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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이 만난 사람들]역사학자 임지현 교수 편②

“이명박이 독재라고? 민주주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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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대중독재에 대해 이야기해볼까요. 우리 사회와 뗄 수 없는 키워드인데요. 오히려 대중이 독재자를 원한다, 어떤 의미입니까?


본 인터뷰는 정재승 교수가 만난 우리 시대 인문학자 - 역사학자 임지현 교수 편 ①와 이어집니다.



정: 이제 대중독재에 대해 이야기해볼까요. 우리 사회와 뗄 수 없는 키워드인데요. 오히려 대중이 독재자를 원한다, 어떤 의미입니까?

임: “대중이 독재자를 원하기도 하고, 만들기도 합니다. ‘대중독재’에서 가장 중요한 건 대중의 자발적 참여입니다. 나치가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사람들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자발적으로 들어갔기 때문이죠.

저도 박정희 시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이기에, 억압을 경험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비판적 소수집단의 경험이지, 전체의 경험은 아닌 거예요.

어떻게 해야 과거를 청산할 수 있을까요? 예컨대 “박정희 나쁜 놈!” “유신잔당 처단해라!” “노태우 전두환 없애라!”고 외치면 독재라는 과거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아니에요. 사실, 독재는 선거에서 나옵니다. 이명박 대통령 보고 왜 독재라고 해요? 민주주의죠. 정식 선거를 거쳐서 된 사람인데! 연구자에겐 중요한 문제가 있어요. 바로 우리는 누구였고, 왜 이런 대통령에게, 왜 그처럼 나쁜 체제에 표를 던졌는가를 물어야 하는 거죠.”



정: 독재자를 향한 대중의 심리는 무엇입니까?

임: “기본적으로 근대성 같아요. 60년대에 박정희씨가 ‘마이카 시대’를 예고했거든요. 좀 늦게 오기는 했지만, 실제로 왔죠. 70년대 텔레비전, 냉장고도 마찬가지고요. 박정희 시대의 일정한 경제성장이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준거예요. 그 다음엔 반공주의 이데올로기 효과가 컸죠. ‘조국 근대화’라는 박정희 씨의 슬로건이 대중들에게 먹힌 것 같아요.”

정: 경제적 풍요에 대한 갈망이었죠.

임: “맞아요. 젠더폴리틱스(Gender Politics: 여성정치)도 한 몫 했습니다. 새마을 여성지도자가 좋은 예인데요. 새마을 운동 지도자 연수를 가면, 새로운 경험이 그들을 기다렸어요. 집을 벗어나도 생활이 보장됐고, 공개 강연을 듣고,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았죠. 소외되었던 사람들이 존재감이나 가치를 인식하며 그것에 지지를 보내게 된 거죠. 이렇게 ‘대중독재’라는 말은 근대적인 시스템과 관련이 있습니다.

민주주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미국 민주주의 역사를 보면, 서부로 이주했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민주적인 집단이 인디안 학살에 적극적이었어요. 정착민들의 마을 공동체를 보면 민주적인 사람들, 민주주의 정치하는 사람들의 학살이 훨씬 더 가혹합니다. 무소불위거든요. 르완다에서 후투족이 투치족 죽일 때 슬로건이 ‘다수파의 민주주의’였어요. 다수파 후투족이 소수파 투치족에게 착취당했는데, 후투족의 민주주의 국가가 되어버렸죠. 그러니, 다수의 이름으로 투치족을 쫓아내고,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학살을 일으킨 겁니다.”


정: 그게 후투족 스스로 만든 이데올로기인가요? 아니면 벨기에가 주입한건가요?

임: “저는 그런 식의 국가의식을 경계합니다. 반으로 가르는 방식이요. 아프리카, 서아프리카에서 에스닉 내셔널리즘(Ethinic Nationalism: 혈통 민족주의)을 볼 수 있는데요. 언젠가 트랜스내셔널 인류학 하는 친구를 만났어요. 그들끼리는 조킹 킨쉽(Joking kinship)이라는 게 있어요. 성을 바꾸는 거예요. 거기엔 인종, 혈통 같은 게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혈통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유는 벨기에의 사주라고 볼 수 있죠. 사실, 근대 역사, 학문 체제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어떤 면에서 보면, 다수파의 이름으로 민주주의 학살이 일어난 거죠.”


