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은 400여 년 전 셰익스피어를 통해 탄생하지 않았더라도 오랜 세월, 건너, 건너 전해지는 심심치 않은 주변의 이야깃거리였다. 그리고 2012년, 국립극단과 중국국가화극원의 합작을 통해 새로운 버전이 탄생했다.
전미도 :
배경이 중국의 문화혁명 시기이기 때문에 그 시대 아이들의 충동적이고, 돌발적인 행동으로 기존의 로미오와 줄리엣보다는 좀 더 역동적이고, 에너지가 넘칠 겁니다.
강필석 : 원작에 충실하지만 결코 옛이야기가 아닌, 현재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모습, 대화, 행동들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신나고 재미있는 청춘남녀!
로미오와 줄리엣을 비롯, 모든 배우들은 한국인. 하지만 연출은 중국 상임연출 중 유일한 여성이며 2005년 이미 한국에서 공연을 올려 호평을 받은 티엔친신이다. 연출가 티엔친신과 배우들의 의시소통, 어렵지 않았을까?
전미도 : 쉽진 않아요. 아마도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서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더욱 많지 않아 그런 것 같습니다. 외국어라는 문제도 있고요. 하지만 작품을 두고 만났기 때문에 말보다는 눈빛, 표정, 제스처로 대화하고 있습니다. 서로를 알아가며 소통해가는 일들이 또 다른 무대 위의 이야기들 같아요.
강필석 : 아무래도 통역에 한계가 있어 조금 힘들기도 하지만 공유하고자 하는 노력과 열정으로 그 부분을 채워가고 있답니다.
연출가 티엔친신은 기자간담회에서 ‘직설적인 사랑’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된 이미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직설적인 표현도 많다는 얘기?
전미도 : 대본에 제시되어 있는 것보다 키스를 많이 하긴 합니다. 연기를 하면서 대사가 생각이 안 날 때는 일단 키스부터 하고 보는 정도가 되었죠. 하하
강필석 : 키스씬이 엄청 많긴 한데요. 티엔친신이 말한 직설적인 사랑은 조금 다른 부분인 듯 해요. 솔직함, 진심, 자신의 마음을 거리낌 없이 표현할 수 있는 순수와 용기, 이런 부분이 아닐까요.
거리낌 없는 그들의 사랑은 무대 위 역동적인 무대 구성에서도 나타난다. 배우들이 전신주를 타고 지붕 위와 동네를 넘나드는 장면들도 있다는데 고공 와이어 액션이라도 선보이는 걸까?
강필석 : 사실 이 부분이 조금 힘들긴 합니다. 근사한 무대에 멋있는 장면이긴 한데 부상을 염려하기도 해야 하니까요. 최대한 조심조심 하고 있습니다. 줄 타고 오르내릴 때 힘들기도 하지만 또 신이 나기도 해요.
전미도 : 다행히 줄리엣은 와이어 연기가 없습니다. 대신 캉화화 역에 고수희 선배가…
직설적인 표현과 다이내믹한 액션, 스피디한 전개. 듣는 것만으로도 기자는 연출가 티엔친신의 대륙적 감각이 묻어날 <로미오와 줄리엣>의 새로운 버전이 탄생했음을 직감했다.
이쯤 되면 강필석과 전미도 두 사람은 눈빛만 봐도 통할까? 올해만 벌써 세 번째 작품에서 연인으로 동반 출연한다. <번지점프를 하다>와 <닥터 지바고>에서 호흡을 맞춘 두 사람, 특별한 인연이라도?
전미도 :
이번에 로미오와 줄리엣을 같이 하게 됐을 때 같이 말없이 웃었습니다. 한 해 동안 3번이다 잇달아…그런데 공교롭게도 세 작품 다 사랑이 이루어 지지 않았어요. 다른 사람에게 가거나, 누군가가 꼭 죽죠. 이루어지지 않는 연인 역으로 저희가 참 잘 어울리나 봅니다. (웃음)
강필석 :
저도 줄리엣이 미도라는 말에 한참을 웃었어요. 첫 만남은 <김종욱 찾기> 특별 공연이었고요. <번지점프를 하다>끝나고 우리 언제 만날까 했는데 바로 또 만나네요. 저는 미도 씨가 편하고 좋은데 미도 씨는 어떠실지…
그렇다면 서로에 대해 가감 없이 평해보자. 강필석은, 전미도는 어떤 파트너일까?
