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연인에게
1812년
보헤미아, 테플릿츠
7월 6일 아침.
나의 천사, 나의 모든 것(my angel, my everything *1), 나의 분신이여. 오늘은 당신의 연필(*2)로 몇 자 적어볼까 합니다. 내일이 되기 전까지는 숙소가 확실히 정해질 것 같지만, 이것이 얼마나 시간 낭비인지 모르겠습니다. 숙명적이긴 하지만 왜 이런 깊은 슬픔이 터져 나올까요. 우리의 사랑은 희생하지 않고서는, 서로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서는, 지속할 수 없는 것일까요? 당신이 전적으로 내 것이 아니고, 나 또한 당신의 것이 아닌 상태를 바꿀 수가 있나요? 오 맙소사, 자연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당신의 마음을 진정시켜 보세요, 꼭 그래야 하만 합니다. 사랑이 모든 것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란 나에게 당신과 함께하는 것이고, 당신에게는 나와 함께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내가 나와 당신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을 당신은 아주 쉽게 잊어버립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로 결합되어 있다면 당신은 내가 느낀 작은 고통까지 느낄 수 있겠지요. 내 여정은 끔찍했거든요. 이곳에 어제 새벽 4시쯤에야 도착할 수 있었지요. 말의 수가 부족했던 우편 합승 마차는 평소와는 다른 길을 선택했는데, 굉장히 끔찍했어요. 종착지 전 역에서, 밤에는 이동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은 데다 숲도 두려웠지만, 그것들이 오히려 나를 부추겼습니다.
하지만 내가 틀렸어요. 합승마차는 바닥이 없는 진흙길, 형편없는 길에서 부셔져야 했지요. 함께 간 좌마 기수가 없었더라면 나는 그 길에 꼼짝 못하고 있었어야 했을 겁니다. 이곳의 보통 길을 여행하는 에스테르하지는 8두 마차를 타고 오다가 똑같은 처지를 당했습니다. 나는 4두 마차를 탔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곳을 빠져 나오는데 기쁨을 느꼈어요. 어려움을 성공적으로 극복할 때 항상 기쁨을 느끼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제 외부적인 일에서 내부적인 것으로 화제를 전환해 보지요. 우리는 분명히 서로 만날 겁니다. 하지만 오늘은 최근 며칠간 내 삶을 자극해 왔던 몇몇 생각을 당신과 함께 공유할 수 없군요. 만약 우리의 마음이 항상 가까이 있다면 이런 생각이 들지도 않았겠지요. 내 마음은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들로 가득 차 있어요. 아! 말이라는 게 결국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느끼는 순간이 있습니다. 힘을 내야겠습니다. 나의 진정한 하나뿐인 보배, 내가 당신의 것인 것처럼 나의 모든 것이 되어 주세요. 신이 그 나머지 것들을 우리에게 반드시 보낼 겁니다. 우리를 위해, 반드시 그럴 거예요.
당신의 충실한 루트비히.
7월 6일 월요일 저녁
나의 소중한 존재여, 당신은 괴로워하고 있군요.(*3) 지금에서야 나는 편지를 반드시 월요일에서 목요일 아침 일찍 부쳐야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곳에서 칼스바트까지 편지를 배달하는 마차가 오는 날이 그날이니까요. 당신은 고통을 겪고 있겠죠. 아, 내가 어디에 있든 당신은 그곳에 있습니다. 나는 당신과 함께 살기 위해 준비를 할 겁니다. 당신이 없는 삶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요. 인간의 선함을 이리저리 쫓아다니곤 있지만, 내가 그걸 받을 자격이 있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습니다. 타인을 향한 인간애는 나에게 고통을 주고, 내가 우주와 연관이 되어 있다고 생각할 때엔 나는 무엇이고, 또 소위 우리가 말하는 위대한 사람은 무엇인지 고뇌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인간에는 신성이 있겠지요. 나는 당신이 토요일까지 첫 번째 편지를 받지 못할 걸 생각하면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많이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절대로 나에게서 숨어버리지 말아요.(*4) 잘자요. 목욕을 한 뒤에 잠이 들어야겠습니다. 오, 맙소사 아주 가까이 있는데, 이토록 멀다니! 우리의 사랑이 진실로, 천상의 구조물이 아닌가요? 창공처럼 견고한 구조물 말입니다.
7월 7일 좋은 아침.
불멸의 연인이여, 비록 침대에 있지만 나의 생각은 당신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때로는 즐겁기도, 그리고는 슬퍼하기도 하면서 운명이 우리의 소망을 들어줄 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과 완전히 함께 살 수 있거나 전혀 함께할 수 없을 겁니다. 그래요, 나는 당신에게 멀리 떨어져서 방황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내가 당신의 두 팔로 날아가 내가 정말 당신과 함께 집으로 왔다고 말할 수 있고, 당신에게 감싸져 있는 나의 영혼을 영혼의 땅에 보낼 수 있을 때까지 말입니다. 그래요, 아주 불행하겠지요. 당신을 향한 나의 충성을 당신이 알기 때문에 좀 더 침착해야 할 겁니다. 다른 사람은 나의 마음을 절대로 절대로 차지할 수 없어요.
하느님 맙소사, 왜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겁니까? 그리고 비엔나에서의 나의 삶은 지금도 비참합니다. 당신의 사랑은 순식간에 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면서도 불행한 남자로 만들어 주네요. 내 나이가 되면 안정적이고 조용한 삶이 필요한데, 우리의 관계 안에서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내 천사, 나는 우편마차가 매일 지나간다는 말을 방금 들었어요.
