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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 “가부장제 사회의 여자는 변비가 많다”

『제자백가의 귀환』 강신주의 제자백가식 사유의 향연 - 나는 너를 왜 사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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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티블루37°2′>. 전설 같은 영화였다. 87년 한국에서 첫 개봉할 때, 엄청 야시시한 영화로 세간에 알려졌다. 이 영화 볼 자격(나이)이 되지 않던 나와 아해들, 솔깃했고...

<베티블루37.2′>. 전설 같은 영화였다. 87년 한국에서 첫 개봉할 때, 엄청 야시시한 영화로 세간에 알려졌다. 이 영화 볼 자격(나이)이 되지 않던 나와 아해들, 솔깃했고 맘만 먹으면 못할 것도 없었다. ‘사랑’ 따위엔 관심 없던 우리들, 기대보다 영화가 야하지 않음에 분통을 터트렸다. 사람 아닌 짐승에 가까운 남자 중학생들, 그럴만했다. 노출이나 정사장면 등 무려 85분이 심의 때문에 잘려나갔다. 어른들이 미웠다. 그래도, 베아트리체 달은 이~뻐~

나중에야 알게 된 터지만, 이 영화의 진면목은 ‘야함’에 있지 않았다. 3시간5분짜리 무삭제본이 2000년에 재개봉했다. 뜨아~ 내가 중학교 때 저 영활 본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완전히 다른 작품! 야시시한 멜로영화로 치부될 작품이 아니었다. 광기와 관능, 파괴적인 사랑이 스크린을 휘감고 있었다. 13년 전과 다를 게 없는 거라면, 베아트리체 달은 우와, 이~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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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랑, 인상적이면서도 놀라웠다. 배관공, 웨이터, 도둑 등 온갖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작가가 되고픈 조르그와 그에게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베티. 슬프도록 아름다웠고, 처절하도록 아름다웠다. 또한 파괴적이고 극단적이랄 수도 있겠지만 공감도 했다. 베개에 묻은 사랑, 충격과 함께 시리도록 아팠지만, 끄덕여야했다. 사랑은 그 모든 것이었다. 조르그가 온 생으로 감당해야 할 그 무엇, 베티가 온 생으로 아팠던 그 무엇.

철학자 강신주는 지난 6일, <베티블루 37.2′>의 이야기부터 꺼냈다. 몽환적이고 이~쁜 베아트리체 달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들의 처절한 사랑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죽여 달라고 하면 죽일 수 있을까? 죽인다는 건, 오만가지를 다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 홍대부근 가톨릭청년회관, <제자백가의 귀환>시리즈 출간기념 강연회, 강 선생은 ‘두 마리의 소, 그 슬픈 이야기’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었다.


“춘추전국시대 소 두 마리가 나온다. 맹자와 장자에 나오는데, 이들의 운명이 사뭇 다르다. 강의가 잘 되면, 맹자를 욕하고 장자에 감탄할 것이다. 그런데 강의가 잘못되면 장자를 욕하고, 역시 맹자라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자, 당신이 어떤 소에 마음을 두게 될까.


단점을 끌어안아야 어른이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풀기 전, 강 선생은 이날 아로새겨야 할 철학 테마를 소개했다.

우리는 순진무구함과 폭력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폭력의 종류를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가 신체를 가지고 있는 한 폭력은 숙명이다. - 메를로 퐁티, 『휴머니즘과 폭력』

그는 “진정한 생태운동을 아느냐”는 물음부터 던졌다. 그에 의하면 ‘완벽한’ 생태운동은, 인류의 죽음(소멸)이다. 이른바 생태운동의 허구성을 꼬집는다. “부유한 사람들은 깔끔하고 피 안 묻힌 것을 먹지만, 없는 사람은 쥐라도 잡아먹어야 한다. 진짜 배고픈데, 진짜 생태를 위한다면 안 먹는다. 그게 철학적으로 완벽한 것이다. 인간은 악이잖나. 유사 이래 다른 종을 이렇게 파괴하는 종은 없었다. 파괴되는 생명체를 돌보고 싶다? 우리가 죽으면 된다. 메를로 퐁티는 그것에 대한 답을 한 것이다.”

그는 생태운동, 채식주의자는 더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배부를 때 주변과 이웃을 돌봐야 한다는 논리를 헛소리로 치부했다. 맞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했지만, 옛날엔 그랬는지 몰라도, 지금은 배부르면 더 처먹으려고 안달이다.

