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음악 선생, 송은혜입니다."
자신을 소개해달라는 질문에 대한 작가의 대답이다. 동네 음악 선생. 마치 동네마다 하나씩 있는 피아노 학원의 선생님처럼 한없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가까워지고 싶고 더 알고 싶긴 싶지만 한발짝 더 다가가기엔 왠지 낯선 제목과 발음 하기에 어려운 작곡가 이름부터 진입 장벽이 있는 클래식 음악. 동네 음악 선생을 자처하며 송은혜 작가는 사랑하는 사람이 음악을 꼭 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유혹한다.
음악을 마음으로 느끼고, 음악을 설명하는 딱 맞는 것들을 찾기 위해 분주한 시간을 보내며 송은혜 작가는 자기 자신이 가진 것 중 제일 좋은 것들을 음악과 친해지고 싶은 이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의 음악을 나의 음악으로, 또 우리의 음악으로까지 나아가게 하는 『일요일의 음악실』 송은혜 작가와 만났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습니다.
최선을 다해 유혹하는 글
『일요일의 음악실』이라는 책을 쓰셨습니다. 어떤 이야기인가요?
음악을 소개하는 글입니다. 2021년 말부터 2022년 말까지 일 년 동안 <채널예스>에 격주로 연재했던 코너 '일요일의 음악실' 글을 모으고, 나머지 반을 채워서 1년간 한 주에 한 작품씩 감상하는 방법으로 썼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음악을 꼭 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유혹하는 글이죠. 어떻게 하면 음악을 모르는 사람도 음악을 듣고 싶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해 봤습니다. 저는 야구를 모릅니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야구를 다루면 야구가 재밌게 보이더라고요. 음악이 누군가의 마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나의 드라마가 쓰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어떻게 특정 작품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 그 이야기를 들려 드리는 책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번이 두 번째 책이죠. 첫 책을 내셨을 때와 마음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합니다.
첫 책 『음악의 언어』는 저를 드러내는 글이었어요. 음악을 통해 살아가는 저의 모습을 주로 풀었죠. 『일요일의 음악실』은 저보다는 음악을 드러냈습니다. 그래도 '송은혜'라는 렌즈를 통해 음악을 읽으시니 이것도 결국은 저의 이야기이지만요. 음악 작품을 주제로 가능한 이야기를 모아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52꼭지지만 그 안에 실린 작품은 더 많아요. 이 많은 곡을 그냥 들으라 제목만 던진다면 저도 다 듣지 못할 거예요. 하지만, 이야기를 더해 의미를 만들어 준다면 충분히 기억에 남는 청취 경험이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다양한 음악을 통해 삶을 버텨낼 힘을 얻기를 바라는 동네 음악 선생의 선물로 받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현재 프랑스 렌느음악대학과 렌느시립음악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세요. 렌느음악대학과 렌느시립음악원은 어떻게 다른가요?
프랑스의 음악대학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음악학을 공부하는 대학이고, 시립 음악원에서는 초등학생부터 20대 후반까지 학생들이 음악 실기를 공부합니다. 음악학을 공부하는 대학생은 졸업 후, 학교 선생님이나 음악학자, 혹은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시립 음악원에는 취미로 음악을 배우는 경우부터 연주자나 음악 교육자 등 전문 음악가의 길을 준비하는 학생들까지 다양한 학생이 섞여 있습니다. 여러 음악 기관에서 일하는 덕에, 음악을 시작하는 어린이부터, 아마추어, 전문 음악가와 음악학을 공부하는 학생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학생과 부모님을 만나는 중입니다.
『일요일의 음악실』은 52개의 꼭지로 구성되어 있어요. 소개하는 음악과 작곡가들을 보면 다른 클래식 교양서에서 자주 다루지 않는 곡들이 꽤 있습니다. 진은숙과 윤이상을 소개하는 것이 색달랐고, 그레고리안 성가, 릴리 불랑제, 세이클로스의 노래 등도 그랬습니다. 작곡가와 곡 선정에 있어서 어떤 점들을 고려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알려진 음악을 색다른 관점에서 소개하거나, 잘 모르는 음악을 익숙하게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음악을 새로운 관점에서 들을 수 있을 때, 듣는 이에게 의미가 생길 거라 믿었거든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많이 듣는 음악을 넘어설 필요가 있었습니다. 음악의 기원이 무엇이었는지 살피고 싶어서 그레고리안 성가나 세이클로스의 노래를 듣지만, 음악사책의 예시 음악이 아닌 세기를 넘어서도 여전히 우리를 매혹하는 음악의 신비를 알려 드리고 싶었어요.
