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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 있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산책길 34곳

『슬슬 거닐다』 박여진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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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기운이 가시기 전 작업실 근처나 지인의 경조사 때문에 찾아간 낯선 도시, 보고 싶어서 찾아간 성곽, 숲, 바다, 강, 고찰, 골목 등에서 만나는 그날의 공기와 상념을 좋아할 뿐입니다. (2021.11.05)

박여진 작가

‘산책’이라는 개념을 만들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움직이는 동물은 오직 인간뿐일 것이다. 그저 어딘가를 거닐며 부지런히 호흡하고, 시선을 움직이며 밀려드는 상념에 젖어드는 이 이상한 움직임에는 설명할 수 없는 목적이 있다. 저마다 다를 ‘산책의 목적’ 가운데 『슬슬 거닐다』의 저자 박여진은 끊임없이 길을 걷고, 단상을 옮겨 적는다. 국내 곳곳에 숨어 있는 산책길을 찾아 걸으며 간신히 잡아낸 확신이 있다면, 산책의 목적이 걸어갔던 길의 모양처럼 ‘매 순간 달라졌다’는 것뿐이다.



전작 『토닥토닥, 숲길』 이후 3년 만에 신간을 내셨어요. 작가님을 처음 만나게 된 독자분들께 소개 부탁드릴게요.

번역하고 글 쓰는 박여진입니다. 2009년, 클래식 단편을 기획하고 번역하면서 번역가가 되었어요. 이후 여러 책을 번역하다가 2018년 『토닥토닥, 숲길』을 내면서 역자가 아닌 저자로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파주 작은 작업실에서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있고 주로 주중에는 생업인 번역을 하고 주말과 공휴일은 그리고 내키는 날은 산책 여행을 갑니다.

번역가로 활동하다 자신의 글을 쓰는 경우는 대개 ‘번역가의 삶’을 풀어내면서 이루어지는데요. 특이하게 산책과 여행을 주제로 한 산문집을 연달아 출간하셨어요. 산책과 여행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철학이 있으신 것 같은데, 작가님만의 산책 철학이 궁금합니다.

‘산책은 이래야 한다’라는 것은 없고, 어쩌다 보니 늘 걷고 있더라고요. 특별한 목적이 전제되지 않은 걷기를 좋아해요. 건강, 사색, 기분전환 등은 부수적으로 따라올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어요. 걸음에 목적이 생기면 힘이 들어가고 기대가 생기면서 무거워지는 것 같아요. 더러는 실망도 하고요. 그래서 이런저런 목적이나 유용성 없이 슬슬 걷는 걸 좋아해요. 그날 그 길에서 만나는 시간은 모두 유일한 순간들이니까요. 아침 기운이 가시기 전 작업실 근처나 지인의 경조사 때문에 찾아간 낯선 도시, 보고 싶어서 찾아간 성곽, 숲, 바다, 강, 고찰, 골목 등에서 만나는 그날의 공기와 상념을 좋아할 뿐입니다.

작가님과 산책을 함께하는 사진가 ‘백’의 캐릭터가 인상적입니다. ‘백’이 직접 찍은 사진이 책 중간중간에 수록되어 현장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기도 하고요. 홀로 걷는 산책과 누군가 함께하는 산책은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백은 제 가장 오랜 친구이자 동반자입니다. 둘 다 산책을 무척 좋아해요. 백은 주로 사진 작업을 하고 저는 대체로 그냥 걷습니다. 길은 둘이 나서지만 걷는 건 각자 홀로 걷는 것 같아요. 간식을 같이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지만 혼자만의 세계에 빠지는 시간이 훨씬 길어요. 서로의 걸음을 대신해줄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좋은 풍광을 만나거나 멋진 길을 보게 되면 서로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고 그 ‘좋음’을 확인받고 싶어 해요. 상대가 좋아하면 내 기쁨도 훨씬 커지고요. 생에서 만나는 모든 길은 홀로 걸어야 하지만 그래도 그 길을 걷는 게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삶을 지탱해주는 위안이 돼요. 

홀로 걸을 때는 모든 상념과 감상이 내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지만 둘이 걸을 때는 생각과 감각이 바깥으로 무성히 퍼지는 기분도 들어요. 홀로 걷든, 누군가와 걷든 둘 다 적당히 고독하고 적당히 아늑해서 좋아합니다.



‘위드 코로나’의 시작과 함께 국내 여행의 활기가 더해지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언급된 길을 포함하여 전국 각지의 명소가 꽤 북적일 텐데요. 번잡한 공간이 걱정스러운 독자분들께 책에서 언급된 작가님만의 특기, ‘나만의 길 걷기’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이에 관해 독자분들께 소개해주세요.

