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은 "식물을 가꾸듯 나를 가꾼다"
마음을 먹거나 마음을 따라야 하는 문제. 그러니 무엇보다 먼저 자기 마음을 알아야 할 거예요. 자리를 찾아가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어떨 때 행복한지를 아는 거니까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2.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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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은 저자

『웅크린 나에게 식물이 말을 걸었다』 정재은 저자는 한때 내 손길만 닿으면 식물이 죽어버려 스스로를 ‘식물 킬러’라 자조했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십수 년 전, 집 안에 걸 그림을 사듯 식물을 들여 과습으로 죽이고, 추운 날 환기를 한다며 문을 열어두어 냉해로 죽이기도 했다. 식물을 들이는 게 겁나기까지 했던 지난한 과정을 지나, 잠깐의 해도 쉽게 흘려보내지 않는 사람이 된 뒤에야, 식물을 통해 나와 일상을 진심으로 살피고 돌볼 줄 알게 된 뒤에야, 그녀는 하나둘 늘어가는 잎의 수를 세며 행복해하는 식물 반려인이 되었다. 



집의 의미와 공간에 대한 욕망을 돌아보게 했던 『집을 고치며 마음도 고칩니다』에 이어 두 번째 에세이는 식물을 가꾸듯 자신을 가꾸는 『웅크린 나에게 식물이 말을 걸었다』를 내셨어요. 한 서평가는 “첫 번째 책은 부유하던 땅에 두 발을 내디디며 일어서는 느낌이었다면 이번 책은 그 땅에 한 가닥 한 가닥 뿌리를 내리며 땅과 더 밀착되고 점점 더 단단해지는 느낌이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두 번째 책으로 식물 에세이를 쓰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누구나 하루 중에 식물에게 눈길을 주는 순간이 많을 거예요. 자기가 키우는 식물이 아니더라도요. 꽃이든, 나무든, 풀이든, 보는 것만으로 미소가 지어지고, 마음이 순해지고, 그러다 작은 변화라도 발견하면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되고, 그 의미는 위로나 용기가 되기도 하니까요. 저 역시 그러했고, 집에서 하루가 다 이뤄지는 조금은 단조로운 생활을 하다 보니, 그 안에서 계속 변화하는 식물에게서 더 민감하게 자극을 받게 되었어요. 점점 더 자주 오래 바라보게 되었고, 그만큼 의미가 깊어지게 되었지요. 그래서 식물에 제가 투영된 것 같아요.

사실 이 책은 ‘식물 에세이’라기보다는 제 자신을, 제 일상을 가꿔가는 얘기예요. 식물 덕분에 ‘오늘’을 오롯이 살아가는 사람이 된 이야기. 식물에게서 위로를 받고 웅크렸던 몸을 일으킨 이야기. 식물에게서 용기를 얻어 한 걸음 더 내디딘 이야기. 하지만 에필로그에서 밝혔듯이 ‘그랬다’가 아니라 ‘그러고 싶다’ 혹은 ‘그러길 바란다’는 주문 같은 글이지요. 저는 유난히 제 자신과 제 오늘을 가꾸고 돌보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그건 강박일 수도, 아직 풀지 못한 그래서 풀어야 할 숙제일 수도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집도 식물도 결국엔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키우던 식물을 두어 번 죽이고 나면 식물이 괜히 나에게 와서 일찍 죽은 게 아닌가 싶어 마음에 상처가 생기더라고요. 다시 식물을 들이기까지 고민이 많아지고요. “오래전부터 식물은 내 옆에 있었지만, 식물이 건네는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 건 사실 얼마 되지 않습니다.”라는 작가님의 이야기가 작은 고백으로 들렸습니다. ‘식물 킬러’ 시기를 벗어나 어떻게 ‘식물 반려인’으로 거듭나셨나요? 식물을 들이기 망설이는 독자님께 실질적인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결국 마음의 문제겠죠? (웃음.) 식물 킬러 시기에는 크게 마음을 주지 않았어요. 바라보고 미소를 짓기만 했죠. 그것도 제가 그러고 싶을 때. 지금은 제 시간과(그래봤자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공간을 함께 써요. 자주 살피고요. 모든 관계가 그런 것 같아요.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뭐가 불편한지 뭐가 필요한지 알 수 있잖아요. 그런 작은 배려가 결국 대화가 되는 것 같아요. 어찌 보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지요.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다시 시작해보시면 좋겠어요. 식물과 함께 살게 될 공간이 어떤지 먼저 파악하시고, 그에 맞는 식물을 들이시면 될 거예요. 생명력이 강한 작은 식물과 먼저 함께해보시는 것도 좋고요.

