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의 사조는 갖가지 운동과 경향, 스타일, 화파가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분류하는 범주로서 존재하는데, 미술가들은 남들과 다른 자신의 작업을 구별되는 지점을 명확하게 하고자 ‘선언문’을 작성한다. 이것은 당대의 평론가들을 통해 확산되며, 기존 예술에 대한 인식, 가치를 부정하고 새로운 예술의 개념을 추구하는 아방가르드 집단을 설명하는 하나의 사조가 된다.
『현대미술, 이렇게 이해하면 되나요?』에서 다루는 미술 사조는 아래와 같이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1. 시각 예술 분야에서 나타나는 경향 (원시주의, 개입주의 등)
2. 건축 및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 관련성을 지닌 사조 (실존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바우하우스 등)
3. 미술가들 스스로 규정한 운동 (광선주의, 추상 표현주의 등)
4. 시간이 지나 적용된 명칭 (포스트 인상주의, 정밀주의 등)
해당 사조의 주요 작가들과 그들이 만든 작품을 소개하는데, 특정 미술 사조를 포괄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특정한 미술 사조의 예가 되는지를 작품을 보면서 알 수 있다. 또한, 미술 사조별로 정리된 키워드로 막연하고 광범위하게 느껴졌던 현대미술을 명확하게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현대미술, 이렇게 이해하면 되나요?』는 어떤 책인가요?
이런 것도 미술일까 싶은 것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미술관, 미술 전시를 보다가 헷갈릴 때마다 한 번씩 들춰보면 좋을 책입니다. 책의 원제는 'isms…'인데요, 직역하면 '~주의' 혹은 '사조' 쯤 될 것 같습니다. 미술에서 '인상주의' 정도는 다들 한 번쯤 들어봤을 법 하지만 '광선주의'나 '설치주의', '선정주의'나 '포스트 인터넷 아트'와 같은 미술의 경향과 사조는 꽤 낯설잖아요. 책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좀비 형식주의'같은 표현을 듣게 되면 대체 현대미술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럴 때, 『현대미술, 이렇게 이해하면 되나요?』를 열어보시면 됩니다. 특히 20세기 이후 챕터를 눈여겨보세요!
에드가 드가는 ‘화가’, 가상 현실 작품으로 알려진 사라 로스버그는 ‘작가’ 등으로 달리 표현하셨는데, 번역할 때 특별히 고려한 점이 있을까요?
‘미술’은 참 흥미로운 단어입니다. 영어로는 ‘art’라고 쓰는데, 일본을 경유에서 번역되면서 ‘아름다움’과 ‘기술’을 뜻하는 한자가 모여서 ‘미술(美術)’이 되었습니다. ‘Artist’도 마찬가지입니다. '작가', '아티스트', '미술가', '화가' 같은 단어를 여러 가지로 번역할 수 있으니까요. 번역된 이 책에서도 '예술가', '미술가', '작가' 등의 단어가 혼용되고 있습니다. 인물별로 실제로 어떤 예술 활동을 펼쳤는지 조사한 뒤에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면 예술가로, 좀 더 순수 미술에 집중한 경우는 미술가로 표기했습니다. 원문에서 '화가'나 '조각가' 등으로 장르를 지시한 표현을 쓴 경우에는 그대로 옮겼고요.
다양한 국적의 이름에 대한 한국어 표기도 번역하면서 특별히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이 책에는 한국어로 소개되지 않았던 작가 이름도 꽤 많이 등장하거든요. 비영어권 작가의 경우, 러시아어나 스페인어 등 작가의 원래 이름을 표기한 언어를 찾아 발음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최근 작가의 경우, 주요 미술관의 유튜브 채널이나 비메오(vimeo)에 올라와 있는 강연이나 아티스트 토크를 통해 발음을 확인했고요. 원서에는 생존 작가로 표기된 작가 중 운명을 달리하신 분들은 생몰년을 정정하였습니다. (포토리얼리즘 작가인 '척 클로즈'는 원서가 출간된 2018년 이후인 2021년에 심부전증으로, 개념주의에서 빼놓을 수 없는 '로렌스 위너' 역시 같은 해 세상을 떠났다)
아무래도 가장 최신 경향의 미술 사조도 실리다 보니, ‘동시대’의 작가들도 꽤 눈에 띕니다. 이 책에서 소개된 21세기 작가들은 어떤 분들인가요?
일민미술관이나 광주비엔날레처럼 여러 공공 미술관과 전시 프로젝트에서 큐레이터, 프로듀서 등으로 일 한 덕분에, 책의 후반부 챕터에는 실제로 함께 작업했던 작가분들이 많이 등장해서 반가운 마음으로 번역했습니다.
LED 작품 선구자로 불리는 '제니 홀저' 작가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LED 전광판 작품에 들어가는 텍스트 번역을 도우며 만났고, 설치 미술을 활용해 중동과 관련된 주제를 다루는 알제리계 프랑스인 '카데르 아티아' 작가와는 광주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작품의 프로듀서를 맡아 일하기도 했죠. 아티아 작가의 경우 미술가이기도 하지만 올해 6월 개막을 앞둔 2022년 베를린 비엔날레의 예술 감독을 맡아 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름에 베를린에 들러서 『현대미술, 이렇게 이해하면 되나요?』를 보여 드릴 계획입니다.
