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24가 진행하는 글쓰기 공모전 ‘나도, 에세이스트’ 대상 수상자들이 에세이를 연재합니다. 에세이스트의 일상에서 발견한 빛나는 문장을 따라가 보세요. |
"3 곱하기 0이 어떻게 0일 수가 있어? 네가 틀렸어! 3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고 해서 없어지지 않아. 그대로 3인 거지."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가, 반 친구들과 홀로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친구들은 3 곱하기 0이 0이라고 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게 맞는다면 세상은 너무 가혹한 게 아닌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사라져 버리는 세상이라니, 내가 사는 세상이 그렇게 절망적일 리가 없다. 죽어라 소리 높여 박박 우겨댔고 결국 이 싸움의 주동자들은 담임 선생님을 찾아 교무실로 달려갔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로 선생님에게 본인이 맞다며 소리를 높였다. 선생님은 우리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듣고 난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어쩌지... 무엇이든 0은 곱하기를 하면 0이 되는 거야. 이렇게 생각해볼까? 바구니에 사과가 3개가 있어, 그런데 0은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다는 뜻이야. 그러니까 아무것도 없는 거지."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어버렸다. 서럽고 미웠다. 선생님도 친구들도 이 세상도 전부 원망스러웠다. 한참이 지나 울음을 그치고 하는 수 없이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3 곱하기 0은 0이다. 무엇이든 0을 곱하면 0이다. 머리로는 이해했는데 그 뒤로도 마음으로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열심히 했는데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교무실에서 울던 때를 떠올렸다. 회사에서 일을 할 때 사람들은 일을 잘하는 것은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현실이 씁쓸하지만 사람들은 드러나는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 말도 모두 머리로 이해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퇴근하고 혼자서 글을 쓰고 노래를 듣고 책을 읽을 때마다 억울해진다. 좋아하는 일들을 할 때 마음속 깊이 차오르는 충족감이 든다. 더 좋은 사람이 된 것 같고 더 행복해진 것 같다. 그런데 이 모든 게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성과로 표현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SNS에 글을 쓰고 요리 사진을 올리는 것은 그 불안감 때문이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좋아하는 활동들을 하면서 내면을 쌓아가는 만족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손은 따로 움직였다. 읽은 책을 보기 좋게 모아 사진 찍어 올리고, 쿠키를 구울 때면 사진에 나오기 좋은 모양을 생각하며 만든다. 3 곱하기 0은 3이 아니고, 0이니까.
그렇다. 3 곱하기 0은 절대 3이 될 수 없다. 그러나, 3이 바뀔 수는 있다. 좋아하는 일들을 꾸준히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3이 아니라 4, 5, 10, 20이 된다. 내보일 수 없이 흘러가는 시간이지만 그저 재미있고, 알고 싶고, 그래서 더 잘하고 싶어서 계속 하다 보면 숫자는 점점 커진다. 그리고 비소로 어떤 기회를 만나게 되면 0이 1이 되고 2가 되고 3일 될 수 있다. 그때 내가 가진 숫자가 여전히 3이라면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건 3이나 9일 테지만, 0이 1이 될 때까지 시간을 쌓아가고 있었다면 40, 60이 되는 것이다. 세상은 어린 내가 주저앉아 펑펑 눈물 쏟을 만큼 가혹하지도, 절망적이지도 않을지도 모른다. 그저 가만히, 세상은 지켜볼 뿐이다.
그러니 실망하지 말자. 우리는 지금 3을 키워가고 있는 중이다.
0이 1로 바뀌는 그때, 내가 당신을 알아볼 것이다. 당신이 덜컥 세상에 드러난 것이 아니라 3을 키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시간들을 알아볼 것이다. 다가가 반갑게 인사를 건네겠다. 당신도 그래 주었으면 좋겠다.
*제갈명 일상을 단단하게 쌓아올리는 마음의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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