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드라마에서 잠든 아이를 자주 봐서 그랬을까? 아이라면 모름지기 쉽게 잠들고 오래 자는 줄로만 알았다. 현실은 달랐다. 잠은,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잠을 재우는 일은, 전쟁이었다. 산후조리원에서 돌아온 첫날을 여전히 기억한다. 아이는 정확히 두 시간마다 깼고 목청껏 울어댔다. 남편과 나는 혹여 아이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 아닌지 뜬눈으로 걱정하며 밤을 샜다. 잠을 재우는 데도 작전과 기술이 필요하다는 걸 차츰 알게 됐다. 낮잠을 최소화하고 배불리 먹이면 비교적 쉽게 잠들었다. 자다 깨서 미친 듯이 울 때는 백색 소음을 활용했다. 수돗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면 이내 울음을 그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은 매일 새벽 우는 아이를 달래며 세면대 앞에서 자장가를 불렀다. 예전보다는 수월하지만 여섯 살이 된 지금도 아이를 재우기가 쉽지만은 않다. 조금이라도 더 놀다 자려는 아이와 어떻게 해서든 재우고 휴식을 취하고픈 우리 부부 사이의 눈치 싸움이 매일 밤 벌어진다. 억지로 눕히고 “빨리 자라.” “왜 또 일어나니.” “이제 그만 누워.”를 반복하게 된다. 아이를 재워야 부모는 쉴 수 있다.
얼마 전부터 유독 잠들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알로, 잠들지 못하는 사자』를 읽어주기 시작했다. 예민하고 까칠한 사자 알로가 주인공인데 알로는 쉽게 잠들지 못한다. 잠은 오지 않고 몸에 힘은 넘쳐나니 매일 밤이 괴롭기만 하다. 이를 안쓰럽게 여긴 친구 올빼미가 사자를 위해 자장가를 불러주기 시작한다. 친구의 노래를 들으며 몸과 마음이 평안해진 알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완되고 근심 걱정이 사라진다. 친구의 자장가를 들으며 사자는 비로소 스스로 잠자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아이와 반복해서 그림책을 읽던 어느 날 밤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한테도 알로처럼 자장가를 불러줘요.” 자신이 사자가 될 테니 엄마는 올빼미가 돼 노래를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나는 그림책에 나오는 가사에 멜로디를 더해 노래를 불러줬다. 가사를 음미하며 눈을 깜박이던 아이는 어느새 스르륵 잠이 들어 있었다.
나 역시 무척 예민한 기질이다 보니 쉽게 잠을 청하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특히 다음 날 방송 일정이 있을 때면 내 예민함은 극에 달하곤 한다. 잘하고 싶고 실수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일 텐데 몇 번이고 대본을 숙지해도 잠은 쉽게 오지 않는다. 대신 잡스러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나를 괴롭힌다. 동이 틀 때까지 잠이 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형편없는 몸 상태로 일정을 잘 소화할 수 있을까. 일을 망치면 무어라 말을 해야 할까. 생각은 끝없이 이어지고 잠은 그만큼 멀어진다. 그게 싫어서 과거 새벽 뉴스를 진행할 때는 꼬박 밤을 새고 나간 적도 많았다. 차라리 그게 마음이 편했다. 일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매사에 신경이 곤두서는 나를 보며 남편은 말했다. “꼭 그렇게 해야 해? 이제는 좀 편안해질 때도 되지않았어?” 대판 싸우고 나서도 10분이면 코를 골고 자는 사람이 나의 불안과 그로 인한 불면을 어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꼭 나처럼 예민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끊임없이 성과를 요구하는 한국 사회에서 불면을 호소하는 성인들은 꾸준히 늘고 있다. 밤에 잠들기 어렵거나 자는 도중 깨는 불면증을 앓고 있는 한국 성인 비율이 10년 만에 2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한국 성인 5명 중 1명이 불면증으로 고생을 한다는 조사도 있다.
내가 운영하고 있는 그림책학교에서 만난 또래 여성은 1년 가까이 이어진 불면증 때문에 정상적인 일상을 이어가기 힘들다고 고백했다. 직장 내 스트레스가 정신적 공황으로 이어졌고 결국 육아 휴직을 택했지만 망가진 몸과 정신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고 한다. 만성 피로에 불면까지 더해지며 어느새 약에 의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고, 이를 이겨내기 위해 그림책 읽기를 시작했던 그였다. 나는 아이와 읽었던 책 『알로, 잠들지 못하는 사자』를 읽어보라고 권했다. 그림책 한 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천천히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전해주고 싶었다. 따뜻한 봄날 개운하게 핀 그녀의 얼굴을 그림책학교에서 마주한다면 무척이나 반가울 것 같다.
결국 불면증은 불안에서 시작되는 마음의 병일 것이다. 나도 잘 안다. 겁 많고 소심한 내 기질이 불면을 초래한다는 걸 말이다. 마흔 넘은 나는 이제 어쩔 수 없다 해도 우리 아이는 조금 대범하고 무덤덤했으면 했는데 아이는 안타깝게도 헐렁한 아빠보다는 소심하고 예민한 엄마의 기질을 더 많이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 여섯 살이 되어서까지 미끄럼틀 위에 자신 있게 올라간 적이 없다. 그네를 탈 때도 일정 높이 이상 올라가면 기겁을 하고 내려달라 한다. 볼 것 없이 나를 닮은 기질이다. 나는 그런 아들과 함께 밤마다 편안하게 누워 자장가 가사를 함께 음미해본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쭉쭉 펴요. 그다음엔 몸을 살짝 웅크리고 두 눈을 살포시 감아요. 온몸의 힘을 빼고 숨을 천천히 내쉬어요. 부드러운 땅속으로 가라앉는다고 상상해보아요.”
마음을 편히 하고. 부드럽게 부드럽게 땅속으로 침대 속으로 가라앉아본다. 불확실한 내일에 대한 불안은 잠시 접어두련다. 왠지 이 자장가를 부를 때면 그래도 될 것 같다는 안도감이 든다. 천천히. 천천히. 너와 나, 우리 안의 불안을 몰아내고 마땅히 누려야 할 오늘의 잠을 청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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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애(작가, 방송인)
방송을 하고 글을 쓰며 애TV그림책학교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