최근 수요집회 1000회를 맞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낡고 고장이 잦은 승합차를 바꾸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올해 큰 수익을 거둔 자동차회사들에 후원을 요청했다. 허나 ‘회사이미지에 맞지 않다’고 번번이 거절했단다. 시민들이 한두 푼씩 모아 새 승합차를 마련했다. 위대한 기업을 꿈꾼다는 행태가 이렇다. 이미지에 맞지 않는다? 그걸 대체 핑계라고 댄 건가?

“진짜 인간이 위대하다면, 배고플 때 나눠줘야 한다. ‘노블레스 노블리주’는 사기다. 배부르면 누구나 준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얘기하는 건, 아프리카에선 사치다. 진짜 바닥까지 삶이 떨어졌을 때도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냐, 그런 걸 질문하면 답하기가 만만치 않지만 오늘은 그것을 고민하는 자리다.”

다시 <베티블루 37.2′>로. 조르그는 정신병원으로 가서 베티를 베개로 누르고 울면서 방아쇠를 당긴다. 사랑하는데 죽인다? 모순이고 딜레마. 강 선생은 힘주어 말한다. 사랑하면 살려야 하는데, 사랑하는데 죽여야 할 때가 온다! 그것을 만나야 한다. 그 기회가 없어서, 우리는 40, 60을 먹어도 어린이란다. 그러니까, 이 시간, 어른이여러분을 위한 사마귀유치원!

“결정한다는 것, 고민해봤나? A, B 두 사람이 있을 때, 선택한다는 건 A의 단점을 보고 B의 장점을 버리는 것이다. 헌데, 우리는 장점만 선택하려고 한다. A의 단점이 제거되길 기다린다. 오래 연애한 사람이 그런 선택을 한다. 오래 연애하니 하나밖에 안 남은 거지. 이는 선택 아닌 선택당한 것이다. 나중에 진정한 선택의 기회가 온다. 보통 사람은 B를 버릴 때 단점을 보고 A의 장점을 보고 선택한다. A, B 장단점이 똑같이 보일 때 선택해야 한다. 양쪽 장단점이 다 보일 때 그리 해야 한다.”

말인즉슨, 단점일 때 버리는 건 단순하고 무식하다. 관념적으로 날조한 것이다. 버리고 나면 장점이 보인다. 장점이라고 선택하면, 나중에 단점이 보이고 문제가 벌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선택의 기준이 돼야 한다. 단점에도 선택하고, 장점에도 버린다, 성숙의 자세다.

“단점을 끌고 간다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성숙하다는 거다. 성숙은 나이와 상관없다. 10대라도 알 수 있고, 60대여도 똥구멍으로 나이를 먹은 사람도 많다. 늘 장점만 선택하려니, 삶은 딜레마에 빠진다. 죽을 때까지 우유부단함을 못 버리고, 어떤 사람은 죽을 때까지 선택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삼각관계에 제대로 빠져봐야 한다. (웃음)”

예를 든다. 요즘 한 통치자를 씹는 것이 유행이지만, 좋은 점을 찾아보잔다. “귀엽지 않나? (웃음) 역대 대통령 중 국민의 정치의식을 이만큼 고양시킨 대통령은 없었다.” 그의 장점이 보여야 한단다. 장점이 보일 때라야 진짜 미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쉽게 가지 말잔다.

“대통령 은퇴하고 나서 장점이 보일 수 있다. 장점을 다 본 다음에 버려야 한다. 그게 인문적이고 성숙한 태도다. 김어준 좋아하나? 누구를 좋아하면 단점까지 감당해야 한다. 그래야 힘이 드러난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단점을 찾으려고 노력해라. 나중에 단점이 보이기 전에. 그 사람을 좋아하는 건, 단점까지도 끌어안는 것이다.”

많은 우리는 사랑을 비롯한 어떤 것이든, 장점이 보인다고 사랑하고, 단점이 보이면 싫어한다. 평생 그러다 죽는다. 강 선생은 다시 묻는다.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죽일 수 있을 것인가?” 그가 보기에, 그것을 감당할 줄 알아야 진짜 어른이다. ‘네가 이래서 싫다’가 아닌 ‘네가 좋은 사람이지만, 널 버린다’.

“너랑 살면 50평 아파트에 살고, 해외여행도 다니는 거 알아, 그런데도 꺼져라. 이래야 한다. 지성이 차갑고 잔혹하고 멋있고 성숙해 보이는 건 여기서 온다. 옆 사람 얘기에 가볍게 움직이지 마라. 장단점이 보일 때까지 가만있어라. 충분히 안 다음 움직여라. 수천 명이 떠나고 혼자 남아도 미워하고 사랑할 수 있다. 그것을 어른이라고 부른다. 우르르 간다고 따라가면 안 된다. 저렇게 결정하는 사람이 하나둘 늘 때 남루한 사회를 벗어나 민주사회로 갈 것이다. 선택의 세계로 계속 들어가라. 그래야 세계를 이해한다.”

