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에 맞서다
조너선 닐
조너선 닐(Jonathan Neale)은 미국 출신의 아동문학가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우리말로 옮겨진 닐의 책 세 권은 아동문학과 무관하다. 『두 개의 미국』(문현아 옮김, 책갈피, 2008)은 “조지 부시 같은 자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이 된 과정을 설명한다.
조너선 닐(Jonathan Neale)은 미국 출신의 아동문학가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우리말로 옮겨진 닐의 책 세 권은 아동문학과 무관하다. 『두 개의 미국(What’s Wrong with America?)』(문현아 옮김, 책갈피, 2008)은 “조지 부시 같은 자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이 된 과정을 설명한다. 내 주장의 핵심은 미국의 부자들과 권력자들이 평범한 미국인을 다루는 방식으로 전 세계 사람들을 다루려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미국이 움직이는 방식을 분별력 있게 설명하거나 이에 분노를 표출하는 범주에 들기는 하지만, 그런 부류의 다른 책들과 뚜렷한 차별성을 갖는다. 『두 개의 미국』은 여느 미국 비판서가 언급하길 꺼려하는 금기에 도전한다. 닐은 미국 사회의 ‘지배계급’과 ‘자본주의’를 문제 삼는다. 그는 세계 경제 위기의 근원을 이윤 하락에서 찾는다.
“1960년대 중반 이후로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부유한 산업 국가들마다 산업부문에서 이윤이 급감하고 있다. 그 상황이 너무도 심각해서 전 부문에 걸쳐 이윤이 하향화하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차례로 경제성장이 둔화했고, 이것이 실업률 상승과 금융 투기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조너선 닐은 1980년대 투자가 감소하면서 선진 7개국의 제조업 노동자 수가 한 해 1퍼센트 남짓씩 줄어든 점에 유의한다. 특히 미국의 성장 악화와 공장 국외 이전의 관련성을 잘 살핀다. 그건 “부분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주된 이유는 미국에서 더 적은 수의 제조업 노동자들이 더 많은 재화를 생산하는 데 있었다.” 노동 강도가 세졌다는 거다.
이윤율 하락과 관련된 ‘세계화’의 본질은 이렇다. “대략 1975년 이후로 전 세계의 기업들과 정부들은 임금을 낮추고 공공지출을 삭감하고 민영화하는 정책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진행됐다. 이는 모든 나라에서 힘 있는 부자들이 이윤율 하락에 대해 벌인 대응이었다.”
계급적 시각을 견지하는 조너선 닐은 “다른 나라처럼 미국도 이윤을 끌어올리고 싶어 하는 지배계급과 그들이 착취하는 노동계급으로 나뉜다”고 강조한다. “‘지배계급’이라는 단어는 금기이며, ‘노동계급’이라는 단어에는 낙인이 찍혀 있다.” 또한 ‘중간계급’은 ‘노동계급’의 완곡어법일 따름이다. 그리고 ‘매카시즘’은 조 매카시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매카시는 그의 이름이 붙은 ‘마녀사냥’의 끝물을 탔다.
“초기부터 핵심 구실을 한 인물은 민주당 대통령 해리 트루먼, 공화당의 우파 하원의원 리처드 닉슨, 극우 인종차별주의자인 연방수사국(FBI) 국장 J. 에드거 후버, 당시 영화배우노동조합의 민주당 자유주의 분파 지도자였던 로널드 레이건, 극우파 할리우드 제작자인 월트 디즈니, 가장 강력한 노동조합이던 자동차노조의 민주당 자유주의 분파 지도자 월터 로이터 등이었다.”
미국 노동조합운동의 말살을 안타까워하는 조너선 닐은 공민권운동에서 위안을 얻는다. 반전운동?여성운동?동성애자해방운동 등은 공민권운동의 덕을 봤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러한 미국 내부의 새로운 평등운동은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을 간과했다는” 심각한 약점을 지녔다. 아울러 공민권운동은 1970년대 정체성 정치의 약점을 극명하게 드러내기도 했다.
