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선생님하고 제가 다른 점은, 선생님은 ENFP고 저는 ENTP라서 세 번째 항목이 F와 T라는 건데요. 다시 말해서 선생님은 공감을 먼저 한 다음 이해한다는 거고, 저는 이해를 먼저 한 후에 공감을 한다는 거예요."
"그게 어떤 차이인데?"
"그러니까 친구가 '나 오늘 이런 이런 신기한 일이 있었다' 하면요. 선생님은 '아! 오잉?' 하는 거고요. 저는 '오잉? 아!' 한다는 거죠."
강사인 엄마가 지난주 초등학교 5학년 제자와 나눈 이야기라고 했다. 요즘 MBTI가 유행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고(T)와 감정(F)의 변수로 양분되는 인간의 성격유형을, 열두 살 아이가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핫했을 줄이야.
MBTI는 4개 척도를 통해 16가지 인간의 성격유형을 설명하는 심리검사다. 유효성에 대한 반론도 있지만 어쨌든 지금은 10~20대 사이에서 인터넷 밈이 되어버릴 정도로 대세다. 친구 사이는 물론 소개팅할 때도 상대의 MBTI를 궁금해한다. 생각해보니 아내도 우리가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내 유형을 물어봤었다.
사실 나에게 MBTI는 취업준비생을 들들 볶는, 소위 인재를 가려내기 위한 인성검사에 가까웠다. 대학 입학 후 학교 정책에 따라 교내 취업지원센터에서 첫 MBTI 검사를 받았다. 100개 가까이 되는 지루한 문항들에 건성으로 볼펜을 그어가면서, 오늘 저녁에 있을 신입생 환영 술자리에 갈 생각뿐이었다. 몇 년 후 졸업을 앞두고 지원했던 기업에서, 그들이 원하는 인재 유형을 걸러내기 위한 MBTI 검사를 몇 번씩 치렀다. 어쩐지 채반 위에서 걸러지는 볍씨가 된 느낌이었지만, 회사 소개 홈페이지에서 본 정직, 성실, 신의 같은 인재 유형에 가까운 문항을 맞추기 위해 고민했다.
여러모로 나에게는 딱딱한 성격검사인 반면, 요즘 10~20대들은 MBTI를 무척 유쾌하게 소비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는 관련 '짤'들이 넘쳐나고, 내가 좋아하는 가수 박문치는 'MBTI'라는 곡도 만들었으니까. 그들은 그렇게 자신과 다른 15명의 사람들을 분류하고 서로 다른 점에 깔깔대고 공감하면서, 결과적으로는 서로를 이해해가고 있었다.
아내는 중학교 시절 MBTI를 알게 되고 나서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동일한 사고 과정을 가진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나와 다른 타인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MBTI를 통해 같은 현상을 16가지로 달리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비로소 타인의 행동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MBTI에 관해 찾아보니 지지하는 사람도 반론하는 사람도 존재했다. 다만 이 글에서 검사의 신빙성에 대해 따져 볼 생각은 없다. 그 대신 자신과 도무지 다르게 생겨먹은, 무려 열다섯 종류의 인간이 세상에 있을 수 있음을 이해하고 즐기는 요즘이 마음에 든다는 말을 하고 싶다. MBTI가 틀렸다면 16개가 아니라, 어쩌면 32개의 다름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모두에게 하나의 색을 강요한 결과는 폭력으로 점철된 암흑이라는 것을 우리는 역사로 알고 있다. 이제 우리는 다시 검정만 가득한 세상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16개의 색이 어우러진 세상이 우리 앞에 계속 펼쳐지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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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산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인게 인생이라던데 슬픔도 유쾌하게 쓰고 싶습니다. kysan@ye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