전미도 :
강필석은 무대 위에서 신뢰하는 배우입니다. 함께 호흡을 맞춰가는 게 재밌고 똑똑해서 제가 도움을 많이 받죠.
강필석 :
너무 좋은 배우입니다. 함께하면 참 즐거운!
음… 무대 위에서만? 세밀한 부분은 이번 공연이 모두 끝나고 묻기로 하자.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동명의 영화 속 이병헌이 맡았던 인우 역을 연기한 강필석은 이 뮤지컬 이후 뭇 기사마다 ‘뮤지컬계 이병헌’이라는 수식어가 따랐다.
강필석 :
부끄럽습니다. 과거 ‘내 마음의 풍금’ 이라는 뮤지컬도 있었기 때문일까요. 개인적으로 이병헌 배우를 몹시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저에겐 영광이죠.
그보단 그의 ‘성실함’이 주효한 것일까? ‘뮤지컬계 이병헌’이라는 수식어 다음으로 많은 게 바로 ‘신뢰의 아이콘’이라는 말. 근거가 뭘까?
강필석 :
글쎄요…뭘까요? 아마도 꾸준히 무대에 오르고, 열심히 해서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성실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도 아이콘까지…부끄럽습니다.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말해 무엇 하랴. 성실함은 보이는 게 전부. 최근에는 지진희, 염정아, 하정우 등이 소속된 매니지먼트사와 전속계약을 맺었다. 앞으로 뮤지컬, 연극 말고도 다양한 장르에서 만날 수 있을지 지켜보자.
뮤지컬 배우들에게 전미도는 ‘함께 연기하고 싶은 배우’로 꼽힌다 들었다. 아무래도 사랑을 나누는 상대배우들에게서 나온 이야기 같은데?
전미도 :
아무래도 주로 애절하게 사랑하는 역을 많이 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만난 지 한 달 반 길어야 두 달 된 사람들과 무대 위에서 절절히 사랑해야 하니 눈을 보며 교감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요. 누가 나와 연기하고 싶어 하는 진 모르겠지만 감사하네요.(웃음)
과거 한 인터뷰 중 “아흔 고령에도 연극 무대를 빛내던 장민호 선생님 같은 배우”가 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그녀는 지금 목표를 향해 매진 중이다.
전미도 :
무대 위에 오래 서는 것이 배우로서의 목표입니다. 그때까지 무대 위에 선다는 것이 배우로서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도 있겠지만 여전히 무대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를 변함없이 사랑한다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거든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연인들에게는 지금이 스페셜 시즌, 공연계 종사자에게는 행복한 대목이다. 그렇다면 화려한 무대의 불이 꺼진 뒤 배우에게 지금은?
전미도 :
다행히도 크리스마스에는 3시 1회 공연밖에 없습니다. 6시가 되면 공연이 끝나죠.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모든 특별한 일정은 저녁에 이루어지니까요. 여러분! 메리크리스마스!!!
P.S. 만약, 로미오와 줄리엣이 죽지 않았다면 두 사람의 사랑은 어떻게 됐을까?
그들이 죽지 않고 사랑을 이뤘다면 얼마 못 가 헤어졌을 거라고 연출가 티엔친신이 늘 얘기했다고 한다. 기자 역시 동감이다. 하지만 강필석과 전미도 두 배우의 생각은 달랐다. 죽을 때까지 사랑했을 거라고(전미도), 농사짓고 잘 살았을 거라고(강필석) 믿는다. 이미 그들은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2012년산’ 이들의 절대 사랑, 새로운 빈티지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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