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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영혼들의 도시, 홍콩 <상성, 상처받은 도시>
<상성(傷城)>의 영문 제목은 'Confession of Pain'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자신의 영혼을 갉아먹은 고통스런 기억을 마음 안에 가두어 놓고 있다.
상처의 도시, 홍콩 아방 : 왜 이렇게 쓴 걸 먹어요? 유정희 : 술의 참맛은 입안에 도는 쓴맛이야 <상성(傷城), 상처받은 도시>(이하 <상성>)의 프롤로그에서 크리스마스로 흥청거리는 거리 중환(中環, Central)에서 잠복 작전을 하던 중, 절친한 선후배 경찰인 유정희(양조위)와 아방(금성무)은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 의미 없이 나누는 것처럼 보이는 이 대화 내용은 영화의 중후반부에서 아방이 유정희의 아내 숙진(서정뢰)과 대화하는 장면에서 한 번 더 나오는데, 이 장면에서 아방은 숙진에게 고통스러운 사건의 전모를 말해주게 된다.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두 장면에 이어지는 장면은 모두 주인공들에게 고통의 지옥을 안겨준다. 프롤로그에서 범인을 잡고 집에 돌아간 아방을 기다리는 것은 싸늘한 연인의 시신이며 숙진은 자신의 아버지의 추악했던 과거를 확인하게 된다. #1. 홍콩의 야경을 항공 촬영으로 보여주는 오프닝 시퀀스,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홍콩'이라는 도시다. #2. 영화의 첫 장면에서 유정희(양조위)와 아방(금성무)은 절친한 선후배 형사다. 여자 친구 때문에 고민하는 아방에게 충고하는 유정희. #3. 범인을 뒤쫓는 중 우연히 지나치는 자동차 사고. 하지만 스치듯 지나가는 이 장면에, 후에 아방이 그토록 찾는 고통의 원인이 있다. <상성(傷城)>의 영문 제목은 'Confession of Pain'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자신의 영혼을 갉아먹은 고통스런 기억을 마음 안에 가두어 놓고 있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밝혀지는 것처럼, 아방은 자신의 연인이 자살한 이유를 알 수 없어 술독에 빠져버리고 유정희에게는 더욱 커다란 고통이 숨겨져 있다. 늘 슬픈 눈망울로 유약한 인물을 연기했던 양조위의 첫 악역 연기로 화제를 모았던 <상성>은 예상하는 것처럼 끔찍한 살인이 벌어지는 범죄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의 주요 관심은 '누가 죽였는가?'에 있지 않다. 전술한 것처럼, 이 영화에서 살인 사건의 범인은 일찌감치 드러나며 자연스럽게 영화의 관심은 '누가 죽였는가?'에서 '왜 죽였는가?'로 옮겨가게 된다. 홍콩, 슬픔을 머금은 도시 <무간도>를 통해 진실을 숨기고 살아가며 헤어나올 수 없는 지옥과 같은 운명의 단면을 누아르의 틀 속에서 선보인 바 있는 장문강, 맥조휘, 유위강이 다시 작업한 <상성>은 <무간도>처럼 단절된 관계와 진실 뒤에 감추어진 고통의 순간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지닌 운명의 비극성은 홍콩이라는 도시 공간 안에서 극대화된다. <상성>의 숨겨진 주인공은 바로 도시 자체다. 이 도시는 화려한 외양 뒤에 깊은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다. 이 영화의 첫 장면에 항공 촬영된 홍콩의 야경이 슬로우모션으로 나오는 것은 단순히 지정학적인 위치를 설명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이 영화의 공간은 네온 불빛으로 장식된, 세련되지만 인공적인 공간과 허름하거나 어두워 보이는 공간으로 양분되고, 그것이 바로 홍콩이라는 도시의 양면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이 도시의 공간은 편안한 안식처처럼 보이지 않는다. 영화 속 공간은 지나치게 모던하거나 지저분하며 이런 모습은 진실을 숨기고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으로 표상된다. #4. 사건을 해결하고 온 아방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싸늘히 식어버린 연인의 시신. 병원에 급히 옮겨가지만 이미 늦었다. 아방의 이런 심경은 3년 후의 시점에서 유정희의 내레이션으로 전해진다. #5. 3년 후, 상견례 자리에서 장인인 원승지(악화)를 만나는 유정희. 60년대 <방랑의 결투> <유성호접검>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 악화의 모습을 볼 수 있다. #6. 살인사건의 범인은 영화 시작 20분 만에 금세 밝혀진다. 하지만 엘리트 경찰인 그가 장인을 죽인 이유는 알 수가 없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 중 고통에서 벗어나 있는 유일한 인물은 극 중에서 아방과 연인 관계로 발전해 나가는 사이 펑(서기)이 유일하다. 사이 펑은 극 중에서 자신의 슬픔과 고통을 거의 유일하게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인물이다. 또 다른 인물들이 위스키라는 쓴 술과 연관을 맺고 있는 반면, 그녀는 (훨씬 대중적인) 맥주 판매원이라는 사실 역시 그녀가 다른 인물들과 차별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설정이다. 나머지 인물들은 하나같이 상대방에게 진실을 숨기거나 모르고 있으며 그로 인해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거나 고통을 받게 된다. 전작인 <무간도>에서 스릴러의 플롯에 생생한 인물들의 감성을 표정 위에 담아냈던 유위강의 카메라 워크와 맥조휘, 장문강의 시나리오는 이 영화에서도 빛을 발한다. 장르적인 완성도로 따지자면 <상성>은 <무간도>의 스릴러로서의 감각에 이르지 못한다. 영화의 끄트머리에 밝혀지는 '왜 죽였는가?'가 전체적인 이야기를 끌어가는 중요한 요소가 되지만, 이 영화는 네 남녀의 관계를 가로지는 감정의 변화에 대한 잔가지가 꽤 많은 편이라 <무간도> 같은 짜임새를 갖추고 있지는 못하다. 하지만 영화상의 악인이자 가장 거대한 슬픔을 지닌 모순적 인물을 연기하는 양조위의 연기는 여전히 명불허전이다. 본질적으로 양조위가 연기하는 유정희는 그간 양조위가 연기했던 우울한 홍콩인의 모습의 연장선상에 있는 인물이다. 