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다정한 그림책] 아주 다정한 유머 - 『그것만 있을 리가 없잖아』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세상일이고, 예상치 못한 복병이 숨어 있는 것이 우리 삶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자기 삶에 매몰돼 그 안에 갇히지 말고, 조금 떨어져 유머를 잃지 않을 때, 우리 삶의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글ㆍ사진 최현미(신문 기자)
2022.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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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 김지은 아동청소년 문학평론가, 한미화 출판평론가,
이상희 시인, 최현미 기자가 ‘이토록 다정한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어느 날 거울을 보다 미간에 강력하고 분명하게 자리 잡은 두 줄의 주름을 보게 됐습니다. 눈이 좋지 않아 찡그리는 습관, 글을 쓰거나 일을 할 때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집중하는 습관이 쌓이고 쌓여 두 줄의 주름을 만들고야 말았습니다. 습관이 쌓여 성격이 되고, 성격이 쌓여 그 사람이 된다는데, 습관이 쌓여 주름이 됐습니다. 만져보면 어느새 굴곡이 느껴질 만큼 분명합니다. 나이 들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을 떠올리며 '최소한 험상궂은 얼굴이 되면 안 되는데' 라며 손가락으로 주름을 펴보다 떠올린 방법은 ‘웃음’입니다. 웃으면, 웃을 땐, 절대 미간에 주름이 생길 수 없습니다. 일상의 쳇바퀴에 올라타 빠르게 굴러가다 보면 잊어버리고 까먹기 일쑤지만 아차 하고 생각날 때마다 ‘웃는 연습’을 해봅니다. 입꼬리를 올리고, 볼의 윗부분을 들어 올립니다. 자연스러운 완벽한 웃음. 19세기 신경심리학자 기욤 뒤센의 이름을 따서 붙인, ‘뒤센 웃음’입니다.

미간의 주름뿐이겠어요. 니체도 “환하게 웃는 자만이 현실을 가볍게 넘어설 수 있다”고 했습니다. “유머는 기분이 아니라 세계관이다”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도 있습니다. 웃음, 유쾌함, 유머. 이 3종 세트야말로 때론 폭발할 것 같은 우리 삶의 압력을 낮춰주고, 긴장을 풀어주고, 막다른 골목에 선 듯한 속수무책에서 우리를 구해주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요시타케 신스케의 그림책을 좋아합니다. 그의 그림책엔 유머가 있고, 유쾌함이 있고, 웃음이 있습니다. 엄청난 상황이 만든 포복절도가 아니라 자잘한 우리의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웃음입니다.  

오랫동안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다 기발한 상상력을 눈여겨본 편집자의 조언으로 『이게 정말 사과일까?』(2013)를 내면서 그림책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그의 그림책은 독자들의 팽팽한 긴장감에 슬쩍 아주 작은 구멍을 내 피식하고 바람을 빼는 마력이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누구나 하루 24시간, 일정 정도의 긴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잘해야 하고, 버텨야 하고, 실수하면 안 되고, 한순간 잘못했다간 나락의 떨어질지 모른다는 그런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팍팍함에 슬쩍 여유를, 웃을 수 있는 순간을 주는 게 요시타케 신스케의 그림책입니다.

『그것만 있을 리가 없잖아』도 그 중 한 권입니다. 어느 날 유치원에 다녀온 오빠가 심각한 표정으로 동생에게 말합니다.

“너 그거 알아? 미래는 무시무시할 거야. 내 친구가 어른한테 들었대”라며 말을 늘어놓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먹을 것이 없어지고, 질병이 유행하고 전쟁이 일어나고, 외계인이 쳐들어와서 지구가 멸망할 거래. 우리가 어른이 될 때쯤엔 무시무시한 일만 있을 거래.”

주인공 아이는 잔뜩 겁을 먹고 미래를 걱정합니다. 아이뿐 아니라 누구나 미래에 대해 걱정합니다. 어른들이 더 많은 걱정을 하는 쪽이죠. 하지만 인생을 오래 살아온 지혜롭고 낙천적인 할머니는 하나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아이를 안심시킵니다. 할머니의 철학이 바로 책 제목인 '그것만 있을 리 없잖아'입니다. 

“미래에는 무시무시할 수도 있지만 분명 즐겁고 신나는 일도 잔뜩 있을 거야. 어른들은 툭하면 미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지만 거의 맞지 않아. 미래엔 그것만 있을 리가 없지.” 

할머니의 말에 아이는 여러 미래를 생각합니다. 날마다 소시지를 먹는 미래, 로봇이 숙제를 대신 해주는 미래, 떨어뜨린 딸기를 재빨리 받아주는 미래, 매주 토요일이 크리스마스인 미래...

“그것만 있을 리가 없잖아!” 

이 한마디가 많을 것을 해결합니다. 달리기를 못해도, 신발이 작아져도, 맛없는 당근 반찬이 나와도 걱정 없습니다. 달리기를 못하면 눈싸움을 잘하면 되고, 신발이 작아져 못 신으면 멋진 화분으로 쓰면 됩니다. 당근이 싫다면 어른이 되어서 ‘당근 금지법’을 만들 계획을 세우면 됩니다. 세상에는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 한국을 방문한 요시타케 신스케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의 또 다른 그림책 『있으려나 서점』이 인기를 얻었을 즈음이었습니다. 『있으려나 서점』도 무궁무진한 재밌는 상상을 풀어낸 그림책입니다. 그곳 ‘있으려나 서점’에는 온갖 책들이 다 있어서 책갈피에 씨앗을 넣고 흙에 묻어 키우면 책이 열리는 책, 달빛 아래에서만 읽을 수 있는 책, 자라는 책 등 손님이 원하는 책을 척척 내줍니다. 요시타케에게 어떻게 일상의 평범하고 사소한 것들에서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상상력을 펼쳐낼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재미있는 것, 좋아하는 것을 부담 없이 따라가 보라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도 '그것만이 있을 리 없다'는 철학을 적용시킵니다. 분명하게 좋아하는 것이 없을 수도 있다는 그는 만약 좋아하는 것이 없다면, 싫어하는 것을 일단 피하는 방법을 쓰는 것도 좋다는 제2, 제3의 선택을 이야기했습니다. 우리 삶엔 아주 다양한 가능성이 있고, 우리 삶의 길엔 아주 다양한 문이 있으니, 그것들을 슬쩍슬쩍 열어보라는 충고였습니다.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이라는 이분법으로 판단하지 말고, 조금 힘을 빼고, 긴장하지 말고 웃으면서 유쾌하고 유머러스하게 오늘도 한 걸음 떼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세상일이고, 예상치 못한 복병이 숨어 있는 것이 우리 삶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자기 삶에 매몰돼 그 안에 갇히지 말고, 조금 떨어져 유머를 잃지 않을 때, 우리 삶의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도, 이런저런 걱정에 휩싸여도 미간의 주름을 평평하게 펴보며, 한 번쯤 웃으려 합니다.



그것만 있을 리가 없잖아
그것만 있을 리가 없잖아
요시타케 신스케 글그림 | 고향옥 역
주니어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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