진은숙, 윤이상과 같은 대 작곡가가 전 세계를 상대로 언어를 넘어 전하는 메시지를 들려 드리고 싶었고요. 어디까지가 우리 고유의 것이고, 어디까지가 세계적인 보편성을 띠는지 섬세히 살펴보는 경험이요. 다양한 여성 작곡가의 음악도 꼭 알려 드리고 싶었습니다. 전체의 반이 여성인데, 그동안 묻혔던 여성의 예술 작품을 재조명할 수 있다면 우리 삶이 얼마나 풍성해지겠어요.
책과 연재한 칼럼(보러 가기) 모두 마랭 마레의 <인간의 목소리 Les voix humaines>가 소개하시는 첫 번째 곡입니다. 이 곡을 처음으로 삼으신 이유가 있을까요?
음악을 대하는 자세를 잡고 시작하고 싶었어요. 겉치레나 장식이 아니라 자기를 꿰뚫어 보는 도구로서의 음악을 전하기 위해 상트 콜롱브가 마랭 마레에게 요구했던 부분을 언급하고 싶었죠. 화려한 무대 위의 연주자가 아니라 내면 깊은 곳을 드러내는 음악, 악기와 인간의 소리가 겹치는, 세상에 없는 공간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무엇이 되든 이전에 없던 방향이 될 거라 믿었어요. 그리고 책의 마지막 곡인 '세이킬로스의 노래'와 짝을 이루기도 하고요. 두 작품 모두 실체가 없어요. 아무리 악기가 연주를 잘한들 인간의 노래를 부를 수 없고, 이천 년 전의 노래는 이미 사라졌으니까요. 감각할 수 없는 것에 집중하면, 그 안에서 우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음악을 통한 자기 발견,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가 되길 바랐습니다.
이 책의 큰 특징 중 하나가 현악곡, 협주곡, 건반 악기곡, 춤곡, 관현악곡, 극음악, 성악 등 장르별로 나누어 음악을 소개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바흐의 <무반조 첼로 모음곡>이 춤곡인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답니다! 이렇게 장르별로 음악을 소개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실, 저렇게 나누기는 했지만, 음악학적인 체계적 분류라기보다, 직관적으로 쉽게 구별하기 위한 것으로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소리의 재료와 형태에 따라 분류해 두면, 선호하는 것을 먼저 찾아 듣기 좋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아주 간단한 정보라도 예상하며 들을 때, 감상의 폭은 훨씬 넓어집니다. 음악을 듣기 전에 아주 간단한 지도를 머릿속에 넣고 감상을 시작하는 거죠. <첼로 모음곡>이 바로크 춤곡에 기반했다는 것을 아는 순간, 음악은 전과 다르게 들립니다. 춤곡을 생각하며 연주했을 연주자의 마음에 공감하기 때문이에요.
한 편, 한 편을 쓰실 때마다 그 곡을 설명하고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을 찾으려고 애쓰신 시간이 느껴집니다. 특히, 음악의 느낌을 소설이나 인문서 등의 구절을 인용하여 표현하신 것을 보면서, 놀랍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마음으로, 한 편 한 편을 써나가셨나요?
온라인 <채널예스>에 칼럼을 연재할 때, 2주에 한 번씩, 작품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작품을 정하고, 자료를 조사하고, 어떤 부분을 강조할지 결정하는 농도 높은 시간이었죠. 소설이나 인문서를 인용한 것은 음악이 주는 느낌을 보다 더 정제된, 보편적인 언어로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른 책을 읽으면서 제가 느낀 부분이 음악에서 발현되는 것을 확인하는 것도 가슴 뛰게 행복한 일이기도 했고요. 쉬운 언어로 음악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공감하는 내용을 글에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철학이든, 문학이든 그 생각은 항상 음악의 근원이 되죠. 작곡가가 인식하든, 못하든 상관없이요. 그런 숨겨진 고리를 드러낼 수 있다면, 음악 감상이 한층 더 깊어지고 의미 있게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빠져들지 않으면 한 줄도 쓸 수 없다
새뮤얼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는 느리고 긴 호흡으로 우리를 압도합니다.
