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장윤현 감독의 외로워서 완벽한.
우리가 술과 담배, 커피를 끊지 못하는 이유
술, 담배, 그리고 커피… 그 ‘땡기는’ 느낌의 치명적인 작용이 주는 즐거움 어른들도 기댈 곳이 필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커피를 즐기는 이에게 반가움을 느끼는 이유는, 아마 그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잠시나마 내게 기대어 쉴 공간을 만들어주는, 자투리 여유를 제공하는 커피 한 잔. 그 작은 만족감에 기대는 이가 비단 나 혼자가 아니라는 걸 발견하면 즐겁지 않겠는가.
술, 담배, 커피. 어린 시절엔 이런 기호식품들을 즐기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며 호기심에 사로잡혔다. 어떤 맛이기에 시시때때로 찾아대는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처럼 신비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마침내 맛볼 수 있는 시간이 왔을 때, 그 첫맛은 너무도 고약했다. 술이나 담배나 커피나 매한가지, 쓰고 독하고 떫었다. 어째서 이것들을 수시로 즐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느새 나는 술과 커피를 즐기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뿐만 아니었다. 사춘기의 문턱을 지나고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 어른이 된 이들의 손에는, 언제나 술이나 담배나 커피, 셋 중 하나쯤은 들려 있었다. 이따금 목을 옥죄어오는 일상을 잠시 내려놓기 위해, 단 몇 분이라도 도피처에 있다는 안락함을 맛보기 위해 한때는 아이였던 어른들은 어느새 진한 커피를 마시거나, 폐 깊숙한 곳까지 담배를 빨아들이거나, 알딸딸해질 정도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꼭 술자리가 생긴다. 알코올이 굳은 몸을 느슨하게 하고 마음을 풀어놓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엔 어색했던 사이라 하더라도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식탁 한구석에 빈 병을 하나 둘 늘어놓다보면 서로 허물을 벗어버릴 수 있다. 막상 다음 날이 되면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시시콜콜한 잡담들이지만, 우리는 그 자리에서 누구보다도 친한 사이가 된다. 끝나지 않을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그러다가 어느 한 사람이 담배 피우세요? 하고 넌지시 물어보고 다른한 사람이 이에 동의하면 문득, 서로의 불까지 붙여주는 친밀한 사이가 되는 것이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함께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떤지는 잘 알고 있다. 비흡연자들만 모여 있는 자리, 어쩐지 이방인이 된 것 같은 생각으로 홀로 담배를 피우러 나가면, 아무도 모르게 슬쩍 먼저 나간 사람이 눈에 띈다. 어쩐지 반가워 씨익 미소를 주고받는다. 그렇게 잠깐 시끌벅적한 곳에서 벗어난 사이에 잠시 둘만의 나지막한 시간이 생긴다. 미처 안에서 못한 얘기들이 모락모락 흘러나온다.
보통 처음에는 서로가 즐겨 피우는 담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둘이 피우는 담배의 상표나 타르의 밀리그램 같은 것 말이다. 이야기는 흐르고 흘러 물가만큼 인상한 담뱃값이라든지, 좁아져 버린 흡연 구역에 관한 것 들로 한 모금, 한 모금 진전하게 된다. 다시 술자리로 돌아온 그들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불과 10분 전에 서먹했던 공기는 담배 연기처럼 거리 밖으로 흩어져 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면, 같이 술과 담배를 나눈 사람에게 슬쩍 커피 한 잔을 권해보는 것이다. 그것은 자동판매기 커피가 될 수도, 캔 커피가 될 수도, 혹은 점심시간에 들른 카페의 테이크아웃 커피가 될 수도 있다. 술과 담배, 그리고 커피를 나눈 시간이 이렇게 덧대어지면서 사람들은 점차 친밀해진다.
나는 씁쓸한 맛이 진한 에스프레소를 즐긴다. 그 맛을 온전히 느끼는게 좋아서 설탕도 타지 않는다. 사람들은 보통 에스프레소에 물을 부은 아메리카노나 우유를 넣은 카페라테를 찾고, 에스프레소를 즐기더라도 설탕을 많이 타기 때문에 어쩌다가 나와 같은 취향인 사람을 만나면 괜히 반갑다.
