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때리기 대회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이것 보세요. 우리는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상을 준다고요." 나는 생산적이고 유용한 행위만 가치가 있는 시대를 비꼰 것인데 세상은 멍때리기에서 가치를 찾아냈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1.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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웁쓰양 저자 (멍때리기 대회 창시자)

가수 크러쉬의 우승으로 화제가 된 ‘멍때리기 대회’의 창시자 웁쓰양의 어린 시절부터 ‘멍때리기 대회’ 퍼포먼스를 기획하고 개최한 아티스트로서의 면모까지, 『내일은 멍때리기』에는 인간 김진아의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바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잠시 멈춰 쉬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웁쓰양. 그녀는 미래로 나아갈 추진력을 얻기 위해 쉬어야 한다는 교훈적인 설명이 아닌, 그저 피곤하고 지친 ‘나’를 위한 휴식 ‘멍때리기’를 시작했다. 멍때리는 시간은 낭비가 아닌 커피 값 정도의 작은 사치일 뿐이라고 말하는 웁쓰양이 준비한 다 같이 멈춰 쉬는 시간, ‘나’를 위한 멍때리기를 함께해보자.



‘멍때리기 대회’라는 퍼포먼스가 아주 독창적이고 기발한데요, 멍때리기 대회를 기획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한동안 예술가로서 슬럼프를 겪으면서 심한 무기력증을 경험한 적이 었었습니다. 그때 가장 힘들었던 건 무기력 자체가 아니라, 혼자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모두가 열심히 살고 있는데 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불안했거든요. 그러다 문득 이런 불안이 저만 느끼는 건 아닐 거라는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여럿이 모여 같은 장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위로가 될 거라 생각하면서 함께 멍때리는 장면을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멍때리기’가 무가치한 시간이라는 기존의 관념을 뒤집어 그토록 사회가 원하는 가치 있고 생산적인 시간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대회’라는 경쟁적이고 목적지향적인 형식을 빌려 작품을 만들게 되었어요.

누군가는 운동을, 누군가는 여행을, 또 누군가는 요가, 휴식, 일을 통해 힐링을 찾으라고 하지만 모두 돈이 드는 일이라 또 다른 고민거리가 생길 것이라는 부분에 공감이 크게 갔습니다.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힐링’이란 무엇인가요?

힐링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것보다 왜 힐링해야 하는지의 질문이 먼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힐링을 하나로 정의내리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사무직에 지친 사람에게는 야외에서 활동적인 시간을 갖는 것이 힐링이 될 수 있고, 업무의 과중으로 여유로운 시간일 낼 수 없던 사람에게는 집 앞 카페에서 차 한잔 마시는 것도 힐링이 될 수 있겠지요.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일상에서 하지 않은 것을 하는 것이 힐링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감정이 요동칠 때 달리기를 하곤 했는데, 땀을 뻘뻘 흘리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우면 불안하던 감정도 어느새 증발해 버리고 평온한 시간을 맞이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외계인’ 에피소드가 아주 인상적인데요, 책에 담지 못한 에피소드가 더 있을까요?

실제로 동일한 상상을 하던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어요. 제가 중학교 2학년 때이고, 상대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어요. 어쩌다 대화를 하게 될 사건이 있었는데 세상에, 저랑 같은 고향별 출신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짧지만 반년 넘게 편지를 주고받은 적이 있었는데 어떤 이유로 연락이 끊겼어요. 놀랍도록 저와 동일한 생각을 하고 있던 사람을 만나 얼떨떨하면서도 더 깊이 그 세계로 빠져들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돌이켜보면 그 친구 가정사가 많이 힘들었던 상황이었거든요. 그 친구도 저처럼 우주로 회피를 했던건 건 아닐까 싶어요.

‘보통’으로 ‘평범’하기조차 힘든 게 요즘 현실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외계인’에서 ‘지구인’으로 신분이 바뀌었을 때, 현실 자각과 함께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득했을 텐데 어떻게 견디셨나요?

한동안은 물에 뜬 기름처럼 지냈던 것 같아요. 아무하고도 어울리고 싶지 않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어요.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던 거죠. 그러다 처한 현실을 차차 받아들이게 되었는데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반항심은 점점 커져갔던 것 같아요. 어찌 보면 비록 저는 외계인이라는 착각 속에서 살다가 지구인이 된 경우지만, 결국 모두 처음 사는 인생이니까 저마다 온갖 실수를 하면서 산다는 점에서는 같은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여전히 적응 중에 있다는 말이 더 맞는 것 같네요. 매일이 서툴러요. 우리 사회는 지도와 싸울 무기는 들려 주고 정작 어떤 장애물들이 있는지, 다쳤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말해주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러니 방어적 태도를 취하게 되는 거죠. 모두 서툴지만 아닌 척하려고 애쓸 뿐이라고 말해주거나, 모두 다른 지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해주거나, 누군가가 나를 미워할 수 있다는 것이나, 아버지도 남자이며 엄마도 여자라는 것, 마음과 행동은 얼마든지 불협화음일 수 있고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자기 검열을 혹독하게 할 필요가 없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에요. 누군가의 성공담보다 실패담이 훨씬 공감되고 울림이 큰 이유겠죠.