멜로디가 사분음표로 조금씩 상승하는 동안, 선율을 받치는 화성은 귀로 듣는 것만으로는 쉽게 마디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길게 박자를 늘입니다.
하늘에 넓게 뻗은 노을처럼 시간의 경계는 지워지고, 느린 음표 사이에서 우리는 길을 잃습니다.
인간의 호흡보다 훨씬 길게 음을 유지할 수 있는 현악기의 위력이 발휘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음악을 들으며 노래와 함께 규칙적으로 숨을 쉬고 싶어 하는 우리는, 길게 늘어지는 현악기 선율에 편히 숨 쉴 곳을 찾지 못합니다.
소리가 끊어진다 해도, 불협화음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끊긴 것처럼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높은음을 향하는 끝없는 크레셴도는 단 한 번도 편안하게 해결되지 않는 불협화음과 함께 듣는 이의 심장을 서서히 조입니다.
『일요일의 음악실』 52~53쪽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 음악은 확실히 언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음악이 가지고 있는 기호로 느낌과 생각을 묘사할 수 있으니까요. 새로운 층위의 지적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이 책의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요. 이런 문장을 쓰실 때, 하나하나 조목 조목 따지는 냉철한 수학자의 마음인지, 아니면 열정적인 활동가 같은 마음인지 궁금합니다.
음악을 듣고 먼저 느낍니다. 제가 음악에 빠져들지 않으면, 그리고 어떤 느낌인지 최선을 다해 생각하지 않으면, 글은 정말 단 한 줄도 쓸 수 없더군요. 음악은 그 정도는 아니거든요. 아무래도 제가 훨씬 오랫동안 음악을 배우고, 연습했기 때문이겠죠. 음악이라는 언어로 전해진 작곡가의 생각을 제가 느끼고, 저의 느낌을 표현할 단어를 찾아 문장으로 표현하는 글쓰기는 또 다른 연주 같아요. 음악을 분석할 때는 수학자처럼 파고들지만, 그래도 결국 답은 어떻게 느끼는가로 수렴하게 돼요. 열정적인 활동가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음악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열성 팬에 더 가까운 듯싶어요.
이번 책에서 소개하시는 음악 중, 어떻게 풀어내면 좋을지 가장 고민을 많이 하신 건 무엇인가요?
잘 알려진 음악을 소개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비발디의 '사계', 헨델의 '메시아', 베토벤의 '합창'과 같은 음악이요. 너무나 잘 알려진 곡이라 굳이 저까지 글을 써야 하는지 많이 고민했어요. 하지만, 알려진 곡을 새롭게 들을 수 있도록 글을 쓴다면 음악이 미처 다 드러내지 못한 매력을 전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계'는 현대 작곡가의 음악과 비교하며 듣도록 구상했고, '메시아'는 뼛속 깊이 오페라 작곡가였던 헨델의 강점이 어떻게 종교음악으로 녹아들었는지에 주목했어요. '합창'은 베토벤이 인류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강조했죠. 글을 읽은 후 작품을 전과 다르게 들으셨다면, 제가 고생한 보람이 있을 것 같습니다.
거침없이 바로 쓰신 글도 있나요?
「힐데가르트 폰 빙엔 <오 예루살렘, 황금 도시여>」입니다. 음악이 가진 힘으로 오감이 가득한 시어를 빛내는, 신비한 매력이 강렬하게 저를 사로잡았거든요. 음악을 들을 때마다 술에 취한 듯, 온갖 색채가 저를 뒤덮는 것 같았어요. 더군다나 힐데가르트 폰 빙엔이잖아요. 지성, 예술성, 영성, 모든 면에서 뛰어났던 중세의 여성 수도자. 모든 문이 막혀 버린 듯한 중세 시대를 자신의 천재적 능력으로 가뿐하게 뛰어넘은 인물과 조우하는 느낌이었어요. 팬레터를 쓰듯, 한 번에 썼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대한 작가 님의 각별한 애정이 느껴집니다.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이 곡을 사랑하시는 이유도 궁금합니다.
