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음악은 삶의 속도를 늦추기 위한 선언문(메니페스토, manifesto)”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로제의 ‘아파트’가 빌보드 ‘핫 100’에 17주 연속으로 차트인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발매 후 3개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고. 문득 클래식 음악 차트 현황이 궁금해졌다. 사실 클래식 음악 차트는 대중음악처럼 중요하게 다루어지지는 않았다. 클래식 음악은 대중음악처럼 신곡의 싱글이나 음반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베토벤, 모차르트 같은 고전 작곡가의 연주가 주를 이룬다. 이 때문에 클래식 음반 시장은 차트보다는 레이블, 그리고 리뷰나 음반 상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는 한다.
또한 기존의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들은 클래식 음악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 음반에 한정되어 있거나 없는 음반도 부지기수고 연주자 정보조차 모호한 'various artists'로 분류되어 정체불명의 음원들이 상위에 랭크되는 일이 잦았다. 크로스오버 음악과 함께 취급되어 인기있는 클래식 음악가들의 음반이나 음원을 파악하기도 어려웠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고자 2023년에는 클래식 음악 전용 음원 서비스인 ‘애플뮤직 클래식’이 출시되었는데 현재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에게 좋은 선택지가 되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클래식 음악 카탈로그를 자랑하며, 작곡가, 작품, 지휘자, 아티스트, 악기 등 다양한 카테고리로 검색할 수 있는 기능과 우수한 오디오 품질로 음악을 즐길 수 있다. 전세계 클래식 음반 발매 소식이나 흐름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자주 애용하고 있는데, 이전에 알지 못했던 멋진 음악가들을 알게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최근 애플뮤직 클래식 차트 상위권에는 어떤 연주자의 음반들이 상위에 랭크되고 있을까? 그 중 추천하고 싶은 연주자와 음반들을 소개한다.
알리스 사라 오트 <Field: Complete Nocturnes>
국내에서도 많은 인기를 보유하고 있는 피아니스트이자 독일의 스타 음악가, 알리스 사라 오트의 새 앨범이 지난 2월 7일 발매되었다. 아일랜드 작곡가 존 필드의 녹턴 전곡을 녹음했다. 존 필드는 우리에게 익숙한 작곡가는 아니지만, 쇼팽을 좋아한다면 존 필드 또한 좋아하게 될 것이다. 존 필드는 녹턴, 즉 ‘야상곡’이라고 불리는 피아노 소품양식을 처음 고안한 음악가로 쇼팽에게 많은 영향을 준 음악가다. 알리스 사라 오트는 녹턴 10번, 16번을 추천했다. 사라 오트의 섬세한 연주가 돋보인다. 7월에 한국 무대에도 설 예정이다.
네버마인드(Nevermind)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앨범커버를 언뜻 본다면, 락 밴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들은 바로크 앙상블이다. 네버마인드는앙상블 10주년을 기념하는 앨범으로 바흐의 건반 악기를 위한 작품인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실내악 버전으로 편곡하여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바로크 앙상블 네버마인드는 이전에도 바흐 편곡 작품집으로 에코상, 올해의 연주가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한 바 있다. 네버마인드의 하프시코드 연주자 장 롱도는 국내에도 여러 번 소개되었는데, 그의 개성 있는 하프시코드 연주가 현대적으로 다가와 흥미롭다. 참고로, 그는 클래식 음악뿐 아니라 재즈 음악가로도 활동 중이다.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The Summer Portrait>
네오클래식 거장,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의 17번째 앨범이 발매하자마자 차트 1위에 올라섰다. 연간 90억 이상 스트리밍된다는 루도비코 에이나우디는 아마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의 최강자일 것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스트리밍되는 클래식 아티스트로 불리는 에이나우디의 이번 새 앨범은 어릴 때 지중해에서 보낸 여름의 기억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삶의 순간마다 찾아온 아이디어들로부터 영감을 얻는다고 말하며, 많은 사람들이 이유 없이 바쁘게 살아간다며 자신의 음악이 ‘인생이 여전히 숨 쉴 공간이 있는 삶이라는 걸 느끼고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에이나우디는 4월 2일 세종문화회관에서 8년 만의 내한 공연을 앞두고 있다.
조성진 <라벨 피아노 독주 전곡집>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피아니스트 중 한명인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라벨 탄생 150주년을 맞아 발매한 라벨 피아노 독주 전곡 앨범이다. 1월 말 발매되어 줄곧 상위권에 랭크되고 있다. 조성진은 라벨의 모든 피아노 독주곡을 연대기 순으로 수록했다.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안드리스 넬손스 지휘)와 협연한 라벨 피아노 협주곡도 2월 21일 발매되었다. 라벨의 음악 세계를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쇼팽: 녹턴>
마지막으로 소개할 앨범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 중 한명으로 불리는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의 쇼팽 녹턴 레코딩이다. 쇼팽의 녹턴 연주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피아니스트로, 이 마지막 레코딩을 그 중 명연으로 꼽고는 한다.
클래식 음악 차트의 독특한 매력은 동시대의 음악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고인이 된 거장들의 이런 음반들 역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비록 실물 음반이 사랑받는 시대는 지났을지 몰라도,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과거의 레코딩을 손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은 분명 감사한 일이다.
오늘도 클래식 음악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감을 주고 있으며, 음악의 힘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라는 것을 ‘클래식 음악 차트’가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Alice Sara Ott 존 필드: 녹턴 전곡집 (John Field: Complete Nocturnes)
출판사 | Universal
Ludovico Einaudi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 The Summer Portraits
출판사 | Universal
조성진 - 라벨: 피아노 독주 전곡집 (Ravel: The Complete Solo Piano Works)
출판사 | Universal
조성진 - 라벨: 피아노 협주곡 (Ravel: The Piano Concertos)
출판사 | Universal
Arthur Rubinstein 쇼팽: 녹턴 전곡 - 루빈스타인 (Chopin: Nocturnes)
출판사 | Sony Class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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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공연 기획사 '크레디아'에서 발행하는 뉴스레터. 클래식 공연 기획자들이 직접 무대 비하인드 스토리와 음악, 예술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