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의 장기수, 50년 만에 여자 손 처음 잡는 거더라” - 양순자 『어른 공부』
30년간 사형수들을 보내며 얻은 삶의 가치들 “30년간 사형수들 상담하면서 인생공부 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교도소 안의 사람들은 교화의 대상이다. 하지만 작가는 오히려 그들을 통해 배웠다고 이야기한다. 사형수들을 상담하며 인간공부, 인생공부를 했다고 하면 ‘죽는다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을 것 같지만 작가는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말한다. 절망뿐일 것 같은 공간과 사람들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그 싹을 틔운 작가 양순자. 그 삶의 이야기를 전한다.
날마다 오늘이 집행날은 아닐까 가슴 졸이다 떠나는 것이 사형수의 운명이지. 감옥 밖에 사는 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떠나고. 사형수와 우리에게는 다만 그 차이가 있을 뿐이야. (p.23) | ||
이번 책 《어른 공부》는 꼭 써야 할 이유가 있었어. 나는 수술대 위에서 마취가 되기 직전 지상에서의 마지막 기도를 했지. 깨어나면 ‘의미 있는 일’을 하게 해달라고. 내가 만난 소중한 인연들에게 살아가는 힘을 주는 일을 하고 싶었어. 비틀거리고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의 손을 잡아주고 잠시 기댈 수 있도록 해주는 역할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 (p. 232) | ||
처음 서울구치소에서 사형수 담당을 자원하셨을 때 ‘내 삶이 너무 버거워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을 때’였다고 술회하셨습니다. 당시에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여쭤보아도 될까요
버거웠죠. 시집가서 애 둘 낳고 안 하던 일을 하니까 힘들었어요. 스물다섯에 시집을 갔는데 내 부모한테 받은 교육, 내가 해왔던 습관, 이런 것들이 25년이면 굳어져 있는 거죠. 그런데 시댁에 가보니까 문화가 다르잖아요. 3년 안에 시댁에 맞게 바뀌어야 했어요. 적응하기가 얼마나 어렵겠어요. 그것이 여자의 운명이려니, 하고 사는 사람은 삶을 살겠지만 나는 인생이 그게 아니더라구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가슴앓이를 더 많이 했어요. 결론은 꼭 ‘이놈의 세상 살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에 도달하더라구요.
그렇게 삶이 힘드니까 그 현장으로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이것이 너무 배부른 소리가 아닌가 싶고, 내가 그렇게 고생을 많이 한 사람도 아닌데 이런 소리를 하면 고생 많이 한 사람들은 어쩌나 싶은 거에요. 그러니까 이것이 사치스러운 소리가 아닌가 싶어서 ‘사형수는 어떻게 죽음을 안고 몸부림 치는가’ 그 현장으로 가고 싶어서 사형수 상담하러 간 거에요.
상담일을 시작하면서 기대하셨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어떻게 생각하면 나는 사형수한테 배우러 갔어요. 다른 교화위원들은 사형수한테 신앙을 넣어주고 그 사람들을 천국으로 가게끔 해주는 전도사 역할을 하러 들어갔는데, 나는 사형수한테 ‘너는 지금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냐, 너는 죽음을 끌어안고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이 무엇인가’ 듣고 싶었죠. ‘내가 생각하고 있는 죽음이란 것이 정말로 이렇게 함부로 생각해도 되는 것인가’ 의문을 갖고 현장 학습소에 간 거에요.
처음 교도소에 들어갔을 때 어떠셨나요. 무섭지 않으셨나요.
무서웠죠. 나도 겁이 많은 사람이에요. 지금 새 교도소는 깨끗한데 무학재 아래에 있던 교도소(서대문 형무소)는 더 으스스했어요. 일제 강점기 때부터 있어가지고 쾌쾌한 냄새가 나고 나무짝 소리가 뻐그러지고... 온통 죄수복 입은 사람들인데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다 수갑 차고 있으니 무서웠죠. 어떻게 생각하면 가장 리얼한 삶의 현장으로 들어간 거에요. 그런데 그것에 대해서 연구를 하러 들어간 사람이 그 정도를 감내 못하면 되겠어요? 그때 나는 용감했죠. 37살 먹은 사람은 아마 내가 처음이었을 거에요. 다 40~50대 아니면 60대였으니까요.
