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8일, 광화문 '컨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 한국어판 출간 30주년을 기념해 기자 간담회가 열렸다. 베르베르의 데뷔작인 이 책은 1993년 한국에서 출간된 이래, 지금까지 130만부가 판매됐다. 9번째로 한국을 찾은 그는 새 책 『꿀벌의 예언』으로 또 한 번 한국 독자들을 흥미로운 소설의 세계로 안내할 예정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한국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해외 작가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첫 작품을 출간한 이래, 매일 5시간 30분씩 글을 쓰는 성실한 작가로도 정평이 나 있다. 4년 만에 새 작품으로 한국 독자를 찾은 그는 오늘의 자리가 "30이라는 숫자를 주제로 한 만남과 같다"고 말했다.
"저는 30년간 30권의 소설을 썼습니다. 제 소설은 30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3500만 명의 독자를 만났죠. 30년간 이렇게 많은 업적을 이루었기 때문에, 저의 작가 생활 30주년을 한국에서 맞이하게 된 것이 특히 더 기쁩니다. 제가 한국에서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미래에 관심이 많은 한국 독자 여러분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와의 일문일답
새 책의 주제로 '꿀벌'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저는 사회성을 가진 생물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사회 조직을 구성해서 도시를 건립해 살아가는 존재들에게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가져왔죠. 그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이 '개미'였고, 이번에는 '꿀벌'입니다. 그런데 개미보다 꿀벌이 좀 더 흥미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가 꿀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꿀을 먹는 것은 벌이 세운 문명을 미각으로 탐험하는 작업입니다. 인간이 달콤함을 발견하게 된 것은 꿀벌이 꿀을 만든 덕분이죠. 결국 '디저트'라는 개념은 꿀에서부터 시작된 셈입니다.
그런데 살충제와 기후위기로 인해 벌들이 멸종위기에 처했습니다. 저는 꿀벌을 보면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죠. 우리가 섭취하는 채소와 과일의 70%는 꿀벌의 수고로 열매를 맺습니다. 아인슈타인의 말에 따르면 지구에서 꿀벌이 사라지면 인간이 살 수 있는 시간은 4년밖에 남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꿀벌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해도 모자랄 판에 꿀벌을 사라지게 하고 있습니다. 또, 성경에서는 '약속의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약속의 땅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은 꿀인 것이죠. 저는 이러한 방향성을 쫓아서 이번 소설을 집필했습니다.
팬데믹으로 인해 전 세계가 기후위기, 전염병 등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요. 작가님께서 『꿀벌의 예언』을 쓰는 데도 팬데믹이 영향을 미쳤나요?
저는 미래의 일을 쓰는 작가이기 때문에 현실의 뉴스가 글쓰기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8년 전, 저는 소설 『제3인류』를 통해 조류 독감이 인간을 어떻게 파괴할지에 대해 서술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당시의 예측이 정확히 맞아 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죠. 소설 『천사들의 제국』에서는 항공기가 도시를 공격하는 장면을 썼는데, 2001년 발생한 9·11테러가 실제로 벌어졌죠. 이렇듯 저의 직업은 미래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예측하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현재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난 코로나19를 겪으며 전 세계가 혹독한 겨울을 보냈다면, 이제 드디어 봄이 온 것 같습니다. 팬데믹으로 국가 간의 이동이 멈춘 순간에도 저는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한국 뉴스를 계속 팔로우업하며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는데 이렇게 다시 찾을 수 있게 되어 큰 기쁨입니다.
