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나폴리에 3개월간 머무르게 된 INTJ 소설가는 90일 동안 나폴리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될까? 격주 화요일 <정대건의 집돌이 소설가의 나폴리 체류기>가 연재됩니다. |
이탈리아를 설명하는 세 개의 동사는 '아마레(사랑한다)', '칸타레(노래한다)', '만자레(먹는다)' 라고 한다. 여러 해 동안 앉아서 글만 쓰다가 작년 인생 최대 몸무게를 찍은 나는 탄수화물을 끊음으로써 감량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미식의 나라 이탈리아 생활을 하게 된 이상 '만자레' 할 수밖에! 아침엔 에스프레소와 코르네토(크루아상), 점심엔 파스타를 먹고 저녁엔 피자를 먹는 매우 이탈리아스러운 일상이 이어졌다.
이탈리아에 가서 다시 살이 쪄서 돌아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달리 오히려 살이 빠졌다.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많이 걸어서였다. 왜 나폴리에서 많이 걷게 되냐면, '대중교통이 좋지 않아서'다. 처음 지하철을 이용해보고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지하에서는 통신이 터지지 않고,(와이파이가 아니라 아예 전화가 불통) 열차는 30분을 기다려야 했다. 숙소에서 주요 중심지까지는 걸어서 25분이면 걸어갈 수 있었다. 차라리 걷는 것이 나았다. 나폴리 전철에 비하면 경의선은 축복이었다.
한국에서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던 내가 일주일 평균 걸음이 1만 8천 보를 넘겼다. 내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아서 살이 찐 거라는 엄마의 잔소리가 맞는 말이었다는 게 증명되어 민망했지만, 살이 쪘을 때 구매한 청바지가 흘러내려 벨트를 사야 했다. 잘 먹는데도 살이 빠진다니 이곳이 진정한 파라다이스였다.
이탈리아의 음식 문화 중에 특히 빵으로 접시를 깨끗이 닦아 먹는 '스카페타 문화'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어릴 적 식판을 깨끗이 비워야 한다는 훈육이 주효했던 것인지, 나는 좀처럼 음식을 남길 줄 몰랐고, 그것이 '좀 없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는 문화이니 얼마나 좋은가.
그리고 늦은 저녁 식사 시간에 적응해야 했다. 한국이라면, 6시 반에 퇴근을 하면 7시에 술과 함께 음식을 먹을 것이다. 그러나 '어페리티보'라고 해서 이곳에서는 저녁 식사 전에 칵테일인 스프리츠나 맥주를 마시는 문화가 있다. 그리고 꼭 9시 정도가 되어서야 이제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다들 정말 잘 먹었다. 한국에서 음식을 빨리 먹는 편인 내가 여기서는 항상 꼴등을 했다. 그런데 잘 먹는 것에 비해선 비만 인구가 별로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 묻자 "많이 걷고, 아마도 정크 푸드가 아닌 좋은 음식을 먹어서" 라고 자부심 느껴지는 말을 했다. 신선한 모차렐라 치즈, 토마토, 햄, 바질, 빵, 파스타. 사실 요리법도 참으로 간단했다. '재료빨'이 끝내주는 이 나라에 질투가 날 정도였다.
매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감회가 새로웠다. 지난 8월, 코로나에 걸렸던 나는 미각을 잃었었다. 대부분 보름이면 미각이 돌아왔다고 하는 데 나는 두 달 가까이 돌아오지 않았다. 두려웠다. 같은 증상에 대해 열심히 검색해봤지만 미각을 잃었다는 글들은 많이 보여도 돌아온 경험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는 실제로 우울했다. 정말 아무 맛이 느껴지지 않았기에, 사람들을 만나 좋은 음식을 먹을 이유도 없었고, 모든 기쁨과 가치가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여행을 갈 큰 이유도 사라졌다.
나와 같은 사람이 없다는 것. 그것이 공포를 가져왔다. 끔찍한 일을 겪은 사람에게는, 나만 이런 일을 겪는 게 아니라는 것. 그 자체로 위로가 된다. 나는 힘든 시기에 책에서 큰 위로를 받았고 그것이 나를 살게 했다. 이 말은 과장이 아니다. 물론 어떤 작가는 '희망 같은 것은 전부 거짓'이라고 인생에 대해 글을 쓸 수도 있겠지만, 나는 문학의 가치가 어둠 속에서도 어떻게든 빛을 찾는 것, "고통스러운 지금이 지나가리라"고 말해 주는 데 있다고 믿는다.
BRAU 도서관에 매일 다니며 제시카와 여러 박사 과정 친구들과 어울렸다. 돌계단에 앉아 점심을 먹고, 도서관에서 누군가 지쳐서 "커피 타임?" 하고 부르면 다 같이 자판기가 있는 정원에 내려가 커피를 마셨다. 6시 반, 도서관이 닫는다는 방송이 흘러나오면 (관리인은 녹음을 틀지 않고 매번 "Attenzione(주목)" 집에 갈 시간이라고 직접 말한다) 퇴근해서, 스프리츠나 맥주를 마시며 어페리티보 시간을 가졌다. 내가 캠퍼스물에 들어와 있는 듯했다.
