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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연재를 마치며, 동시에 시작하며

근심어린 수많은 날, 책은 아름다운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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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의 제목은 ‘사랑이 있던 곳이야. 잊지 마’입니다. 아!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떨어야 나의 가지를 뻗을 수 있을까요? 서리 내리는 아침. 이슬 젖은 밤. 근심어린 수많은 날 책은 나를 아름다운 연인처럼 유혹합니다.

처음 고전에 다시 관심을 둔 것은 사실은 꽤 오래전의 일입니다. 그 일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편의점 계단에 앉아 누군가랑 통화하고 있었습니다. 내 다정한 친구는 “만약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면 진짜 슬퍼하는 건 뭘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친구는 사랑을 시작하기도 전에 사랑을 잃게 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도 공식이 있고 사랑도 영원한 반복처럼 느껴지니까요.

 

저는 난데없이 이사벨 아엔데의 『영혼의 집』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 소설의 초입부에 로사라는 아름다운 여인이 나옵니다. 그 여인이 얼마나 아름다우냐 하면 벌꿀 같은 황금빛 눈동자, 초록빛 머리카락과 나는 듯한 사뿐한 몸놀림, 싱그러운 바다를 연상시키는 우아함 때문에 인어 또는 인간과 신화적 존재 사이의 불분명한 경계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로사가 등장하는 곳마다 술렁거리는 동요가 있었고 그 일대의 교통이 마비되었습니다. 그녀가 사라진 대문 뒤에는 보랏빛 여운이 남았지요. 그 로사를 사랑한 약혼자는(그는 50년이 넘게 그녀가 처음 자신의 인생으로 들어온 날을 잊지 못합니다. 기억 속에서 로사는 무심한 천사와도 같이 그에게 날아옵니다) 그녀를 위해 2년 동안 산속에 처박혀 광맥을 찾아 헤매며 거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두터운 광맥을 찾아냅니다. 그 가슴 벅차도록 행복한 날 오후, 그는 로사에게 편지를 쓰며 상상 속에서 로사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로사의 사망을 알리는 전보를 받습니다. 로사는 로사 아버지의 정치적 적들이 보낸 독약을 잘못 마셔 죽어버린 것입니다. 약혼자가 보낸 첫 번째 반응은 분노였습니다. 그는 손에서 피가 나올 때까지 주먹으로 사방을 칩니다.

그리고 서른 시간을 여행하여 아직 땅에 묻히지 않은 로사를 보게 됩니다. 로사는 그가 기억하는 모습보다도 훨씬 더 아름답게 누워 있었습니다. 그는 우주 전체를 다 뒤져도 초록색 머리카락을 가진, 인어처럼 아름다운 여자는 로사 이외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마침내 로사의 무덤 곁에서 하룻밤을 보냅니다. 그의 일평생을 뒤져봐도 그보다 긴 하룻밤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무덤 속의 로사에게 말했습니다. 너를 마음속의 깃발로 삼아 살았기에 막장에서 길을 잃어도, 형편없는 음식 때문에 일 년 내내 배앓이를 해도, 밤에는 추워서 얼어붙어도, 낮에는 더워서 헛것이 보여도 계속하여 산을 파헤칠 힘을 얻을 수 있었다고. 그런데 그녀가 자신을 배신하고 떠났다고, 그리고 또 그는 그녀가 자신을 갖고 놀았다고 따지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단둘이 있어본 적도 없고 키스도 단 한 번밖에 해보지 못했으니까요. 그는 나중에 두고 두고 해주려 했던 애정 표현과 깜짝 놀라게 하며 주려고 했던 선물들에 대해서도 들려주었습니다.

그렇게 밤을 보낸 뒤에 그에게 남은 최후의 감정들은 뭐였을까? 난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내 친구는 알아맞히지 못했습니다. 그에게 남은 것은 경건한 슬픔일까? 죽음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혼란이었을까? 다시는 사랑을 못 하리란 예감이었을까? 셋 다 아니었습니다. 좌절된 욕망이었습니다. 그때 내가 인용한 문장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내 손길로 그녀를 애무하고…… 샘물과도 같은 초록빛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뒤 그녀 속으로 풍덩 빠지고 싶은 그 간절한 욕망을 이젠 절대로 이룰 수 없었다.