앨 고어 부통령에 대한 냉정한 평가, 대량 구금과 인종차별의 함수관계 고찰, 전통적인 ‘가족 가치’ 옹호에 담긴 위선의 폭로 등이 모두 유의미하다. 그리고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미국인들은 사회나 부자들이 아니라 자신을 탓하라고 배웠다”는 것도. “실제로는 누군가가 인생을 망쳤다면 자업자득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됐다는 뜻이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조너선 닐의 대안 제시는 탁월하다. “다시 말해 지구온난화를 막는 것은 정말로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의 경제체제가 그것을 가로막고 있다. 지구온난화를 막는다는 것은 석유와 자동차를 없앤다는 뜻이다.”
『셰르파, 히말라야의 전설(Tigers of the Snow)』(서영철 옮김, 지호, 2006)은 “1934년도 낭가파르바트의 독일 원정대에 관한 이야기이다.” 해발 8,125미터의 낭가파르바트는 세계에서 열 번째로 높은 산이다. 또한 “이 책의 핵심은 사는 곳이 아주 달랐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서로 아주 다른 세계관 사이의 대비”다.
20세기 전반기 히말라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려면 우리는 역사적 기록과 개인 인터뷰 모두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등반가의 관점과 셰르파의 관점 둘 다 필요하다. 이 책은 그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책 중간의 흑백사진들 가운데 “26. 낭가파르바트, 1934년. 모든 것이 끝난 뒤 베이스캠프에서” 포즈를 취한 독일원정대와 셰르파를 찍은 사진 두 장은 사뭇 대조적이다.
‘설산의 호랑이들’은 셰르파를 말한다. 히말라야 등반대의 짐꾼을 가리키는 셰르파는 본래 부족의 명칭이다. 셰르파족의 근거지는 에베레스트 인근의 쿰부 계곡이다. “그곳에는 항상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러나 삶은 고단했고, 그들은 여전히 감자와 야크로부터 얻는 것 이외에 더 많은 수입을 필요로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짐을 나르는 일을 의미했다.”
쿰부 계곡 셰르파 마을 중 하나인 남체에선 가장 부유한 네 가구만 빼곤 전부 짐 나르기를 해야 했다. 짐 나르기를 안 하는 네 가구는 장사로 재산을 모았다. “셰르파족은 에베레스트 산 아래서 자라났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다르질링에서 포터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등반가가 되었다.”
이주 티베트 가정 출신도 셰르파가 되었는데, 에드먼드 힐러리와 함께 에베레스트에 오른 텐징 노르가이는 대표적인 티베트인 셰르파다. “히말라야 등반은 영국 신사들이 만들어낸 스포츠였다. 에베레스트에서 포터들은 높은 곳에서도 15킬로그램의 짐을 운반했으며 영국인들은 아무것도 운반하지 않았다.”
고산 등반은 제국주의 스포츠로 시작되었다. 독일 원정대의 낭가파르바트 등정은 영국에 대한 경쟁심의 발로다. “도전, 본능적인, 인간, 욕망, 정복. 이 말들은 우주를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상상했던 그 당시 최상층 사람들의 어휘였다.” 하지만 산꼭대기에 올라가봤다고 정상을 정복했다는 건 말도 안 된다. 달에 몇 번 다녀왔다고 달 정복 운운 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시작과 끝의 에피소드가 인상적이다. 먼저 ‘머리말’을 보면, 미국 출신의 조너선 닐은 1970년대 영국에 정착하는데 한때 인도에도 거주했다. “1965년, 열여섯 살 소년이었던 나는 인도에서 살았다. 내가 다니던 러크나우의 콜빈 탈루크다르 중학교에서 다르질링에 있는 히말라야 등반학교에 보낼 학생 세 명을 선발했다. 나도 선발되었는데 아마도 학교에서 유일한 외국 학생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등반학교 근처에서 거대한 바위를 타는 연습을 했다. 바위는 산길 쪽으로 약 15미터 높이였고, 반대쪽은 300미터 정도의 수직 낭떠러지였다. 학생들이 낭떠러지 위로 조금씩 올라가서 정상에 도달할 때까지 강사들은 바위 정상에서 자일을 꽉 잡고 있었다.
조너선 닐은 공포에 질려 부르르 떨었다. 바위 정상의 셰르파는 닐을 격려하며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어렵사리 바위에 오른 닐은 창피 당하는 걸 각오했다. 그런데 셰르파는 그에게 조용히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한단다.” 조너선 닐은 “셰르파 사람들과 그 산악지대를 결코 잊지 않았다.” 어찌 잊으리오.