책에 길게 골드베르크를 설명했지만, 아직도 골드베르크에는 숨은 보석이 많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하지만, 수많은 구조와 다양한 양식을 품은 이 변주곡은 우리 인생과 닮았습니다. 태어나 살고, 결국은 죽음으로 귀결되는 인생이 셀 수 없이 많은 사건을 겪으며 각자에게 특별한 삶이 되는 것처럼, 골드베르크의 한 곡 한 곡은 따로 떼어 놓아도 반짝이지만 함께 모아 처음부터 끝까지 놓으면, 마치 온 세상을 다 겪은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하나의 주제로 모든 사건을 통과해 나가는 끈질긴 생명력과, 다 지나고 난 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겸허함을 동시에 배우죠. 그리고, 직접 연주해 보시면 만만치 않은 작품임을 알게 돼요. 아무리 연습해도 만족할 수 없지만, 그래도 매번 사랑에 빠져 울컥하는 마술 같은 작품입니다.
무인도에 가져갈 단 하나의 곡, 골드베르크 변주곡
미국에서 공부하신 후 프랑스로 가셨습니다. 프랑스로 가시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미국에서 바로 프랑스로 간 것은 아닙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결혼했고 가정이 생겼죠. 공부를 더 하고 싶었고, 가족이 함께 공부하며 살기에 적합한 나라를 고민했습니다. 미국은 경험했으니, 유럽으로 가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했고, 남편의 전공과 저의 전공이 함께 유효할 수 있는 곳으로 프랑스를 선택했습니다. 물론, 아이를 기르기에도 적당한 곳이었고요. 프랑스에서 살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어느 순간 재외 동포가 되어 있었어요.
프랑스의 렌느라는 도시에서 거주하고 계십니다. 렌느에 대해서 소개 부탁드립니다.
프랑스에 산다고 하면 다들 제가 파리에 산다고 생각하시더라고요. 저는 파리 아니라 렌느에 삽니다. 렌느는 파리에서 고속철도로 한 시간 십오 분 정도 서쪽으로 떨어진 곳입니다. 프랑스 북서쪽, 브르타뉴라는 지방의 주도(州都)입니다. 한 시간 거리에 몽 생 미셸과 생말로가 있어요. 바다에 가깝고, 평평한 평지이죠. 그래서 하늘이 아주 넓어요. 도시에 고등 교육 기관이 많아서 젊은이의 비율이 높아 현대적이면서도 브르타뉴의 전통이 살아있는 사랑스러운 중소 도시입니다. 프랑스에서 세 번째 살게 된 도시인데, 이 정도면 평생 살아도 되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니까요. 겨울에는 영하로 내려가는 경우가 드물고, 여름에는 삼십 도 이상 올라가는 경우가 별로 없어요. 바다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어서 해물을 풍성히 먹을 수 있고, 지역 특산 음식인 갈레트(메밀 크레프)도 맛있습니다.
학생, 학교, 공연 등등 음악을 둘러싼 특수한 환경이 있을 거 같아요. 한국과 미국, 프랑스는 다른 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은 입시 경쟁과 맞물리면서 자신만의 해석을 하는 것이 장려되지 않는데, 프랑스는 오히려 그런 점이 없으면 안된다는 등과 같은 특징이 있을까요?
바로 보셨네요. 프랑스 음악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스스로 음악을 통해 자기 생각을 표현한다"입니다. 물론, 기본이 되는 기술은 누구나 갖춰야 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무엇을, 왜 표현하는지 설명할 수 없고, 충분히 자신을 음악으로 드러내지 못한다면 적절한 교육이 이루어졌다고 보지 않습니다. 한국 학생이 프랑스에 오는 경우, 뛰어난 실력에 걸맞는 해석력이 아쉬운 경우가 많습니다. 공부할 때 고생이 많죠. 저도 처음에 그랬습니다. 대체 왜 그렇게 연주했냐고 선생님이 물으시는데, 머릿속에서는 '아니 홍시에서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했을 뿐인데 왜 그러냐 물으시면 제가 어떻게 합니까...'라는 말도 안 되는 대답만 반복했죠.
개인적 경험을 되돌아보면, 한국에서 공부했을 때는 입시 준비,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음악 병기로 키워지느라 음악을 누릴 틈이 많이 없었습니다. 숨쉬는 것까지 선생님을 모방하려 노력했죠. 그래서, 미국에 도착했을 때 선생님의 손을 놓쳐버린 아이처럼 혼자 답을 찾느라 고민이 많았습니다. 미국에서 만난 담당 교수님은 어느 정도의 경계를 그어 주신 후, 제가 혼자 연구하고, 제 음악을 찾는 법을 배우도록 풀어 주셨거든요. 당시에는 악기도, 문서 자료도 풍성한 미국을 누리며, 열심히 헤맸습니다. 여유롭게 음악을 대하는 자세를 배운 것 같아요.