정: 빅팀 후드가 있는 것 같네요.

임: “어느 나라든지 빅팀 후드라는 게 있어요. 부분적으? 빅팀마이즈드(Victimized: 희생된) 되었죠. 하지만 이것을 가지고 전체 민족이 빅팀이었다고 확대하면, 위험합니다. 빅팀후드는 제가 만들어 내긴 했지만, 사람들에게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것 같아요.”

정: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이명박 정부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뭔가요?

임: “기본적으로 개발독재를 승인하는 거죠. 나름대로 가치체계를 부여했던 것들이 바뀌지 않은 거죠.”

정: 완전히 근대를 벗어나지 못했네요.

임: “우리뿐 아니라 비판적 지식인들도 미완의 근대라고 하거든요. 하지만, 전 묻고 싶어요. 미완의 근대라뇨? 그렇다면, 꼭 완성을 해야 하나요? 미완의 근대라고 하는 한국사회의 과제를 설정하는 순간, 개발 독재의 논리에 빠지는 거예요.

몇 년 전, 모 신문사의 정치부 기자들이 전화를 했어요. 막 과거청산 나올 때인데 이런 말을 해요. “정치부 기자하려고 해도 역사 모르면 못해먹겠어요.” 맞는 말이죠. 박정희시대의 비판적인 젊은 기자들이었는데, 그 사람들 명함에 이렇게 써 있었어요.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앞당기자!” 그 경제지의 사훈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맞아요. 우리 청산해야죠. 근데 청산해야 한다고 하면서 당신들 명함을 보세요. 이게 박정희 시대 아닙니까?”라고 물었어요. 사실, 이런 문제가 현대 정치에도 작동해요.

이렇게 해놓고 마음에 안 들면 “저것은 독재!”라고 얘기하는 방식은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는 겁니다. 왜 이런 민주주의가 되는가? 왜 다수가 이 사람에게 표를 몰아줬는가?를 봐야죠. 저는 박정희의 자식은 박근혜씨가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이라고 생각해요.”


정: 그렇다고 박근혜씨가 아닐 건 없죠.

임: “둘을 비교한다면 이명박 대통령이 박정희에 가깝다는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표도 많이 받았죠. 개발독재의 과거와 결별하고, 비판적으로 보는 방식은 “저놈들 나쁜 놈들이야!”는 상투적인 얘기를 되풀이 하는 게 아닙니다. 왜 그랬는가에 대해 연구해 봐야죠. 그래서 제가 당대비평 편집위원 할 때, ‘합의독재’라는 말을 쓴 거예요.”

정: 아 합의독재!

임: “난리가 났죠. 왜 독재자를 욕 안하고 애꿎은 민중을 욕하느냐 라면서요. 정말 답답했어요. 문부식 주간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부산 미문화원 방화하고 나서 현장검증을 하는데, 동네 사람들이 “저 새끼 죽여라!” “빨갱이 죽여라!” 그러더래요. 자기를 쳐다보던 싸늘한 시선을 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생각해보자고요. “문부식이 저거 빨갱이인데 너는 왜 싸늘한 시선 안 보내? 너도 감방 갈래?” 정말, 그건 아니잖아요. 왜 이런 행동이 나오는지. 그 메커니즘과 역사는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과거 청산은 불가능해요.”



정: 앞으로 10년간 역사학에서 주목해야 할 인문학적 숙제는 무엇일까요?

임: “트랜스 내셔널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근대 학문체제가 만들어진 후에 분과학문 체제가 내셔널 프레임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죠. 또, 트랜스내셔널 프레임 워크는 인문학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잖아요.

물론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인문학 관련해서 본다면 저는 트랜스내셔널이 하나의 아젠다라고 생각해요. 기존의 내셔널 패러다임으로 보면 국사책 없어지죠. 국문학 없어지죠. 영문학 없어지죠. 다 없어져요.”