평생을 괴롭힌 자신의 트라우마를 벗어나기 위해 애쓰던 그는 결국 모순적인 상황에 처하고 무너지고 만다. #7. 아방은 연인의 자살 사건 이후 못 마시던 술독에 빠져 살아나가고 있다. 다행히 그의 곁에는 사이 펑(서기)이 있지만 아방은 그녀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8.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의혹을 사설 탐정이 된 아방에게 부탁하는 숙진. 아방은 불현듯 자살한 자신의 연인을 느낀다. #9. 사건 현장에서 사건의 실체를 추적하는 아방. 영화에서는 색을 달리하는 기법으로 상처 입은 두 인물을 같은 공간에 배치하는 기법을 보여준다. 상처를 극복하는 법 결국 <상성>은 제목처럼 '상처받은 영혼들의 도시'인 홍콩에 관한 영화다. 이 영화에서 사람들은 각자 상처를 머금고 살지만 도시라는 공간은 그들에게 상처를 치유하는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리고 영화는 그런 잔혹한 도시의 속성을 시각적으로 묘사하는 데 애를 쓴다. 네온 불빛 아래 주고받는 위스키 잔, 커다란 공간에 외로이 서 있는 인물들, 지긋이 눈을 내리깔고 있는 양조위와 금성무의 눈망울 등 눈에 띄지 않지만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시각적인 요소가 이 영화를 가득 채우고 있는 정서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결국 영화 속에서 상처를 입은 주인공들이 상처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가로 귀결되며 그것은 결국 사랑으로 극복될 수밖에 없다. 아방과 유정희의 운명은 그런 판단 때문에 엇갈리고 만다. <상성>은 외롭고 고립된 홍콩이라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상처받은 영혼들의 이야기다. ★★★☆ #10. 서서히 사건의 실체에 접근해 가는 아방. 아방은 유정희를 데리고 범인의 행적을 따라간다. #11. 한편, 아방은 사이 펑과 가까워진다. 수다스럽지만 따뜻한 사이 펑은 평범한 홍콩인을 대변하는 여인으로 그려진다. #12. 반면 숙진은 위기에 처하게 된다. #13. 유정희와 아방. 깊은 상처를 입은 두 남자는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자신들의 진심을 내비친다. 둘은 각자의 방법으로 자신의 상처를 씻어내려고 한다. 홍콩의 야경이 돋보이는 영상
<상성> DVD의 본편 영상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두드러져 보이는 색감이다. 서기가 입고 있는 맥주 회사 유니폼의 노란색이나 바에서의 네온 불빛, 위스키의 색깔 등이 감각적으로 표현된다. 영화의 대부분 장면이 어두운 밤에 촬영되거나 실내에서 촬영되었기 때문에 약간의 지글거림이 발견되지만 전반적인 영상은 시원한 느낌을 준다. 회상 장면은 의도적으로 필름 그레인이 강조되어 있으며 약간의 화질 편차가 존재하지만 비할리우드 영화로서는 최상급의 화질을 선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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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음악, 기대 음상의 음향 효과
DTS ES와 돌비 디지털 서라운드 EX라는 DVD 최고의 포맷을 모두 지원하는 DVD의 음향 퀄리티 역시 훌륭한 편이다. 영화의 정서를 음악이 상당한 비중으로 책임지고 있는데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에 삽입된 재즈풍의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비롯해 피아노 중심의 테마 음악이 영화의 멜랑코리한 정서를 잘 담아내고 있다. 생각보다 액션 시퀀스가 많지 않아 기?만큼의 음향 임팩트를 담지 않는 대신, 영화의 정서를 대변하는 배경 스코어가 분위기를 휘감는 역할을 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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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킹 Making of (15분)
제목과 달리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담고 있기보다는 제작 과정이 삽입된 인터뷰 모음집 같은 메뉴다. 다분히 홍보용 영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짧은 편집으로 5명의 배우(양조위, 금성무, 서기, 서정뢰, 두문택)와 3명의 감독(유위강, 맥조휘, 장문강)의 목소리를 통해 캐스팅 과정과 각 캐릭터에 대한 소개, 연기의 주안점 등에 대해 들려준다. 짧은 느낌이지만 제작 의도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깊다. 다만, 이 영화를 통해 오래간만에 볼 수 있었던 노장 배우 악화 등 조연급 출연진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아쉽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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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회견 Press Conference (9분 45초)
홍콩에서 공개 당시 진행된 기자 회견 장면이 담겨 있는 메뉴다. 영화에 출연하게 된 계기나 연기하면서 느낀 점 등 대중적인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이 이어진다.
적은 분량의 서플먼트
<상성> DVD에는 그 외에 예고편 3개, TV 스팟 2개, 포토 갤러리 등 일반적으로 수록되는 기본적인 메뉴가 담겨 있다. 두 장으로 구성된 홍콩판에서 메뉴 하나(AV Blog)를 빼고 한 장으로 설정한 구성이다. 할리우드나 우리나라 영화 DVD와 비교해 보면 굉장히 단출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지만 홍콩 영화로서는 평범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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