현대미술 작품을 볼 때 ‘사조(-ism)’를 이해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책의 서문에 언급되어 있지만, 미술 사조는 결코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지나간 과거에 대해 새로운 사조가 발명되기도 하고요. 게다가 한 작가가 단 하나의 미술 사조에만 속하는 것도 아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미술 사조를 통해 작가와 작품을 바라보는 건 의미 있는 일입니다. 시대의 산물인 미술 작품들에서 도출할 수 있는 공통점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통해서 다양한 작품과 작가를 바라보는 것이니까요. 다만, ‘A라는 작가가 만든 B라는 작품은 C라는 사조에 속한다’는 식으로 고정된 ‘정답’을 찾는 도구로 미술 사조를 활용하는 건 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A작가와 B작품이 왜 C사조로 분류됐을까?’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는 것이 미술을 더 재미있게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봐요.
이 책에 소개된 작품 중 특별히 관심 가는 ‘사조(-ism)는 무엇인가요?
‘과거’의 사조 하나와 ‘지금’의 사조 하나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우선, ‘와동주의’ 혹은 ‘소용돌이파’에 관해 말씀드리고 싶어요. ‘와동(Vorticism)’이라니, 미술 사조의 이름으로 삼기엔 정말 낯선 단어라 하겠습니다. 게다가 이 사조를 이끈 윈덤 루이스가 만든 잡지의 이름은 <폭발(Blast)>이랍니다. 작품이 궁금해서 사조를 찾아보기 전에, 사조 이름이 신기해서 대체 어떤 작품이 여기 속하는지 찾아보게 되는 미술 사조가 아닐까 합니다.
지금의 사조로 소개하고 싶은 건 ‘포스트 인터넷 아트’입니다. 사실 현대미술계에서는 이것마저도 이미 ‘힙’하지 않게 된 ‘한 때의 유행’으로 취급하는 사람이 많은데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미술 사조라는 건 고정된 것이라기보다 끊임없이 다시 정의되고 확장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히토 슈타이얼 - 데이터의 바다>(~2022.9.18까지)나 리움 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이안 쳉: 세계 건설>(2022.7.3까지)도 넓은 차원에서는 ‘포스트 인터넷 아트’ 미술이라고 볼 수 있거든요. (‘포스트 인터넷 아트’가 궁금하신 분들은 『현대미술, 이렇게 이해하면 되나요?』의 144~145쪽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책에 소개된 사조와 관련하여 가 볼 만한 국내 전시회가 있을까요?
방금 말씀드린 두 전시와 더불어, 리움에서 열리고 있는 <아트 스펙트럼 2022>(2022.7.3까지)전시도 함께 살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리움에서 꽤 야심차게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는 <아트 스펙트럼>은 한국의 젊은 세대 작가 중 주목할 만한 작가를 선정해 소개하는 전시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주목할 건 서울 각지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소규모 미술 공간에서 열리는 작은 전시들입니다. 2000년대에 유행했던 ‘대안공간’, 2010년대 중반에 잠깐 반짝했던 ‘신생공간’을 이어 2020년대에 나타나기 시작한 소규모 미술 공간들은 앞서 나타났던 공간들과 다른 느낌으로 예술과 미술의 경계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제가 동료들과 함께 운영 중인 '영콤마영(@0_comma_0)' 또한 그 중 하나입니다.
현대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까?
『현대미술, 이렇게 이해하면 되나요?』는 현대미술을 이해하기 위한 내비게이션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장 한 켠에 두고 심심할 때마다 한 번씩 꺼내 볼 만한 책이랄까요?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에서 종종 열리는 ‘명화’ 전시를 즐기는 분이라면 1장 ‘현대미술의 탄생’ 과 2장 ‘20세기 초반’을 살펴보시면 좋을 것 같고요. 국립현대미술관처럼 좀 더 ‘컨템포러리’한 전시들을 즐긴다면 3장 ‘20세기 초반’부터 6장 ‘21세기’까지 보시면 됩니다.
혹은, 평소에는 관심이 없었던 시기의 미술에 대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겨보셔도 좋겠고요. 사실 저는 이 책의 초판이 출간되었던 2012년 경 테이트 미술관의 서점에서 이 책을 보고 냉큼 구매했습니다. ‘어머 이건 사야 해’ 하는 마음이었던 거죠. 실제로 한국어판 번역 제의를 받기 전에 오랫동안 제 책장 한 켠을 지키고 있던 아주 듬직한 책이기도 합니다. 일종의 ‘현대미술 요약 참고서’라고 말해도 좋겠습니다.
“현대미술은 그 어떤 주제보다 여러 가지 사조로 이뤄져 있습니다. 갖가지 운동과 경향, 스타일, 화파가 다양한 작가들의 작업을 분류하는 범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 책은 이러한 범주 가운데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것들을 쉽게 소개하는 안내서입니다.” _『현대미술, 이렇게 이해하면 되나요?』, 「들어가며」, 6쪽
*박재용 (역자) 큐레이터, 문화 예술 관련 통번역가, 시각 문화 및 예술 연구자, 작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학과에서 강의했으며, 미디어시티서울, 주한영국문화원, 일민미술관,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등에서 프로젝트 매니저와 큐레이터로 일했다. 현대미술서가 '서울리딩룸'과 예술공간 '영콤마영'을 운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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