우린 그 순간 불쌍하고 거친 약혼자의 감정을 각자 자기 방식으로 이해했습니다. 나는 “어느 다사로운 가을 저녁 두 눈을 감고 훈훈한 그대 젖가슴 냄새 맡으면 단조로운 태양빛 눈부신 행복한 해안이 내 눈앞에 펼쳐진다. 그것은 게으르게 하는 섬”이란 보들레르의 시구를 떠올렸습니다. 나에게 사랑의 손길은 그런 것입니다. 자연이 쑥쑥 자라는 섬, 게으른 섬, 나에게 애무는 그런 것입니다. 껍질을 벗겨내고 한 수줍고 뜨거운 인간을 끄집어내는 것. 인간의 꼬리에 심장이 딸려 나오게 하는 것. 그런데 그것을 할 수 없다면? 아마 인생이 변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 같았습니다. 로사가 영원한 천국에서 행복을 얻기를 축원하지 않은 약혼자의 솔직함에 나는 마음이 끌렸습니다. 로사의 천국은 곧 자신의 지옥이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또 다른 생각도 듭니다. 이를테면 한 그루의 나무를 그려놓고 자신이 나무 그림을 그린 이유는 가지를 뻗기 위해서라고 말한 피카소가 생각이 납니다. 그래서 그가 그린 나무는 그 자신이며 결국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나뭇가지가 아니라 자신만의 가지였습니다. 피카소라면 아마 이런 파괴를 전적으로 삶으로 받아들이려 했을 겁니다. 인간들의 몸을 자신만의 생채기로 가득한 가지를 달고 있는 한 그루의 나무로 상상해 보니 울고 싶기도 했지만 또 조금은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나뭇가지가 어떤 방식으로 나무의 몸통을 뚫고 나오는지 나는 그때 결코 알지 못했으니까요.

그때 내 친구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단지 내 친구는 수화기 너머로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 한숨은 충분히 자극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내면의 오렌지 껍질이 열리는 소리였으니까요. 내 친구는 사랑에 뛰어들었고 나에게는 더 많은 고전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때 읽고 순간을 나눴던 고전들의 제목이 지금 막 떠오릅니다. 『적과 흑』, 『미겔 스트리트』, 『금각사』, 『이름 없는 주드』, 『인생의 베일』, 『그리스인 조르바』, 『닥터 지바고』, 그 후 같은 옛 고전부터 『피아니스트』,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쉼보르스카 『끝과 시작』, 폴 오스터 『달의 궁전』, 스티븐 킹의 『스탠 바이 미』, 레이먼드 카버와 존 치버의 소설들까지. 어쩌면 나는 들려주기 위해, 말하기 위해 읽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마르케스 자서전의 제목이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인 것을 알았을 때, 저는 서점으로 뛰어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마르케스의 의견은 그러니까 이런 거더군요.

삶은 한 사람이 살았던 것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며, 그 삶을 얘기하기 위해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엔 진실과 허구가 얼마나 뒤섞여 있을까요? 모래 속의 금을 찾아내는 것과도 같을까요? 진실과 허구 중에 무엇이 모래이고 무엇이 금일까요? 저는 오래전 우리 고장의 강가에서 금을 찾아 모래 사장을 뛰어다니던 어린아이들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냇물 바닥을 훑어서 모랠 퍼올리고 거기서 체를 흔들며 금을 찾는다는 건 완전히 불가능해 보였는데 그래도 우리 엄마는 자기가 한 움큼의 금을 모았고 손바닥의 홈에 발랐다고 주장하더군요. 그 금을 어떻게 했느냐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나중에 ‘이야기해줄게’라고 대답했습니다. 조금 실망했지만 그래도 금이 공중으로 튀어 올라 이야기로 변해 쏟아져 내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야기들은 사랑을 나누기 위해 황금빛 빗방울이 되어 쏟아져 내린 제우스처럼도 생각되었습니다.

책은 우리와 이런 식으로 만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책 또는 나 둘 중의 하나는 진실이고 둘 중의 하나는 허구, 그리고 우리 둘이 만나 이야기가 되고 그것이 황금 빗방울이 되어 쏟아져 내립니다. 그 빗방울을 먹고 나는 나만의 가지를 뻗겠지요. 자기만의 가지를 뻗기 위해 우리에게는 얼마나 많은 불면의 밤과 이야기가 필요한 것일까요?

