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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자만의 것이 아니다

아름다운 패배자와 조롱받는 패배자의 차이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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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이라는 말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의 삶 속에 깊숙하게 침투한 지 오래입니다. ‘xx하는 사람이 성공한다’류의 책이 끝없이 쏟아져 나오고, 성공을 위한 지름길, 성공의 기본, 성공의 노하우가 신문과 방송, 강연과 인터넷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몇 가지 부정과 비리에 연루된 어느 굴지의 전자회사는 과거에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는 광고문구를 사용한 적이 있었습니다. 과거의 멘트와 오늘날의 부정이 엮여서 ‘1등을 위해선 부정부패도 불사한다’까지의 연상작용이 이루어지는건 저만의 발칙한 상상일까요? 어쨌든 성공을 위해 세상이 뛰고, 세상이 뛰니 너도 뛰고 나도 뛰고, 뛰기 싫어도 다 뛰는 세상에 발이라도 맞춰보려고 아둥바둥 뛰는 사람까지도 생겨납니다.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오늘 살펴볼 책 “위대한 패배자”는 바로 그 멘트에 멋진 반전 한 방을 먹이며 시작합니다.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우리는 모두 패배자다, 대신 작가들이 그런 우리를 사랑한다.” 2등을 기억하는 이가 아무도 없다 해도 작가들은 기억하고 보존합니다. 그들은 패배자가 가진 인간적 고뇌와 아픔, 소외 속에서 비극 본연의 감동과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글로 다듬어 새롭게 창조해 냅니다. 승리자의 화려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패자가 보여준 최선을 다했던 모습과 어리석었던 순간의 판단, 좌절과 고뇌 또한 인간 드라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신을 공격한 고래에게 복수하기 위해 끝내 자신마저 포기한 모비딕의 에이허브 선장, 외딴 섬 세인트헬레나에 유배되어 홀로 고독히 석양을 바라보아야만 했던 말년의 나폴레옹… 패배자의 삶은 잊혀질 수 있는 것이지만, 잊어버리기엔 너무도 아쉬운 점들이 많은 삶입니다. “위대한 패배자들”은 그런 패배자들 20여 명의 인생을 다룬 책입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 많은 패배자들의 잔상은 다양하게 남아 있습니다. 다윗의 돌팔매에 패한 골리앗은 지금도 허장성세를 비꼬기 위한 대표적 비유로 사용되고 있지만, 일생의 대부분을 패배와 후퇴로 보낸 체 게바라는 숭배의 대상이 되어 있습니다. 저자 볼프 슈나이더는 이런 차이에 대해 패배자가 아름답고 영광스런 기억으로 남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이야기합니다. 영광스런 패배자는 대개 정치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술수를 가지고 있고, 대중을 현혹할 수 있는 무언가(수려한 외모, 화려한 언변, 재빠른 판단력 등의)를 갖추고 있으며 자신의 인생을 거리낌없이 불태울 줄 아는 정열이 동반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책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이 저자의 이야기를 뒷받침합니다. 소련의 마지막 서기장으로 탈냉전 시대의 주역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그 후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이후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 나와 5%도 안되는 지지율을 확인받고, 러시아의 빈부격차 확대와 혼란가중을 이끌었다는 대중의 지탄을 받으며 조용한 곳에서 은거하는 그를 저자는 단호히 그를 부끄러워 해야할 패배자의 대열에 넣습니다. 한때 그를 냉전 종식자로 찬양하며 노벨평화상까지 수여했던 서구는 이제 그를 잊었고 그는 어디 공식 행사에 그저 얼굴마담으로나 왔다갔다 하는 정도로 살아갑니다. 저자는 그가 자신의 행적에 대해 변명하는 투의 책이나 쓰고 여기저기 화려한 곳에 계속 기웃거리며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달갑지 않게 서술하며 그를 실패한 패배자로 설명합니다. 패배자의 영광 여부를 떠나 연민이 어리는 이들의 삶도 소개합니다. 프랑스 혁명의 공적이었던 루이 16세를 평가하는 저자의 눈은 애처롭습니다. 후덕한 인상과 편안한 인품으로 주변 모두를 감화시키고 심지어는 감금 기간 중에도 인간적 면모로 경비병들마저 감화시키던 루이 16세가 끝내 왕권을 놓치고 목이 잘려야 했던 상황을 설명하면서 그는 루이 16세의 패배가 결코 스스로의 잘못에만 기인한 것은 아님을 변론합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알고 있는 골리앗, 체 게바라, 트로츠키, 고흐 등 뿐만 아니라 우리에겐 조금 낯설지만 흥미있는 많은 패배자들의 이야기는 주목할 만한 책의 요소들입니다. 