그러니까 나는 편지를 그만 편지를 쓰고 당신이 빨리 편지를 받아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아요. 진정해요, 우리 존재에 대한 차분한 생각만이 우리가 함께 살기 위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합니다. 진정해요, 나를 사랑해 줘요. 오늘, 그리고 어제... 당신을 눈물을 흘리며 그리워했습니다. 당신은 내 삶이고 내 전부입니다. 안녕. 오, 나를 계속 사랑해주세요. 절대로 당신이 사랑하는 가장 충복한 이 마음을 잘못 판단하지 말아주세요.
영원히 당신의
영원히 나의
영원히 우리의...
루트비히 반 베토벤(1770-1827)은 독일 출신으로, 숭고함을 훨씬 넘어서는 인기를 누려 그의 생애에 진정한 대중의 인물이 된 첫 번째 피아니스트이자 작곡자다. 천천히 귀가 머는 동안에도 그는 연주활동과 걸작 작곡활동을 계속했다. 그는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 넘어가는 변환과정에 큰 영향을 끼쳤고 그의 천재성은 차후 음악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서진의 번역후기가장 유명한 연애편지 중의 하나를 고르라면 바로 베토벤이 불멸의 연인 (Immortal love)에게 보낸 연애편지일 겁니다. 이 편지는 베토벤의 사후에 발견되었고 편지를 마치 붙일 것 같은 내용인데 보내지 못했거나, 반송되었다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받는 사람이 뚜렷이 적혀 있지 않아서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 후세 사람들은 궁금해 했지요. 참고로 베토벤은 평생 독신으로 지냈습니다. 그의 제자와 약혼을 했지만 그녀의 부모님이 반대하는 바람에 염원은 이루지 못했지요.
역사가들은 이 편지가 베토벤과 연인이었던, 혹은 연인이라고 추측되는 몇몇 사람으로 압축하고 추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편지에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베토벤이 당시 상당한 기간 이 연인과 강렬한 연애에 빠졌다는 사실입니다. 역사가들이 불멸의 연인으로 예측하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두 여인으로 압축됩니다.
1. 요세피네 브룬스빅 (1779-1821)
1799년에 그녀와 언니는 당시 유명한 피아니스트인 베토벤에게 피아노 레슨을 배우기 위해 만나 서신을 왕래하게 됩니다. 편지를 통해서 베토벤이 1804년과 1807년 사이에 그녀와 열렬한 사랑에 빠졌지만 그년 1810년에 다른 사람과 결혼하게 됩니다. 결혼 생활은 순탄치 못해 1813년 이혼에 이르게 되고 미노나라는 딸을 낳게 됩니다. 그 딸이 베토벤의 자식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것은 당시 정서적으로 불안정했던 요세피네가 흘린 이야기일 거라 추측되고 있습니다.
이 편지가 요세피네의 편지라고 추측되는 몇 가지 이유는 편지 속의 구절에 있습니다. 먼저 *1
“My angel, My everything" 이나 충실한(faithful)이라는 표현은 베토벤이 요시피네에게 쓴 편지에도 자주 발견되고 있고, *2 당신의 연필을 썼다고 하는데, 당시에 요세피네는 연필로 일기를 적었다고 합니다. *3
‘당신은 고통을 겪고 있네요’라는 부분에서 당시 요세피네가 부부사이가 나쁘고 경제적인 파탄의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쓰지 않았나 추측할 수도 있습니다. *4
‘나를 피하지 말아주세요’라는 부분은 혹시 베토벤이 1807년 그녀를 방문했을 때 그녀가 집에 있지 않았던 것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닌가 미루어볼 수도 있습니다.
2. 안토니 브렌타노 (1780-1869)
은행가였던 안토니의 남편은 가족이 비엔나에 잠시 머물렀을 때 베토벤과 가까워지게 됩니다. 그녀는 남편과 프랑크푸르트로 이사를 가지만 아픈 아버지 때문에 다시 비엔나로 돌아오고 그 때 베토벤과 친분을 맺게 됩니다. 안토니가 불멸의 연인의 후보가 된 것은 편지에서 언급되는 지역에 안토니가 지내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정황상 요세피네가 이 편지의 주인일 가능성이 높다고는 하지만, 두 사람 이외에도 여러 여인이 후보가 되고 있어서 후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게리 올드만이 베토벤으로 나오는 영화 <불멸의 연인>은 베토벤의 친구가 이 편지의 주인공을 찾아 나서는 흥미진진한 내용이지요. 베토벤은 음악에 있어서는 천재였지만, 개인적 삶은 그리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유명세를 떨치기 전에 결혼할 뻔 했던 줄리아(Gountess Giulietta Guiccardi, 월광소나타가 그녀에게 헌정되었습니다)그녀의 부모님의 반대로 결혼이 성사되지 못했고, 나중에 만난 여인들도 이런 저런 이유로 베토벤과 결혼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그가 사랑했던 여인들이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는 것을 보는 베토벤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게다가 점점 사라지는 청각으로 고통을 받고 있던 그에게 말입니다. 이런 고통들이 그가 명작을 남길 수 있는 힘을 주었다면, 과연 천재 예술가가 되는 것이 좋은지, 평범하지만 행복한 남자가 되는 것이 좋은지 궁금해집니다.
* 불멸의 편지의 근거 부분은 위키피디아를 참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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