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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 사코와 바르톨로메오 반제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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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의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이목 옮김, 돌베개, 2007)은 한국어판 부제목대로 ‘20세기를 온몸으로 살아간 49인의 초상’이다. 약전(略傳)이다.

서경식의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이목 옮김, 돌베개, 2007)은 한국어판 부제목대로 ‘20세기를 온몸으로 살아간 49인의 초상’이다. 약전(略傳)이다.

이 책을 구성하는 인물전 47편은 “1995년 1월 20일부터 같은 해 11월 5일까지 간행된 『20세기 천 명의 인물二十世紀の千人』 전 10권(아사히신문사朝日新聞社) 가운데 제1, 2, 4, 6, 7, 8, 10권에 실렸던 글들”로 “이 시리즈는 20세기라는 시대에 개성적인 자취를 남긴 1,000명의 인물에 대한 평전을 24명으로 이루어진 집필자 그룹이 분담하여 집필”했다.

서경식에겐 집필 대상자를 선정하는 권한이 온전히 그에게 주어져 있었기에 나중에 그가 “쓴 글을 모아 한 권의 단행본으로 묶을 것을 상정해 일관된 주제 아래 집필 대상자를 고를 수 있었다.” 두 사람을 함께 다룬 글이 두 편 있다. 그는 이를테면 ‘20세기인의 여러 묘비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글을 쓰고자 했다.

“실제로 내가 집필을 맡은 인물들은 대부분 사형, 전사, 암살, 객사, 자살로 삶을 마감한 사람들이다. 이렇듯 선명한 ‘죽음’을 통해 그들은 이 시대에 맞서 자신의 ‘정체성’을 주장했던 것이다. 얼핏 특별해 보일 수도 있을 그들의 ‘죽음’의 형태는, 이 20세기를 진실하게 살아가려는 이들에게는 피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서경식 선생의 저서를 여러 권 탐독한 나는 이 책을 통해 그의 작가적 역량에 다시금 놀란다. 책에 실린 약전은 하나같이 완성도가 높거니와 매우 감동적이다. 짧은 글마다 고른 ‘성취’를 담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 책에 수록된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한 것은 지금부터 12년 전이다(2007년 현재―필자). 1년이 채 못 되는 시기에 47편이라는 짧은 평전을 쓰는 일은 무척 가혹한 작업이었다. 지금 돌이켜보아도 그 무렵은 정말이지 열심히 공부하고 부지런히 썼던 것 같다. 그 가혹한 작업이 현재의 나라는 ‘글쟁이’의 지식과 사고의 토대를 형성해주었다.”(한국어판 서문)

또한 그의 인물 선정은 얼마나 탁월한가! 역자 후기에 나오는 옮긴이의 ‘고백’은 빈말이 아니고, 남의 일도 아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이 책의 일본어 원서를 처음 읽었을 당시에는 폴 니장, 하비 밀크, 잭 시라이, 마키무라 고우, 오구마 히데오, 하라 다미키, 조문상 등의 이름들이 너무도 귀에 설었다. 나의 무지를 적나라하게 들춰내고 격렬하게 뒤흔드는 인물 모두가 내게는 낯선 어둠 저편의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그럴 때 일신의 안위를 근심하며 하루하루 점점 더 쭈그러들어가는 자신을 대하기란 얼마나 민망한 일이었던가.”

나로선 이름이 제법 귀에 익었다는 인물들마저 낯설었다. 맨 처음 등장하는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ia Lorca, 1898. 6. 5-1936. 8. 19)부터 그랬다. 그는 ‘전혀 전투적이지 못하고 겁이 많으며 태생적으로 여성적’이라는 평을 들었다. 하지만 태도가 언제나 명쾌했던 로르카는 진정한 민중시인이었다.