“일주일에 한 번만 물주면 돼! 이건 정말 키우기 쉬운 아이야.” 이런 이야기에 용기를 내 식물을 데려오곤 하잖아요. 알려준 대로 성실히 물을 주었건만 오히려 식물이 시들고 말라가 속이 탔던 경험이 다들 한두 번씩 있으실 거예요. “열흘에 한 번 같은 기준도, 모두에게 통하는 법칙도 없으니까.”란 작가님의 글에 뒤늦게 공감했는데요. 모두에게 통하는 법칙이 아닌 저마다의 법칙이 있고 식물을 잘 돌본다는 건 그걸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식물뿐 아니라 나를 돌보는 일도 비슷하겠지요. 나만의 고유한 법칙을 알아가는 작가님만의 방법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방법이랄 것까지는 아니지만, 저는 경험을 중시하는 편이에요. 아니, 제 경험을 믿는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네요. 일반적으로 사실처럼 통용되는 것도 제게는 해당되지 않을 수 있으니 정말 그러한지 경험해 보는 거예요. 그리고 한번 경험해서는 알 수 없으니 이렇게 저렇게 여러 번 겪으면서 제게 맞는 걸 찾아가죠. 그렇게 쌓인 데이터베이스로 저만의 법칙을 만들어가는 거고요. 

일례로 처음 해보는 음식을 할 때는 소위 ‘황금 레시피’를 찾아 그대로 만들지만, 당연히 자기 입맛에 딱 맞지는 않잖아요. 그걸 바탕으로 여러 차례 조금씩 달리하면서 저만의 레시피를 찾아가야 하죠. 뭐든 그런 과정이 필요한 거 같아요. 하지만 찾았다고 해서 그게 늘 정답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해요. 입맛은 바뀌니까 고정된 레시피는 결국 없어요. 그러고 보면 나만의 고유한 법칙을 알아가는 과정은 결국 내 자신을 계속 살피고 관찰하는 과정이지 않을까 싶어요.

가지치기는 무성함 대신 단단함을 선택한 결정이다. 맥시멈보다 미니멀이 삶의 균형을 이루기도, 자기다워지기도, 그래서 편안해지기도 쉬운 전략이라고 하셨지만 사실 삶에서는 어느 부분이 웃자란 부분인지를 판단하기가 어렵고 또한 어느 시기에 가지를 쳐야 적절할지 몰라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삶을 가지치기하는 노하우를 알고 싶습니다.

정리하거나 버려야 할 것들을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불필요한 물건을 버리고 자신의 공간을 정리하는 일은 아마도 이 중에서 가장 쉬운 일일 테고, 반면 관계나 생각, 감정 같은 것들은 가지치기가 쉽지 않지요. 말씀하신 대로 가지치기를 해야 하는 부분인지 아닌지 구분하기도 어렵고요. 

저는 한때 모니터에 라인홀트 니부어의 기도문을 써놓고 자주 읽었었어요.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을,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그리고 이 두 가지를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이 말이 도움이 많이 되었지요. 

나를 해치는 생각이나 감정 혹은 그런 감정을 일으키는 관계에 대해, 내가 바꿀 수 있는 건지 아닌지 구분하는 것이 어쩌면 가지치기의 전부인지도 몰라요.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으로 향하는 마음을 잘라버리는 거죠. 받아들인다는 건 더는 애쓰지 않는 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내가 바꿔가야 할 생각이나 상황에, 그렇게 해서라도 지키고 싶은 것에 그 마음까지 쏟는 거죠.