감각적인 표지와 귀여운 삽화 일러스트를 모두 직접 그리셨어요. ‘예술인’으로서의 웁쓰양은 어떤 사람인가요?

제가 키우는 고양이 세 마리 중에 ‘치치’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있어요. 낯가림도 심하고 겁이 많은데 재미있는 건 호기심도 제일 많거든요. 그래서 자주 숨어 있지만 제일 장난도 많이 치고 가장 활발해요. 저와 많이 닮은 것 같아요. 저도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에요. 당연히 잘하고 싶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커요. 그런데도 대체로 새로운 기회가 있으면 시도하는 편이에요. 성공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누구보다 큰데도 주저하지 않는 이유는 호기심 때문인 것 같아요. 뻔한 말이지만 과정 자체를 즐기면서 하려는 편이에요. 어차피 결과를 내가 결정할 수 없다면, 과정만이라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작품 활동을 해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도전적인 사람은 아니에요. 다만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면 지나치지 않는 정도로, 예술가로서도 딱 그만큼 작업하고 있습니다.

작가님에게 ‘멍때리기’란 어떤 의미를 가진 행위인가요? 더불어 멍때리기 대회의 다음 일정이 궁금합니다.

‘멍때린다’는 사실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되는 것이지 지금부터 멍때리기를 하자고 해서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여기서 핵심은 그럼 왜 멍때리는 시간을 온전히 갖지 못했느냐예요. 모두가 정신 차리라고 말하니까. 그래서 멍때리기 대회에서 만큼은 그동안 눈치보고 불안해하느라 하지 못한 멍때리기를 마음껏 하게 하고, 죄책감 없이 그 시간을 누릴 시간을 주는 거예요. 물론 그렇게 가만히 앉아서 멍때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대회장 밖 사람들 역시 같은 마음이길 바라고요. 지금의 우리에게 멍때리기란 더 이상 시간 낭비가 아니에요. 생산적인 시간만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면봉으로 선풍기 커버에 살을 하나하나 닦을 때, 주름 없이 깨끗하게 빨래를 다리고 색깔별로 정리할 때, 엉킨 실을 하나하나 풀어 다시 감고 있을 때 느끼는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시간이 주는 기쁨도 우리가 삶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 첫 시작이 멍때리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멍때리기 대회의 가장 가까운 일정은 내년 봄, 제주도에서 다시 개최될 것 같습니다. 그 뒤에 바로 2년간 개최되지 못했던 서울에서도 개최되지 않을까 싶어요.

마지막으로 쉼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을 숨가쁘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이 책은 무조건 멍때려도 괜찮다고 말하는 책은 아니에요. ‘워라밸’이라는 말이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자는 뜻이잖아요? 그런데 삶과 일이 과연 별개가 될 수 있을까요? 24시간에서 12시간 일하고 12시간을 나의 시간으로 갖는 게 워라밸일까요? 물론 원하는 일을 열심히 하고 또 남은 시간을 즐겁게 쓰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때로 일에 매진해야할 때가 있잖아요. 친구도 잘 못 만나고 연애는 꿈도 못 꿀 만큼 바쁠 수도 있고 일에서 성취하고 싶은 욕망도 크죠. 그럴 땐 정말 열심히 달려보는 거예요. 아시잖아요. 신나서 몸이 피곤한 줄도 모르고 춤을 춰서 다음 날 다리가 아파 봤다면요. 춤을 추다가 중간에 피로가 쌓일까봐 시간을 정해서 일부러 쉬지는 않잖아요. 신나게 열심히 달리다가 무기력해질 때엔 또 쉬어가는 시간을 열심히 가져보는 거지요. 다만 조급해하거나 불안해하지 않는 거예요. 그렇게 자기만의 리듬을 갖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워라밸이에요. 숨가쁘게 사는 건 원하는 일을 할 땐 좋은 일이고, 원하지 않는 일 때문이라면 피곤하기만 한 일이겠죠. 그런데 더 최악은 그 어중간한 상황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일 할 때도 내가 없고, 나의 시간 안에서도 내가 없는 상황 말이에요. 바쁘게 사는 사이사이 균형을 맞춰 여유를 갖는 것만큼이나 바쁘게 살다가 저절로 멍때려질 때 그 시간 역시 기꺼이 누려보시기 바라요. 고기가 먹고 싶다는 건 몸이 고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하잖아요.




*웁쓰양

회화부터 영상, 대규모 퍼포먼스까지 스펙트럼이 넓은 아티스트다. 가수 크러쉬의 우승으로 화제가 된 ‘멍때리기 대회’의 창시자이기도 하며,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저명한 평론가의 추천을 받아 전시에 참여할 만큼 예술적인 면모를 지녔다. 예술이 일상 속에 조금 더 친근하게 녹아 있기를 바라며, 관찰한 일상을 소재로 재미있게 비틀어보는 것을 좋아한다.
웁쓰양이라는 이름은 뜻밖의 일이 벌어져 깜짝 놀랐을 때의 영어 감탄사 ‘Oops!', ‘lady’를 뜻하는 한국말 ‘양’을 합쳐 예상하지 못하는 놀라운 작품을 하는 작가가 되겠다는 의미를 담아 만들어졌다.



내일은 멍때리기
내일은 멍때리기
웁쓰양 글그림
살림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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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