정: 그런 관점에서 지금의 세계화나 신자유주의를 어떻게 보시나요.

임: “신자유주의는 양면적인 것 같아요. 굉장히 인터내셔널 하면서 또 내셔널합니다. 이명박 정권 때 보세요. “우리 인터내셔널 해야 한다!”로 외쳤죠. 왜? “내셔날 이코노미를 강화하려고!” 국가경제가 잘 되려면 외국자본이 투자를 많이 해야 하고, 글로벌, 리버럴해야 하고. 그런데 사실은 국민경제가 글로벌화 되었을 때 우리 모두가 혜택 받는 건 아니잖아요.

저는 요새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미국 뉴욕 할렘가에 사는 흑인이 맨해튼 6번가의 큰 컨설팅회사에 다니는 컨설턴트와 왕십리에 사는 구멍가게 아줌마 중 어디에 더 동류를 느낄까 하고 말이에요. 세계화가 되면서, 오히려 그 나라 간의 경계가 아니라 삶의 형태, 수준으로 친밀감을 느끼는 거죠. 미국 오하이오 주 옥수수밭 농장주와 한국의 고구마 밭주인이 가까운 거죠. 밭주인이 청담동 화려한 곳에서 노는 친구들에게 더 친밀감을 느끼겠냐는 겁니다. 민족 국가 경계가 아니라, 클래스로 나뉠 수도 있어요. 이민자, 디아스포라(Diaspora: 집단이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아이덴티티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합니다.”


정: 왜요?

임: “아이덴티티라는 말을 쓰는 순간 사고가 고정되기 때문이에요. 대신, 아이덴티피케이션(Identification: 동일함을 증명함)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역사가로서 왜 이런 아이덴티티를 가지게 되었는지 과정을 연구해야지, “나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요.”라고 말 하는 순간, 고정된 속성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넌 태어날 때부터 한국인이야.” 라고 하기 전에. 왜 당신이 한국이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게 되었느냐, 그 프로세스를 보는 것이 역사학자고 인문학자들예요.

사실, 인문학이 그 프로세스에 기여해왔어요. 그런 면에서 저는 어용학문이었다고 봅니다. 아주 넓은 의미에서 문학, 역사 다 포함됩니다. 저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인문학자들이…”


정: 세계화 시대에 트랜스 내셔널 인문학을 하려면 참 섬세한 고찰이 필요한 것 같네요.

임: “트랜스내셔널 인문학 협동 과정에 비교역사연구소가 지향하는 아젠다는 이것입니다. 세계화가 가능하다면 아래로부터의 세계화는 어떻게 될 것인가. 또 글로벌 연구가 위로부터의 세계화에 방점을 두고 있다면 우리는 밑으로부터, 즉 국제결혼 등 이들 사이에서 어떻게 연대가 가능한가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한국사회의 한 모습이기도 하죠. 안산, 횡성 같은 시골이 서울보다 외국인도 많고 국제화 되어 있습니다. 초등학교는 완전히 국제적입니다. 서울이 오히려 내셔널 하죠. 그런 부분을 밑에서 비판적으로, 그리고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알아보고 있습니다.

궁극적 분석단위는 인간이고 인류여야죠. 하나의 나라이거나, 여성이거나 남성이거나가 아니라. 기존에 있는 차이나 그것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샅샅이 드러내고, 폭로하고 차이나 차별에 대한 해결책을 고민하고. 그랬을 때 새로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물론 인간중심의 제국주의라는 생태학자들의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거기까지라도 간다면 성공 아닌가요.”



정: 사변적인 것을 여쭙겠습니다. 어떻게 역사학을 시작하셨나요.

임: “우리 어렸을 때는 놀 거리가 없었으니까, 책은 닥치는 대로 읽었던 것 같아요. 어려서부터 신문을 많이 읽었어요. 국회에서 싸움하는 기사를 많이 봤죠. 한자를 신문을 통해 배웠어요. 어렸을 때 신문읽기가 큰 도움이 됐지요.

