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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지옥이라도 가겠다 - 『아이언 하우스』
‘생존’하기 위해 킬러가 된 남자
『아이언 하우스』는 강인한 소설이다. 지독한 고통 속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현재에도 오로지 ‘생존’을 위해서 발버둥치고 있다. 어떤 이상이나 희망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이곳의 생존을 위해서 살아간다. 때로는 진실 대신 따듯한 거짓을 택하기도 하면서. 그건 위선이 아니라 위안이다.
책을 볼 때, 제일 먼저 표지를 본다. 다음은 뒤표지를 보고, 작가소개와 목차 순으로 넘어간다. 존 하트의 『아이언 하우스』를 봤을 때, 표지에 적힌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지옥이라도 가겠다.’라는 문구에 혹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 하나는, 연인이나 가족 등 무엇인가를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이야기다. 절망적인 상황이라면 더욱 좋다. <맨 온 파이어>나 <킬 빌>처럼.
뉴욕 갱 조직의 킬러인 마이클은 엘레나와 사랑에 빠진다. 죽음을 목전에 둔 보스는 마이클이 조직을 떠나겠다는 것을 허락한다. 하지만 형제처럼 컸던 보스의 아들 스티븐과 마이클을 최고의 킬러로 만들어낸 지미는 그의 이탈을 허락하지 않는다. 각자 이유가 있다. 스티븐은 마이클에게 열등감을 느꼈다. 피를 나눈 아버지가, 자신보다 마이클을 더 아끼고 이해한다고 믿었다. 그건 사실이었고, 아버지는 오히려 스티븐의 천박함에 고개를 저었다. 전형적인 사이코 킬러인 지미는 보스가 죽은 후, 자신이 보스가 되어 마이클과 함께 뉴욕을 장악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마이클은 고작 여자 때문에 자기 곁을 떠난다고 한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마이클도 잘 알고 있다.
이 삶에서 우아하게 빠져나가는 방법은 절대 없다는 걸. 이 일은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개인적인 자존심이 걸린 문제가 돼 버렸다.
보스가 죽고 나면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미와 스티븐은 엘레나를 노릴 것이고, 마이클이 반격을 가할 것이다. 예상대로 흘러갔다. 마이클과 엘레나는 도망쳐서 일단 몸을 추스른다. 그리고 또 하나의 약점인 마이클의 동생을 찾아간다. 고아원인 ‘아이언 하우스’에서 헤어졌던 동생 줄리앙을 스티븐이 노리고 있는 것이다. 상원의원 부부에게 입양된 줄리앙은 베스트셀러 동화작가가 되었지만, 여전히 유년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마이클과 엘레나가 줄리앙을 찾아간 날은 마침, 뭔가에 충격을 받아 제정신이 아니었다. 마이클과 엘레나는 상원의원의 사유지에서 하룻밤 머무르기로 한다. 그리고 『아이언 하우스』는 내 예상과는 다른 길로 접어든다. 전직 킬러를 쫓는 악당들과의 혈투를 예상했지만, 마이클과 줄리앙의 과거 그리고 여전히 이어지는 망령 속으로 『아이언 하우스』는 달려간다.
잠시, 이건 뭐지, 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빨려들었다. 존 하트는 마이클과 엘레나를 그저 위기에 맞서 싸우는 연인으로 그리기를 원치 않았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아이언 하우스』는 유년의 학대와 공포에서 벗어나는, 아니 그 고통을 겪고도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줄리앙의 소설은 아이들을 위한 책이지만, 일부에서는 지나치게 어둡고 잔인하다며 금지를 시키기도 한다. 줄리앙의 메시지는 한결 같았다. ‘세상은 잔인한 곳이고 아이들은 자신들이 아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아이들에게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 것은 또 다른 종류의 잔인한 행위라고 그는 종종 말하곤 했다.’
줄리앙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이클이 10개월이었을 때 그들은 숲에 버려졌다. 고아원 ‘아이언 하우스’는 숲보다도 끔찍한 곳이었다. 줄리앙은 늘 괴롭힘을 당하며 손가락이 부러지고, 깊은 상처를 입었다. 그 때마다 마이클이 복수를 했지만 집단 괴롭힘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고가 생겨 아이언 하우스를 뛰쳐나와 뉴욕으로 갔을 때, 마이클은 알았다. ‘무엇보다 생존이 우선인 것이다……사람들은 거짓말을 하고, 살인을 한다. 그 진실이 마이클의 중심을 너무나 세게 칭칭 감고 이제 그의 일부가 돼 버렸다.’ 그렇게 마이클은 투쟁했고, 킬러가 되었다. 그의 보스가 마이클을 발탁한 것도, 자식보다 아낀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런 철저한 고독과 두려움은 둘 외에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노인은 그런 시간 덕분에 두 사람이 명확한 판단력을 가지고 강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때문에 스티븐은 마이클을 증오했다. 자신은 나눌 수 없었던 아버지와의 끈끈한 유대감이 마이클에겐 있었기 때문에.
