때문이다. “현진씨, 그냥 저한테 말하듯이 말씀하셔요. 하나님은 다 듣고 계세요.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도 다 듣고 계세요.” 이후 나는 목회자 자녀로 태어나 신앙이 습관화되었던 삶을 깨뜨리려고 조금씩 애쓰고 있고,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 이후 새로운 기도문인 ‘박총이 가르치신 기도’라고 농담하며 매일 예수님께 어색하게 한두 마디 던지면서 주절주절 얘기해 보는 중이다.
이번에 그의
『내 삶을 바꾼 한 구절』이 출판되기 전 원고를 먼저 받아 보았다. 이제 겨우 회심이라는 것을 결심한 초보 크리스천으로 살아가겠다고 결심은 했는데 도대체 뭐를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몰라 가슴을 쾅쾅 치고 있을 때 신기하게 그 원고가 때맞춰 도착했다. 반가운 마음으로 읽어 내려가던 중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주위 사람들에게서 그 형상을 발견하고 귀하게 여길 것’이라는 권면을 보고 머릿속에 작고 환하고 예쁜 전구가 톡! 하고 켜지는 것 같았다. 이 책을 넘기는 당신에게도 언젠가 어떤 페이지에서 이런 전구가 켜질 것이다. 이 세상에 대한 자기도취 없는 연민, 역시 이 세상에 대한 의로우나 난폭하지 않은 분노, 모래알처럼 사소한 것들에 대한 사랑까지, 이번에도 박총답다. 그러므로 신자이든 비신자이든 이 ‘글귀 낚는 어부’의 책에서 위로를 얻을 것을 보증한다. 왜냐하면 그의 글과 그의 연민은 시류를 타서 현금 좀 확보해 보려는 싸구려 힐링과 위로가 아니라 예로부터 내려오던 것, 구약의 이사야서 그리고 에밀리 디킨슨이 우리에게 전하려던 것과 깊이 닿아 있기 때문이다. ‘(전략) 내가 만일 한 생명의/고통을 덜어주거나/한 괴로움을/달래주거나/지친 한 마리 물새를/둥지로 되돌려/보낼 수 있다면/내 삶은/결코 헛되지 않으리. (에밀리 디킨슨, <내가 만일> 중)’ 이 아이 넷의 아버지가 혼란한 세상에서 하나님이 회복의 역사를 위해 보낸 일꾼으로, 예수님과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 크게 쓰일 것을 믿는다. 추천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 읽어 버린 이가 한 가지 팁을 제공하자면, 이 발랄하고 경쾌한 묵상을 한 번에 다 읽어버리지 말고 손 가는 곳에 두었다가 매일 아껴 읽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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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삶을 바꾼 한 구절 박총 저 | 포이에마
성프란체스코의 잠언에서 네루다의 시까지, 권정생의 산문에서부터 폴의 노랫말까지 다양한 분야의 구절을 담은 이 책은 삶의 갈피를 잃고 헤맬때 당신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빛나는 삶의 지침표가 되어 준다. 끊임없는 성찰 속에 피어난 영성적 빛을 모아 한 권에 응축시킨 각각의 ‘한 구절’은 독자 스스로가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지를 알게 하고 진정한 나 자신으로 태어날 기회를 부여할 것이다. 가슴에 불을 지르듯 인생에 지울수 없는 흔적을, 깨달음을 남기고자 한다면 이 책에 주목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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