우리 아버지 동창이 외판사원을 하셨는데 『2차대전사』, 『세계의 역사』같은 책들을 봤어요. 사실 공부에 흥미는 없었어요. 역사학과를 택한 건, 독재시대니까 폼 잡는 것도 있었고 겉멋도 들었었고요. ‘이런 시대에 역사나 철학을 공부해야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정: 학문적으로 필이 꽂히는 시기가 있잖아요. 어떤 경험을 하셨나요?

임: “대학 다닐 때는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질문을 하면 어떤 역사학자가 얘기했는지 말씀해주는 선생님들이 계셨어요. 그런 경험들이 참 좋았어요. 대학 다니면서, 서양사에 대해 관심을 뒀던 것 같아요. 한국사만 보면 답답하더라고요. 읽어도 배운 게 없는 것 같고.

대학 다닐 때 읽었던 앙리 피렌느(Henri Pirenne), 중세의 샤를마뉴, 마호메트, 지중해에 관한 내용. 지금 보면 다 틀린 얘기지요. 지금 누구도 피렌느의 학설을 얘기하지 않거든요. 하지만, 피렌느 책을 읽었을 때 엄청난 기쁨을 느꼈죠.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에요. 20대에는 범위를 정해두지 말고, 풍요롭게 접하면 좋을 것 같아요.

콤플렉스도 있었죠. 서양학을 한다는 거요. 그 사람들만큼 내가 외국어를 잘 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런 선입견 있잖아요. 한국사는 한국 사람만이 잘할 수 있다! 저 같은 경우엔 폴란드 역사서를 읽다보면 한국사 생각이 ?고, 한국사회에서 살아왔던 것이 폴란드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돼요.

폴란드 친구들이 가끔 그런 얘기를 해요. “영국, 미국이 폴란드사를 어떻게 이해하겠냐?” 그건 언어가 약하다는 뜻만은 아니에요. 그 사회의 결을 읽는 게 부족하다는 말이에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보통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던 사람들과 우리처럼 독재를 경험한 이는 독법이 다르거든요. 그런 점에서 제가 겪은 독재의 경험은 소중합니다. 책에서 얻지 못하는 거니까요.”



정: 『우리 안의 파시즘』. 그 책은 너무 충격적이었는데요. 지금 와서 생각해봐도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아요.

임: “맞아요. 전후세대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죠. 20대 때 막시스트로서 과학적 진리를 장악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폭력적이 된 거에요. 논리적인 것도 폭력적이 되고, 틀린 것 뻔히 아는데 말이에요. 처음에는 사회주의를 보고 레닌으로 돌아가면 되겠지 했다가, 레닌의 중앙 집중제를 비판한 룩셈브루크에 관심을 두다가, 청년 막스로 돌아가야지 하다가, 마지막에 얻은 결론은 뭐였냐면, “막스 자체에 내장된 문제였구나!”였죠. 계몽사상, 합리주의의 문제이기도 했고요. 저 자신에 대한 문제제기이기도 했습니다. 99년에 당대비평에 들어가면서 기획했죠.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는 동아시아 쪽에 많이 관여했습니다. 국사해체, 국사 비판하는 모임, 동아시아 역사 연대포럼을 7~8년 했어요. 정말 호주머니 돈 가지고 움직였어요. 국사 비판 하는 데 누가 돈을 주겠어요. (웃음)”


정: 박노자 선생은 어떻게 평가하세요?

임: “재미있는 친구죠. 저하고 같이 <제국과 민족>이라는 책도 편집해요. 솔직하게 얘기하면 지적으로 기민한 지식인임은 분명합니다. 한국에 대해 쓴 글을 보면 러시아 사회에 대한 염두가 보여요. 저 역시 폴란드에 대해 쓸 때는 한국사회를 염두하고 쓰죠. 자기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사실은 한국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글을 쓰게 하는 거지요. 학술적인 글은 둘 읽어봤는데 그렇게 인상적이지는 않았어요. 박노자씨 박사논문이 아마 가야사에 관한 거죠.”