“1980년에 다르질링 등반학교에서 유명한 등반가들의 또 다른 회의가 열렸다. 이번에는 앙 체링이 가서 1953년 첫 번째 정상 공격 때 사우스 콜 위로 짐을 날랐던 다 남기알과 청중석에 앉았다. 그들은 외국과 인도의 유명한 등반가들이 자신들과 자신들이 이룩한 것에 대해 연설하는 것을 들었다. 다 남기알과 앙 체링은 듣고 있으면 있을수록 화가 더욱 치밀었다.
마침내 그들 두 사람은 연단에 있는 사람들에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셰르파는 어디에 있지? 우리가 짐을 날랐어. 우리들은 어떻게 되었지? 왜 당신들은 당신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거야?’ 앙 체링은 자신이 네팔어로 다음과 같이 소리치고 있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당신들은 셰르파가 없었다면 결코 그 일을 해낼 수 없었을 거야.’”
『미국의 베트남 전쟁- 미국은 어떻게 베트남에서 패배했는가(A People’s History of Vietnam War)』(정병선 옮김, 책갈피, 2004)는 베트남인들은 미국 전쟁이라 부르고, 미국에선 베트남 전쟁으로 통하는 전쟁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은 이 전쟁을 베트남 농민과 미군 사병들의 관점에서 다룬다.”
베트남 사람들은 왜 싸웠나? 조너선 닐은 베트남 전쟁을 “토지를 놓고 벌어진 내전”으로 본다. 1961년 롱 안에서 봉기에 가담한 어느 무토지 농민의 증언은 이를 뒷받침한다.
“우리 마을 주민은 약 4300명이었다. 이 가운데 아마 10여 명가량이 지주였을 것이다. 최고 부자가 500헥타르를 소유했고, 나머지가 각각 적어도 20헥타르씩 가지고 있었다. 다른 주민들은 소작인이거나 순수한 빈농이었다. 나는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을 억압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해방전선에 가입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베트남 공산당은 토지 개혁에 미온적이었다. 공산당 지도자의 다수가 지주계급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공산당은 지도부와 기층 사이에서 항상 분열했고, 지도부 역시 가문과 미래에 대한 전망 사이에서 오락가락했다.” 반면, 공산당원이자 관리의 아들이었던 보 응우옌 지압은 프랑스 식민 정부 시절 가족을 모두 잃고 일생을 혁명에 투신한다.
“미국 정부가 베트남에 개입한 이유는 공산주의자들이 승리할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미국의 지배계급(=부자와 권력자)은 반공주의 정책이 미국 내의 사회주의 세력과 노조를 무력화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여겼다. “미국이 개입한 이유 중 하나는 미국에서 벌어진 노동조합과 기업 사이의 계급투쟁이었다.”
미국 정부 당국자에게 베트남에서 벌어지는 일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의 주요 관심사는 베트남이 세계와 미국에 미칠 영향이었다. “그들이 베트남에 개입한 이유 중 하나는, 베트남에서 공산주의가 승리하는 것을 묵인하면 국내의 반공주의 정서까지 약화될 수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베트남이 미국 정부에 중요했던 것은 경고의 의미로서 본보기를 보여야 했던 까닭이다. “미국 정부가 베트남에서 수행하던 과업 중 하나는 인도네시아에서 군부가 공산주의 세력을 분쇄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었다.” 1965년 미국을 등에 업은 인도네시아 군부는 50만 명 안팎의 공산당원을 죽였다.
“세 가지 운동, 즉 미국의 평화운동, 사병들의 반란, 농민 게릴라가 미국의 지배계급을 패퇴시켰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농민 반란이었다.” 그런데 베트남 주둔 미군 병영에서 발생한 하극상이 철군을 재촉했다는 사실은 다소 놀랍다. 전투를 강요하는 장교는 사병들의 ‘프래깅(fragging)’을 당했다. 프래깅은 장교 막사에 수류탄을 던져 넣는다는 뜻이다.
이 책 표지 날개의 저자 소개 글을 보면, 조너선 닐이 쓴 어린이 책은 달랑 한 권뿐이다. 조너선 닐은 사회운동가 겸 논픽션작가로 봐야 할 것 같다. 그의 책은 읽히는 힘이 있다.
10,800원(10% + 1%)
16,200원(10% + 1%)
13,500원(10%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