작가로서 얼마나 이루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작가에게 최악의 상황은 책을 썼는데,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첫 책을 내고 사인회를 열었을 때, 아무도 오지 않아서 혼자 독자를 기다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독자를 만나고 싶지만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것처럼 큰 외로움은 없죠. 마치 잡히지 않는 물고기를 기다리는 낚시꾼의 심정과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인회를 하면 수많은 독자가 저를 보러 와주십니다. 오늘도 이렇게 많은 기자님들께서 저를 찾아와주셨다는 사실이 정말 멋지게 느껴집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작가로서 굉장히 행복하고, 작가로서 꿀 수 있는 꿈을 다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한국과 얽힌 한가지 재미있는 스토리가 있습니다. 맨 처음 저의 책을 편집해 준 편집자께서 당시 자신의 어린 딸을 소개해주신 적이 있는데요. 30년이 흐른 지금, 그때 만났던 어린이가 저의 편집인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한국과의 인연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합니다. 제가 한국에서 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열린 시야를 가진 출판사와 미래에 관심이 많은 한국 독자 여러분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AI 챗봇 서비스 '챗GPT'가 출판계의 큰 화두입니다. 창작자의 입장에서 AI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신기술이 나오면 두려워하지 말고, 관점을 바꿔서 그 기술에 적응하면 됩니다. 특히, 현재 AI 기술의 수준은 '이미 쓰여진 것'에 한해서만 생각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결코 작가를 능가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챗GPT에게는 이미 존재하는 작품의 후속편을 써달라거나, 특정한 작가처럼 글을 써달라고 명령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소설가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미래의 일을 상상하는 직업입니다. 제 일은 현존하지 않는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것이죠.
AI가 『개미』의 후속편을 지어낼 수는 있겠지만, 저의 새로운 작품을 써내지는 못합니다. 저는 작품을 쓸 때마다 주제, 문체, 구성을 완전히 바꾸기 때문에 그 어떤 AI도 제가 무엇을 쓸 지 알아낼 수 없죠. 아마 AI는 인간이 훨씬 더 창의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도움을 줄 겁니다. 기존의 것을 모방하는 작가는 설 자리를 잃게 될 테니까요. 전체적으로는 AI의 등장이 문학의 질을 높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즉, AI도 도구일 뿐입니다. 모든 도구는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도움이 될 수도, 위험이 될 수도 있죠. 따라서 이 도구로부터 인간을 보호할 수 있도록 긍정적인 AI를 만드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독자에게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하나의 장르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작가님의 작품은 문학상과 큰 인연이 없었죠. 언젠가는 문단에서 인정하는 작품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있으신가요?
문학상에는 모순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작품이 큰 상을 받았다고 하면, 독자들은 그 책을 구입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읽지 않죠. 또, 프랑스에서는 영향력 있는 문학상을 받은 이후, 집필을 중단하는 작가들이 많습니다. 큰 상을 받았으니 더 이상의 작품을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명예에 관심이 없습니다. 저의 유일한 관심사는 '대중에게 다가서기'입니다. 특히, 젊은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습니다. 저는 '쥘 베른'과 '필립 K'를 글쓰기의 스승으로 여기는데요. 두 작가 모두 문학계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해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쥘 베른은 SF 장르를 쓰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기도 했다고 전해지죠.
저는 다릅니다. 본인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죠. 인간은 '내 자리를 찾지 못했다'고 느낄 때 불행합니다. 저는 저의 자리가 독자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억력과 창의력을 유지하기 위한 습관이 있으신가요?
저는 기억력이 좋지 못해서 모든 것을 메모합니다. 책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도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집필했죠. 창의력에 관한 습관이라면 잠에서 깨자마자 자면서 꾼 꿈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습관을 모든 사람에게 권장합니다. 머리맡에 스마트폰이나 수첩을 두고 잔 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꿈을 적어 두는 겁니다. 꿈이라는 것은 우리의 무의식이 보내는 메시지이기 때문에 해독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창의력을 유지하기 위한 또 하나의 습관은 규칙적으로 글을 쓰는 것입니다. 아무리 글을 못 쓰는 사람이라도 매일 글을 쓰면 결국에는 잘 쓰게 됩니다. 저의 창의성은 매일 글쓰기를 연습하고 수행하는 데서 나옵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 1979년 툴루주 제1대학에 입학하여 법학을 전공하고 국립 언론 학교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과학 잡지에 개미에 관한 평론을 발표해 오다 드디어 1991년 1백 20번에 가까운 개작을 거친 『개미(Les Fourmis)』를 발표, 전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으며 단숨에 주목받는 프랑스의 천재 작가로 떠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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