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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상상력으로 그림을 재창조하다 - 문영숙의 『무덤 속의 그림』 & 이문열의 『들소』

하지만 이런 즐거움은 소설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동화도 가능하다. 제6회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수상작인 문영숙의 『무덤 속의 그림』과 이문열이 어린이들을 위해 자신의 중편소설을 개작한 『들소』에서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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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소재로 하는 소설이 있다. 파르미자니노의 <긴 목의 성모>를 소재로 삼은 송대방의 『헤르메스의 기둥』이나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이용한 라헐 판 코에이의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 소녀>를 이용한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진주 귀고리 소녀』 등이 대표적인데, 이들 작품은 소설의 허구성을 최대한 이용해 기존에 익숙했던 그림의 의미를 ‘재해석’하거나 ‘재창조’해 소설다운 맛을 만끽하게 해줬다.

하지만 이런 즐거움은 소설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동화도 가능하다. 제6회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수상작인 문영숙의 『무덤 속의 그림』과 이문열이 어린이들을 위해 자신의 중편소설을 개작한 『들소』에서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작품은 동화로서 상상력을 발휘해 각각 고구려 시대의 유물 ‘사신도’와 오래된 그림으로 유명한 ‘알타미라 벽화’에 독자적인 해석을 투영해 그림을 특별하게, 동화를 즐겁게 바라보게 해준다.

그렇다면 그 해석이란 무엇인가? 먼저 고구려를 배경으로 하는 역사동화 『무덤 속의 그림』부터 보자. 스승인 망혜와 장백산에서 살고 있는 어린 소년 무연은 자신의 출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스승이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알려주는 것이라고는 우주의 질서와 순리,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무연은 세상이 궁금하다. 어떻게 망혜와 살게 됐는지도 궁금하고 부모도 알고 싶다. 또한 세상이라는 곳이 어떤지도 직접 느껴보고 싶은데 망혜는 절대 그것들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게 무연이 어엿한 소년이 되어가던 어느 날, 장백산에 일련의 무사들이 온다. 그들은 고구려의 정예 무사로 무예를 닦기 위해 산에 찾아온 것이다. 무연은 그들을 보고 한눈에 반해 혼자 무예를 닦는다. 그러다가 결국엔 스승 몰래 장백산에서 내려오게 된다. 무사들을 따라서 고구려 최대의 축제라는 동맹제가 열리는 수도로 향한 것이다.

무연은 동맹제에서 무사가 되기 위한 시험을 보려 하지만 스승의 추천장이 없다는 이유로 시합에 참가하지 못한다. 대신 그림을 그리는 화랑을 뽑는 시합에 참가하게 되는데 이 자리에서 무연은 빛나는 실력을 뽐내 보인다. 그리하여 왕실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때부터 이상한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난다.

무연이 겪는 기이한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버지 대에 발생한 권력싸움과 질투, 그리고 음모 등에 관한 것이다. 무연은 죽을 위기를 겪은 뒤에야 자신에게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지를 알게 된다. 그 중에는 고구려의 순장 풍습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연도 있는데 이로 인해 무연은 복수심에 불타게 되고 원수의 아들에게 칼을 겨눈다.

하지만 복수는 복수를 낳을 뿐이라는 스승의 말과 스승이 알려준 그림들 덕분에 무연은 아버지 대에서 벌어진 원한에 영원한 종지부를 찍는다. 대신에 스승의 뜻을 따라 그림을 그린다. 그것이 바로 ‘사신도’다. 인간 사이의 미움을 씻고 물처럼 공기처럼 평화롭게 살아가자는 사상이 담긴 신선사상과 맥이 닿는 사신도로서 현실의 한을 예술로서 승화시킨 것이다. 그리하여 사신도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미운 감정들을 지워주는 ‘마음의 빨간약’으로 새로이 태어나게 된다.

『들소』는 어떨까? 문영숙이 ‘사신도’에 신선사상을 담았다면 이문열은 ‘알타미라 벽화’에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혹은 권력을 넘어설 수 있는 예술의 혼을 집어넣었다. 『들소』는 신석기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이때는 아직 ‘권력’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을 때다. 그러나 시대가 점점 오늘을 닮아오면서 주인공 소년이 살고 있는 부족도 변하게 된다.

특히 ‘뱀눈’이라는 교활한 녀석이 부족의 지도자가 되면서 부족은 욕심을 내게 된다. 전쟁을 해서라도 남들의 재산을 빼앗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소년만큼은 예외다. 어렸을 때부터 남들과 달리 사냥이나 싸움 같은 것에 관심이 없던 소년은 종교의식을 담당하며 그림을 그린다. 소년은 그것이 만족스럽다. 사람들처럼 소를 잡거나 남들과 싸우는 것은 체질적으로 맞지 않으니 평생 그림만 그려도 만족하며 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간은 오래가지 못한다. 뱀눈이 소년을 자신의 부하로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다. 소년은 고민한다. 따르자니 자신의 신념을 배반하는 것이었고 반항하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힘’이 약한 소년은 뱀눈의 뜻을 따른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다가 우연히 깨닫는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은 그리다 만 역동적인 소의 모습을 완성하는 것이라는 것을. 뱀눈이 위협하고 협박해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은 그것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소년은 그림이 있던 동굴 속으로 들어가고 그림을 완성한다. 그것이 바로 ‘알타미라 벽화’다.

『들소』는 예술과 권력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을 알려주고 있다. 권력가는 군대와 무기처럼 ‘눈에 보이는 것’을 동원해 예술가를 억압한다. 하지만 예술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즉 신념으로 그것을 이겨낸다. 정신적인 자유로움을 지닌 것인데 예술가는 그것으로써 권력가를 뛰어넘는다. ‘예술혼’으로써 영원히 기억되는 승자가 되는 것이다.

현실 속에서 ‘알타미라 벽화’는 오래된 그림 중 하나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문열은 그 벽화를 권력과 예술의 관계에서 탄생한 그림으로 재해석한 뒤에 그것에서 예술혼의 위대함을 창조해냈다. 문영숙은 어떤가. 아버지 대부터 이어진 원한의 관계, 그리고 그것을 용서하는 아들들의 모습을 통해 신선사상이 깃든 ‘사신도’를 보여줬다. 고구려의 유물이라는 인식을 뛰어넘는 해석으로 사신도를 특별한 것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것이다.

두 작품은 그림을 새로이 해석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준다. 또한 풍부한 상상력으로 신선함을 맛보게 해준다. 더욱이 대상 독자층이 어렵지 않게 예술과 권력, 원한과 용서 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시선을 대폭 낮춘 것이 ‘어린이책’답다. 문영숙의 『무덤 속의 그림』과 이문열의 『들소』, 각각 독자적인 의식으로 역사의 유명한 그림만큼이나 제 몫을 단단히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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