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성장소설 『완득이』의 작가 김려령을 만나다
완득이는 ‘나는 이렇게 생각해. 그런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하는 질문을 던진 책.
2007년에서 2008년 사이, 3편의 장편 동화를 내면서 단숨에 한국 어린이 문학의 기대주로 떠오른 작가가 있다. 바로 『완득이』이라는 성장소설로, 성인독자까지 매료시킨 김려령이다.
2007년에서 2008년 사이, 3편의 장편 동화를 내면서 단숨에 한국 어린이 문학의 기대주로 떠오른 작가가 있다. 바로 『완득이』이라는 성장소설로 성인 독자까지 매료시킨 김려령이다. 데뷔 이후 받은 굵직한 문학상만 무려 세 개로,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마해송문학상, 창비청소년문학상을 받았다. 2006년 학교(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후, 1년 동안 맘잡고 쓴 습작 장편들이 모두 상을 받았다. 상만 받은 게 아니다. 독자들의 호응도 뜨겁다. 청소년 물은 잘 안 팔린다는 통념을 무시하듯, 『완득이』는 이미 5만 부가 나갔고, 영화와 드라마 쪽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어느 동화작가 분이 그러더군요. 자기 작품을 읽은 아들이 “엄마 좀 재미있는 이야기를 써.”라고 했다고요. 『완득이』의 작가인 김려령 선생님은 자녀분에게 그런 말을 안 들을 것 같습니다.
저도 들어요.(웃음)
뭐라고 그러던가요?
딸이 ‘엄마 책에 욕 좀 쓰지 마.’ 그랬어요. 엄마랑 딸이 반대가 됐죠. 보통 엄마가 자식보고 ‘욕하지 마’ 그러는데.
그러면 어떤 작품을 쓰라고 하던가요?
『해리 포터』 같은 거요. 그 책은 저도 참 재밌게 읽었어요.
늦어도 30대 초반에는 데뷔를 하는데, 김려령 작가님은 데뷔가 늦으신 편이네요.제1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완득이』의 저자 김려령
문학이 좋았는데, 문학을 내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문창과는 결혼하고 아이 낳은 후에 들어갔어요. 그러니까 데뷔가 늦은 게 아니라, 출발이 늦은 거죠. 작가 생활을 늦게 시작한 게 오히려 내겐 좋았던 것 같아요. 서른다섯이 넘으면 웬만한 것에 놀라지 않아요. 애를 둘 낳으니까 귀신이 안 무서워요.(웃음) 외부의 적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해야 하니까 어머니는 강해져야죠.
원래 소설을 쓰려고 하셨는데, 어떤 계기로 동화를 쓰게 되셨는지요.
소설을 쓰려고 문창과에 들어갔는데, 대학에 가서 아동문학을 알게 되었어요. 황선미 선생님이 저를 보고 ‘동화 한 번 써보자.’ 그러셔서 쓰게 되었어요. 쓰다 보니 동화가 맞았어요. 어떤 소재를 쓰려고 하면, 그게 동화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동화작가가 된 것 같아요. 또 제 기질이랄까, 감수성도 동화 쪽에 맞는 듯하고요.
소설과 동화의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이야기라는 점에선 같지만 읽는 대상과 시선을 맞추는 방식이 다른 것 같아요. 시선을 맞추다 보면 구성이 달라지고, 문체도 달라져요. 어른의 대화법과 아이의 대화법이 다르니까요. 아이들 문학은 읽었을 때 가뿐하게 읽혀야 해요. 쉽고, 빠르고, 간결하게. 어려운 언어로 풀어내는 문학이 아니에요. 어떤 한자어 같은 경우는, 그 단어 한 가지만으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잖아요?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한 번에 한 가지씩만 제시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읽고난 후의 여운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읽을 때는 쉽고, 빠르고 간결하게, 읽고 나서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게 이야기를 써야 합니다.
앞으로 소설을 쓰실 생각은 있으신가요?
잘 모르겠어요. 소설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소설은 제게 로망으로 남아있습니다. 어쩌면 영원한 로망이 될지도.
2006년에서 2007년 사이에 상을 세 개나 받으셨습니다. 『완득이』로 제1회 창비청소년문학상,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로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기억을 가져온 아이』로 마해송문학상을 받으셨죠. 2006년이 선생님에게는 글이 폭발하듯 씌어졌던 해 같습니다.
2006년에 졸업을 했어요. 하반기 상반기 하나씩 썼어요. 습작을 한 거죠. 그런데 운 좋게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작품들이 다 장편이네요.
단편은 어려워요. 긴 글이 저한텐 맞아요.
『완득이』는 굉장히 무거운 주제를 경쾌하게 다룬 이야기인데요.
