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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황현산 “글쓰기는 더 넓은 자기가 되는 일”

‘나는 왜 평생 읽고, 또 쓰는가’ 문학평론가 황현산 선생의 『밤이 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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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30일,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인 황현산 선생을 만나 읽고 쓰는 일에 대해 듣는 귀한 자리가 마련되었다. 신형철 평론가에 따르면 ‘요즘 문인들이 가장 많이 읽고 있는 책’인 황현산 선생의 첫 번째 산문집『밤이 선생이다』의 출간을 기념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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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하고 정갈한 문체로 오랜 시간 좋은 글을 전해 온 저자인 만큼 다양한 독자층이 살롱을 찾았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그를 따르는 젊은 문인들이었다. 그만큼 글 쓰는 사람들에게 황현산 선생은 감사한 어른이었고, 계속해서 따르고 싶은 선생님이었다. 


사회를 맡은 박상수 시인이 인사를 마치고 ‘나는 왜 평생 읽고, 또 쓰는가’ 라는 주제를 독자들에게 소개했다. 이어 황현산 선생의 짧은 강연이 이어졌다. 그의 글을 닮은 소박하고 정갈한 이야기를 지면에 옮겨 본다.


그는 ‘왜 평생 읽고 쓰느냐’는 질문에 사람이니까, 라는 답을 내놓으며 말을 시작했다. 읽고 쓰는 일은 듣고 말하는 일처럼 사람이니까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말로 하는 것과 글로 쓰는 것, 듣는 것과 읽는 것 사이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일단, 말을 할 때는 늘 앞에 사람이 있다. 우리는 마주 본 사람을 계속해서 신경 쓰게 되기 때문에 기를 많이 소진한다. 


이에 비해 글을 쓸 때는 편안하다. 물론 글 역시 누군가에게 말을 하는 일이다. 저자 역시 늘 상대를 생각하며 글을 쓴다며, 마흔 다섯 살까지는 항상 어떤 여자한테 쓰는 것처럼 글을 썼다는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이때는 상대가 눈앞에 있지 않다는 점이 다르다. 고백을 할 때도 만날 때는 상대방의 기분을 고려하고 분위기를 살피게 되지만, 편지를 써서 줄 때는 그렇지 않다. 직접 말하는 고백과 편지로 하는 고백을 비교해 보면 차이는 더 명확해진다. 


‘왜 평생 글을 읽고 쓰는가’ 에 대한 답은 말하고 듣는 것과 읽고 쓰는 것이 다르다는 점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바로 앞에 상대방이 있는지 없는지는 생각보다 큰 차이다. 듣고 말할 때는 바로 앞에 굉장히 억압적인 사회 하나가 있다. 하지만 읽고 쓸 때는 다르다. 물론, 상대를 상정하고 쓰기 때문에 하나의 사회를 만나지만 그 사회의 억압은 상당히 완화되어 있다. 


『도둑일기』를 쓴 장 주네는 “자신이 배반자라고 느낄 때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글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상에 자신을 이해시킬 수 없고, 자기 스스로도 자신을 받아들일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글쓰기다. 이럴 때, 글은 말로 할 수 없었던 어떤 진심이나 진실을 끌어내주는 도구가 된다. 


사람이 말을 할 때, 기가 손상되는 이유는 말을 할 때 자신과 타자가 분리되기 때문이다. 대결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에서는 자기 주체를 강화시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글을 쓸 때는 자기 주체를 완화시킬 수 있다.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이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라서 오히려 편안한 상태가 된다. 


이때, 글 쓰는 사람은 자기 주체를 집중시키면서 동시에 확신시킨다. 말을 할 때 의식하던 세상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게 되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억들을 한꺼번에 동원해 자기를 초월한다. 자기 자신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살면서 만난 인연들이 찾아오며 자기가 확장된다. 시간 역시 눈앞의 시간이 아니라 자기가 살아온 과거나 현재부터 아직 살지 않은 미래의 시간까지 찾아온다. 이렇게 글 쓰는 사람은 자기보다 더 넓은 자기가 된다. 나와 다른 사람의 분리가 사라져서 자기 어머니가 되기도 하고 형제가 되기도 하고 친척이나 친구가 되기도 한다. 결국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 오래 전에 죽은 보들레르나 랭보 같은 사람이 되어 생각해볼 수 있다. 다른 시간, 다른 공간을 넘나들면서 자신을 확대하는 거다. 자신을 계속 넓히다보면 하나의 큰 덩어리가 되는데 이게 바로 객관이다. 그러니까 객관이라는 말은 주관을 지극히 크게 넓혔다는 말이 된다. 이게 바로 글쓰기다. 