위 질문과 관련하여 일반인들의 음악을 대하는 태도는 각 나라에 있어서 다른 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쇼팽을 좋아한다든가 하는 그런 부분이요.
음악을 대하는 태도를 나라별로 일반화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유럽 음악이 각 나라에 들어간 역사를 본다면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죠. 예를 들어, 프랑스는 클래식 음악이 고유의 전통 음악이기 때문에 굳이 정체성을 고민하지 않아요. 오히려, 전통을 깨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고민하죠. 청자의 입장에서도 한쪽으로 치우친 유행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각자 취향대로 골라 듣죠. 미국의 경우, 작곡가들은 유럽 음악과 다른 자기만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했습니다. 물론, 20세기 자본주의의 정점에 서 있던 나라이므로 클래식 음악 산업을 크게 키우는 데 일조했죠. 수많은 유럽 음악가가 미국으로 가서 활동하기를 즐겼습니다. 자본이 있는 곳에는 예술가가 몰리게 마련이니까요. 그렇다고 한 작곡가만 유행처럼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사람이 많으니 좋아하는 작곡가도 많지 않을까요?
우리나라 청중은 쇼팽을 비롯해 베토벤, 슈베르트, 슈만, 브람스 등 알려진 작곡가의 음악을 많이 들으시죠. 서양 음악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역사가 그리 길지 않고, 다양한 작품을 접할 기회도 많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한국의 보편적인 기초 음악 교육의 수준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에요. 학교에서 누구나 악보 읽기를 배우고, 서양 고전 음악과 전통 음악에 골고루 노출되는 경험을 하잖아요. 다양한 음악을 즐길 기반은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정 연주자를 아끼고 사랑하는 문화가 한국의 독특한 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가끔 한국에서 연주회에 갔다가 마치 연주자의 팬클럽처럼 열광적으로 환호하는 청중을 보면 재밌기도 하고 독특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연주자를 보고 음악을 좋아하든, 작곡가를 보고 음악을 좋아하든 상관없어요. 어떤 계기로든 고전음악을 들을 기회가 많이 생긴다면 좋은 일이니까요. 하지만, 외국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원하는 바가 있다면, 세계적으로 알려진 젊은 연주자가 한국에서 많이 나오는 만큼, 음악을 생산하는 유명한 작곡가도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항상 바랍니다. 그를 위해 저도 힘이 닿는 대로 한국 현대 음악을 주변에 많이 소개합니다.
음악을 공부해오시고, 또 연주자로 살아오시면서 음악이 싫어졌던 적이 있나요? 있었다면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음악이 싫어졌다기보다, 음악조차도 듣기 힘들 때가 가끔 있습니다. 음악이 마음을 위로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호화롭게 느껴지고 버거울 때는 시를 읽습니다. 그 어떤 소리도 듣고 싶지 않을 정도로 힘들 때 시에서는 무형의 음악이 들리거든요. 그때 읽는 시어만큼, 진솔하고 투명한 음악은 없어요. 바람 소리, 파도 소리,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만 들을 때도 있습니다. 그것도 음악이거든요. 가식 없는, 그저 삶이 돌아가는 소리요. 그러다가 에너지가 차오르면 다시 악보를 펴고, 음반을 듣죠.
연주자로서 가장 좋아하는 곡, 음악 리스너로서 가장 좋아하는 곡은 무엇인가요?
예상하셨겠지만,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입니다. 무인도에 단 한 작품만 들고 갈 수 있다면, 저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고 가고 싶어요. 찾아야 할 바흐의 수수께끼가 여전히 남아있고, 그 수수께끼는 철학적, 미학적, 음악적 질문과 모두 연결되어 있거든요. 연주자마다 다른 해석을 듣는 것도 즐겁고, 나만의 해석을 찾는 것도 좋고요. 쉬운 작품이 아니어서 아직도 연습해야 할 것도 많고요. 단순하면서도 복잡하고, 복잡하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미묘하고 탁월한 균형감을 삶의 원리로 체득하고 싶어요.