우리 사회는 소외 계층에 대한 왜곡된 시선이 있어요. 외국인 노동자, 장애인, 결손가정, 생활보호대상자…… 왠지 이 사람들은 굉장히 불쌍하고 비참하게 살고 있을 거라는 그런 편견이요. 그런데 제가 직접 만나본 사람들은 굉장히 유쾌한 분들이었어요. 열심히 살고 있고. 환경이 그렇다고 해서 마냥 손 놓고 비관하는 분은 없어요. 어떻게든 살아내기 위해 노력하죠.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런 분들을 가리고 싶어 해요. 저는 그런 분들이 거대 사회에서 가려지는 게 싫었어요. 이 분들 삶을 비루하게만 보지 않았으면 했어요. 아직 머리가 굳지 않은 청소년들이 『완득이』 속에 나오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아, 저분들은 저런 삶을 살고 있구나.’하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렇다고 『완득이』가 누군가를 가르치려고 쓴 이야기는 아니에요. ‘나는 이렇게 생각해. 그런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하는 질문을 던진 책이죠.
독자서평은 읽어보셨나요?
아직은 성인들이 더 많이 읽었더라고요. 중간고사 기간이라.(웃음) 저희 애도 지금 중학생인데, 어제 시험이 끝났어요. 성인들은 이미 알고 있는 현실이라서 많은 분들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이들에게도 이들 나름의 삶이 있고, 그 삶을 열심히 살아낸다’고 느끼시더라고요. 청소년들의 반응은 ‘재미있었다.’가 많았어요. 아이들은 책 속에 나오는 완득이의 담임 ‘똥주’를 특히 좋아하더라고요. 좀 놀랐어요.
사실 대부분의 청소년 소설에서 아이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도움을 청하는 대상은 친구지 어른은 아니잖아요. 아직 아이들이 마음 편하게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 없는 현실인데, 완득이가 똥주의 ‘집요한 괴롭힘’과 ‘괴팍한 애정’의 샌드위치 속에서 자기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은 놀라웠습니다.
제가 선생님과 경찰을 아주 좋아해요.(웃음) 어렸을 때 선생님은 뭐든 다해주는 사람 같았어요. 어디 아파요, 뭐가 잘못됐어요. 그러면 바로바로 해결해주잖아요. 경찰은, 어렸을 때 몇 번 경찰서 신세를 졌어요. 경찰차가 타고 싶어서요.(웃음) 어렸을 때 제가 시골에서 자랐거든요. 시골에는 볼거리가 별로 없잖아요. 그런데 어느 학교의 이순신 상이 되게 멋있다고 해서 그걸 구경을 갔어요. 지금 생각하면 왜 갔는지 몰라요. 갈 때는 잘 찾아갔는데 올 때 길을 잃은 거예요. 그 때 처음으로 경찰서에 갔는데 경찰관들이 정말 잘해주는 거예요. 빵도 주고, 차를 태워서 집까지 데려다주고. 그거 여러 번 써 먹었죠. 어딜 가다기 힘들면, ‘우리 길 잃어버렸다 그러자’ 그러면서. 그래서 지금도 선생님과 경찰에 대해 좋은 감정이 있어요. 뉴스나 신문에서 나쁜 경찰이나 선생님이 나와도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걸 알아요.
작가님이 볼 때 완득이의 성장은 뭐라고 생각하시는가요?
내면의 성장, 나에서 우리로 오는 과정에 있죠. 완득이는 나에게 묻힌 아이였잖아요. 그 알에서 지금 나온 거예요. 완전히 나온 건 아직 아니죠.
여자친구와는 잘 안 될 것 같아요. 그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네에. 그럴 것 같아요. 윤하와 완득이는 쿨한 친구가 될 것 같아요. 이성 친구면서 동성보다 더 편한. 나중에 나이 들면 ‘나 요즘 남편 때문에 못 살겠어. 술 한 잔 하자.’ 그러면 나와서 술 마시고, 하소연 들어주고.
그러다 ‘그러면 내가 니 남편 패줄까?’ 뭐 그런 이야기도 해주는 친구 사이요?
네.(웃음) 그런데 완득이가 남편 패준다고 하면 바로 가슴 철렁하겠죠. 완득이가 진짜 때리면 어떡하지, 맞으면 큰일 나는데 그러면서.(웃음)
완득이를 가만히 보면 〈거침없이 하이킥〉에 나오는 윤호를 닮은 것 같아요. 거칠지만 속은 착하고, 남의 부탁 잘 거절하지 못하고, 폼이 중요하고.(웃음)
저는 특별히 의식하지 않았는데, 어떤 청소년 독자가 자기 블로그에 완득이를 보니까 ‘하이킥’의 윤호가 떠오른다는 글을 써 두었더군요.
『기억을 가져온 아이』와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는 어떤 이야기인가요?
