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대체불가토큰, 딥페이크, 머신 비전…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디지털 기술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이다. ‘알파고’처럼 인간을 능가하는 로봇과 인공지능에 밀려 인간이 일자리를 잃을 거라는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이렇듯 눈부시게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과 기기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어떻게 바꿀까? 이 거대한 변화 속에서 인간은 무엇을 준비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공부의 미래』 『로봇 시대, 인간의 일』 등의 저자 구본권이 쓴 『디지털 개념어 사전』은 이런 고민을 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책이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디지털 인문학자 구본권은 이 책에서 ‘디지털 시대를 장악하는 핵심 키워드 100’을 선정해 이들의 개념과 적용 사례를 설명하고, 이것들이 나의 삶과 사회적 관계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를 사유한다. 구본권 작가에게 디지털 기술이 바꿀 세상의 모습과 이런 변화에 ‘스마트’하게 대응하는 방법을 물었다.
많은 사람이 끊임없이 변하는 기술을 발 빠르게 익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통념과 달리 “응용 기술이 빨리 변할수록 교육은 핵심과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왜 디지털 세상에서 핵심과 본질이 중요한가요?
최고의 축구 선수는 그라운드에서 항상 공을 쫓아 달리지 않습니다. 공보다 달리기가 빠를 수 없는데, 공만 쫓아 달리다 보면 이내 체력이 바닥납니다. 경기의 흐름을 읽고 선수들의 움직임과 전략을 파악하면서 게임을 운영할 줄 아는 선수가 최고의 선수입니다. 쉴새 없이 쏟아져나오는 디지털 기술과 서비스도 비슷합니다. 최신 기술의 특징과 의미를 모르는 상황에서 왜 이런 서비스가 나왔는지 또는 앞으로 이 기술과 서비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전망 밝은 최신기술이니 빨리 익히고 보자”는 태도는 어리석은 접근입니다. 지속할 수도 없고, 큰 흐름을 볼 수도 없습니다.
제 주변엔 한때 ‘컴퓨터 도사’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윈도 운영체제가 등장하기 전에 학원에서 도스 명령어를 배우고 컴퓨터를 다룰 줄 알던 이들이었지요. 하지만 윈도가 널리 쓰이면서 도스 명령어 없이 누구나 컴퓨터를 다룰 수 있게 되니, 한때 요긴했던 기술과 역량이 쓸모 없어졌습니다. 기술은 점점 편하고 강력해지기 때문에, 구체적인 기기 조작법과 같은 기술을 익히는 것은 그 유효기간이 점점 짧아집니다.
디지털 세상은 거대한 변화가 지속적으로 생겨나고 점점 더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는 세상입니다. 결국 변화의 세부적인 사항보다는 변화를 불러오는 거대한 흐름과 방향을 읽어내야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에 대응할 수 있게 됩니다. 기술 변화가 빨라질수록 핵심과 본질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로봇과 인공지능을 “일자리를 위협하는 칼이 아니라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칼”로 보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인간이 주도권을 잃지 않고, 로봇과 인공지능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요.
칼이 범죄에만 쓰이지 않는 것처럼, 인공지능과 자동화 기술도 활용하기 나름이지요. 하지만, 사용 방법과 목적을 알지 못하면 제대로 쓸 수 없습니다. 인공지능과 자동화 기술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수행해오던 정형적 업무와 일자리를 위협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신기술로 인해 사라지는 일자리가 있는가 하면 새로 생겨날 일자리도 분명 있습니다. 문제는 사라지는 일자리는 눈에 잘 보이지만 새로 생겨날 일자리는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신기술의 개발과 도입을 막을 수는 없고 적응하는 길뿐인데, 사람이 기술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면 활용법과 대응법을 마련할 수 없습니다.
19세기에 카메라 기술이 처음 등장했을 때, 풍경과 인물을 그대로 그려내는 풍경화가, 초상화가는 ‘완벽한 모방 기계’의 등장에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꼈겠지요. 하지만, 카메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이들은 ‘활동사진/영화’라는 거대한 예술과 산업의 신세계를 개척해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인포데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가짜뉴스가 유통되면서 방역에 큰 차질을 빚었습니다. 『디지털 개념어 사전』도 인포데믹,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등의 키워드를 다루고 있는데, 가짜뉴스에 속지 않는 비법이 있을까요?
아이러니입니다. 우리는 디지털화, 모바일 인터넷 환경에서 가장 강력하고 편리한 정보 확인 도구인 스마트폰을 두뇌의 일부처럼 사용합니다. 인류의 교육 기간도 지금처럼 길었던 시기가 없습니다. 그런데 가짜뉴스에 속는 사람은 어느 때보다 많아졌고, 허위 정보의 영향력도 커졌습니다.
이용자 대부분은 과거 성장할 때 익혔던 지식과 기술로 첨단 도구를 다룹니다. 그런데, 이런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는 상황에서는 정교한 가짜뉴스를 이용해 지능적으로 사기를 치려는 범죄 집단에 역부족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게 필요합니다. 소셜미디어 환경에서 첨단 기술을 가장 잘 활용하는 세력이 허위 정보를 이용해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집단입니다.
가짜뉴스를 한번 보면 바로 알아차리는 비책이나 특효약을 찾는 게 어리석은 일입니다. 나 자신은 절대 거짓과 사기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자신하는 게 가장 미련한 짓입니다. ‘모든 정보와 지식이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 ‘더 나은 관점이 있을 수 있다’라고 자신의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는 개방적 태도가 제일 현명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소크라테스의 태도가 가장 지혜로운 것이지요.
