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평론가 미묘의 ‘언박싱 케이팝’ 칼럼이 격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최신 이슈부터 앨범 패키지에 담긴 이야기까지 지금 케이팝의 다채로움을 전합니다. |
스테이씨는 일견 지금 케이팝에서 사뭇 이종적인 아티스트로 여겨질 구석이 있다. 걸그룹 중에서도 압도적인 여성 팬 비율도 그렇다. 남성 대중에게 구애하기보다 멤버들끼리 있을 때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듯한 무대와 그것이 그려내는 시각적 쾌(快)도 최근 몇 년간 시도되고 있는 새로운 미학에 해당한다. 이를 소규모 기획에서 산뜻한 터치로 설득력 있게 완성해 명실공히 주류 시장 히트를 기록한 것도 고무적인 동시에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일이다.
이들이 표방하는 '틴 프레시(Teen Fresh)’가 업계의 버즈 워드로 자리 잡은 것과는 별개로, 'ASAP'의 일명 '꾹꾹이 춤'이나 패키지마다 들어있는 '오피셜 프래그런스 카드' 등의 요소는 아주 속 편하게 말하자면 '엉뚱 매력'으로 갈무리될 만한 것들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신곡의 제목이 'BEAUTIFUL MONSTER'라는 말만 듣고는 다소 과격한 스타일링이나 급진적 메시지 같은 것을 연상하는 나 같이 좀 부족한 인간도 있는 것이다.
그런 것치고 모호한 부분도 많다. 젠더 담론을 연상시키는 ‘색안경 (STEREOTYPE)’에서 "난 좀 다른 여자인데", "너무 세게 안으면 숨 막혀요" 같이 낡은 듯한 표현이 등장하기도 한다. 'BEAUTIFUL MONSTER'에서도 느닷없이 들려오는 "단 한 번만이라도 Please be a man” 같은 가사는 걸그룹 가사에서 남성의 존재를 얼버무리고는 하는 흐름에 대대적으로 역행한다. 신작
혼란에 빠진 사람들은 내버려 두고, ‘BEAUTIFUL MONSTER’는 유려한 곡이다. 브리지에서 한 번 깊이 내려앉았다 올라오는 것 외에는 버스와 프리코러스, 후렴이 서로 굳게 손을 맞잡고 매끄러운 한 절을 구성한다. 차례가 되면 다음 멤버가 튀어나와 자신의 맡은 바를 충실히 수행하며 잘 맞물려 돌아가는 기계와 같다. 케이팝에서 흔히 느끼는 '덜컹임'은 최소화한 채, 단지 멜로디의 매력과 멤버의 표현력, 그리고 안무의 디테일로 플레잉 타임 내내 시선을 고정시켜둔다. 무게감을 만끽하기에 충분하도록 길게 배치된 베이스도 집중력을 더한다.
날랜 걸음의 보컬 멜로디는 서정적 라인을 그린다. 템포를 조금 늦추거나 리듬을 살짝 누그러뜨리거나 보컬이 가요적 '쪼'를 조금만 더 부리면 '뽕끼'를 들려줄 수도 있었을 것이나, 아주 미묘한 선에서 친근감만을 남긴 채 상쾌함을 유지한다. 그러면서도 가사는 드문드문 연애 대상을 청자로 하는 듯한 뉘앙스를 남기기는 하나, '아름다운 괴수'라 이름 붙인 사랑의 관념을 노래하는 것으로도 들린다. 전작들이 보여준 날렵함과 생동감을 유지하면서도 로맨틱한 사색의 이미지를 들려주는 곡이다. 사려 깊은 친구의 속내를 들려주는 듯한 오마이걸의 계보에 이들을 놓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청초한 서정을 보다 경쾌한 신선함으로 대체했다고 할까.
자수 모티프가 활용된 커버아트의 상단은 천 위에 자수를 놓은 듯하고, 하단은 마치 픽셀 이미지를 자수로 표현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보면 그저 '아이돌스러운' 내지 역시도 다면성을 가진 인물의 여러 스냅샷을 늘어놓는 포맷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스테이씨의 프로덕션은 어떠한 태도 혹은 '콘셉트'의 지나친 선명성을 피해 가려는 듯 보이기도 한다. 또는 가사나 뽕끼, 음반 패키지의 전형성 등이 아이돌 콘텐츠의 컨벤션이기 때문에 채택된 것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스테이씨는 이종적이라기보다 차라리 아이돌의 정수를 다시 들여다보는 아티스트라고 하는 편이 좋을지 모르겠다. 그럴 때 스테이씨의 모호함은 우유부단이나 혼종보다는 일종의 쿨에 가까워진다. 타이틀곡이 '아름다운 괴수'를 노래한다고 해서 패키지에 괴수의 모티프를 넣지는 않는다든지 하는 식의. (물론 안무에서는 적극적으로 뿔을 형상화하고 있지만, 그건 조금 다른 이야기겠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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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