작년에 어머님이 돌아가셨다고 들었습니다. 이후 작가님께 큰 변화가 오지 않았나 조심스레 추측을 해봅니다. 작년 여름부터 올해, 어떻게 달라지셨나요?
엄마가 돌아가시면서 제 안의 슬픔에 집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전의 저는 주변을 신경 쓰느라 제 감정에 소홀한 편이었거든요. 그런데, 엄마를 잃고 나니 다른 누구의 말도 들리지 않더라고요. 한동안 그 누구도 배려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제 마음만 들여다봤어요. 그랬더니, 새로운 내 모습이 보이더군요. 편해지더라고요. 제가 편하니 주변도 편하고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먼저 생각하고, 그다음에 타인과 소통할 때 세상에 제 자리가 반듯하게 놓이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사실, 음악은 비어 있는 시간을 나의 존재로 채우는 작업입니다. 존재감이 없다면 아무리 연습해도 음악은 불안하게 들리고, 시간은 충분히 채워지지 않아요. 박에 끌려가지 않고, 박을 타고 넘어야 음악에 생명력이 생깁니다. 타고 넘을 에너지는 존재감에서 나오죠. 자기를 지우면, 그 누구와도 함께 행복할 수 없어요. 엄마가 저에게 주신 마지막 가르침인 것 같습니다.
"너를 사랑하고, 당당히 서거라"
『일요일의 음악실』을 쓰시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있을까요?
'격주 마감은 힘들구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글쓰기가 본업이 아닌 제가 글을 이렇게 끈질기게 쓰게 하여 준 일등 공신이 <채널예스>입니다. 첫 책은 어쩌다 낼 수도 있었지만,(특히, 그때 프랑스는 코로나로 삼 개월간 출입이 통제된 시간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 집안에서 글만 썼습니다) 저의 일반 활동을 지속하면서 글쓰기를 계속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채널예스>에서 <일요일의 음악실>을 연재하며 격주에 하나씩 원고를 만드는 일은 오랫동안 공들여 하루하루를 쌓아 올리는 작업과도 같았어요. 연주나 가르치는 일은 흘러가지만, 글은 매번 남더군요. 고민하며 작품을 고르고, 수없이 듣고, 자료를 조사해 나만의 문체로 한 꼭지를 마칠 때마다 흰머리는 늘고 시력은 떨어졌지만, 새로운 장르의 예술을 배우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일요일의 음악실>이죠. 시간이 켜켜이 쌓인 글, <일요일의 음악실>이 아니었으면 배우지 못했을 겁니다.
작년 여름에 한국에 오셨습니다. 이번 여름에도 계획이 있으신가요?
네. 이번 7, 8월에 한국에 갑니다. 책을 읽어 주신 분들과 만날 기회가 몇 번 있을 겁니다. 7월에는 작은 서점에서 음악 감상회를 진행하고 8월에는 작년처럼, 북콘서트를 계획하고 있어요. 파니 헨젤의 '일요일의 음악실'처럼, 제가 연주를 하거나, 함께 음악을 듣고, 음악과 삶을 이야기할 진한 시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집필 계획도 알려주세요.
다음 책을 바로 시작했습니다. 전공자가 아니어도 음악을 해석할 수 있도록 돕는 쉽고 재밌는 글을 쓰는 중입니다. 한국, 미국, 프랑스에서 배운 지식과 다양한 수준의 학생을 만나고, 관찰하며 얻은 경험이 총동원될 거예요. 기대해 주세요.
작가님께서 그리시는 50대의 삶은 어떤가요?
잠시만요. 제가 50대인가요?(웃음) 40대를 마무리하는 입장에서 50대를 생각해 보라 하시면, 한 마디로 '기대된다'고 말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쌓은 것을 어떻게 나눌지 고민하는 시간이 될 거예요. 음악이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되지 않도록, 누구나 즐기고 누릴 방법을 열심히 찾으려고요. 아름다움이 세계를 구원한다고 했던 도스토옙스키의 말을 확인하며 살고 싶습니다.
독자들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세이킬로스의 노래 가사처럼, 살아있는 한 최선을 다해 빛을 발하시기를, 그리고 음악으로 숨쉬며, 음악과 함께 오래도록 행복하시길 빕니다.
*송은혜 한국과 미국, 프랑스에서 오르간, 하프시코드, 음악학, 피아노, 반주를 공부했고 지금은 프랑스 렌느 음악대학과 렌느 시립음악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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