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영화는 그 어떤 장르보다 시리즈가 많다. 세상은 뒤죽박죽이고 그 속에서 사람들의 이해관계는 충돌하며 대립하는 속에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듯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튀어나와 사회는 다시 엉망인 채로 유지된다.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갈등의 순환 속에서 사람들이 체감하는 공포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기 마련이다. 사람들의 두려움을 먹고 자라는(?) 공포 영화는 그래서 무덤 위로 뻗어 나온 손처럼 죽지도 않고 때가 되면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스파이럴>은 <쏘우> 시리즈의 스핀오프다. <쏘우>(2005)부터 <직쏘>(2017)까지, 13년 동안 8편의 작품으로 시리즈를 이어왔던 이 프랜차이즈는 <스파이럴>로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발단은 경찰서로 배송되는 의문의 택배 상자다. 그 안에는 잘린 혀와 함께 경찰 배지가 담겨 있다. 뱅크스(크리스 록)는 신참 형사 윌리엄(맥스 밍겔라)과 사건 현장을 찾는다. 놀이 공원 지하를 지나가는 지하철 선로의 벽에는 ‘소용돌이 Spiral’ 문양이 그려져 있다.
연이어 경찰을 상대로 한 범행의 증거로 신체의 일부분이 상자에 담겨 뱅크스 앞에 당도한다. 이를 사주한 가해자는 정의를 수호하고 약자를 지켜야 할 경찰이 그러지 않아 그에 대한 심판의 목적으로 이런 짓을 벌이고 있다고 정당성을 주장한다. 뱅크스의 아버지이자 전설적인 형사로 추앙받는 마커스(사무엘 L. 잭슨)도 포함되어 있다. 식사를 함께하기로 약속한 날부터 아버지와 연락이 끊기자 뱅크스는 슬슬 불안해진다.
정교한 트랩에 강제로 뜯겨 나간 신체 일부, 가해자가 사건 현장에 의도적으로 남긴 심볼, 빌리퍼펫을 대체한 인형이 등장해 그의 당위를 설명하는 방식 등 직쏘의 연쇄살인을 경험한 적 있는 형사들은 이렇게 반문한다. “직쏘 모방범인가?” <쏘우>의 2편부터 4편까지 연출하고 이번에 <스파이럴>의 감독직을 맡은 대런 린 보우즈만은 “<스파이럴>을 보면서 <세븐>(1995)을 떠올리면 좋겠다.”라고 의도를 밝혔다.
실제로 고참 흑인 형사와 신참 백인 형사가 의문의 연쇄살인을 풀어간다는 점도 그렇고, ‘식탐’, ‘탐욕’, ‘나태’, ‘분노’ 등 성서의 7가지 죄악을 따라 발생하는 <세븐>의 사건들처럼 <스파이럴>도 비슷한 양상이다. 피해를 본 경찰들은 가해자의 편에 서서 위증한 죄,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될 증거를 은닉하고 인멸한 죄, 증인으로 나서기로 한 목격자를 살해한 죄 등 정의에 반하는 죄악을 명목으로 차례차례 죽거나 죽을 위기에 처한다.
‘지옥에서 벗어나 빛에 이르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Long is the way, and hard, that out of hell leads up to Light’ <실낙원>의 한 구절을 인용해 자신의 범죄에 당위의 의미를 더하는 <세븐>의 가해자처럼 <스파이럴>의 ‘그' 또한 나름의 목적 의식을 가지고 일을 벌인다. 소용돌이 문양을 두고 개혁과 변화와 진화의 상징이라면서 온갖 부정을 저지르는 경찰 기관을 범죄로써 새롭게 거듭나게 하겠다고 사적 정의의 가치를 부여한다.
형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사회 정화를 목적으로 내건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의 참극은 가해와 피해가, 정의와 불의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가 되어버린 현대의 아수라 풍경을 공포의 우화로 드러낸다. 그의 맥락에서 개혁과 변화와 진화를 상징한다던 소용돌이는 송곳의 형태로 타인을 위협하고 살해하며 사회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공포의 방아쇠로 작용한다.
<세븐>의 서머셋(모건 프리먼) 형사는 ‘세상은 멋진 곳이다. 싸워서 지킬 만한 가치가 있다.’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말을 인용하며 이런 메시지를 전달한다. “난 두 번째 문장에 동의한다.” <스파이럴>의 가해자가 세상에 전하는 의사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다만, 서머셋이 범죄를 소탕해 세상을 변화하게 한다면 <스파이럴>의 그는 공들인 트랩과 피를 말리는 고문으로써 이 사회를 정화한다. 공포는 공포를 낳는다. <쏘우>에서 <스파이럴>이 파생되었듯 <스파이럴>은 또 다른 형태로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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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웅(영화평론가)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