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디자인하면서 나 스스로도 소장하고 싶은 책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마냥 예쁜 책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불필요한 것은 최대한 배제하고, 필요한 요소만으로 그 책만의 고유한 이미지를 찾아내고 싶다. 모든 책은 다 다르기 때문에 책의 내용에 집중하다 보면 그 실마리가 조금씩 보였다. 원고에서의 분위기, 느낌, 색감, 포인트가 될 수 있는 사람이나 사물 등 책 속의 중요 요소들 중에서 이미지로 구현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서, 때마다 여러 요소들과 연결시킨다. 그중에서 내용과 맞는 표현의 소재를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으로 찾는 경우도 많다.
첫 칼럼에서는 책의 내용에서 중요한 포인트가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들과 연결되어 표지 작업에 그래픽으로 구현된 이야기들을 하고 싶다. 이국적이고 볼거리가 많은 곳을 여행하다가도 내 집 앞에 오면 드는 익숙하고 편안한 느낌이 결코 가볍지 않듯이, 화려하지는 않아도 익숙하고 편안한 것도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조용하지만 강한 힘이 있다.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 『작은 목소리, 빛나는 책장』
가장 최근(글 쓰는 시점 기준)에 『작은 목소리, 빛나는 책장』을 디자인했다. 일본의 독립 서점 '타이틀'의 주인이 서점을 운영하면서 쓴 에세이다. 사람 얼굴을 그리면 무의식적으로 자기 얼굴과 닮게 그리게 되는 것처럼, '타이틀'의 주인이 만들어간 서점은 조용하지만 단단한 주인을 닮아 있는 듯하다. 표지 의뢰서를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쳤다. 본문에서 서점 '타이틀'의 건물 모습과 풍경들, 그리고 책의 마지막쯤에 있는 글을 보고 내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부분들이 정리가 되고 구체화됐다.
최종으로 선택된 시안은 서점의 큐레이션에 관한 그래픽이었다. 서점에 가보면 평범한 모습으로 책들이 책장에 똑같이 꽂혀 있지만, 알고 보면 서점마다 주로 다루는 책들도 다르고 그 안에서의 분류도 다 다르다. 이런 선택들이 서점의 색깔을 만들고, 그 안에서도 다양한 모양이 존재하게 만드는 것을 그래픽으로 표현해 보았다. 적합한 모양과 조합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 모양의 책장 느낌 그래픽을 넣어보며 만들고 지우고 남기고 조합하기를 반복했다.
B컷은 서점 '타이틀'의 외부 모습에서 모양을 따왔다. 따뜻하고 언제든 들를 수 있는 편안한 느낌으로 표현하고 싶어서 색도 파스텔 톤을 사용했다. 라인이나 서체는 무광 금박으로 은은하게 처리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겉표지를 열면 속표지가 나오고, 서점 '타이틀'의 실제 간판, 소품으로 있는 목각 마네키네코상에서 따온 요소 등이 구체적으로 보인다. 멀리 건물이 보이고 가까이 다가가면 서점 앞에 서게 되는 것처럼, 커버를 열면 서점 ‘타이틀’에 가까워져 있는 것을 표현해 보고 싶었다.
우리가 사랑한 네모들 — 『더 이상 도토리는 없다』, 『캐스팅』
최근에 도서관 소설집 『더 이상 도토리는 없다』, 영화관 소설집 『캐스팅』을 디자인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장소인 도서관, 영화관을 바탕으로 한 앤솔러지 소설들이다. 각 소설마다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지만, 각 소설을 묶어주는 '도서관'과 '영화관'이라는 장소성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것을 포인트로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도서관엔 책이 있고, 영화관에는 스크린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네모 속에 담긴 세상의 이야기를 좋아하고, 보고 싶어 한다. 책은 가로가 짧은 직사각형의 네모가 일반적이고, 스크린은 가로가 긴 직사각형 네모로 되어 있다. 이 책에서만큼은 프레임이 제일 중요한 요소였다. 이 프레임 안에 책에서 나오는 소재들을 골라 패턴으로 넣은 것이다. 여기에 책의 윗부분을 나타내는 라인과, 영화관의 스크린을 가린 관객석을 나타내는 라인을 후가공으로 넣어 각 소재마다 특징을 더 확실히 표현했다.
'네모'라는 것이 나름의 포인트였던 만큼, 서체도 각진 느낌이 드는 '안상수체'를 선택했다. 그리고 책을 열면 속표지 부분에는 네모 칸이 반복된 낱말 퍼즐이 있다. 편집자와의 회의에서 그림을 맞추는 퍼즐 이야기를 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담당 편집자가 낱말 퍼즐은 어떨지 제안해서 발전시켰다. 이 안에는 이 책에 글을 쓴 작가의 이름과 그 제목들이 모두 숨어 있다.
평범함에서 찾는 디자인
지금까지 세 권의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았다. 일상에서 만나는 풍경들 중 평범한 건물, 책이 꽂혀 있는 책장, 영화관의 스크린, 도서관의 책 등 흔히 볼 수 있는 사물과 풍경들을 활용해 책에 맞게 디자인했다.
북 디자인이 책에 옷을 입히는 일에 많이 비유되긴 하지만, 신간에서 절판까지 일생을 거의 단벌로 살아가는 책의 옷을 만들어주는 것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한동안 책을 만드는 여정 속 나의 이야기들을 조금씩 꺼내보고자 한다. 내가 해석한 이미지 언어가 책에 가장 잘 맞는 옷이길 바라며, 무엇보다 독자들에게도 의미로 닿길 바라며 마감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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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해
북 디자이너. 돌베개 출판사에서 책을 디자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