정: 선생님에게 가장 영향을 미친 역사가 또는 인물은 누구인가요?

임: “서강대 사학과 은사님이신 길현모 선생님, 차하순 선생님이요. 박정희 시대 때 민족주의를 비판한 분들이죠. 길현모 선생님이 72년도에 쓴 『민족문화와 세계문학』이 기억에 남아요. 그 책을 보면 박정희씨가 내셔널리즘을 민족 주체성으로 끌어들인 이유가 무엇인지, 유신으로 넘어가는 독재, 한국적 민주주의를 정당화하는 역사담론이 바로 ‘민족 주체성’이라는 사실을 아신 거죠. 그것을 70년대 초에 비판했습니다. 수업시간에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 다음은 맑스. 제가 쓴 민족주의는 맑스로부터 배운 겁니다. 사실, 한국의 맑시즘은 좀 이상해요. 내셔널리즘과 맑시즘은 어떻게든 만날 수 없는 이론입니다. 그런데 한국에는 자연스럽게 결합이 돼요. 제가 보기에 그건 맑스를 안 읽고, 나는 민족형이야, 그러니까 나는 맑시스트고 우리 민족은 이렇고 얘기하는 것 같아요.

북한에서 가장 먼저 초청한 남한 역사가가 누구죠? 강만길이 아니라 안호상이었죠. 북한에서 단군릉을 발굴했다던 94년에 초청을 받았죠. 북한의 고대사 서술과 안호상류의 극우 역사서술은 놀랄 정도로 똑같습니다. 단지 김일성 할아버지 나온 현대사부터 달라지죠.

안호상은 1930년대 나치 독일에서 역사학 공부한 사람이에요. 독일에서 공부하고, 일본에 가서 근대 충국론자들과 철학적 입장을 같이 했죠.”


정: 황장엽이 한국에 와서 적응이 빨랐죠

임: “그렇죠. 사상사적으로 너무 통하니까. 그런 것 때문에 더 불쾌했을 수도 있는데 말이에요. 저는 90년대 처음 여기 왔을 때부터 학생회 강연을 많이 다녔어요. 그때 유일하게 초청 못 받은 대학이 한양대였죠. “너희들은 박정희 사생아다!” 이런 식의 교육을 받아 완전 민족주의로 무장했는데, 대학 와서 현대사를 읽으니까 다르잖아요. 김일성 장군은 만주에서 일본군하고 싸우고 박정희가 관동군 장교였다는 게 드러나잖아요? 그러니까 학생들이 프레임워크를 박정희에서 김일성으로 바꾼거죠. 그때 제가 조선일보 기자들 만나면 “당신들이 박정희랑 협력해서 주사파 만들었잖아!” 이런 말도 했어요. 제가 보기에 주체사상의 등장은 박정희의 영향이 제일 큽니다. 가장 지대한 공헌이죠.

대학원에 들어왔다가 저 때문에 학교 그만둔 애들도 있어요. 대부분 한국사 하는 아이들이죠. 문화적 충격도 받고, 서울의 도시 소비문화에 대한 경험이 명쾌하게 분석되지 못하면 동굴 속으로 다시 도망가 버리는 예도 있어요.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들이요.

놀랍게도 한국의 역사교육이 가장 좋았을 때는 미군정 때입니다. 미국 교육학이 존듀이의 프로그레시비즘(Progressivism: 혁신주의)에 영향을 받은 때거든요. 그걸 보면 교육의 목적은 비판적 시민 양성이에요. 그게 이승만 때까지 지속되다가 63년부터 민족주의 색채가 들어가기 시작했죠. 민족적 주체성이 나온 건 3선 개헌 때에요.

놀라운 사실. 박정희 독재체제를 구축하는 방식하고 국사의 민족주의적 가치관 주입하는 것이 상당히 비슷해요. 70년대 경주 천마총이 발굴되었을 때 조선일보가 이 사실을 전면 칼라로 실었어요. 당시, 칼라로 기사를 싣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도요. 당시 고고학은 박정희씨가 직접 청와대에서 챙겼거든요. 모두 연관이 있는 일이죠.”