“이 세상에서 나는 늘 가난한 이들의 친구이며, 변함없이 그들의 편일 것입니다. (……) 우리는―나는 안락한 계층의 평균적인 환경 속에서 교육받은 지식인들을 말하는 것입니다―희생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나는 사코와 반제티에게서 가장 큰 충격을 받았다. 사코와 반제티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 억울함의 실체는 이번에 처음 안다. 지금까지 사실 나는 사코와 반제티를 부랑자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진실은 그게 아니었다.

“드레퓌스 사건과 사코?반제티 사건은 모두 세계적인 누명사건이지만, 특히 사코?반제티 사건은 가난한 이주노동자가 희생자였다는 점에서 계급 대립의 격화와 노동자계급의 조직화, 아울러 노동시장의 세계화라는 1920년대의 시대상황을 상징하는 사건이기도 했다. 이 시대의 많은 지식인들이 이 두 사람의 비극을 조명하면서 자신의 ‘정의’의 내실을 되물었던 것이다.”

니콜라 사코(Nicola Sacco, 1891. 4. 22-1927. 8. 23)는 남부 이탈리아 토레마뛁레 출신이다. 열일곱 살이던 1908년 4월 미국으로 건너가 도로 인부, 철공소 직원 등을 거쳐 구두공장 몇 군데서 일하며 구두 직공으로 성공한다. 그 사이 노동운동에 참여하면서 아나키즘의 세례를 받는다.

바르톨로메오 반제티(Bartolomeo Vanzenti, 1888. 6. 11-1927. 8. 23)는 이탈리아 북부 빌라팔레토라는 마을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열세 살 때까지 학교에 다니며 밀가루 식품점에서 도제로 일하다가 1908년 6월 미국으로 건너간다. 가혹한 노동을 겪고 나서 플리머스의 공장에서 일하지만, 내부 분열에 따른 파업 실패로 생선 행상으로 생계를 꾸린다.

사코와 반제티는 1917년 미국이 1차 대전에 참전하자 징병을 피하러 도망친 멕시코에서 처음 만났다. 1920년 4월 15일 매사추세츠 주 사우스브레인트리에서 제약회사의 회계부주임과 경비원이 피살되고 약 1만6천 달러의 급료가 강탈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해 5월 5일 사코와 반제티가 그 사건의 범인으로 기소된다.

“재판은 증언이나 증거 모두 근거가 빈약했고 배심원단의 구성 등 소송 절차 면에서도 문제가 많았으며, 무엇보다 피고가 아나키스트였다는 점 때문에 일종의 사상재판 같은 양상을 띠게 되었다. 검사는 피고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병역을 기피한 점을 집요하게 공격하면서 ‘이 나라를 사랑하는가?’, ‘병역거부를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가?’” 따위의 사건과 무관한 질문을 반복했다.

1927년 6월 1일 사코와 반제티는 유죄선고를 받고, 8월 23일 사형을 당한다. 형 집행 하루 전날, 반제티는 사코의 아들 단테에게 “네 아버지의 무고함을 잊지 말거라. 아버지의 의연하고 고결한 태도를 배워라”라는 편지를 남겼다. “1977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공식 성명을 통해 두 사람의 무죄를 인정했다고 한다.”

하워드 진 또한 그의 역사에세이 『권력을 이긴 사람들A power Governments cannot suppress』(문강형준 옮김, 난장, 2008)에서 사코와 반제티를 비중 있게 거론한다. 우선, 사코가 그의 아들에게 주는 당부가 제사(題詞)의 하나를 이룬다.

“그러나 단테야, 항상 기억해라. 그런 행복한 유희 속에서만 네 전부를 다 소진하지는 말거라. …… 박해받고 희생당하는 이들을 도와라, 왜냐하면 그들이야말로 더 좋은 친구들일 테니까 .…… 인생이라는 이 투쟁 속에서 너는 더욱 많은 사랑을 발견할 것이고, 사랑받게 될 것이다.”