쥘리앙 소렐의 마호가니 옷장에 자만심과 사랑의 감정으로 뒤범벅되어 숨어 있던 『적과 흑』의 마틸다, ‘죽은 건 개였다’란 골드스미스 애가(한 남자가 미친 개에게 물렸는데 죽은 건 물린 이가 아니라 미친 개였다)의 마지막 구절을 남기고 죽은 『인생의 베일』의 윌터. 옥스퍼트 대학 쪽을 한없이 바라보던 『이름 없는 주드』의 주드, 병원에 누워서 최고로 형편없는 친구까지도 그리워하던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그 녀석(지금 왜 이름이 기억 안 날까요?) 나는 그런 이야기들을 나는 마치 어느 시절 오후의 일들처럼 받아들였습니다. 그런 수많은 날, 나는 눈이 부셔 전부를 다 볼 수는 없었겠지요. 그 오후에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어떤 움직임과 시간과 감각의 떨림에, 나뭇잎의 그늘에 형체를 부여하는 또 다른 현실이자 삶의 이면이 바로 책 속의 이야기들이었고 그래서 우리의 이야기는 책과 나 사이의 왕복 운동 같이 진행되었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는 알리바이가 아닙니다. 차라리 우리의 이야기는 감정에 가깝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현실에서 빠져나왔고 고립의 감각과 고독의 감각이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될 만큼 쓸쓸하기도 했지만 자유로웠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감정을 갖는다는 것이 뭘까? 감정을 나눈다는 것이 뭘까? 감정을 헤아려 본다는 게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 봅니다. 천재에겐 직관이 있다면 나는 나 같은 평범한 사람에겐 감정이 있는 것 아닐까라고 짐작합니다. 왜냐하면 타인의 감정에 대해서 생각할 때 나는 나에게 큰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나와 대화를 나누는 상대방에 대해서도 큰 관심이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뭔가 다른 것들이 늘 더 중요하고 생생했었습니다. 변함없는 거리의 소음을 배경으로 책장을 넘길 때 나는 내 것이 아닐 수도 있었던 깊은 슬픔과 기쁨과 또 다른 감정들을 느끼곤 했었습니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지곤 했습니다. 이런 슬픔들은 어디서 오는가? 어디선가 술에 취해 탑에서 떨어지는 지붕장이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지붕장이는 떨어지면서 탑의 시계가 열한 시 반을 가리키고 있다고 말합니다. 나는 그 지붕장이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인간의 대지』에서 길을 잃고 리비아 사막을 헤매는 생텍쥐베리는 사막의 여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 작은 여우야, 나는 지금 절망적이란다.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절망적인데도 네가 어떤 성격일지 관심이 생기니 말이야…….”

나는 이 문장이 정말 좋습니다. 나는 절망적인데 네가 궁금해. 너무나 근사합니다. 그 전날 생텍쥐베리는 밤새도록 지도를 탐독합니다. 하지만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얻은 것은 있습니다. 종교시설, 우물 같은 인간의 존재를 드러내는 모든 기호 위로 몸을 숙여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 언덕 위에 우물이 없어도 우리는 단지 그 이유로만 울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결국 헤매다 만나지 못할지라도 인간들의 신호는 단지 신기루에 불과한 것은 아닐 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동경의 대상이니까요.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르 끌레지오가 했던 말도 기억이 납니다. 그는 강과 바다가 섞이는 곳에 서서 그곳에서라면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오류와 배반의 실타래를 풀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섬진강이 바다로 흘러가는 곳에서 벚꽃 지는 계절에 굴을 먹으면서 그 글을 읽었습니다. 그 책 『아프리카인』에는 오로지 자기가 걸었던 걸음만으로 지도를 그리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래서 그 지도에서 거리는 킬로미터로 표시되지 않고 오로지 도보로 걸었던 날과 시간으로만 표시됩니다. 그 지도는 그래서 하나의 기호이면서 한 인간의 신호겠지요. 그날 강과 바다가 만나는 만에 서 있는 것처럼 책과 책 바깥의 세상이 만나는 곳에 제가 서 있었습니다. 그것은 저 역시 풀어야 하는 오류와 잘못의 실타래 속에 있고, 최초의 근원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고 고백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저 자기 발로 걸음을 걸어야만 흔적을 남길 수 있는,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한 인간으로서요.

고전 연재를 마치는 이유와 새로 연재를 시작하는 이유는 동일합니다. 나의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고전 책이 나오고 몇 차례의 강연회를 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많은 분이 고전을 특별히 어렵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모든 책은 특별히 어렵다는 게 저의 생각이지만요.) 고전은 세계 문학 전집이란 이름을 달고 있는 거실의 인테리어 용품도 아니고, 대학생이 되기 위해 읽어야 하는 필독서도 아닙니다. 고전에 관해서는, 그러니까 언제나 고전을 가슴 설레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는 루이스 캐럴의 시구를 빌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우리는 잠자리에 들며 칭얼대는 나이 든 아이일 뿐이란다
창 밖에는 서리와 매서운 눈바람
폭풍이 미친 듯이 몰아쳐도
방안에는 활활 타는 화롯불과
즐거움이 넘치는 어릴 적의 요람이 있지
마법 이야기가 너를 사로잡아
넌 사나운 눈보라는 금세 잊게 될 거야
- 「거울 나라의 앨리스」 중에서