『기억을 가져온 아이』는 판타지예요. 차근이라는 아이의 할아버지가 어느 날 실종돼요. 꼬마 무당 다래와 함께 할아버지를 찾으러가는 여정을 담은 동화인데, 기억과 망각의 죄책감, 그리움을 환상 세계를 통해 풀어가는 이야기죠.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는 입양에 대한 이야기예요. 입양된 아이 입장에서 말하고 싶어서 쓴 이야기예요. 입양아들이 제일 혼란스러워할 때가 사춘기예요. 친부모에 대한 원망, 그리움이 있고, 또 양부모에 대해서도 고마운 건 알지만 이미 받은 상처가 있죠.
자기 마음이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 시기죠.
사정을 다 이해하는데 마음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죠. 그리고 입양한 가족에 대한 어떤 이미지가 있잖아요. 가슴으로 낳은 아이, 하늘이 준 선물……. 하지만 막상 아이의 심리는 그리 단순하지 않죠.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하면 더욱 힘들어지고요.
『완득이』도 그렇고,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도 그렇고, 김려령 작가님은 전체성 속에서 반짝이는 개별성이랄까, 하나로 뭉뚱그려지는 결론 혹은 사회적으로 그렇게 받아들여지는 이미지에 반론을 재기하는 글을 쓰시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선입관을 깨고 바라볼 것을 권하는 작품들이라고 할까요.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요. 제 작품 속에는 언제나 두 가지 이상의 입장이 공존하고 있어요. 이런 생각이 있으면 저런 생각이 있고, 이런 입장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저런 입장을 가진 사람이 있죠. 나쁜 건 나쁜 거고 좋은 건 좋은 게 아니라 그 안에 고려해야 할 것이 수없이 내재되어 있는 거죠. 한 사람 안에도 여러 면이 공존하고 있잖아요.
동화작가로, 두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로 요즘 어린이들이 자라는 환경에도 많은 관심이 있을 텐데요.
환경은 내가 자랐을 때가 훨씬 좋죠. 지금은 아이들에게 뭐든지 주어져 있어서 도리어 자유가 없는 것 같아요. ‘내가 이것이 필요하다.’ 하고 생각하기 전에 이미 부모와 사회가 손에 그것을 쥐어주는 거죠.
유치원생들 중에서 자화상을 그릴 때, 머리는 극단적으로 크게 그리고 손발은 아주 작게, 아예 그리지 않는 아이들이 많다고 하는데, 그런 환경을, 부모가 뭐든지 해주는 환경을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정신적으로는 건강하지 못하죠. 물질적으로 원하기도 전에 충족되었기 때문에 정신이 움직이는 폭이 좁아지고, 급기야 황폐해지기까지 하는 것 같아요. 아이들의 공간은 정신이 아니라 이미 물건들이 다 채우고 있으니까요. 저는 아이들에게 제일 필요한 건, 일종의 정신적인 공간이라고 봅니다. 아이들이 게임이나 인터넷 같은 가상공간에 매달리는 건, 정신적인 공간을 확보하고자 하는 본능적인 움직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게임에 빠지는 아이들도 위험하죠.
동화와 현실의 관계는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벌레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징그럽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좀 더 안으로 들어가 문학적으로 써야 합니다. 나는 동심천사주의는 아니에요. 이렇게 사는 게 아름답다고 자연스럽게 보여줘야지, 억지로 주입식으로 이런 게 아름답다는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되죠. 동화가 너무 아름답고, 천사 같은 아이들의 착한 이야기를 쓰니까 아이들이 그런 동화를 읽으면서 도리어 억압을 받는 것 같아요. 그런 착한 아이들 이야기를 읽고 나면 평범한 아이들은 스트레스 받을 것 같지 않나요? 이렇게 착해야만 할 것 같은. 동화에서는 아무리 못된 아이도 끝에 가서는 반성하고 착한 아이가 되잖아요. 물론, 그런 것도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역시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유독, 동화에서는 현실과의 거리가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그건 현실적이지 않다는 비판을 많이 받죠. 그런 건 동화로 써서는 안 된다. 그런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읽힐 수 있느냐……. 나는 그런 의견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요. 어른들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동화에서도 충분히 그릴 수 있어요. 동화에서 아이들의 주인공으로 삼는 건 아이들에게 좀더 가깝게 가기 위한 장치인데, 거기에 얽매어버리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황선미 선생님의 『푸른 개 장발』은 개와 할아버지가 주인공이잖아요? 어른이나 동물, 혹은 무생물이 주인공인 동화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봐요. 동화의 세계는 충분히 넓혀질 수 있는데, 동화는 이래야 한다는 경직주의가 동화 자체를 묶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중요한 건 등장인물이 아이이고, 배경이 아이들 세계인 게 아니라, 아이와의 심리적 거리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예요. 아이가 그 인물과 배경을 어떻게 하면 좋아할 수 있는지, 매력적인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지가 문제입니다.
이제 작가로서 스타트 라인에 섰는데요. 비판이나 비평에 대한 두려움은 없으신가요?
동료 작가들이나 선후배들에게 듣는 비평이 가슴에 ‘푹’ 꽂힐 때가 있어요. 강해져야죠.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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