황현산 선생이 생각하는 글쓰기에 대해 들으며 독자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상적인 어휘들로 깊이 있는 내용을 풀어 준 탓에 더 큰 울림이 있었다. 저자는 곧 지금껏 낸 책 중 이번 책의 반응이 가장 좋다는 말과 함께 얼마 전 트위터에서 본 독서평 하나를 소개했다. 책을 읽다 보니 이렇게 단정하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러려면 굉장한 내공이 필요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참 감사하고 마음에 드는 칭찬이라 말한 저자는 하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 내공이랄 것은 별로 없다며 그 대신 글을 쓰며 지금까지 지켜온 글쓰기 지침을 소개해주었다. 독자들은 그가 소개해주는 10가지 지침을 꼼꼼히 받아 적었다. 저자의 경험과 사유가 녹아있는 이 실질적인 지침들은 평범한 듯 보이지만 자주 듣던 조언에서 조금씩 빗겨있다. 어디에서도 듣기 힘든 황현산 선생의 10가지 글쓰기 지침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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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을 쓸 때는 어떤 내용을 쓴다고 생각하지 말고, 어떤 문장을 쓴다고 생각한다.


내용을 쓴다고 생각하면 정리가 되지 않고 굉장히 혼란스럽다. 그보다는 한 문장 한 문장 어떤 말을 쓸지 생각하는 게 좋다. 지금 이 문장에서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가, 다음 문장에서는 무슨 말을 하는가, 하면서 단계별로 생각을 만들어가야 한다.


2. 어떤 호흡으로 읽어도 리듬이 살아야 한다.


글을 쓴 다음에는 호흡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호흡을 주관적으로 생각한다. 자기 호흡대로 다른 사람들이 읽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독자들이 그렇게 읽을 이유가 없다. 글을 쓴 다음에는 모든 호흡으로 글을 읽어보는 게 좋다. 여러 방식으로 읽어보아도 잘 읽혀야 잘 쓴 것이다. 처음에는 이 연습을 할 때는 구두점을 많이 찍어보는 게 좋다. 구두점은 독자를 강제로 쉬게 하는 것이라 도움이 된다. 


3. 상투어구, 상투문을 피해서 글을 쓴다.


글을 쓴 다음, 늘 하던 소리다 싶으면 지운다. 그럴 때는 생각을 안 하거나 생각을 미진하게 한 거다. 상투적인 문장이 들어있다면 그건 할 필요가 없는 말을 한 거다. 지우고 다시 쓰다보면 생각이 변화하고 발전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가짜생각’과 ‘진짜 생각’을 구분해야 한다. 보통 ‘허위의식’이라는 것은 ‘상투적으로 표현되는 의식’이라는 말과 통한다.


4. 되도록 의성어 의태어도 쓰지 않는다.


가능한 쓰지 않으려 한다. 의성어, 의태어는 별 것 아닌 문장도 생생하게 만든다. 쓰는 사람까지 속을 수 있다. ‘닭이 울었다’고 쓰면 되지 ‘닭이 꼬끼오 하고 울었다’고 쓸 필요는 없다. 


5. 팩트의 관계를 엮어줄 필요는 없다. 


글을 쓸 때, 팩트들의 의미를 강화하면서 쓰는 사람이 있는데 그럴 필요는 없다. 팩트들을 늘어놓으면 독자들이 다 알고 이해한다. 예를 들면, ‘태극기가 펄럭인다. 오늘은 3.1절이다.’하면 사람들은 이해를 한다. ‘오늘은 3.1절이기 때문에 태극기가 펄럭인다.’라고 쓸 필요는 없다. - 때문에 같은 표현 없이 팩트를 연달아 제시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연관관계를 굳이 엮어주지 않아도 독자들은 받아들인다.


6. 짧은 문장이 좋은 문장인 것은 아니다.


짧은 문장으로 쓰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하지만 짧은 문장을 쓰라는 건 짧은 문장이 좋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긴 문장을 쓸 내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긴 문장을 잘 쓰려면 긴 문장을 자꾸 써봐야 한다. 짧은 문장만 쓰면 문장이 늘지 않는다. 문장을 잘 쓴다는 건 긴 문장을 명료하게 잘 쓰는 것이다. 섬세하고 복잡한 것을 나타내려면 긴 문장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내용은 짧은 문장으로 탁탁 치고 넘어가는 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글을 처음 쓸 때는 긴 문장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7. 형용사의 두 기능인 한정과, 수식을 구분해야 한다.


글을 쓸 때, 형용사를 쓰지 말라는 말이 있다. 형용사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는데 하나는 수식, 다른 하나는 한정이다. 이 둘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새빨간 피를 철철 흘린다.’에서 ‘새빨간’은 수식이다. 이런 형용사는 줄여도 된다. ‘피를 흘린다’만 해도 충분하다. 하지만 ‘빨간 꽃 두 개 좀 가져다 줘.’ 할 때 ‘빨간’은 생략하면 안 된다. 이게 한정이다. 수식과 한정을 구분해야 글이 단단하고 명확해진다.


8. 속내가 보이는 글은 쓰지 않는다.


글을 쓸 때, 자기 자신을 잘 고백하고 자기 안에 있는 깊은 속내를 드러내면 좋은 글이 된다. 그런데 속을 드러내는 건 좋지만 속이 보이게 쓰면 안 된다. 속을 드러내는 것과 속보이게 쓰는 건 다르다. 글을 가지고 이익을 취하려고 하면 한 눈에 보인다. 


