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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혼자 책 읽을 시간이야”

추억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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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보다 멀리 있는 누군가에게 공들여 편지를 쓰고, 그림을 그려 보내는 까닭은 추억의 힘이다. 니나 상코비치 역시 ‘기억’이 우리를 더 오랫동안 견디게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지금 여기서 살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그녀 역시 그것의 중요성을 알고 있지만, 혈육의 죽음이나 분노 때문에 현재를 제대로 살 수 없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한 순간을 다시 살아내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이 저녁에, 심장과 위장이 모두 젤리처럼
흐물거리는 와중에 나는 그걸 돌이켜보면서
결국은 그게 인생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인생에는 절망도 많지만 기묘하게도 아름다운 순간도 있다고.
예전과 다른 종류의 시간이 되어 버리는……
‘다시는’ 같은 시간일 수 없는
그런 순간 속에 있는 ‘언제나’인 것.

                                                       -소설 『고슴도치의 우아함』 중에서


2002

2002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일이 일어난 해 중 하나였다. 그해 나는 새로운 직장에 들어갔다. 첫 조카가 태어났고, 친한 친구가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그해, 영화보다 많은 연극을 봤다. 회사가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 근처라 표를 싸게 구입할 수 있는 ‘사랑티켓 박스’가 멀지 않은 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결혼을 앞두고 있던 내가 영화도 아니고 연극을 ‘혼자’ 보러 다닌다는 사실에 친구들은 심란한 얼굴들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워킹 타이틀’이 만든 영화나 ‘로브 라이너’의 열렬한 추종자들로 결혼이 결정된 후 다른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거나, 결혼의 부담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신부가 (말을 타고!) 도망가는 영화를 사랑하는 사춘기를 보냈다. 영화 ‘졸업’의 마지막 장면을 보며 우리 중 울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해 여름, 퇴근 후 회사 근처를 서성이다가 충동적으로 ‘yoga’ 라고 적혀 있는 간판을 따라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낡은 4층 건물 꼭대기 층에 있는 곳이었다. 그날부터 요가를 시작했다. 딱히 요가에 관심이 있었던 게 아니라, 무엇인가를 찾던 그때 내 눈에 보였던 것이 그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회원가입 선물로 받은 파란색 요가매트를 어깨에 매고 집에 들어온 나를 엄마는 별 걸 다 본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그때, 요가를 만나지 않았다면 분명 나는 그 시절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2002년 베트남 승녀 ‘틱낫한’과 한국 승녀 ‘숭산’의 책들이 여럿 번역되어 나왔다. 인터넷 서점의 종교부문 담당자였던 나는 이들의 책을 소개하는 리뷰를 여러 편 썼다. 그때, 부처가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를 가장 잘 사는 사람이었다는 말을 귀담아 들었다. 그리고 마음이 어지러울 때, 그 말을 성경말씀처럼 몇 번이고 되뇌었다.


19.29.39

열 아홉, 스물 아홉, 서른 아홉. 정신없이 살다가 그 나이가 되면, 내면의 누군가가 내게 자꾸 ‘살아간다’ 말하지 않고 ‘견뎌낸다’라고 주장하곤 했다. 마음속에는 여러 개의 방이 생겨, 문을 쾅쾅 내리치며 거칠게 닫는 소리가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리곤 했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되는 것이라면, 만 번쯤 흔들려도 어른이 될 것 같지 않은 내 마음이 수상해져 도리없이 우울해졌다. 그 어지러운 시간들을 나는 무엇으로 견뎠을까.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갔다 오거나, 모르는 길을 무작정 걷다가 길을 잃기도 했다. 자주 헤매다보니 아예 지도 같은 건 보지 않게 됐는데,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여기가 어디에요?”라는 말을 더 많이 묻게 됐다. 하지만 사람들마다 하는 말이 달라서 더 많이 헤매기 십상이었다. 결국 여기저기를 헤매다 내가 돌아간 곳이 늘 ‘책’이었다.

열아홉 살, 톨스토이의 『부활』을 읽다가 중도 포기했을 때, 나는 귀족인 네훌류도프가 한때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살인죄를 쓰고 투옥된 카투사에게 청혼하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는 카투사는 더더욱 이해되지 않았다. 그녀가 솔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열아홉 살의 문법에는 ‘죄책감 때문에 결혼한다’거나 ‘사랑하니까 떠난다’라는 말 같은 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사랑하니까 떠난다’는 말이, 적어도 ‘말’ 비슷한 것이라도 되려면 시간이 더 많이 필요했다.

스물아홉 살 즈음 읽었던 『안나 카레리나』에선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지는 안나가 이해되지 않아서 괴로웠고, ‘고전’이라 부르는 책들은 왜 하나같이 이렇게 길고 길어서 사람들의 인내심을 쥐어짜게 하는 걸까 의문이 가기도 했다.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이나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를 읽고 감동받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 대한 의구심과 비슷한 것이었다. 흔들리던 열 아홉 살에는 톨스토이의 『부활』이 연애소설이었는데, 거칠게 흔들리던 서른아홉살에 읽은 『부활』은 네훌류도프의 성장소설이었다. 끝까지 읽지 못했거나, 제대로 읽지 못해서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들에 밑줄을 그으며,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많이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가령 카투사가 자신의 청혼을 거절할 때, 그가 내심 안심을 느끼는 대목에선 그가 ‘흔들리는 인간’이라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했다.

