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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의 어린 개가 왔다] 강아지똥

정이현의 어린 개가 왔다 - 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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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조금만 더 착하고 희생적인 인간이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아니 지금보다 너른 품을 가지고 있고 덜 예민한 인간이라면 가족들도 바둑이도 한결 덜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보다 나 역시. (2023.04.10)


소설가가 얼룩 개를 기른다고요?
정이현 소설가에게 어느 날 찾아온 강아지, 그 작은 돌봄과 애쓰는 마음을 연재합니다.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강아지,
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서로 적응해가는 이야기,
<채널예스> 격주 월요일을 기대해주세요.


언스플래쉬

"돌이네 흰둥이가 누고 간 똥입니다. 흰둥이는 아직 어린 강아지였기 때문에 강아지똥이 되겠습니다. 골목길 담 밑 구석자리였습니다"라고 시작되는 책이 있다. 당신도 읽어본 적 있을 것이다. 권정생 선생의 『강아지똥』.

바둑이의 첫 수의사는 다정하고 신중한 분이었다. 그는 보호소를 나오기 직전 했던 키트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다는 얘기를 듣더니, 재검사 전에 일단 장염 약을 먹이면서 하루만 더 지켜보자고 말했다. 무엇을? 바둑이의 배변 상황을. 다행히 파보 바이러스 외에도 설사를 유발했으리라 의심할 만한 이유가 하나 더 있었던 것이다. 전날 저녁, 훈련사의 맹훈련. 그리고 그의 주머니에서 끝도 없이 나왔던 치즈 간식. 약을 먹어도 24시간 내에 차도가 없으면 다시 즉시 달려오라고 했다.

안내 데스크에서 약봉지와 주사기를 받아들었다. 강아지에게 약을 먹일 때 주사기를 사용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 동물병원은 유기견 보호소를 통해 입양한 견주에게 치료비의 일부를 할인해주는 곳이었다. 전혀 모르고 갔기에 꽤 얼떨떨했다. 감사하고 좋은 일이 분명한데 머리가 멍해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바둑이는 축 처진 채 E의 품에 안겨 있었다. 나는 용기를 내 그쪽으로 손을 뻗었다. 바둑이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보았다. 바둑이의 꼬리가 천천히 흔들렸다. 그 낯선 장소에서 이 아이가 우리를 의지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히 느껴졌다.

그로부터 하루 동안 나는 오로지 바둑이의 똥만을 생각했다. 동화가 아닌 현실의 강아지똥에 의해 삶이 지배당하는 날이 오다니. 인생은 정말 예측할 수 없는 거였다. 병원에서 돌아와 24시간이 지날 때까지 바둑이는 대여섯 번에 걸쳐 대변을 보았다. 처음에는 여전히 묽고 피도 섞인 상태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정상적인 상태로 변해갔다. 집에 확대경이 없으니 망정이지 만약 있었다면 그걸 손에 들고 더욱 꼼꼼하게 관찰했을 것이다.

처음엔 입을 어떻게 억지로 벌리고서 주사기를 밀어 넣어야 하나 무척 걱정스러웠으나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아는 생명체 중 식욕이 가장 왕성한 바둑이에게 주사기 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녀석은 사료 위에 약이 흩뿌려 있거나 말거나, 지금 자기 배가 아프거나 말거나 전혀 개의치 않고 매 끼니마다 밥 한 그릇을 맛있게 뚝딱 해치웠다. 뭐랄까, 먹는 부분에 관한 한 무척 일관성 있고 근성 있는 강아지였다. 그리고 치즈를 먹으면 설사를 하는 강아지이기도 했다. 바둑이의 설사는 파보가 아니라 일반적인 장염 때문으로 판명되었다.

바둑이는 빠르게 활력을 되찾았다. 낮에는 집 안을 뽈뽈 돌아다녔지만 밤이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켄넬에 들어가 잠을 잤다. 아니, 그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E는 바둑이 켄넬 옆의 소파에 딱 붙어 자주 시간을 보냈다. 말로는 강아지가 걱정이 되어 그렇다고 하는데, 바둑이가 오기 전부터도 그가 집에서 가장 사랑하는 공간은 거기였다.