혹시 우리는 아직도 나이 든 아이, 금방 요정이야기에 사로잡히는 꼬마 녀석들 아닐까요? 어쨌든 분명한 건 어린 시절에 읽었던 고전, 까맣게 잊어버렸다고 생각한 고전들은 사실 우리의 내적 매커니즘을 이루고 있고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감수성을 이루고 있습니다.

다만 앞으로 시작할 연재는 고전 혹은 책과 나와의 만남의 ‘순간’에 바쳐지는 내용일 것 같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책들이 나오겠지요. ‘나는 절망적인데도 네가 궁금해!’라고 말하는 책들, 추락하면서 시간을 알려주었던 책들, 책이면서 또 책 바깥의 세상이기도 했던 책들. 아마 그 책들에 굳이 이름을 붙여준다면 ‘가능성의 책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이제 나는 내가 읽었던 책들이 어떤 삶을 살게 될지 궁금합니다. 아마 내가 읽었던 책들은 나와 같이 살게 되겠지요. 세자르 바예호의 시구 중에 ‘사랑이 있던 곳이야. 잊지 마’란 것이 있습니다. 그 앞 문장들은 이렇습니다.

너는 아까 다른 일 때문에 여기 왔었지
그리고 지금은 가버렸구나, 이 구석에서
어느 날 밤, 네 곁에서
너의 부드러운 품 안에서
도데의 콩트를 읽었지, 사랑이
있던 곳이야 잊지 마.


잊지 말라고 누군가 부탁을 해도 우리는 결국 많은 것을 잊게 되겠지요. 그곳이 사랑이 있던 자리인지도 모르고 다른 일로 왔다가 가는 사람처럼 덜컥 문소리만 남기고 가버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어느 날인가는 품 안에서 알퐁스 도데의 책들을 읽었던 날을 떠올릴 것이고 그 자리가 사랑이 있던 자리임을 느낄 것이고 그 기억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임을 느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이야기와 삶은 또 섞이기 시작하겠지요.

이상하게도 나는 책 읽기를 멈추지 말란 말을 하고 싶을 땐 꼭 브레히트의 시 「밤의 안식처」를 속으로 생각합니다. 그 시 속에서 한 사내는 뉴욕 26번가 브로드웨이 골목에 서서 잠자리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밤의 안식처를 걱정하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희사금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세계는 그것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밤의 안식처를 찾아 그 밤 동안만은 바람을 피하고 그들 몸뚱이 위에 쌓였을 눈이 거리에 떨어지기는 합니다. 그다음 시구는 이렇습니다.

책을 놓지 마십시오. 이것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여

몇몇 사람들이 밤의 안식처를 얻어
그 밤 동안만은 바람을 피하고
그들 위에 쌓였을 눈이 거리에 떨어지기는 한다
그러나 세계는 그것으로 바뀌지 않는다
인간들 서로의 관계가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착취의 시대가 그것으로 단축되는 것도 아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의 무게를 나는 이 시의 무게로 느낍니다. 책을 읽고 이야기를 하는 동안 우리는 고작 이슬 한 방울을 나누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보이지 않는 것에서 출발해 보이는 세계로 나가려고 의지를 발휘해야 합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한 평범한 사람이 온전한 인간이 되는 길이 무얼까 누구도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이야기와 삶이 섞이는 순간 우리는 희망을, 자기 자신을 자신의 바깥에서 찾는 법을 알아내게 될 거란 점입니다. 이야기는 알리바이가 아니듯이 단지 내면의 문제, 취향이기만 한 것도 아니고 나를 다른 세계와 만나게 하는 감정들, 움직이게 하는 감정들인 것 같습니다.

새 연재의 제목은 ‘사랑이 있던 곳이야. 잊지 마’입니다. 아!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떨어야 나의 가지를 뻗을 수 있을까요? 서리 내리는 아침. 이슬 젖은 밤. 근심어린 수많은 날 책은 나를 아름다운 연인처럼 유혹합니다. 만지지는 마라. 그러나 다가오라! 나는 그렇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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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혜윤 (CBS PD)

『런던을 속삭여줄게』,『고전읽기-세계가 두번 진행되길 원한다면』이후 쭉 고전 읽기에 푹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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