9. 한국어에 대한 속설을 믿지 않는다.


한국어는 구두점이 필요 없다거나 한국어는 사물절을 쓰지 않는다는 한국어에 대한 속설이 많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한국어에 구두점이 필요 없다는 말이 있는데 서양에서도 구두점은 16세기 이후에 쓰기 시작했다. 또, 사물절을 쓰지 않는 건 한국어의 어법이니 한국의 풍속일 뿐이지 꼭 지킬 필요가 없다.입니다. ‘보그 병신체’, ‘박사 병신체’ 같은 말이 있는데 그런 식이라면 이건 ‘토속어병신체’다. 아무리-해도 지나침이 없다, 같은 말을 쓰면 안 된다고 하는데 써도 된다는 거다. 물론 좋은 말은 아니니까 굳이 쓸 필요는 없지만 중요한 건 써도 된다는 거다. 


10. 문장이 가지는 실제 효과를 생각한다.


글을 쓸 때, 칸을 채우는 게 중요하지 않다. 어떤 문장을 쓰면 그 문장이 가지고 있는 실제 효과를 생각해야 한다. 어떤 말은 아주 멋진 것 같지만 아무 효과가 없다. 그러면 감동도 없다. 


Tip> 번역을 해보는 것도 글쓰기에 좋은 공부가 된다. 자기가 쓰던 말의 습관이 드러나고 우리말이 가지고 있는 강점과 약점도 드러난다. 이런 과정 속에서 어떻게 자기 문체를 만들어갈지 방향을 잡을 수 있다.


글쓰기에 대한 귀한 조언들이 끝나고 황현산 선생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두 시인을 초대했다. 바로 김이듬 시인과 권혁웅 시인이었다. 


권혁웅 시인은 과거 김현선생 추모특집에 불문학자로서의 김현에 대해 쓴 저자의 글을 읽고 놀랐던 기억을 황현산 선생과의 첫 인연으로 털어놓았다. 그 뒤로 저자의 글을 꾸준히 찾아보며 공부했고, 잠시나마 문예잡지 작업을 함께 하며 사적인 인연을 맺게 되었다. 권혁웅 시인은 자신이 쓰는 시, 비평, 사람 만나는 법에 대해 가장 많이 영향을 끼친 사람이 황현산 선생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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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수 시인이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권혁웅 시인은 단번에 산문집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답했다. 구두점하나, 쉼표하나, 조사 하나까지 허투루 쓴 게 없는 아주 좋은 산문시의 다발이라는 거였다. 그는 황현산 선생이 쓰는 글의 결구가 아주 아름답다는 말을 덧붙였다. 글의 결구 부분이 닫는 부분이지만 사실 다른 세계를 여는 문장인 만큼 글은 끝나도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세계를 열어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황현산 선생의 글은 아주 긴 글이라 했다.


김이듬 시인의 경우는 황현산 선생이 등단작을 뽑으며 인연을 맺었다. 특이하게도 사회를 맡은 박상수 시인은 선생님께 삐쳤던 적은 없는지, 질문했다. 김이듬 시인과 황현산 선생의 사이가 워낙 각별하고 살갑게 보여 던진 질문이었다. 김이듬 시인은 이런 저런 에피소드를 전해 웃음을 주었다. 그리고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하면서 지구와 별들처럼, 어둠 속에서 빛나는 관계로 지내고 있다 답했다. 황현산 선생의 글은 지방에 살고 있는 김이듬 시인에게 선생을 만나는 창구가 된다고 했다. 또, 선생의 모든 글을 꼼꼼히 찾아 읽으며 문학을 하는 이유나 자세를 배우고 있다 덧붙였다.


대담을 마치며 박상수 시인은 선생에게 ‘밤은 선생이다, ‘밤도 선생이다’ 가 아니라 ‘밤이 선생이다’ 를 제목으로 고른 이유를 물었다. 황현산 선생은 ‘은’이라는 조사를 쓰면 선생이 아주 많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애써 찾다가 만난 바로 그 밤이 선생이라는 의미를 전하기에 가장 적합한 조사였다고 답했다. 과연 엄밀한 어휘로 글을 쓰는 저자다웠다. 


돌아오는 길, 문득 ‘선생’에 대해 생각했다. 곁에 보고 배울만한 어른이 없어 먼 곳에서 스승을 찾는 시절이다. 순간 혹하는 한마디 조언에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가짜라 말하며 떠나가는 일도 많다. 이런 때, 꾸준한 삶으로 진실을 말하는 스승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그가 걸었던 길을 차분히 따라볼 마음이 들게 하는 스승을 만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 말이다. 절대 허투루 문장을 쓰지 않는 엄밀함, 글에 묻어나는 따뜻함과 고민의 흔적, 그리고 그 꾸준함을 생각해보면 글을 쓰는 사람은 물론 독자들에게도 황현산 선생의 글은 이 시대의 고마운 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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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연빈

북극곰이 되기를 꿈꾸며 세상을 거닐다.
어지러운 방에 돌아와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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