소들은 과연 자유로운가?

강 선생, 본격적으로 중국 전국시대를 풍미한 두 마리 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우선, 자유. 그에 의하면, 자유는 행복과 무관하다. 더럽게 힘들다. 차라리 길들여달라는 것이 낫다.

“우리가 원하는 자유는, 장점을 선택하는 게 아니다. 자유롭기 때문에 감당해야 할 위험을 선택하는 게 자유다. 진짜 자유롭게 안데스산맥을 다녀봐라. 그게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썩고 땀 냄새 나는 것인지. 소는 인간에게 사육 받은 게 더 좋을지 모른다. 건초 지급되지, 맹수로부터 보호되지, 소의 평균수명은 사육되면서 늘어났다.”

인간의 ‘사육’은 소들의 자유를 박탈했다. 소는 먹이로, 우리로 길들여졌다. 죽음이 예견된 존재로 키워진다. 삶을 유예하고 사육되는 존재. 소는 알지 못한다. 먹이와 우리로 보호받을 때까지는. 도살장에 끌려가고서야 깨닫는다. 인간들이 자신들을 먹기 위해 그랬다는 것을.

“이 세상에서 제일 치사하고 잔인한 게 인간이다. 또 얼마나 나약하면 동물원을 만들겠나. 그 철창은 사람을 보호하는 걸까, 동물을 보호하는 걸까. 참 특이한 구조다. 인간을 이해하고 싶으면 나는 동물원에 간다. 동물 우리에 뭘 던지는 아이들을 보면 철창을 열고 싶다. (웃음) 동물이 뭔지, 보여주고 싶다. 종교도 없이 사는 그들의 쿨함. 가뭄이 와도 절대 기우제 지내지 않고, 그들은 기다린다. 오면 살고, 안 오면 죽는 거지.”

그럼에도, 인간은 외부 생명체를 먹어야 산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자신이 살기 위해 무언가를 죽여야만 한다. 그는 퐁티의 말을 다시 상기시킨다. 순진무구함과 폭력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폭력의 ‘종류’를 선택한다는 것. 단점을 버리고 장점을 선택하는 것은 결정이 아니다.

“옛날 중국에서 ‘人相食也’라는 말이 있다. 보릿고개 때 옆집과 아이를 바꿔 먹었다. 굶어죽을까, 아이를 바꿔 먹을까. 사람의 진실은 바닥까지 내려갔을 때 나온다. 퐁티의 이야기를 늘 기억해야 한다. 그것까지 끌어안으면서 휴머니즘을 선택해야 한다. 단점까지 끌어안아야 인본이 된다. 더럽고 추악하고 나약해도 인간을 사랑하는 게 휴머니즘이다. 돈 많은 사람들이 인간중심이라고 하는 말이 휴머니즘이 아니다. 만물의 영장? 지적인 동물? 그걸 누가 사랑 못해. 오만가지 쓰레기 같은 인간까지 사랑할 수 있느냐가 문제다.”


두 마리의 소, 그리고 슬픈 인간의 이야기

강 선생은, 두 철학자, 장자와 맹자의 소에 대한 입장에서 그것을 뚫어본다. 우선 맹자. 소를 끌고 당상 아래를 지나가는 사람을 본 왕이 소를 측은히 여겨 양으로 바꾸라고 명령을 내린다. 맹자는 이에 대해 소와 양 사이, 아무 차이가 없다며 군자는 살아 있는 것을 보면 죽는 것을 보지 못하고 소리를 들으면 고기를 먹을 수 없으니 푸줏간을 멀리한다고 말했다.

반면, 장자는 그렇지 않다. 소를 이른바 쿨~하게 죽인다. 처음 소를 잡았을 때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소뿐이었고, 삼 년이 지나자 온전한 소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19년 동안 소를 수천 마리 잡았는데, 칼이 매번 근육과 뼈가 닿은 곳에 이를 때마다 다루기 어려움을 알고 조심스러워 한다. 칼을 미묘하게 놀리면 뼈와 살이 툭하고 갈라지는데, 그 소리가 흙덩이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와 같다고 장자는 묘사한다.