이른 시간의 산책을 추천해요. 저희는 보통 새벽 5시 정도에 출발해서 정오가 되기 전 산책을 끝낼 때가 많아요. 이른 시간에는 사람도 적고 차도 막히지 않아 조용히 걷기 좋더라고요. 다음 날 출근에도 지장을 주지 않고요. 일정이 여유가 있을 때는 밤 산책도 즐겨요. 계절과 시간을 잘 맞추면 은하수를 만나기도 하고 잘 보이지 않는 풍광이 주는 특유의 느낌을 만나기도 해요.

나만의 ‘테마’를 정하기도 해요. 백과 저는 어디를 가든 그 지역에서 가장 늙은 나무를 보러 가는 걸 좋아해요. 오래된 나무에 깃든 경건한 분위기도 좋고, 마을 주민들이 넌지시 담아둔 염원도 좋아요. 읽었던 책의 배경과 유사한 곳을 찾아가기도 해요. 진짜 그 장소가 아니라 ‘이런 곳이라면 그 글의 배경과 비슷하겠구나’하는 곳이요. 영월의 뼝창마을 새벽은 『폭풍의 언덕』의 어느 장면을 떠올리게 했고 파주 율곡습지에서는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를 떠올렸어요. 모두가 좋다고 합의한 장소도 좋지만, 내 느낌에 따라 길을 선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유명하지 않은 서원, 향교, 고찰, 고분 터, 성곽, 성당 등도 자주 찾는 장소예요. 공간 자체도 좋아하지만, 그곳까지 걸어 들어가는 외지고 구불거리는 길이 좋아요.

산책 경력 20년 차. 산책을 위해 방방곡곡 안 가본 곳이 없는 작가님이 걸었던 ‘대한민국 최고의 산책길’은 어디일까요?

‘최고’라는 수식어에는 정답을 내놓기가 어려워요. 집 뒤의 낮은 산 숲길에도, 잡풀과 관목이 엉킨 외진 길에도 제각기 길의 향취가 있는 것 같아요. 척박하고 거친 삶의 흔적이 묻어 있는 영월과 정선의 숲길도 좋아하고요, 한겨울에도 따뜻하게 반짝이는 남해, 제주도, 거제도의 길들도 좋아해요. 가도 가도 늘 깊은 전라도의 고찰들과 차갑고 맑은 양구의 길들도 모두 좋아하죠. 최고의 산책길은 아마도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이 아닌가 싶어요. 오직 한 번만 겪을 수 있는 그 날, 그 길, 그 바람 속의 길이요.

산책의 핵심은 발걸음 그 자체보다는 ‘걸으면서 하는 생각들’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의 책 속에서도 걷는 곳마다 떠오르는 상념들의 변화가 눈에 띄는데요. 작가님이 만난 독특한 길과 사유는 어디서부터 비롯된 걸까요? 걷는 길의 풍경이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걸까요, 아니면 생각이 걷는 길을 바꾸는 걸까요?

생각의 길이 있고 산책의 길이 있는데 두 길이 만나면 제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길이 열려요. 머릿속을 맴돌던 상념이 나루터에서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마구 펼쳐지기도 하고, 평소 전혀 생각하지 않고 묻어두었던 기억이 강원도의 어느 숲길에서 ‘툭’하고 터져 나올 때도 있어요. 풍광 앞에서 눈과 귀와 몸은 열리는데 머릿속은 저 혼자 굽이굽이 들어갈 때도 있고요. ‘걷는다’는 물리적 행위가 ‘생각’이라고 하는 관념적 행위를 자극하기도 하고, ‘생각’이 어떤 풍광을 더 세밀하고 촘촘하게 들여다보게 하기도 해요. 상념과 길은 무척 잘 어울리는 동반자 같아요.

글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쓰이는 것 같습니다. 무수한 길, 그리고 길보다 많은 상념이 담긴 이 책의 메시지가 꼭 닿았으면 하는 독자가 있다면 누구일까요? 그 보이지 않는 독자에게 한마디 전해주세요.

인생이라고 하는 긴 산책길에 나선 우리에게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비도 만나고, 진창에 발이 빠지기도 하고, 응달에 웅크리기도 하는 긴 인생이란 산책길 위에선 누구나 고독한 산책자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다른 누군가도 그렇게 뚜벅뚜벅 인생 산책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 한쪽이 조금은 따뜻하게 물렁거리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결국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나도 걷고 있어요. 당신도 걷고 있군요. 여긴 아직 응달이에요. 거긴 빛이 잘 드나요? 지금 바다를 보고 있어요. 당신도 이 바다를 보았으면 좋겠어요.” 



*박여진

주중에는 주로 번역을 하고 주말과 휴일에는 산책 여행을 다닌다. 파주 ‘번역인’ 작업실에서 작업하면서 월간지에 여행 칼럼을 기고한다. 저서로 토닥토닥, 숲길이, 역서로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 2  외 수십 권이 있다.

 


슬슬 거닐다
슬슬 거닐다
박여진 글 | 백홍기 사진
마음의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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