『어른 공부』에서 진정한 대화란 설득하려고 하지 말고 상대의 말을 듣는 거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남의 인생의 고민을 다 해결해줄 수 있겠어요. 그건 없는 거에요. 상담 잘하는 사람은 내담자 얘기를 잘 듣는 사람이에요. 나는 평균적으로 내담자가 2시간 30분 정도 얘기하고 나머지 30분 동안 내가 말해요. 그런데 2시간 30분 동안 얘기를 하고 나면 자신이 답을 만들어 내더라구요. 자신의 말을 이렇게 들어줬다는 것이 편안한 거에요, 나는 다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구요.
나는 하루에 딱 한 번, 시간에 관계없이 상담을 해요. 그 사람이 ‘선생님 이제 그만하고 싶어요’ 할 때까지 해야 돼요. 나는 그만하고 싶어도 그쪽에서 아직 더하고 싶으면 해야 돼요. 그러고 나면 얼마나 속이 시원하겠어요. 상담 마치고 돌아간 다음에는 꼭 문자가 와요. 아마 나만큼 상담 후에 꼭 문자를 받는 사람도 없을 거에요. ‘선생님 너무너무 시원해요’ 그 소리를 들으면 달려가서 다시 상담료 돌려주고 싶더라니까요. 상대방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은 인격적으로 된 사람이에요.
상담하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도 ‘잘 들어줄 것’ 인가요.
들어야죠. 상담을 시간제로 하지 않는 이유가 있어요. 시간이 똑딱똑딱 가면 돈이 가고 있는 건데 마음 편히 이야기할 수 있겠어요? 유료 주차장에 차 세워놓고 차 마실 때 그 기분 알죠? 그것과 똑같아요. 시간은 가는데 정신이 없어서 얘기는 안 나오고 막히고.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어버버 거리면 30분이 그냥 가버려요. ‘이것은 상담이 아니다’ 생각했죠.
저는 하루에 딱 한 사람만 정해서 상담해요. 오는 시간도 가는 시간도 내담자가 정해요. 자신이 오고 싶을 때, 편안할 때 오면 돼요. 얘기할 때도 그냥 뒤죽박죽, 두서없이 해도 돼요. 내가 편집을 하면서 들으니까. 누구나 할 수 있는 상담은 아니죠. 나는 부산까지 가서 애기 기저귀 같이 갈아 끼우면서 상담했어요. 엄마가 상담을 해야 하니까 기저귀 가는 것도 도와주고 칭얼댈 때 봐주면서 얘기를 계속 하도록 하고 들어줬어요. 내담자들이 상담 받고 가기에 좋죠.
많은 사형수들의 참회와 죽음을 곁에서 지켜보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기에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삶의 우선순위는 무엇입니까.
세상에 나오면서 최초에 부모를 잘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최초에 그들이 만난 것이 부모잖아요. 그때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고 나를 도와줘야할 대상을 만나는데 그 대상이 잘못돼 있으면 시작이 잘못된 거죠. 우선 부모를 잘 만나야 돼요.
『어른 공부』에서 부모와 자식의 관계, 그 영향에 관해 이야기하신 이유인가요.
그렇죠. 대단히 중요해요. 부모로부터 버림받지 않았더라도 폭군 아버지를 만났다든지 술꾼 엄마를 만났다든지, 그러면 아이가 보호는 받지만 얼마나 살벌하게 보호를 받고 자라겠어요. 거기에서 아이의 성격이 만들어지는 거죠, 항상 불안하고. 자신을 100% 도와줄 부모를 만나야 하는데 그 부모가 편안하게 해주지 못하는 곳에서 자란다고 생각하면 성격 형성이 잘 되겠어요? 그래서 최초에는 부모를 잘 만나고, 두 번째는 질이 좋은 부모를 만나는 것이 중요해요. 질이 좋은 부모는 돈이 많은 부모가 아니에요. 정말 인격적인 부모, 아이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부모가 질 좋은 부모죠.