정: 저는 발굴 될 때마다 나온 기념우표를 다 갖고 있어요!

임: “와! 소중한 자료인데요. 기념우표로도 좋은 논문이 나올 수 있지요.”

정: 논문까지는 생각 안 해봤는데요. (웃음)

임: “언제 한번 구경 가야겠어요.”

정: 꼭 오세요.

정: 역사학을 공부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주실 수 있을까요?

임: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격언이 맑스가 좋아하던 것과 같습니다. <데 옴니버스 두비탄둠(De Omnibus Dubitandum)- 모든 것을 의심하라>입니다. 학생들에게도 늘 모든 걸 의심하라고 해요. 지금까지 알던 모든 것을 의심하라고요. 심지어 내가 하는 얘기조차도. 다음 젊은 연구자들한테 하고 싶은 말은 망라주의만 좇지 말라는 거예요. 한국지식인들은 좋아하는 얘기를 모아 그걸 지식이라고 해요. 그러다보면, 서로 모순되는 게 나와요. 민족주의자라면서 외국인노동자 얘기를 끼워 넣기도 하고요.”

정: 젊은 역사학자들 중에 그런 예가 있나보죠?

임: “예전에 문부식 주간이 썼던 말이 ‘망라주의’에요. 좋은 얘기를 다 망라해서 제 것인양 쓰는 거요. 그 안엔 무수한 충돌이 있는데 말이에요. 데리다가 말했듯, 논리의 극단까지 밀고 나가 깨져야죠! 당연히!

그랬을 때 학문도, 자기사회도 발전하죠. 너무 시작단계부터 타협하지 말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길현모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틀리려면 확실하게 틀려라”였거든요. 저는 그것이 학문하는 자세라고 생각해요. 자꾸 도망가지 말고요.

저는 대중독재라는 말 쓰기 전에 합의독재라는 말을 썼다가 박살나게 깨졌어요. 생각해보면 합의독재는 심했던 것 같아요. 여지를 너무 안주는 말이잖아요. 하지만 합의독재라는 말을 쓰면서, 자극도 됐고 고민을 하게 됐죠. 그러니까 연구자들뫀 급진적일 필요가 있어요.”


정: 마지막 질문 드립니다. 내 인생의 역작 하나를 꼽는다면, 무엇일까요.

임: “역작이 될 지는 모르겠는데, 빅팀후드 내셔널리즘, 영어 제목은 Transnational History of victimhood nationalsim입니다. 2월에는 코넬 콜?냅움에서 발표하고, 4명의 소장연구자들이 토론자로 붙어 반나절을 보냈어요. 여러 곳을 다니면 다닐수록 감이 옵니다. 이건 어필이 되겠다! 하고요.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에서 서양학 하는 사람들은 서양에서 했던 얘기를 그대로 소개하는데 그치잖아요. 그런데 빅팀후드 내셔널리즘은 트랜스 내셔널 히스토리에서도 인텔렉추얼 히스토리(Interllectual History: 지성사)가 필요한데, 하나의 자기 얘기가 된 걸 수도 있어요. 대중독재도 자랑스러운 자식이기는 하지만, 빅티후드 내셔널리즘은 용어 자체도 제가 만들어 내서 조금 달라요.

한국의 인문학자들이 외국어로 글을 쓰면 한국의 정보를 주게 되죠. 이론은 저쪽에서 만들고요. 그런데 대중독재나 빅팀후드 내셔널리즘은 데이터를 주는 게 아니라, 제가 틀을 만들고 연구자를 불러요. 대중독재라는 틀 안에서 나치즘, 파시즘을 한번 해보라고 하고요. 학문의 하이어라키(Hierachy: 계층구조)를 뒤집어 봤다는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저 혼자만의 성과라기보다 팀원들의 성과기도 하고, 논쟁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의 결과물이죠. 논증을 통해서 생각을 다듬을 수 있었고요. 한국 인문학이 이룬 공동의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정: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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