“장자의 묘사는, 소에 대한 측은한 마음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 소마다 조금씩 다르다. 디테일이 살아있다. 우리는 사람이라서 같지만 경향은 다르고 디테일은 다르다. 나는 장?가 성숙해 보인다는 쪽이다. 맹장수술을 하는데, 측은하게 보는 사람에게 맡길 거냐, 돼지고기처럼 배를 냉정하게 가르는 사람에게 맡기겠나. 춘추전국시대는 이처럼 삶이 바닥까지 내려가고 모든 것이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그는 제자백가가 바닥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강렬하다고 강조한다. 철학책 수천 권, 시집 수천 권을 읽은 사람도 바닥에서 선택의 순간을 수천 번 겪은 사람들을 이기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온실처럼 자란 학자보다 어부들에게 더 배울 것이 많다고 덧붙인다. 고통의 폭이 큰 사람을 작은 사람을 포용하는 법이지, 거꾸로는 가능하지 않다.

“제자백가의 파괴력은 우리가 들여다볼 수 없는 상처와 아픔에서 온다. 맹자의 소가 더 강하게 들리는 사람의 마음으로 정치를 하는 건 유치하다. 소는 마음껏 먹으면서, 애완견 앓는 것에 대해 전전긍긍하는 사람들. 그 허영, 어떻게 할 것이냐. 뽀삐가 주인에게 오는 건 먹이를 줘서다. 사육을 사랑으로 착각한다. 변비가 있는 동물은 개와 인간밖에 없다. 길러주거나 사육당하면 변비가 생긴다. 그래서 가부장제 사회는 여자가 변비가 많다.”

장자는 맹자의 소 이야기를 패러디(!)했다. 군자가 소를 멀리한다고? 그래? 장자는 그런 대화 자체가 기득권자들의 것이며, 노동도 사냥도 해보지 않은 인간들의 관념일 뿐이다. 그래서 강 선생은 장자와 맹자의 (소에 대한) 잣대를 냉정하게 볼 것을 권한다.

“누가 더 바닥을 보고, 누가 더 허영인가? 그래서 나는 장자가 좋다. 우리는 유한자라서 폭력자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폭력의 종류를 선택해야 한다. 폭력은 무조건 나쁘다고 떠드는 유치원생은 모른다. 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사람을 절대 때려선 안 된다는 사람에게 저주를 내려야 한다. 그건 불가능하니까. 한 사람의 순진무구가 다른 사람을 너무 힘들게 하는 거다. 삶은 복잡하고, 복잡하고, 또 복잡한 거다.”

그는 곧 폭력의 종류를 선택해야 하는 인간의 슬픔을 말한다. 엄청나게 먹은 고기들, 혹은 채식주의자라고 하면서 식물 죽이긴 마찬가지인 인간. 그것이 우리의 고뇌다. 다시 말해, 완전하고 완벽한 생태철학은 없다. 진짜 아끼고 싶다면 인간은 죽어야 한다. 그러니, 강 선생의 방점은 이것이다. 순진무구를 선택하지 말 것. 절대적 폭력도 선택하지 말 것.

“퐁티는 삶의 진실을 아는 현상학자다. 지금의 생태운동도 장점만 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뭘 감당해야 하는 것인지,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생태를 얘기할 수 있을지, 속단하지 말고, 순수를 지향하지 말라. 오십 보 백 보는 다르다. 그게 같다는 건 서구적 인간이다. 질적으로 다르다. 오십 보 백 보는 다르다고 외칠 때, 퐁티의 이야기가 들어온다. 비겁함도 열 보 후퇴하는 것과 구십구 보 후퇴하는 것은 다르다.”

<베티블루 37.2′>의 조르그가 사랑하는 베티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 영화를 다시 보면 이전과 달리 보일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나는 너를 왜 사랑하는가. 장점, 단점, 그것을 제대로 다 보고 있는가. 장점만 보고, 단점을 애써 외면하는 것은 아닌지. 강신주 선생이 핵심은 거듭 이것이다. 나는 너를 왜 사랑하는가.


강신주에게 묻고 답하다

소 입장에서는 자신이 사육되는지, 그냥 자라는지 모를 것 같다.

소만 모를까? 사람도 모른다! 어떤 사람에게 접근할 때 그게 옳은지 아닌지 모른다. 소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면, 소가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될 거다. 만약 애인이 있다면, 애인이 좋아할 거라는 걸 어떻게 확증하나? 하지만 애정을 갖고 시간을 보내면 우리는 안다. 시간을 두고 보면, 완전하지는 않겠지만, 기존의 생각보다는 조금씩 완전해진다.