사형수들을 상담하시면서 ‘인간이란 본래 어떤 존재구나’ 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리셨을 것 같습니다.
연말이 되면 꼭 집행을 하거든요. 그래서 연말이 가까워 오면 조금 긴장을 하고 바삭바삭 야위어 가는 것이 느껴져요. 그런데 봄이 되고 여름이 오면 그때는 한창이니까 약간 망각의 뒤안길에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사람이 사는 거에요. 인간이 정말로 신비하게 생겼어요. 때로는 가끔 생활 속에서 나를 내려놓고 살 수 있는 망각이 인간에게는 있더라구요. 계속 집행만 생각하면서 불안감에 ‘나는 죽는다, 죽는다’ 하면 그것은 금방 끝나요. 그런데 내가 보니까 인간이 그러지는 않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사는 것 같아요, 인간은.
사형수들의 모습에서 인간의 나약함이 아닌 ‘희망을 찾는 본능’을 보신 것 같습니다.
인간이 나약하죠. 그런데 희망을 찾는 본능도 있어요. 내일 집행한다고 해도 오늘 저녁에 잠잘 때 ‘내일 무슨 일이 생겨서 집행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에게는 있을 수 있어요. 항상 나도 모르는 알파가 옆에서 나를 지탱해 주는 것 같아요. 남들에게는 희망이 없어 보이는 상황인데도 당사자들 안에는 ‘다음의 희망’이라는 것이 있어요. 그것이 정말로 신비한 거에요. 그것이 신이 우리를 창조하시면서 주신 한 가닥 희망의 끈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 희망만 놓지 않으면 그것은 반드시 이어질 수가 있어요. 사형수도 마지막 순간까지 죽는다는 생각은 확실하지만 ‘나도 모르게 틈새에 이변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 인간에게 그런 부분이 있어서 참 다행이에요.
장기수들과의 인연을 소중히 이어가시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얼마나 불쌍하냐면, 간첩 활동으로 (남한에) 내려와서 어떤 사람들은 옥살이를 30년까지 해요. 교도소 안에서만 30년을 살고 나오면 북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또 감호대상이 되어갖고 조금만 어디를 가도 경찰관이 다 있어요. 그 사람들은 여기 생활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거에요. 딱 동대문 시장에 풀어놓은 세 살 먹은 아이에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인간이 저렇게 고독해야 되는가’ 싶더라구요. 감옥 안에 있을 때는 밥이라도 세 끼 챙겨주니까 먹고, 동료들이라도 있지만 나와서는 다 개개인이 살아야 되잖아요. 장가를 가기도 힘들고, 안 간 사람은 명절도 외롭고 쓸쓸하고.. 상상을 못하죠.
그리고 또 생소한 사람들은 그 사람들과 친구를 해 줄 수가 없잖아요. 나는 교도소를 다녔기 때문에 그곳 얘기를 하면서 말벗이 되어줄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참 열심히 만났죠. 자유로 개통된 이튿날부터 그 사람들을 싣고 이북이 건너보이는 곳으로 가서 저기가 이북이라고 보여줬어요. 자유로를 나만큼 많이 이용한 사람도 없어요.
인연이란 맺는 것보다 그것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어렵지 않습니까.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셨을 것 같습니다.
나는 마음씨가 착하고 좋은 사람은 아니에요. 고독이라는 단어를 굉장히 좋아하기도 하고, 고독이라는 단어 앞에서 언제나 멈춰요. 그래서 고독한 사람을 보면 그렇게 마음이 가요. 교도소는 고독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에요. 누구에게도 자기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서럽고 슬펐던 얘기도 못해요. 세상에는 아파서 죽는 사람도 있고 자기가 죽고 싶어서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러나 사형수는 죽기 싫은데 나라가 죽여 버리는 거에요. 생명을 잘라 버리는 거죠.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고독하게 인생을 가는 거니까 나는 그 고독을 마지막까지 같이 가주고 싶어요. 고독할 때 누가 옆에 있으면 도움이 되잖아요.