무늬 아이비

“모든 날들은 그저 무늬가 다를 뿐”이라는 깨달음을 준 ‘무늬아이비’란 식물이 흥미로웠습니다. 같은 화분에서 똑같이 해를 쬐어도 잎마다 무늬가 다른 무늬아이비를 보고 인생 그래프와 닮았다고 하셨는데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인생 그래프는 어떤 모양인가요?

저희 집 무늬아이비는 짙은 초록부터 테두리에 예쁘게 흰 무늬가 있는 것까지 잎마다 다른 색과 모양을 하고 있어요. 결핍된 시간과 해를 충분히 누린 시간을 잊지 않고, 그대로 정직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무늬아이비를 바라보다가 문득 우리의 날들도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을 돌이켜보면 그 안엔 눈부셨던 오후와 막막했던 저녁이, 웃는 내와 우는 내가 함께 있음을 깨닫거든요. 불행했다고 여겼던 시절도 가만 들여다보면, 웃던 내가 분명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가장 불행했던 시간과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정하고 그걸 기점으로 여러 시절들의 기복을 그리는 것보다는, X축 0에서 각각 아래위로 뻗은 선이 있는 모양이 우리 인생을 제대로 표현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그 시절을 행복인지 불행인지로 평가하기보다 모든 날들에 행불행이 공존한다는 걸 잊지 않는 거죠. 그러면 잊고 싶은 어느 날도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무늬아이비지만 무늬를 잃은 초록 잎도 예쁘고 의미가 있듯이 말이에요.

초록들에게 자리를 찾아주는 일처럼 우리 자리를 찾는 일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지도 모른다고 하셨는데요. 우리는 어떻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갈 수 있을까요?

초록들은 일단 해가 잘 들고 바람이 통하는 곳을 찾아주어야 하는데, 우리도 사실 마음이 따뜻하고 생각이 밝아지는 곳, 적당히 바람이 불어 숨쉬기가 조금도 힘들지 않은 곳, 어느 것도 애쓸 필요가 없는 곳, 그저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곳에서 행복하지 않을까 해요. 

말로 정의하기는 쉬운데, 애쓰지 않고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곳을 찾는 일조차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 좀 슬프기도 하네요. 결국 선택의 문제겠죠. 마음을 먹거나 마음을 따라야 하는 문제. 그러니 무엇보다 먼저 자기 마음을 알아야 할 거예요. 자리를 찾아가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어떨 때 행복한지를 아는 거니까요. 

식물이 건네는 말을 잘 알아듣기 위해 『웅크린 나에게 식물이 말을 걸었다』와 함께 읽으면 좋은 책이나 콘텐츠가 있다면 추천해주세요.

식물이 건네는 말을 잘 알아듣기 위해서는 책이나 콘텐츠보다는 그냥 산책을 권해드리고 싶네요. 아니면 지금 옆에 있는 식물을 한 번이라도 더 바라보는 거? 집에 있는 식물이나 창밖에 늘 보이는 식물, 혹은 매일 오가는 길에 보는 가로수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잊지 않고 안부를 물어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아요.




*정재은

어릴 적,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맨 처음 가졌던 꿈이다. 대학 졸업 후 죽 남의 글을 다듬거나 나와 상관없는 글을 쓰며 짝사랑을 이어오다가, 마흔이 넘어 꿈을 이루게 되었다. 운명처럼 만난 작은 집 덕분이다. 내게 많은 변화를 준 이 집에서, 나에게 만족하며 단정하고 평온하게 살아가려 노력한다. 계속 그런 시간을 담은 글을 쓰고 싶다.




웅크린 나에게 식물이 말을 걸었다
웅크린 나에게 식물이 말을 걸었다
정재은 저
앤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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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