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니예 웨스트의 전체 커리어에서 유의미하게 기록될 음반일지는 두고 봐야 안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 그에게 있어서 더없이 중요한 한 걸음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인생이 시험의 연속이었다. 도널드 트럼프를 향한 열렬한 사랑과 그의 몰락, '노예제도는 선택이었다' 망발과 직접 출마한 2020년 대선. 테일러 스위프트와 질긴 싸움과 탈진으로 인한 입원, 킴 카다시안과 이혼까지. 어디서부터 콕 집어 이야기하기 어려울 만큼 카니예 웨스트는 숱한 기행과 사건으로 스스로 자초한 논란 속 씨름을 이어왔다. 아티스트는 음악으로 난항을 딛고 도약한다지만 이후 5년간 기억할만한 개인 커리어 상의 수작도 없었다는 것이 설상가상이었다. 연속된 물의와 부진 속 그는 대중에게 '이해할 수 없는 인간', '괴짜', '관심병 종자'쯤으로 치부되는 데에 익숙한 듯 보였다.
그러나 개의치 않다는 듯 음악적 이상은 장대해져 갔다. 현실 세계에 싫증이 난 그에게는 주의를 돌릴만한 무언가, 의지할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종교에 집중했다. 신앙심을 공고히 다져 가스펠 힙합의 장을 선포했다. 2016년 가 그 예고편이었고 은 나아갈 선로를 선명히 각인한 서막이었다. 'Lost in the world'의 길 잃은 영혼과 어머니를 부르짖은 'Only one' 이후 자신을 신('I am a god')이라 칭하는 거만 속 내재한 나약한 자아를 거대한 영적 존재에 영합하여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는 그러한 카니예 웨스트의 최근 행보를 집적하는 앨범이다. 성형 수술 부작용으로 2007년 사망한 어머니 이름이 제목의 영감이며 문법 역시 가스펠 힙합이다. 직전작과 비교해 훨씬 풍성한 들을 거리와 힙합 요소를 부각한 점은 반갑다. 그러나 그의 열 번째 정규 앨범이라는 점, 그것도 지난 한 달 내내 소셜 미디어 피드를 장악한 경기장 크기의 리스닝 파티와 세 번 연기 끝에 마침내 세상에 나온 야심작이라는 기대치 앞에 앞서는 실망감이 있어 우선 언급하고 싶다.
첫째로, 몹시 길다. 가 7곡 23분이었던 것과 극명히 비교되는 의 2시간가량 방대한 분량은 일순 환대를 불러일으키지만 이내 피로감에 휩싸인다. 모든 노래가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Jonah'에서 'Junya'로 이어지는 초중반부가 가장 허점으로, 'Jonah'의 연속적인 친구 사망과 자신 처지를 노래하는 릴 더크와 보리(Vory)의 가사는 분명 뜻깊지만 강성의 스웨그 곡들 사이에 배치돼 스쳐 지나가고 만다.
오르간 사운드에 간소한 랩을 엮은 'Junya'는 '준야 와타나베가 내 손목 위!' 훅을 반복하며 '음, 음' 추임새로 마디를 채우지만 여타 카니예 노래들만큼 치밀하지 않다. 신실한 신앙 곡 사이 급작스럽게 흐름을 깨는 'Tell the vision', 신심과 과시를 경유하는 'Praise god'의 언어도 의도가 불분명하다. 종교에 영향받은 영묘한 사운드와 일렉트로닉한 비트 두 갈래로 크게 나뉜 음향적 콘셉트는 거친 와 최근 가스펠 사이의 타협점을 마련하려는 취지나, 양 축을 왔다 갔다 하는 탓에 메시지는 흐려지기 일쑤다.
둘째로, 그의 랩이다. 속 어디에도 의자에 허리를 바짝 당겨 듣게 하는 카니예의 킬링 벌스가 없다. 콘셉트에 맞춰 노래로 승부를 거는 곡이 상당수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활달한 랩 트랙 'Off the grid'마저 플레이보이 카티와 파비오 포린의 젊은 에너지에 주객을 전도해버린다. 사정이 이러니 트래비스 스캇과 베이비 킴에게 벌스를 양보한 'Praise god'이 아쉽고, 'Donda'와 '24'에서 의지한 선데이 콰이어 서비스 합창과 'Pure souls'의 로디 리치, 셴시아(Shenseaa) 대용도 포용과 화합이라는 기독교적 이치에는 부합할지라도 상당히 장식적으로 느껴진다. 5년 전 에서 켄드릭 라마를 눌러버린 벌스의 'No more parties in LA'와 경건한 랩을 뽐낸 'Saint pablo'를 상기하면 더욱 크게 다가오는 약점이다.
그래서 음반은 거대한 담론이나 의미에서 통째로 청취하기보다 오히려 마음에 드는 곡을 골라 듣기 적합한 백화점식 구성이 됐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런 면에서 작품은 상당히 만족스러운 편이다. 'Hurricane'은 후렴의 예쁜 선율을 어루만지는 위켄드 보컬과 어두운 악기 편성으로 산뜻했던 전작과의 차이를 새기며 유의미한 변곡점을 마련한다. 로린 힐 'Doo wop'을 간편하게 재해석한 'Believe what I say'도 상기한 모호한 트랙 뒤에서 상반된 날카로움을 전한다. 다소 상투적이지만, 안정적인 팝 코드 진행에 웨스트사이드 건의 처절한 랩을 얹은 'Keep my spirit alive'의 감흥도 짙다.
노골적으로 신을 예찬하는 후반부 곡들이 상대적으로 우수한 완성도로 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점도 좋다. 완벽한 목사 빙의의 'Jesus lord'는 9분가량 복음을 전파하는데, 편안한 사운드에 모친과 사별 뒤 생의 마감까지 고민한 메시지가 맞물려 부담 대신 감명으로 다가온다. 'Come to life'는 카니예의 현재를 압축한다. 킴 카다시안과 파경에서 파생된 감정을 매끄러운 싱잉과 순백한 피아노 연주로 연출한 노래에서 그는 꿈꾸는 음악적 이상을 상당수 실현해낸다. 그 도모 방식이 새로운 스타일 개척이나 혁신적 문법 도입 대신 안정화 전법에 가까워 이전만큼 파급력을 지니지는 못하더라도 말이다.
는 나오기 전에도, 나오고 나서도 말이 많다. 발매 후 카니예는 SNS에 음반사 유니버셜 뮤직 그룹이 자신 허락 없이 음반을 공개했다고 주장했으며 혹자는 이에 에서 실행된 앨범 업데이트 현상을 기대한다. 해외 다수 평론 매체가 비판 근거로 제시하는 마릴린 맨슨과 다베이비 섭외 논란도 토론해볼 만하다. 각각 성폭행 혐의와 동성애 혐오 논란으로 규탄되고 있는 둘을 피쳐링으로 대동한 것은 회개와 성화(聖化)의 언약이 되어야 할 앨범에 설득력을 상당 부분 떨어뜨리는 방해물로 작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음악적, 그리고 그 외적 화젯거리에도 한 가지는 자명하다고 말하고 싶다. 상한선에 오른 것 같았던 카니예의 역량에 아직은 한계가 임박하지 않았다는 것만큼은 확고히 시사한다는 것을 말이다. 카니예 웨스트의 전체 커리어에서 유의미하게 기록될 음반일지는 두고 봐야 안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 그에게 있어서 더없이 중요한 한 걸음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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