예전에 청주교도소를 간 적이 있어요. 6?25 때부터 감호 대상이 된 사람들이 62명 있었는데, (사상) 전향을 하지 않아서 40~50년씩 거기서 살고 있는 거에요. 그 중 아홉 사람이 환갑이더라구요. 20대에 와 가지고 환갑이 된 거에요. 설교가 끝나고 사가지고 간 내복을 한 벌씩 주면서 악수를 하는데, 그 사람들이 50~60년 만에 여자 손을 처음 잡는 거에요. 자신의 어머니 손일 수도 있고 자기 누이의 손일 수도 있는 거죠.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떻게 힘껏 잡았던지 손이 아플 정도였어요. 감옥 안에 갇혀서 40~50년 산다면 쉬운 일이에요?
내가 병원 생활을 해 보니까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한테 가서 다 잘못했더라구요. 갇혀 있는 것이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내가 그들의 고통을 얼마나 이해하고 얘기를 했는가 싶은 거에요, 병원을 나오면서 ‘나 교도소 선교 안 했다. 나 나쁜 사람’ 하고 손들고 외쳤어요. 내가 갇혀있어 보니까 그때서야 비로소 그들의 고통을 알았어요. 그 고독한 사람들은 우리가 만나줘야 되잖아요. 크게 사건칠 일도 아니에요.
예전에 시골 군청에서 근무하실 때 정신지체 엄마와 세 딸을 정말 마음으로 보살펴 주셨었죠. 사형수의 자녀가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11년 동안 정성으로 뒷바라지 해 주신 적도 있습니다. 아무런 계산도 조건도 없는 이런 사랑이 어떻게 가능하셨습니까.
정신지체 장애를 가진 그 엄마는 정말 고독한 사람이잖아요. 마음으로 했죠. 그 사람들한테는 계산할 것이 없죠. 항상 부족하게 못 준 것만 생각나요. 내가 그렇게 많이 주지를 못했으니까. 그 사람들은 전혀 언어가 없잖아요. 말을 하지 않아요. 두 눈을 읽을 수 있어야 돼요. 그런데 나한테는 그 두 눈이 읽어지는 거에요. 나한테 하고 있는 얘기가 다 들려요. 무슨 얘기인지 알겠더라구요. 그러면 가슴이 쩌르렁 쩌르렁 하는 거에요. 그런데 막내딸 아이가 실개천 같은 데서 죽은 다음부터는 그 엄마의 눈이 더 슬픈 눈이 되어가지고...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어요.
(사형수의 자녀에게도) 학비나 대 주었을 뿐이죠. 그 아이를 후원하는 동안에 내가 여름휴가를 안 갔어요. 그런 것을 조금 정리를 해야지 내가 그 아이한테 가죠. 그래도 그 아이한테는 꼭 여름휴가를 가라고 해요. 돈을 많이 주지는 못하지만, 그 아이가 여름휴가 갔다 왔다고 하면 왜 이렇게 마음이 편안하죠(웃음). 내가 갔다 온 것처럼 그냥 대리만족 하는 거에요.
의지가 참 강하신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그 어려운 일들을 하실 수 있었던 것 아닌가요.
의지가 강한 것도 아니에요. 그거 어렵지 않아요. 하려고만 하면 해요. 11년이란 세월이, 그냥 우리 아이들이랑 같이 키운다 생각하면 되죠. 어려운 일 아니에요.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돼요.
종교위원으로 30년 동안 활동하시면서 ‘이제 그만 할까’하고 의지가 약해지셨던 순간은 없었나요.
