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유행하는 때에 올리는 말씀 -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 &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과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의 공통점은 조선시대를 향해 걸어갔다는 것이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눈여겨볼 대목이다.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과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의 공통점은 조선시대를 향해 걸어갔다는 것이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눈여겨볼 대목이다. 언젠가부터 부쩍 역사를 쉽게 알려준다는 인문서가 등장했는데, 자세히 보면 그중에서 유독 조선을 배경으로 한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건 소설도 마찬가지. TV에서 고구려 타령을 했다면 책은 조선 타령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도대체 왜 조선일까? 조선은 그다지 인기가 많은 나라는 아니다. 그럼에도 조선이 자주 언급되는 이유는 뭘까? 기본적으로 자료가 충분하다는 이점이 있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으로 사람들이 예상외로 조선을 ‘잘 모른다’는 사실을 꼽고 싶다.
역사적으로 보면 가장 가까운 나라가 조선이지만, 조선은 멋지게 기억되지 않는다. 영토확장을 중시한 교과서의 영향 때문인지, 지도층의 경우 고구려는 광개토대왕, 백제는 근초고왕, 신라는 진흥왕 등이 떠오른다. 하지만 조선은?
세종대왕의 아련한 추억이 있기는 하지만, 또한 요즘 부쩍 정조를 띄워주는 경향이 있다고 하지만, 글쎄! 왜 자꾸 논쟁만 벌이던 사대부만 떠오르는 것일까? 아니면 FTA 협상에서 나온 말 때문인지 요즘은 쇄국정책의 흥선대원군이 떠오르기도 한다. 사극으로 보여줬던 것을 떠올려 봐도 마찬가지. 그다지 ‘보람찬’ 생각은 아니다.
지도층뿐만 아니라 백성에 대한 이미지도 대체로 비슷했다. 무슨 이유인지 ‘고구려 백성’ 하면 호전적인 성격이 떠오르고, ‘백제 백성’ 하면 잘 놀았을 것 같고, ‘신라 백성’ 하면 예술을 좋아할 것 같다. 그런데 조선은? 하도 침입을 당하고, 나라에 수탈당한 것이 많아서 그런가? 누렇게 뜬 얼굴만 떠오른다. 결코,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는다.
그런데 기막히게도 이것이 틈새시장을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던 것, 대충 이러니저러니 하고 이미지를 쌓았는데, 그것과 다른 것을 발견했을 때 재밌어하는 것처럼 말이다. 예를 들어, ‘일제 강점기’ 하면 조선 사람은 다들 식민지의 백성으로 암담하게 살았을 것 같은 이미지가 있다.
그런데 『황금광 시대』나 『꼿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 같은 경우 그러한 생각과 달리 그 시대 백성도 즐길 것 다 즐겼으며, 또한 마치 지금처럼 황금에 목매단 인간도 많았다는 것을 알려준다. 한마디로 ‘깨는’ 지식을 전해준 것이고 그 덕분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동시에 조선이 인기를 끌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도 했다. 이순신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의 인기비결도 그와 비슷하다. 이 작품 또한 묻혀 있는 역사를 끄집어냄으로써 기존의 이미지를 깬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무원록’이라는 수사 지침서를 갖고 과학적인 수사를 했다는 말을 생각해보자. 이게 믿기는가? CSI를 즐겨보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피식, 하고 웃을지 모르겠다. ‘조선시대의 시체’ 하면 멍석에 둘둘 말려있고, ‘수사관’ 하면 달랑 방망이 하나 떠오르는 판에 무슨 법의학이란 말인가? 소가 웃을 노릇이지만, 진실을 알면 소가 기겁을 할지 모르겠다. 진짜 그랬기 때문이다.
이 책이 추리소설만큼 재밌는 이유는 여기서 출발한다. 자살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진짜 자살했는지, 아니면 타살되고 나서 자살로 위장된 것인지를 밝히는 과정이, 당사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게 은근히 재밌다. 또한 귀엽기도 하다. 이런 표현이 실례일지 모르겠지만, 어쩌겠는가. 솔직히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을.
또한 이 책은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처리되는 과정을 통해 묻혀 있던 역사를 노골적으로 끄집어낸다. 공자 왈 맹자 왈 하던 양반이 여자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는 이야기는 사극으로는 쉽게 보기 어려운 것인 만큼 신선하게 다가온다. 시간을 오래 두고 생각해보면 ‘그럴 수떵 있겠지’ 싶지만, 만들어뒀던 이미지와 부딪칠 때는 그런 즐거움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깨는’ 지식을 통해 새로운 것을 쌓게 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예를 들면 ‘정조’의 부각이 그렇다. 소설까지 나서서 정조를 두둔하고 나서는 형세가 바로 오늘이다. 이제 ‘정조’ 하면 ‘개혁군주’가 되고 ‘정조 시대’ 하면 ‘조선의 르네상스’가 된다. 물론 뭔가를 생각하고 그리 믿고 말한다면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개인의 믿음으로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그냥 분위기가 그러니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은, 본래 의도야 그것이 아닐지라도 내용상 최근에 형성된 흐름과 부딪친다. 이 책은 역모 사건, 특히 정조 시대에 발생했던 역모 사건을 상세히 다루면서 그 시대의 모순점을 적나라하게 지적하는데 그것은 확실히 최근에 알려진 것과 흐름을 달리한다. 덕분에 최근에 형성된 이미지를 ‘다시 깨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것을 어찌 받아들여야 하는가? 바람직하다. 일단 책의 말이 옳고 그름을 떠나 최소한 깊게 생각해볼 여지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이런 책도 자주 나와 줘야 하고 두루 읽힐 필요가 있다.
아! 모르던 것을 알거나, 혹은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것을 발견한 것은 확실히 재밌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에서 끝나지 말고 조금 더 나가보자. 혹시 아는가. 한 번 깨지고 두 번 깨지고 자꾸만 깨지는 것이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 될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