타이타닉 호의 침몰을 야기했던 선장 스미스의 실패담은 ‘비참한 패배자들’ 편에 골리앗과 함께 호언장담형 패배자의 전형으로 실려 있고, 북아프리카 사막의 여우로 불리며 놀라운 전격전을 자랑했지만 히틀러의 미움을 사 독살을 강요당한 롬멜은 ‘영광스러운 패배자’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동생 토마스 만의 그늘에 짓눌려 기를 펴지 못한 하인리히 만, 괴테의 질투 속에 끝내 러시아 빈민굴에서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던 천재시인 렌츠의 이야기는 슬프면서도 그 1인자들에 대한 묘한 반감도 자아냅니다. 가장 흥미롭고 놀라운 케이스는 유럽의 노동운동가 라살의 케이스인데, 그는 뛰어난 웅변가로 제 1인터내셔널 이전의 유럽 노동당을 건설할 정도였지만 이론에서만 뛰어났던 마르크스가 그의 성공을 질투하였고, 끝내 그 사후에 마르크스 등에게 사회주의의 주도권을 빼앗기게 됩니다. 위에서 소개한 이들 말고도 스무 명이 넘는 역사 속의 다양한 패배자들을 400여 페이지에 다루다 보니 각 인물들의 세세한 이야기까지 파고들기에는 조금 무리가 없지 않습니다. 각 인물들 전반에 대한 소개는 짧고 간결하며, 주로 패배자의 명찰을 달게 된 이유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서술하는 통에 인물과 역사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는 경우라면 인물에 대해 잘못된 편견을 가질 여지도 없지 않습니다. 트로츠키를 다루면서 소개한 레닌의 전위당 이론의 경우에는 일반적인 해석과 달리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부분만 강조되어 있고, 조지 부시에게 애매한 선거 속에 패배한 앨 고어에 대한 평의 경우에는(물론 조지 부시가 멍청하다는 것이 세상의 중론일지라 해도) 부시에 대한 묘한 감정 표출이 역사서로서의 입장에 조금 누를 끼치는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장일단이라, 패배자 20여 명을 한 권에 모아 놓고 저자가 펼치는 특유의 냉소적인 문체를 따라가며 스르륵 훑어보는 재미는 쏠쏠합니다. 마치 술자리 한켠에서 인물평을 하며 ‘그사람은 이래서 안된거야~’ 하는 느낌이랄까요. 번역가의 탁월한 선택인지, 원작자의 문체가 그러했는지는 모르지만 패배자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서 책의 무심하고 냉소적인 말투는 읽는 재미를 돋구는 면이 있습니다. 책 말미를 안티 히어로Anti Hero 예찬으로 끝내면서 저자는 말합니다. 세상에 승리자만 가득하면 참 좋지 않을거라고. 그나마 패배자가 있어서 사람사는 세상 같다고. 스무 명이 넘는 패배자들을 저자와 함께 책 끝까지 읽어온 독자라면 공감할 것입니다. 승리를 위해 세상과 사람, 감정을 다 집어던지고 달렸던 이들의 신화스런 이야기와 달리 패배자들에게서는 우리 자신이 살면서 느끼는 크고 작은 패배에 대한 진한 페이소스가 묻어나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승리자의 것이라지만 이렇게 우리는 또 역사의 한 구석에서 패배자를 기록하고, 숭배하고, 조롱합니다. 승리와 패배 모두 우리의 삶에서 배제할 수 없는 것, 아니 어쩌면 그 자체가 우리의 삶이기도 하니까요. --------------------------------------------- 『위대한 패배자』는 어떤 책? 10가지로 패배의 유형을 나누어 과거에서 현대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25명이 넘는 위대한 패배자를 소개한다. “우리 시대의 가장 완벽한 인간”이라고 불린 체 게바라, 괴테에게 악의적인 비방을 받아야 했던 렌츠, 살아서는 인정받지 못했던 고흐와 같은 인물에 주목하면서 그들의 참모습과 살아온 배경을 소개한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실패는 성공으로 가기 위한 과정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준다. --------------------------------------------- 저자 볼프 슈나이더는 누구? 1955년부터 40년간 ‘함부르크 언론인학교’를 운영하였고, 『쥐트도이치 차이퉁』지 워싱턴 특파원, 『슈테른』지 주필, 『벨트』지 편집국장, NDR 방송의 토크쇼 진행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1994년에는 ‘독일 언어학회’가 수여하는 ‘언어문화 미디어상’을 수상했다. 지금까지 20권 이상의 책을 집필했으며, 저서로는 『바빌론에 대해서: 주변 도시들의 역사』, 『네안데르탈인: 인류 역사상의 가장 중요한 진화』, 『저널리즘 교본』, 『승리자: 천재들과 공상가와 범죄자들은 무엇으로 유명해졌을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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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패배자

<볼프 슈나이더> 저/<박종대> 역13,500원(10% + 5%)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지만 역사는 일등과 승자만을 기억해 왔다. 실패 중에서도 성공한 사람만의 실패만을 교훈으로 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패배자는 영원히 잊혀져야만 하는 것일까? 『승리자』라는 책에서 백과사전에 이름이 실린 승자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거칠고 비정하고 역겨운 사람일 가능성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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