우리 사이에 가장 널리 퍼져 있는 미신의 하나는 인간은 각기 다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선인이라든가 악인, 현인, 어리석은 사람, 근면한 사람, 게으른 사람 등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을 그렇게 구분해 단정적으로 봐서는 안 된다. 저 사람은 악인일 때보다 선인일 때가 더 많다든가, 게으를 때보다 부지런할 때가 더 많다든가, 어리석을 때보다 똑똑할 때가 더 많다든가, 또는 그 반대로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한 인간을 두고서 당신을 성인이라든가 분별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에 대해선 당신은 악인이라든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해선 안 될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항상 인간을 그런 식으로 구분 짓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한 일이다. 인간이란 흐르는 강물과 같다. 물은 어느 강에서든 흐른다는 데는 변함이 없으나 강 하나만 생각해보더라도 어느 지점은 좁고 물살이 빠른 반면, 넓고 물살이 느린 곳도 있다. 또 여기서는 맑기도 저기서는 탁하기도 하고, 차기도 따스하기도 하다. 인간도 이와 마찬가지다. 누구나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성격의 온갖 요소를 조금씩은 가지고 있어 어느 경우 그중의 하나가 돌출하면 똑같은 한 사람이라고 해도 평소의 그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일 때가 있다.


2013

니나 상코비치의 『혼자 책 읽는 시간』을 읽은 건, 대낮 공원 벤치 위에서였다. 그때 나는 그네를 타고 있는 꼬맹이들을 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아직 유치원 복을 갈아입지 않은 터라, 나는 아이들이 ‘샛별 유치원’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놀이터 옆에는 그네를 타는 아이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앳된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너무 불공평해.”
그 말이 내 몸속에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언니가 죽어야 한다니, 불공평했다. 꼭 한 번 그렇게 말했다. 난 알아들었다. 난 언니를 끌어안았고,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다만 사랑한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 회색 카디건은 지금 내가 갖고 있고 겨울이 오면 입는다. 삶이란 게 얼마나 불공평한지 나는 안다. 삶이 불공평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지만 언니는 더 많이 알았다. 언니가 알고 있던 그것을 빼앗아 대신 감당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내게는 끔찍하다.


나는 『혼자 책 읽는 시간』의 도입부를 읽고 있었다. 명석한 학자였던 언니의 죽음 때문에 어느 순간 삶의 조건이 바뀌어 버린 여자의 황량한 내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오후 세 시의 뜨거운 태양 아래 앉아 있는 귀여운 아이와 어린 엄마의 모습에서도 죽음의 한 장면을 엿볼 수 있었다. 내 눈앞의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에 어두운 죽음의 감각은 더 처연하게 느껴졌다. 잠시 책장을 덮고 눈을 감았는데, 언뜻 이 삶에 죽음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아이의 엄마이며 변호사였던 한 여자가 언니를 잃는다. 그녀는 언니를 잃고 난 후 3년 동안 더 바쁘고 보람차게 살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지독한 투병 끝에 힘들게 죽어간 언니의 죽음이 자신에게 던진 의문과 슬픔을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어째서 누구보다 뛰어났던 언니가 그처럼 고통스레 죽어야 했던가. 왜 내가 아니라 언니인가! 남겨진 사람들은 어떻게 슬픔을 처리해야 하는가.

혼란스러웠던 어느 날, 그녀는 남편과 아이를 데리고 떠난 휴가지에서 400쪽이 넘는 소설 『드라큘라』를 읽고 편안히 잠든다. 그것은 3년 만의 일이었다. 이후, 자신의 슬픔을 치유하는 방법으로 그녀가 택한 것은 책읽기. 그녀는 아이들을 돌보는 최소한의 일을 제외한 생업을 멈추고, 1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한 권의 책을 읽고, 짤막한 서평을 쓰는 것으로 자신의 절망과 분노를 치유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Read all day 라는 사이트에 자신이 읽은 책을 올려 그것을 사람들과 공유하기 시작한다.

정여울의 『아가씨, 대중문화의 숲에서 희망을 보다』에 보면 드라마 김삼순에 관련된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나온다. 현빈을 사이에 두고 옛 애인인 희진과 현재 애인인 삼순이 카페에서 만난다. 희진은 과거 현빈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얘기하고, 삼순은 현빈의 눈앞에 있는 사람이 자신임을 말한다.