노인과 마이클은 닮았다. 삶에 대한 목표도 비슷했다. ‘노인과 마이클은 스스로에 대해 아무런 환상도 없었고 헛된 욕망도 추구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힘이란 음식과 거처와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혹독한 어린 시절이 남긴 교훈이었다.’ 그런 마이클이 엘레나에게 반한 것은 그녀가 전혀 다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매 순간이 지난 순간보다 훨씬 더 좋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선하다고 믿으며, 그래서 색깔을 잃어버린 우중충한 무색의 세상에서 화려한 색깔로 빛나는 사람이었다.’ 세상에 대한 희망과 설렘으로 가득찬 엘레나는 마이클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다. ‘자신이 껴안고 살았던 세계가 너무 좁았던 것에 한탄했’던 노인은 마이클의 결정에 동의하고 축복해주었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마이클이 킬러였다는 것을 알게 된 엘레나의 충격은 극심할 수밖에 없다. 맨 정신으로 사람을 죽이는, 어둡고 거친 밤의 세계에서 살아온 남자가 마이클이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알고 있는 세계가 무너져버려서 지금도 간신히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극한의 과정을 겪으면서 엘레나도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고통을 겪으면서, 그 지옥을 이겨내기 위한 방법을 처음으로 느낀다. ‘처음으로 엘레나는 마이클이 그녀를 찾아내길, 그리고 자신이 지켜보는 가운데 지미를 죽여주기를 기도했다. 그녀의 손바닥에서 퍼져가는 이 새로운 분노는 미처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느낌이었다……그녀의 무력함을 차갑게 씻어내리면서 처음으로 진정한 희망의 맛을 보게 해줬다.’
『아이언 하우스』는 마이클과 악당들의 싸움을 강조하는 액션 스릴러가 아니다. 성장과정에서의 고통이 어떤 인간을 만들어내는지, 그 깊은 어둠을 파고드는 스릴러다. 존 하트는 계속해서 미스터리를 던져준다. 줄리앙에게 숨겨진 비밀은 대체 무엇일까? 줄리앙을 입양한 엄마 애비게일이 숨기는 과거는 무엇일까? 어째서 아이언 하우스의 망령이 지금 다시 나타난 것일까? 마이클은 당장 악당들과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비밀들을 밝혀내지 않고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마이클, 줄리아, 애비게일 등 과거에 얽매여 있는 사람들 누구나 마찬가지다.
그들은 누구나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그것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마이클은 만약 자신이 줄리앙과 함께 애비게일의 아들로 입양되었다면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를 생각해본다. 답은 금방 나온다. ‘아마 똑같은 사람이 됐겠지. 그는 그렇게 판단했다. 사람은 덜 죽였겠지만.’ 줄리앙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지만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 어둠이 여전히 그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그건 지워지지도 않고, 완전히 몰아낼 수도 없다. ‘그가 아무리 많은 걸 이뤄냈더라도, 그는 항상 아이언 하우스 출신의 소년일 것이다. 항상 쫓기고 위험에 노출된 채, 어두운 구석에 너무 가까이 다가갔다는 느낌을 받으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면서 조금씩 성장해갈 뿐이다. 어둠과 함께.
『아이언 하우스』는 강인한 소설이다. 지독한 고통 속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현재에도 오로지 ‘생존’을 위해서 발버둥치고 있다. 어떤 이상이나 희망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이곳의 생존을 위해서 살아간다. 때로는 진실 대신 따듯한 거짓을 택하기도 하면서. 그건 위선이 아니라 위안이다.
우린 의심하면서도 살아갈 수 있어.
제섭이 말했다.
우릴 무너뜨리는 건 바로 진실이야.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존 하트> 저/<박산호> 역13,320원(10% + 5%)
『다운 리버』,『라스트 차일드』로 작가로서의 절정기를 맞이한 존 하트. 『아이언 하우스』를 통해 또 하나의 벽을 허물다 2008년 『다운 리버』와 2010년 『라스트 차일드』가 에드거 상 최우수 장편소설 상을 수상하면서 존 하트는 단숨에 작가로서 최고의 명성을 누리게 된다. 에드거 상이 시작된 1954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