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cdc라는 필명으로 오랫동안 활동한 SF 작가이자 청강대 웹소설창작전공 교수로 재직 중인 홍지운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녹여 인기 장르물의 창작 노하우를 『시나리오 레시피』로 정리했다. 슈퍼히어로, 로맨스, 탐정, 좀비, 하이퍼, 스릴러, 슬래셔 호러, 하이스트까지, 8가지 장르를 ‘나의 성장’이 중심인 이야기와 ‘대상의 행방’이 중심인 이야기로 나눠, 읽기만 해도 스토리가 떠오르는 시나리오 레시피를 소개한다.
작가님께 특별한 레시피가 있다고요? 시나리오를 만드는 레시피요? 그러면 레시피가 아니라 작법서이지 않나요?
네, 그렇습니다. 레시피는 레시피인데, 음식이 아닌 시나리오를 만드는 방법이 적힌 레시피예요. 『시나리오 레시피』 는 레시피의 형태를 한 작법서라고 말하고 싶네요. 기존 작법서는 “이렇게 쓰면 반드시 명작을 쓸 수 있다!”라고 하는 것들이 많지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유일무이한 정답을 가르쳐주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런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그보다는 사람마다 자기 취향에 맞게 변주하기 좋도록, 요리 레시피처럼 장르를 구성하는 논리를 정돈해서 알려주는 것으로 누구나 활용 가능한 템플릿을 제공하고 싶었던 거죠.
1부에서는 슈퍼히어로/ 로맨스/ 탐정/ 좀비, 2부에서는 케이퍼/ 스릴러/ 슬래셔 호러/ 하이스트, 총 여덟 장르의 레시피가 담겨 있더라고요. 이 여덟 장르를 고른 이유가 있나요?
1부에서는 주인공의 성장을 묘사하기 좋은 장르로 네 개를, 2부에서는 작가의 성찰을 담기 좋은 장르로 네 개를 골라 정리했습니다. 대중적으로 많이 소비되는 장르이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제가 사랑하는 이야기들이기도 해요!
하지만 시나리오의 레시피라니…. 그래서는 창의적인 이야기를 만들 수 없지 않을까요?
아니요, 그 반대예요. 기본적인 틀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야기를 만들면 오히려 전형적인 이야기, 뻔한 이야기가 나올 위험이 크답니다. 전형적인 이야기를 알아야 창의적인 이야기도 만들 수 있는 것이지요. 무엇보다 제가 레시피를 작성한 이유는 여러분들이 저의 레시피를 따라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언젠가는 자신만의 레시피를 만드는 법을 찾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맨스 레시피에서 <신데렐라> 같은 이야기를 다뤘군요.
조금 뻔해 보이기는 하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신데렐라>처럼 흔한 이야기조차 잘못된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어요. <바리데기>, <우바카와> 그리고 <신데렐라>에 이르기까지 온갖 문화권의 역사 속에서 이런 구조의 이야기가 항상 반복되긴 했어요. 로맨스 중에 이 구조를 따르는 작품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요. 그리고 이제까지 로맨스의 주인공은 사회의 소외계층이었다가 가부장적 시스템에, 주류 이데올로기에 종속되는 것으로 여겨졌지요. 하지만 저는 로맨스를 주인공이 자신만의 공간을 확립하고 주도권을 되찾는 이야기라고 정리했어요. 실제로도 현대의 로맨스물이나 그를 변주한 작품의 본질은 이 주도권의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이런 목표를 설정했을 때 더 재미난 작품이 나오거든요.
반대로 “진짜로 이 작품이 이 장르라고?” 싶은 예시도 있었어요. <라이온 킹>을 슈퍼히어로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로맨스에서, <킹콩>을 슬래셔 호러에서 소개하더라고요. 이런 작품을 예시로 든 이유가 있나요?
『시나리오 레시피』에서는 이야기 소재보다 이야기 구조를 기준으로 장르를 구분했어요. 장르에서 특정 구조를 발견하기보단, 특정 구조가 가장 잘 발견되는 장르를 묶는 방식으로 내용을 정리했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슈퍼히어로’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장르를 구분하면 슈퍼히어로가 연인과 로맨스를 펼치거나 탐정처럼 수사를 하거나 좀비와 맞서 싸우는 이야기를 다 해야 하는데, 그러면 제대로 된 템플릿을 만들기 어려우니까요. 반대로 슈퍼히어로가 등장하지 않더라도 슈퍼히어로물에 자주 활용되는 구조를 차용한 작품도 있는데, 이런 작품은 일반적인 슈퍼히어로물과 동일한 템플릿을 활용할 수 있지요. 그래서 장르 바깥에서도 그 구조가 기능할 수 있음을 설명하기 위해 장르와는 어긋나지만 구조에는 부합하는 예시를 들었던 것이랍니다.