희진은 말한다. 제가 먼저 그쪽을 불렀으니 제가 낼게요. 삼순도 지지 않고 대꾸한다. 제가 한 살이라도 나이가 많으니까 제가 낼게요. 희진의 미국식 합리주의와 삼순의 한국식 정서주의가 빠지직, 충돌한다. 희진은 다시 한번 도도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럼 우리 더치페이해요. 그러자 삼순은 새로운 제안을 한다. 그럼 희진 씨 건 제가 낼 테니 제 건 희진 씨가 내요. 희진은 어리둥절하다. 그게 무슨 차이란 말이죠? 삼순은 씩씩하고 따스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렇게 하면 오늘 일도 추억이 되잖아요.

삼순은 추억과 기억을 구별해내는 예민한 감각을 가졌다. 그래서 그녀는 희진에게 “추억은 아무런 힘이 없어요!”라고 힘주어 말할 줄 안다. ‘추억은 아무런 힘이 없다’란 말은 현재의 여자가 과거의 여자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날카로운 말이었을 것이다. 그렇듯 유년을 공유하던 혈육이 사라지면 우리가 ‘추억’이라 부르는 특별한 기억들은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는다. 추억이란 ‘혼자’가 아니라 ‘둘’이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꾸역구역 글을 쓰고, 어찌어찌 살다보니 나는 김삼순의 말이 꼭 맞는 것은 아니란 걸 알겠다. 추억은 힘이 세다. 시간이 지날수록 추억의 힘은 점점 더 세어진다. 나는 이것을 조나선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통해 배웠다. 소설에서 애나는 사랑하는 그에게 타자기를 선물한다. 그리고 그가 고마워하자 눈을 부릅뜨고 이렇게 말하기 시작한다.

왜 나한테 고마워하는데? 그건 나를 위한 선물이야.
너를 위한 선물이라고?
넌 나한테 절대 편지를 쓰지 않잖아.
하지만 난 너와 함께 있는 걸.
그래서? 편지는 곁에 없는 사람한테 쓰는 거야. 넌 절대 나를 조각하지 않아. 하지만 적어도 편지 정도는 쓸 수 있겠지. 그것이 사랑의 비극이야. 그리움은 사랑보다 늘 강하거든.


우리가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보다 멀리 있는 누군가에게 공들여 편지를 쓰고, 그림을 그려 보내는 까닭은 추억의 힘이다. 니나 상코비치 역시 ‘기억’이 우리를 더 오랫동안 견디게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지금 여기서 살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그녀 역시 그것의 중요성을 알고 있지만, 혈육의 죽음이나 분노 때문에 현재를 제대로 살 수 없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한 순간을 다시 살아내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그녀가 말하는 ‘기억’은 행복한 순간을 회상하고 다시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경험이다. 전쟁의 경험을 체험한 아버지에게서 그녀는 ‘종으로서의 인간의 생존이 기억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우리 내면의 자아의 생존 역시 기억에 달려 있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왜 예리한 후각을 가졌겠는가? 나는 상록수의 냄새를 맡으면 기뻐 어쩔 줄 모른다. 왜냐고? 크리스마스 트리 발치에서 보냈던 즐거운 시간들 때문이다. 팝콘의 냄새가 유혹적인 것도 그걸 먹으면서 본 영화 때문이다. 푸른 올리브 열매의 맛은 배를 고프게 한다. 올리브를 한 두개 먹으면서 함께 맛보았던 맛있는 음식과 넘쳐흐르던 와인의 기억 때문이다.

2012년, 나는 2002년의 추억을 기억하며 살았다. 어느 순간은 정말 그랬다. 그리고 가장 나빴다고 생각했던 일이 실은 가장 나쁜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10년의 시간을 통해 깨달았다. 그러니까 “이제 나는 내게 일어났던 모든 나쁘고 슬픈 일들, 내가 책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들이 모두 인간의 회복 능력의 대가이자 증거라는 사실을 이해한다. 상상한 것이든 실제의 것이든, 경험의 가치는 우리가 어떻게 살지, 어떻게 살지 않을지를 보여주는 데 있다”라는 그녀의 말에 깊게 긍정할 수 있었다.

니콜 클라우스의 『사랑의 역사』에서 알마와 레오를 끝내 만나게 하는 것은 페이스북의 친구찾기가 아니다. 그것은 알마와의 추억을 끝내 기억하며 산 레오의 기다림이다. 지독한 상실을 견디는 힘은 결국 자신만의 추억을 찾아나서는 일이다. 내겐 그것이 한 권의 책을 가슴에 안고 조용히 어두운 방 안의 스탠드를 켤 때의 느낌이었다. 어둠을 뚫고 스며든 빛의 양감이 내 어깨에 흐를 때, “이젠 혼자 책 읽을 시간이야”라고 내 안의 누군가가 나지막이 들리는 음성을 기억해내는 것, 그것의 따스함을 온 몸으로 껴안고 누군가의 깊은 음성을 좇아 내면으로 낭독하는 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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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백영옥

장편소설 『스타일』로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 2008년에서 2009년에 걸쳐 YES블로그에 장편소설 『다이어트의 여왕』 연재, 일간지 연재칼럼을 모아 낸 에세이집 『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 단편집 『아주 보통의 연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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