부다페스트에 있을 때 매일 저녁 허기를 채우러 갔던 식당이 있었다. 그곳에서 한 백인 청년과 자주 마주쳤다. 아마 그도 그 식당을 저녁 때우는 곳으로 정한 모양이었다. 자주 만나다 보니 눈인사도 하게 되고, 때때로 몇 마디가 오가기도 하고, 시간이 맞으면 같이 저녁을 먹기도 했다. 그는 아르헨티나에서 왔다고 했고, 스포츠를 즐긴다고도 했다. 어느 날엔가는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커피에 대한 이야기가 식탁 위에 올라왔다. 그는 설탕을 넣지 않는 에스프레소를 즐겨 마신다고 했다. 어쩐지 반가워서, 얼른 나도 그렇다고 말했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나서 카페로 향했다. 물론 진한 에스프레소를 마시기 위해서였다. 만약 우리 둘 중 하나라도 그 쓰디쓴 에스프레소를 즐기는 취향이 없었더라면, 그저 식사만 하고 손을 흔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는 보통 사람들이 갖지 않는 취향을 공유한다는 데 의기투합해서 다음 행선지를 카페로 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비단 커피뿐만이 아니다. 담배와 술도 커피만큼 종류가 다양하다. 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들이 너무 많은 담배의 종류에 쩔쩔맨다는 일화도 자주 들리지 않는가. 주류 백화점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국내를 뛰어넘어 해외의 술까지 진열된 그곳은 지구상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종류의 술을 즐기는지 말해준다. 그렇게나 다양한 술, 담배, 커피의 세계 속에서 나와 같은 것을 즐기는 이를 만났을 때는 반가움이 앞서게 마련이다. 서로가 동일한 시간을 공유할 수 있다는 막연한 예감이 들어서일까. 나의 사소한 일상에 고개를 끄덕여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특히 그것이 소수가 즐겨 찾는 것일 때는 더욱 그렇다. 나와 동일한 기호식품을 들고 있는 그 사람은, 내 취향이 그리 외로운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영화에도 커피와 담배와 술은 제법 등장한다. 표현의 도구로 아주 유용하게 쓰이기 때문이다. 감독들은 커피의 취향을 통해서 등장인물의 성격을 나타내기도 하고, 담배 태우는 장면을 통해 심리 상태를 보여주기도 하며, 술을 솔직한 내면을 드러내주는 계기로 이용하기도 한다. 그렇게 술, 담배, 커피는 대사가 사라진 공간을 채워주는 것이다.
짐 자무시(Jim Jarmusch) 감독의 영화 <커피와 담배(Coffee And Cigarettes)>는 그런 기호식품들로 채워진 영화다. 짤막짤막한 단편 영화를 여러 편 묶어놓았는데, 그 모든 에피소드마다 제목 그대로 커피와 담배가 존재한다. 아니, 아예 녹아 있다. 원래 있어야 할 자리가 바로 그곳이라는 듯이. 영화는 인물들이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시답잖은 일상을 그려낸다. 흑백의 영상이지만 자세히 보면 미묘하게 다른 커피의 색과 다른 상표의 담배를 알아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겨우’ 커피와 담배에 관한 영화라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커피와 담배가 일상인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영화 속에선 똑같은 쌍둥이더라도 마시는 커피가 다르다. 크림과 설탕을 넣어 온도와 색깔이 적절해진 커피를 종업원이 배려한답시고 망가뜨리자, 여자는 야속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본다. 한 유명한 배우는 프랑스산 담배를 피우고, 어떤 사람은 라이터가 아닌 성냥을 이용해 불을 붙인다. 남들이 보기엔 ‘겨우 ’ 커피와 담배일지라도 이미 그것들은 인물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나타내주는 장치가, 증표가 된다. 그리하여 내가 좋아하는 커피나 담배를 즐기는 인물을 보면, 괜히 반가운 마음에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즐기는 커피와 담배, 그리고 그 흑백 화면 속의 나른한 분위기는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초반의 어수선하고도 자유로운 날들을 떠올리게도 한다. 보헤미안, 반항, 자유로운 영혼, 마약, 록, 특히 도어스(TheDoors)의 노래들……. 영화 속에는 그때 그 시절 청년이던 우리가 누렸던 낭만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당시 청년이었던 세대라면 아마 그 속에서 아련한 향수를 느낄 것이다. 그건 커피와 담배에서 비롯되는 또 다른 공유의 감각, 그때 그 시절에 대한 추억이다.