슬래셔 호러 레시피에서는 슬래셔 호러의 원형을 그리스 신화 속 <카산드라>에서 찾기도 했는데요. 어떤 이유에서 그렇다고 보았나요?
카산드라는 예언자로서의 능력이 있었지만, 누구도 그 예언을 믿지 않는 저주에 걸렸지요. 많은 슬래셔 호러물의 주인공이 다른 사람에게 괴물에 대해 경고하며 올바른 선택지를 알려주지만, 어이없게 무시당하는 것처럼요. 그런 점에서 이 두 인물을 같이 놓고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슬래셔 호러물에 대한 기존의 분석에는 따분한 구석이 있었지요. 여성 주인공은 방황하는 젊은이이고, 괴물 유형의 캐릭터는 방탕한 젊은이에게 내려진 징벌이라는 식으로요. 하지만 슬래셔 호러물의 주인공들, 특히 여성 주인공들이 결코 유약하기만 한 건 아니거든요. 오히려 신탁을 받아 괴물에 맞서는 신화시대의 영웅이라 봐야 할 때가 더 많아요! 슬래셔 호러물의 주인공과 괴물을 사회에서 억압받는 누군가와 그의 그림자로 이해하면, 수많은 슬래셔 호러물의 명작이 감동을 주는 이유를 알 수 있어요.
『시나리오 레시피』를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글쓰기가 처음이라면 제가 예시로 든 작품들을 참고해 레시피를 따라 해보기를 권하고 싶어요. 글쓰기에 익숙하다면 저의 레시피를 변주해서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기를 권하고요. 제 레시피가 너무 쉽게 느껴진다면 여러 장르의 레시피를 섞어 복합 장르를 만들어봐도 좋겠네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가 슈퍼히어로와 케이퍼 장르를 합치고, <치즈 인 더 트랩>이 로맨스와 스릴러 장르를 융합했던 것처럼요!
『시나리오 레시피』가 출간되었으니, 다음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후속 권을 준비해야죠. 현재는 데스 게임이나 서바이벌 장르에 대한 레시피를 정리하고 있어요. 『시나리오 레시피』에서 다루었던 장르보다 학술적으로 정리하고 싶기도 하네요!
많은 사람이 장르물을 쓸 때 어려워하는 부분은 무엇일까요?
장르에서 돌출된 요소나 하위 장르를 전체 장르의 본질이라 착각하기 시작하면, 이야기 쓰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로맨스물이라면 백마 탄 왕자님이 반드시 나와야 한다거나, SF물이면 과학용어로 가득한 하드 SF물만이 유일한 SF물라고 여긴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이러한 것들은 작가가 설정한 목표에 맞게 사용하면 엄청난 효과를 발휘하는 도구이지만, 도구는 도구일 뿐입니다. 목표와 도구를 혼동하면 매니악한 결과물만 나오게 되지요. 저야 그런 작품도 좋아하지만, 시장 전체에는 도움이 되지 않겠지요.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시작하고 싶은 분들에게 한마디 한다면요?
조언이라…. 어렵네요. 많은 분이 이런 질문에 “많이 보고, 많이 쓰세요!”라고들 답하지요. 하지만 이런 훈련법은 본인 스타일에 맞을 때 하면 되고, 그게 안 맞으면 안 해도 되는 것 같습니다. ‘작품을 만들 때의 즐거움을 놓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할까도 고민했지만, 마감이 닥치면 그것도 어렵죠. 아, 이 정도의 말은 할 수 있겠네요. 캐릭터 이름을 정할 때 그 이름을 꼭 한 번 검색해보세요. 이상한 사람이 주인공과 이름이 같으면 독자들의 몰입도가 떨어지거든요!
*홍지운 영화배우 김꽃비의 팬, SF 작가. 본명 홍석인. 오랫동안 필명 dcdc로 활동해왔다. 『무안만용 가르바니온』으로 제2회 SF어워드 장편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호랑공주의 우아하고 파괴적인 성인식』 등, 단편집 『물리적 오류 발생 보고서』, 『별을 수확하는 자들』,『무간도 가이아의 성소』, 『구미베어 살인사건』, 『월간주폭 초인전』, 『악의와 공포의 용은 익히 아는 자여라』 등을 출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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