하워드 진은 사코와 반제티에게 가장 불운했던 점으로 두 사람이 아나키스트였다는 점을 꼽는다. “외국 태생이라는 것이 문제되지도 않고 빈곤도 존재하지 않는 완전한 민주주의라는 미친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점, 이런 도발적인 생각 없이는 국가들 사이의 전쟁이 영원히 계속되리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런 생각이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부자들이 공격받아야 하고 그들의 재산은 몰수되어야만 했다. 이 아나키즘 사상은 급료를 훔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쁜 범죄이고, 그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사코와 반제티의 이야기는 엄청난 긴장을 불러오면서만 기억될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물경지우(勿頸之友) 명단에 사코와 반제티를 추가해야겠다.

1977년 반세기 만에 사코와 반제티의 무죄를 인정한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1988년 미국 민주당후보로 대통령선거에 나섰던 마이클 듀카키스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하워드 진은 『권력을 이긴 사람들』이 “어두운 시대에 희망을 제시하려는 시도”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가 결론삼아 말하는 ‘불확실성에 대한 낙관’은 좀 생각해볼 문제다.

“어떤 사소한 방식으로라도 우리가 진정 행동한다면, 어떤 거대한 유토피아적 미래를 기다릴 필요는 없다. 미래는 현재의 끊임없는 연속이고, 우리를 둘러싼 모든 나쁜 것들을 거부하는 가운데 우리가 마땅히 살아가야 하는 방식이라고 믿는 바처럼 지금을 살아간다면, 바로 그 자체가 위대한 승리이다.”

한나 아렌트의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Men in dark Times)』(권영빈 옮김, 문학과지성사, 1983)은 중단편 인물평전의 고전이다. 여기에는 모두 열 사람이 등장한다. 독일 극작가 레싱을 빼고는 전부 20세기 사람이며 본인 또는 배우자가 유대인이다. 무엇보다 어두운 시대에 ‘내적 망명’을 감행한 망명자들이다.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오기순(1920. 12. 20-1980. 5. 20)은 서경식의 어머니다. 나도 나하고 각별한 사람의 약전으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최찬일(崔燦一, 1962. 10. 24(음력)-1992. 3. 9)

강원도 인제군 원통에서 태어난 그는 나의 작은형이다. 아버지는 한국전에 참전한 직업군인(하사관)으로 그 무렵 강원도와 경기도의 최전방부대에서 근무했다. 1960년대 후반, 아버지가 수도권 부대로 배속되면서 우리 가족은 인천 부평에 정착한다. 작은형은 인천부평동초?중학교를 다녔다. 인천고를 나와 인하대 조선공학과에 들어갔다. 그는 친구가 엄청 많았다.

1983년 12월 5일 대학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에 입대하다. 작은형이 입대하기 며칠 전, 부산 다대포로 침투하는 무장간첩을 생포한 사건은 우리 가족의 간담을 더욱 서늘케 했다. 신병 시절 육군 2사단에서 엄청나게 고생하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전투경찰이 맡던 해안경비를 군인으로 대체하는 작계에 따라 남해안으로 내려갔으나, 이게 오히려 화를 불러오다.

1985년 가을, 폐결핵이 발병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불철저하고 굼뜨기 짝이 없는 군대의료체계로 말미암아 병을 키우다. 다 죽다 살아나 만기 제대를 몇 달 넘겨 의병제대하다. 제대 후 여섯 해 가까이 사회생활을 하다 폐결핵의 후유증이거나 그것이 원인이 되었을 것으로 막연히 추측하는 질환에 걸려 영원히 잠들다.

그 와중에도 87년 6월 항쟁에서 민주시민의 의무를 다하다. 병의 징후가 느껴지고 세상을 떠나기까지 한달 남짓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도 필요 없다.
예전의 건강한 몸으로 단 5년간의 삶만 주어진다 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
2시간만 주어진다 해도 지금 남아 있는 아쉬움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텐데.”
(작은형이 남긴 군병원 병상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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