영화는 현실성을 살려(?) 이야기에 중독자 몇몇을 배치해놓는다. 화면 속 카페인 중독자나 헤비 스모커가 손을 덜덜 떨면서도 커피와 담배를 놓지 못하는 모습은 어쩐지 익숙하다. 술과 담배와 커피는 때로 너무 입맛을 땡긴다. 그 ‘땡기는’ 느낌의 치명적인 작용이 바로 중독이다. 아침잠을 쫓아내기 위해 마시던 커피는 어느새 규칙적인 시간마다 내 손에 들려 있고, 새 담뱃갑을 뜯는 시간의 간격이 점점 줄어듦을 확인할 수도 있다. 한 잔으로는 웬만해서 취하기도 힘들어 조금 더 독한 술을 찾기도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들은 내 삶의 깊숙한 자리를 차지해간다. 어쩌면 그건 나이 탓이기도 하다. 나의 삶이 조금씩 무게를 더해가고, 그 무게를 어디엔가 기대어놓을 수 없을 때 커피와 담배와 술은 작은 안식처가 된다. 그리하여 하루하루 지날수록 조금 더 자주, 이것들을 찾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커피를 즐기는 이에게 반가움을 느끼는 이유는, 아마 그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잠시나마 내게 기대어 쉴 공간을 만들어주는, 자투리 여유를 제공하는 커피 한 잔. 그 작은 만족감에 기대는 이가 비단 나 혼자가 아니라는 걸 발견하면 즐겁지 않겠는가. 나는 오늘도 커피에 살짝 기대어본다. 설탕을 타지 않는 에스프레소의 쓴맛을 즐기는 사람들과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길 꿈꾸며…….
'하고 싶은 이야기'와 '보여 주고 싶은 이야기'를 세련된 감수성, 섬세한 감정선, 디테일한 연출력으로 그려내는 영화감독 장윤현의 첫번째 산문집이다. 「오! 꿈의 나라」, 「파업전야」, 「접속」, 「텔 미 썸딩」, 「썸」 등 그의 영화에는 늘 인간의 외로움과 폐쇄된 감정 그리고 상처와 슬픔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이 묵직하게 담겨져 있다. 하지만 「황진이」 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바리스타, 고종과 커피를 둘러싼 삶과 죽음을 그린 웰메이드 사극 영화 「가비」로 돌아오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97년 영화 <접속>으로 데뷔해, 지금까지 영화감독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다.
하지만 나는 영화감독이라기보다는 수수한 회사원에 가까운 모습이다. 외모나 옷 입는 취향, 일상의 습관 모두 평범하다. 한눈에 영화감독인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문화인다운 풍모도 없고, 촬영 현장에서의 카리스마가 풍문으로 나도는 사람도 아니다. 재기발랄함, 날렵하고 세련된 감각, 이런 것들하고도 거리가 멀다. 나는 그냥 단순 무식하게 꾸역꾸역 앞만 보고 가는 사람,지름길로 가지 못하고 언제나 돌아가는 사람, 다만 오래 꾸준히 파고드는 사람이다. 그건 영화를 만들 때도 그렇고, 커피를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커피에서 삶을 발견했다. 그리고 다시 사람을 발견했다. 내 주요 관심사는 ‘사람’이다. 끊임없이 사람을 관찰하고,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커피에서 발견한 사람들의 모습을 오래도록 생각하게 되었다. 그건 때로 고통스럽지만 행복한 일이었다.
가끔은 삶이 엇나간다는 생각에, 상처 받아 숨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날 위로한 건 한잔의 커피였다.
작품으로는 <접속>(1997), <텔 미 썸딩>(1999), <썸>(2004), <황진이>(2007)…… 그리고 <가비>(2012)가 있다.
<장윤현> 저12,600원(10% + 5%)
한편의 영화를 보듯 섬세한 관찰력으로 풀어낸 34가지 커피와 감정에 관한 이야기 헤아리다, 들여다보다, 응시하다, 바라보다, 귀 기울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와 '보여 주고 싶은 이야기'를 세련된 감수성, 섬세한 감정선, 디테일한 연출력으로 그려내는 영화감독 장윤현의 첫번째 산문집이다. 「오! 꿈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