완전히 알게 되는 건 다른 문제다. 나도, 남도 모르는데, 알아나가는 거지. 그건 회의하지 않아도 되고, 얘가 이걸 좋아할 거야 하고 들이대야 한다. 나 아닌 외부 타자에 대해 이거다, 라는 생각에만 머물면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른다. 삶의 진실 대부분은 지속적인 애정과 행동양식과 관계를 맺으며 확인이 된다. 생각 속에만 머물면 진리는 확보되지 않는다.


교육학을 전공하는데, 순정한 교육을 해야 퇇다고 배우고 있다. 그런데 말씀을 들으니, 교육자도 학생을 상대할 때 교육자의 관념이나 성향, 철학이 투여돼도 된다는 말씀 같다.

해도 된다. 순정한 교육만 해야 한다면, 산수만 가르쳐야 한다. 선생은 누가 돼야 하냐면, 고등학교 때 본드 좀 하고 개과천선한 사람이다. 본드를 진짜 해본 사람은, 본드를 하는 학생에게 이리 묻는다. 요즘은 맛이 어떠니? 그리고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이 됐다는 거지. 순정한 교육을 이야기한 교재를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수학선생이니까 정치 얘길 안 한다? 그게 말이 되나? 그건 기술자지.

정치적 성향에 따라 실천해 본 적 있나? 한 번도 안 가본 사람만이 머릿속에서 고민한다. 교육학 전에 물대포를 맞거나, 희망버스를 타거나, 이러면서 정치적 신념이 확보될 수 있다. 처음에 여행 가면 모든 것이 달라 보이지만 수천 곳을 가면 인간은 같다는 게 보인다. 고전을 제대로 반복해서 읽으면 내 삶과 그들의 삶이 디테일을 빼고 다를 거 없다는 게 보인다.

선생이 아는 것이 얼마나 진실 되고 정직한가의 문제다. 내가 준 것을 아이들이 노라고 했을 때, 그걸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아이들이 싫어하는 걸 집어넣는 건 폭력이다. 머릿속에서만 고민하지 마라. 진짜 가 본 사람의 이야기는 진실성이 담겨 있다. 진짜 해 본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은 다르다. 삶을 심화시켜야 한다.


최선의 선택이 최악으로 나타나는 딜레마도 말씀하셨다. 그런 선택을 할 때가 부지불식간 있으므로 내 인식의 한계일 수도 있다. 나중에 후회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길을 선택해서 가더라도 잡념이 많이 나면 걷는 게 아니다. 진짜로 걸으면 그런 생각, 안 난다. 그냥 간다. 선택해도 미련이 남으면 아직 선택한 것이 아니다. 행동한 순간, 고뇌는 없어진다. 주변에선 잘못됐다고 말해도 가는 거다. 고뇌가 있으면 아직 선택을 안 한 거다.

이성복 시인이 말했다. 방법이 있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삶도 방법이 있으면 삶이 아니다. 다시 결정할 때가 온다. 돌아가진 마라. 돌아갈 생각하면 보폭은 줄어든다. 생각이 복잡할수록 보폭을 크게 가라. 여행가서 집에 가스를 껐나, 생각하면 여행은 다 한 거지. (웃음)


12권 완간은 언제쯤?

나는 대단한 사람이다. (웃음) 이번에 첫 번째 두 권이 나왔는데, 12권 시스템은 내 머리에 구축돼 있다. 제자백가서를 몇 년에 걸쳐 꼼꼼하게 읽고, 중요텍스트를 반복해서 읽고, 책 쓰면서 또 읽고, 주석서 보면서 다시 읽고. 살아서 완간할 거다. (웃음)

선택과 결정으로 삶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타인이 여러분 삶을 결정할 거다. 싫어하고 미워함이 자신에게서 나왔으면 좋겠다. 한 사람을 선택하고, 일을 하는 것도, 정치적 판단을 하는 것도. 매번 선택 할 때마다 고통도 많을 거다. 장점을 버렸으니 얼마나 고통이 많을까. 장점을 십분 다 보고 버리고, 이걸 선택했을 때 감당할 게 무엇인지 깊이 아로새겨야 한다. 조르그가 베티를 죽인 건, 그 많은 고통들을 다 감당하려고 한 거다.

사랑에 대해 겪을 만큼 겪어라. 고통이 다가올 때마다 피하지 말고 버텨야 한다. 나는 힘든 만큼 고전이 읽히더라. 철학교수보다 바다와 진짜 싸웠던 선장님이 내게 더 많이 가르친다. 그게 인문학이다. 그런 깊이를 얻으면 우리끼리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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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김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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