일이라는 게 욕심으로 하거나 명예를 얻으려고 하면, 이런 계산을 하면 오래 못할 것 같아요. 그런데 나는 사명감으로 했어요. 이것은 내가 해야 되겠다, 생각했죠. 사명감으로 하는 것은 오래 가요. 그리고 교도소 상담 활동을 오래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하나에 올인하는 성격이에요. 두 개를 못 해요. 그래서 별명이 일회용 반창고에요. 하나 붙일 때 딱 붙이고 떼면 그걸로 끝나요. 돌아서면 없어요. 양다리가 없죠. 교화 위원들이 대개 여러 갈래의 일을 해요. 다 능력들이 있으시니까. 나는 그러지 못해요. 내가 일흔세 살 먹고 직접 글을 써서 이렇게 책을 낸 건 빛 본거에요. 올인 했기 때문에 빛을 볼 수 있었던 거죠. 나는 30년 동안 종교위원 하면서 일주일에 사형수 만나는 일 한 가지 밖에 안 했어요. 거기에만 몰입했어요.
이 시대에 어른공부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내가 살아온 만큼은 젊은이들에게 얘기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말로 어른이라면 아직 삶을 향해 도전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자기가 살아온 인생을 들려줄 수 있어야죠. 내가 터널을 뛰어 보니까 이런 장애물이 있더라, 어디쯤 가니까 사고 난 차가 있더라, 어디쯤 언덕이 하나 있더라, 얘기해 주는 거에요. 세상을 살아 보니까 어저께는 살 것 같더니 오늘은 또 못 살겠고, 언덕이 많이 생기잖아요. 터널 안에는 그런 것이 있는데 나는 그 터널을 뛰어 왔잖아요. 그러니까 아직 그 터널을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어린 세대들한테 어른이 그 얘기를 해줄 수 있어야 해요. 그런 얘기를 해줄 수 없으면 어른이 아니에요. 우리 사회에 대목 대목 짚어주는 어른들이 많이 있어야 돼요. 사실은 그런 어른이 많이 없어서 젊은이들이 힘든 거에요. 그래서 어른 공부가 필요해요.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어른 공부』를 쓰셨다고 하셨습니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하면 좋을까요.
나는 독자들이 너무 힘들게 살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의미 있는 일을 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젊은이들은 그대로 살면 돼요. 좋은 사람 되려고 하지도 말고, 나쁜 사람만 안 되면 돼요. 그냥 편안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다 살게끔 되어 있어요. 아무리 가물어도 그 가뭄 때문에 들꽃이 말라 죽지 않아요. 우리는 다 살게 되어있으니까 너무 훌륭한 사람 되려고 하지도 말고, 그냥 있는 대로 살라고 말하고 싶어요. 항상 생각을 하면서 열심히 하루하루 살면, 내 심장이 멈출 때까지 마음을 다 하면서 살면 돼요.
인생은 숙제하는 거에요. 하루하루가 숙제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살면 돼요. 숙제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만 결국 해야 하잖아요. 숙제를 잘 하려고 하는 사람은 참고서를 보기도 하고, 나보다 공부 잘하는 아이한테 물어보기도 해요. 그렇게 숙제를 하면 선생님한테 좋은 점수를 받죠. 살다가 힘들면, 숙제할 때 참고서 보듯이 내 인생의 멘토를 만나서 물어보는 거에요. 이럴 땐 어떻게 살면 좋을까요, 하고 물어봐요. 그러면서 한 장 한 장 숙제를 해요. 그런 사람은 우리처럼 나이를 먹었을 때 어른 공부를 쓸 수 있어요. 숙제도 안 하고, 모르는 처지에 참고서도 안 보려고 하면서 항상 빵점만 맞는 사람이 나중에 뭐가 되겠어요. 아무것도 안 되죠.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거에요. 어른이면 어른만큼 공부를 해야 해요.
『인생9단』의 저자가 ‘나이듦의 미덕’에 대한 대답을 들고 10년 만에 돌아왔다. 평소에는 73세의 곱디고운 할머니지만 ‘남을 돕는 일에는 계산하지 말고, 누군가 넘어지면 빨리 일으켜줘야 한다’가 신조인 저자는 지금도 누군가의 인생에 빨간불이 켜지면 언제든지 달려가는 열혈 상담가로 변신한다. 출간 당시 양순자 저자를 인터뷰하러간 기자들은 인터뷰는 뒷전이고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돌아가면서 한결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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