거실이 E의 공간이라면 서재는 내 공간이었다. 식구들이 다 잠든 밤에 원래 나는 서재에서 일을 하는 인간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원칙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밤에 서재 문을 닫고 들어가 앉아 있긴 했지만 물론 누구나 쉽게 짐작하듯이 일'만'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음, 우리 일이 그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딱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인터넷 세상을 하염없이 돌아다니면서도 사실 지금 자료 조사 중이라고 우겨볼 수 있다는 게 이 직업의 몇 안 되는 장점이었다.

E가 야근을 하고 아이들은 일찍 잠든 어느 밤, 거실에는 바둑이뿐이었다. 서재에 들어가기 전에 거실의 불을 껐다가 너무 깜깜하면 얘가 혹시 화장실을 찾아가지 못할까 싶어 화장실 전등을 밝혔다. 문을 닫고 평소처럼 노트북 앞에 앉았으나 집중이 되지 않았다.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나는 다시 방문을 빼꼼 열었다. 화장실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거실에 희미하게 퍼져 있었다. 바둑이의 실루엣이 보였다. 바둑이가 켄넬 밖으로 나와 물을 마시고 있었다. 바둑이는 내 기척을 느끼자 그 자리에 우뚝 섰다. 나도 움직이지 못하고 우뚝 섰다. 몇 미터의 거리를 두고 어찌할 바 몰라 하고 있다는 건 저쪽이나 나나 마찬가지였다. 바둑이가 먼저 천천히 몸의 방향을 돌렸다. 내 쪽이 아니라 켄넬 쪽으로 움직이다가 안으로 쓱 들어가버렸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혹시 녀석이 나한테 마구 달려오기라도 했으면 어쩔 뻔했나. 그러나 동시에 이상하게 허전한 마음도 아주 조금 들었다. 그리고 새삼 과연 언제까지 이렇게 어색하게 살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동안 한 치의 의심 없이 '나의 것'이라고 믿었던 이 집이 바둑이가 온 뒤부터 더 이상 예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마음 놓고 숨을 데가 없었다.

아침이면 아주 일찍 저절로 눈을 떴다. 바둑이가 온 날부터 나는 매일 밤 길어야 4시간밖에 자지 못했다. 그 시간도 제대로 깊은 잠을 푹 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눈을 비비면서 밤새 바둑이에게 별일이 없었는지 먼저 확인했다. 혼자 두자니 안쓰럽고 같이 있자니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바둑이에게 이른 아침밥을 주고 그 애가 밤새 싸 놓은 배변 패드를 갈았다. 강아지똥은 보통 때는 배변 패드 위에, 가끔 조준에 실패했을 때는 타일 바닥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바둑이의 똥을 변기에 넣고 물을 내릴 때면 그 '강아지똥'이 떠오르곤 했다.

"너의 몸뚱이를 고스란히 녹여 내 몸속으로 들어와야 해."

민들레는 강아지똥에게 말했다. 그래서 예쁜 꽃을 피게 하는 것이 바로 네가 하는 일이라고. 강아지똥은 생각한다.

"아, 과연 나는 별이 될 수 있구나!"

내가 조금만 더 착하고 희생적인 인간이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아니 지금보다 너른 품을 가지고 있고 덜 예민한 인간이라면 가족들도 바둑이도 한결 덜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보다 나 역시.



강아지똥
강아지똥
권정생 글 | 정승각 그림
길벗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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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이현(소설가)

1972년 서울 출생으로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2002년 제1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 이후 단편 「타인의 고독」으로 제5회 이효석문학상(2004)을, 단편 「삼풍백화점」으로 제51회 현대문학상(2006)을 수상했다. 작품집으로 『낭만적 사랑과 사회』『타인의 고독』(수상작품집) 『삼풍백화점』(수상작품집) 『달콤한 나의 도시』『오늘의 거짓말』『풍선』『작별』 등이 있다.

강아지똥

<권정생> 글/<정승각> 그림12,600원(10% + 1%)

우리가 사랑하는 작가 권정생, 그리고 우리 그림책의 영원한 고전 『강아지똥』! 『강아지똥』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강아지똥이 아름다운 민들레 꽃을 피워내기 위해 온몸을 다 바쳐서 거름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1996년 출간된 이후에 지금까지 오랜 세월 아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큰 사랑을 받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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