디지털 기술과 기기의 유용성을 인정하면서도 ‘알파고’처럼 효율적이지만 작동 원리를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의 문제점을 짚으셨습니다. 디지털 기술과 기기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용자와 개발자들은 각각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우리가 깊이 애정하고 의존하는 것입니다. 매력적이지 않은 것은 우리를 위태롭게 만들지 않습니다. 너무 매력적이다 보니 그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어서, 통제력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지요. 돈, 이성, 권력, 명예욕 등이 모두 그렇습니다.
거리에서 행인을 관찰해보면 요즘엔 정면을 보고 걷는 사람보다 스마트폰을 보면서 걷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스마트폰이 너무 매력적이기 때문에 위험한 일이 생겨나는 거지요. 그런데 알고리즘으로 수행되는 서비스는 그 작동원리와 구조가 사용자에게 보이지 않습니다. 더욱이 딥러닝 인공지능 기술은 매우 효율적 결과를 내놓지만, 보이지 않는 은닉층에서 연산이 이뤄지기 때문에 작동 방법을 알 수 없고 사용자나 설계자가 통제권을 가질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설명 가능한 인공지능’에 대한 개발 요구가 높습니다. 보이지 않는 알고리즘에 대한 통제권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개인이 아닌 사회 차원에서 이에 대한 감시와 규율을 도입해야 합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큰 권력은 시민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합니다. 현재 알고리즘은 디지털 사회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사실상 극소수 설계자의 손에 위임되어 있고 사회적 통제를 받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스마트폰과 SNS가 널리 보급되면서 사람들이 ‘과잉연결’돼 있다고 지적하셨습니다. ‘과잉연결’ 속에서 자기중심을 잃지 않고, 나 자신을 지킬 방법이 있을까요?
사람은 늘 더 많은 연결을 추구하는, 사회적 존재입니다. 더 편리하고 강력한 연결 도구가 등장하면 우리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늘 연결되어 있으면,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지요.
저는 일단 스마트폰에서 각종 알람과 푸시 메시지를 비활성화하는 게 첫걸음이라고 봅니다. 걸어 다닐 때는 스마트폰 화면을 보는 대신, 정면을 바라보거나 뭔가를 생각해보는 습관을 지니는 게 또 누구에게나 필요해졌습니다.
보통은 로봇이 너무 발전해서 인간을 위협하고 지배할 것을 우려하는데, 미디어학자 더글러스 러시코프의 말을 빌려 진짜 걱정할 일은 ‘인간의 로봇화’라고 말씀하신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인간의 로봇화’를 막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는 이미 여러 종류의 로봇에 의해 길들여졌습니다.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시청할 때, 애초 보기로 마음먹은 영상만 보게 되는 경우가 드뭅니다. 원래 시청하려던 영상이 끝나면 관심 가진 주제에 대한 다음 영상이 자동재생되는데, 나의 흥미를 자극하기 때문에 거부하기 어렵습니다. 나의 욕망과 관심사를 나보다 잘 알고 있는 알고리즘이 나의 데이터를 활용해, 나를 통제하고 조종하는 셈입니다. 로봇의 지배를 받는 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무엇에 깊이 의존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그에 대한 선택권을 자신이 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디지털 기술과 알고리즘을 안쓰고 살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 알고리즘이 나에게, 또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을 알고 써야 하는 거지요.
이 책은 일차적으로 디지털 기술과 기기에 대한 책이지만, 결국은 디지털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변화할 인간에 대한 책이란 생각이 듭니다. 디지털 세상의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고, 대비해야 할지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디지털 기술은 우리가 애정하고 의존하고 다른 것들처럼 빛과 그늘을 함께 지녔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술과 서비스는 상품의 형태로 홍보되기 때문에 반짝거리는 모습만 눈에 보입니다. 기업이 반짝이는 모습에 가려진 그늘을 자발적으로 거론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점점 더 많은 디지털 서비스를 사용하게 될 것이고, 더 오랜 시간 디지털 기기를 들여다보게 될 것입니다. 피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입니다. 거대한 힘의 빛과 그늘을 함께 보면서 사용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기술을 외면하거나 무시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알고 통제권을 획득해야 하는 게 방법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서비스와 알고리즘에 우리의 소중한 주의력과 시간을 바치는, 기술의 노예가 될 우려가 있습니다.
*구본권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디지털 인문학자이자 IT 전문 저널리스트. 1990년부터 〈한겨레〉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디지털 기술이 바꿀 세계와 그 속에서 살아갈 인간의 미래를 연구하며 글 쓰고 강의한다.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에서 언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같은 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를 지냈다. 서울시교육청 미래교육 전문위원, 월간 『신문과 방송』, 계간 『미디어 리터러시』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 지은 책으로 『공부의 미래』 『로봇 시대, 인간의 일』(중고교 교과서 수록) 『유튜브에 빠진 너에게』 『뉴스, 믿어도 될까』 『뉴스를 보는 눈』 『나에 관한 기억을 지우라』 『당신을 공유하시겠습니까』 『인터넷에서는 무엇이 뉴스가 되나』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 『잊혀질 권리』 『페이스북을 떠나 진짜 세상을 만나다』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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