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평론가 미묘의 ‘언박싱 케이팝’ 칼럼이 격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최신 이슈부터 앨범 패키지에 담긴 이야기까지 지금 케이팝의 다채로움을 전합니다. |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들을 꾸준히 보다 보면 그중 상당수가 결국 B급 영화 혹은 드라마라는 체감을 하지 않기 어렵다. 봉준호나 데이비드 린치 등 명장들이 라인업에 올라 있음에도 말이다. 주류 흥행작이나 명작들과 썩 구별되지 않고 OTT에 진열되는 B급 작품들이 과거에 대중을 만나던 장소는, 적어도 한국에서는, 비디오 대여점이었다. 키의
과잉의 미학이라는 케이팝에서도 극단적인 수준이다. 키(KEY)의 '가솔린' 뮤직비디오는 성깔 있으면서도 단아한 아티스트의 얼굴 위에 화려한 머리 장식 열전을 펼치며 우주적 규모의 신화적 상상력을 조금의 아낌도 없이 퍼붓는다. 곡은 정확한 맥락을 전달하지는 않지만 화학 연료를 과소비하며 패기와 투지를 불태우는 인물을 그린다. 날렵한 비트 위에 '더 이상 센 척 안 해'라던 2018년과는 (사이에 병역이 있다고는 해도?) 조금 온도 차가 있다고 해도 좋겠다.
이를 이해하는 한 열쇠로 5번 트랙 'Guilty Pleasure'를 제안해 본다. 2000년대 중반부터 한국어가 되다시피 한 '길티 플레저'는 남에게 알리기 부끄러운 즐거움을 뜻하지만, 점차 남부끄러운 취향을 방어하는 표현이 되었다.
"누구나 '길티 플레저' 하나쯤은 있잖아요! 어쩔 수 없는 거니 욕하지 마세요!"
그러나 키는 이를 '본능이 된 이끌림'으로 정의하되, '더 많은 것을 잃어도' 기꺼이 선택한다고 말한다. 그의 길티 플레저는 정당화를 바라지 않는다. 숙명론적 욕망이지만 또한 희생을 감수하고 스스로 결단하는 대상이다.
그런 비장미는 도처에 있다. 속삭이는 듯한 퇴폐미의 'Bound'도, 상처와 비극을 노래하는 음악으로서의 하우스를 선보이는 'Burn'도 그렇다. 앨범에서 가장 디스코적으로 화려하고 장엄하게 번득이는 'Another Life'도 다른 행성, 다른 삶을 향해 묵직하게 탈출한다. 심지어 'Villain'이라는 곡도 있는데, 케이팝에서 '좀 있어 보이는' 다크 콘셉트의 만능열쇠인 양 남발되던 이 키워드가 드디어 제대로 된 의미를 갖는다. 뻔한 주역에게 쓰러지고 가려지지만 새로움과 과감함을 가져올 수 있는 '대안'적 인물로서의 빌런이다. 앨범 전체에서 키는 명쾌하면서도 차라리 정직한 특유의 음색으로, 숱한 상처로 뒤덮인 채 자신의 미래를 결단하는 인물을 노래한다.
정상성 혹은 주류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웬만한 사람은 어느 정도 자신의 '비주류성'을 느낄 수밖에 없다. 누구라도 드라마 주인공이나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 스타트업 대표(단, 잘나가는), 재벌 3세보다 자신이 부족하고 어긋났다는 기분에 시달리기 십상이다. 거기서 누군가는 '길티 플레저'나 'B급'이라는 키워드로 자신을 정당화하려 한다. 그것은 때로 무책임하기도 하다. 그러나 키의 비주류성은 적어도 이 앨범 속 주인공에게는 상처의 배경인 동시에, 결단의 핵심이다. '가솔린'의 호전적인 결의와 'B급' 테마가 만나는 바로 그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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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