친구들과 밥을 먹는 일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피자와 해산물과 맥주를 먹으니, 어제도 행복하고, 오늘도 행복했다. 친구들과 전채에 후식까지 핏제리아에서 20유로씩 쓰고, 저들도 먹는데 뭐, 하며 죄책감도 덜했다.(나눠 내는 게 당연한 이곳의 문화 덕에 카드로 7명이 나눠서 결제해도 식당은 조금의 불평도 없다)
이들과 함께 일상을 보내면서, 힘들었던 시기에 내게 필요했던 시간이 뒤늦게 찾아온 게 운명처럼 느껴졌다. 아득한 운명의 시차. 영화 학교를 졸업하고 아무 소속도 없어진 나는 히키코모리처럼 칩거하며 보냈다. 내게 필요했던 건 그 혹한기를 함께 보내고 견딜 친구들이었다. 작업실을 같이 쓰고, 함께 밥을 먹으며 시시껄렁한 농담을 할 친구들.
훗날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의 한 대목을 읽으며 그 시기에 내가 위험한 상태였다는 것을 자각했다. 저자는 오래 지속되면 자살로 이어지는 위험한 사고 두 가지를 언급한다. 첫째는 '좌절된 소속감("나는 혼자야")'이고, 둘째는 '스스로를 짐이 되는 존재로 생각하는 것("내가 없으면 세상이 더 나아질 거야")'이다.
박사생 친구들에게는 이탈리아인들이 발음하기 어려운 '정' 보다는 더 쉬운 '건'이라고 부르라고 총 모양을 만들어 보이며 내 이름을 알려줬다. 신기한 것은 내 짧은 영어로도 추상적인 개념까지 소통이 가능했다는 점이었다. 아마도 그들이 나의 끔찍한 영어를 견디고 있는 것이지만, 짧은 언어로 더 명확하게 대화하게 됐다. 내 발화도, 사고도 심플해져 갔다.
"건, 그래서 나폴리 생활은 어때? 이 곳에서 지내는 게 좋아?"
제시카가 내게 물었다.
"응. 나 요즘 정말 행복해. 이곳에서는 나이를 잊고 지내고 있어."
나는 실제로 여러 커리어를 전전했고, 그것이 어느 하나 제대로 쌓이지 않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지냈다. 잘 나가는 누군가의 나이를 따져보고, 내가 항상 늦었다고 생각했다. 제멋대로 사는 것 같으면서도 한국 사회에서 내 나이면 갖춰야 할 것들에 제법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구나, 자각했다.
나는 이곳에서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종종 누군가와 비교하며, 쓸개즙이 역류하는 것 같은 씁쓸함과 초조함을 느낄 때도 있었다. 이곳에서는 내가 누구와도 비교할 필요가 없는 고유한 삶을 살고 있다는 감각이 충만했다. 나폴리가 다른 곳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진 곳이라는 점도 좋았다.
일본의 경영 컨설턴트 오마에 겐이치는 『난문쾌답』이라는 책에서 인간을 바꾸는 방법은 3가지뿐이라고 썼다.
첫째. 시간을 달리 쓰는 것. 둘째,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셋째.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 이 3가지 방법이 아니면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 '새로운 결심을 하는 것'은 가장 무의미한 행위다.
나는 이번 체류를 통해 세 가지를 모두 하고 있다.
어둑한 저녁이 되면 혼자 숙소로 오는 길에 주황빛 조명들로 반짝이는 도시를 보면 고독함을 느꼈다. 나는 이 도시에 혼자였다. 한국 관광객들을 제법 마주칠 줄 알았는데, 동양인은 이 도시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매번 이방인을 향한 시선을 느꼈다. 누군가는 "킴, 킴, 킴! (김민재)" 외치며 반기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방인인 나를 속이려 들었다. 몇 번 당한 뒤로는, 가격이 쓰여 있지 않은 곳에서는 사먹지 않았다.
친구들과 먹는 데는 아끼지 않았지만, 혼자가 되면 아끼던 버릇이 나와 1, 2유로 짜리 빵을 찾아 끼니를 때우곤 했다. 자본주의의 보이지 않는 손은 놀랍도록 정확해서 1유로짜리 피자빵은 아무리 전자렌지에 뜨겁게 데워도 2유로짜리보다 맛이 없었다. 질긴 빵을 씹으며 나는 제시카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90일간 지내는 시간을 선물처럼 생각하고 있어. 한국에서는 내가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내게 주어지는 이런 시간은 한 번뿐이라는 마음으로 내게도 더 관대해졌어. 내가 돌아가서도 선물처럼, 이런 마음 가짐으로 쭉 살아가면 이전보다 행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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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건
2020년 장편 소설 『GV 빌런 고태경』을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소설집 『아이 틴더 유』를 출간했다. 다큐멘터리 <투 올드 힙합 키드>와 극영화 <사브라>, <메이트>를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