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쿨한 모녀 사이라니! 엄마와 딸의 시트콤 같은 웹툰 <남남>에는 헌신적인 엄마, 효도하는 딸의 클리셰가 없다. 대신 ‘유교걸’의 세계를 벗어난, 지극히 현실적인 관계가 있다. 첫 장면부터 강렬하다. 집에 돌아온 딸이 엄마의 자위 장면을 목격한다. “이거, 이래도 돼?”하는 당황스러움은 잠시 내려놓자. ‘정상가족’ 프레임을 벗어난 이 대책 없이 즐거운 이야기에, 분명 빠져들게 될 테니까. 정영롱 작가는 “항상 ‘이게 돼?’와 ‘왜 안돼?’의 사이에서 재밌는 이야기를 그려보도록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왜 안돼?’라고 외치며 사이다를 끼얹는 이 만화! K장녀부터 K막내까지 모든 딸들에게 추천한다.
2020 오늘의 우리만화상 수상작 『남남』은 ‘대책 없는 엄마와 쿨한 딸의 동거 이야기’다. 다음 웹툰에서 출간일 기준 2천 5백만 이상의 누적 조회 수를 기록하는 등 화제를 모았다. 엄마와 딸의 ‘남남’ 같은 동거 생활을 유쾌하게 풀어낸 정영롱 작가는 2015년 웹툰 『알아집니다』로 데뷔, 2019년부터 다음 웹툰에서 『남남』을 연재하고 있다.
웹툰으로 연재된 『남남』! 멋진 단행본으로 만나게 되어 느낌이 색달랐는데요. 실물 책을 받아보신 소감이 어떠셨나요? 이번 단행본에는 음식을 주제로 한 ‘냠냠 네 컷 만화’도 수록됐더라고요.
제가 그린 웹툰 <남남>이 아니라 다른 작품을 보는 것 같았어요. 머릿속으로 ‘페이지로 편집을 한다면 이렇게 해야겠다.’라고 생각했던 컷들이 완전히 새로이 재배치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생각의 틀이 완전히 부서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스로 만화를 만들듯이, 책을 만드는 분들이 제 이야기를 소스로 새로 책 한 권을 뚝딱 만들어주시니 신기했습니다. 정말 웹툰이라는 매체와 지면으로 표현되는 종이책이라는 매체는 다른 힘을 가지고 있구나 다시금 느꼈어요.
사실 저는 물성이 있는 종이책을 더 좋아해요. 그래서 제 이름이 적힌 만화책을 세상에 내놓고 싶었는데 이렇게 금방 현실이 되네요! ‘냠냠’은 단행본용으로 새로 그린 만화인데요. 캐릭터들이 어떤 음식을 먹을 때 어떤 액션을 취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그 캐릭터의 음식에 대한 철학과 성격을 짧게나마 보여주고 싶었어요. 저는 먹는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대책 없는 엄마와 쿨한 딸의 동거 이야기’라는 로그라인처럼, 정말 색다른 ‘모녀관계’ 같아요. 정상 가족, 성 역할에 대한 기대나 편견도 없고요. 그래서 해방감이 느껴지기도 하더라고요. 처음에 어떤 이야기를 구상하셨나요?
처음에 설정한 목표는 한 가지였습니다. 어떤 캐릭터를 그리든 간에 그 캐릭터가 아무리 얄미운 짓을 해도 종국에는 귀엽게 느껴지도록! 제가 첫 작품 <알아집니다>를 연재할 때 캐릭터 연구 목적으로 시트콤을 엄청나게 많이 봤거든요. 그때 시트콤은 어떤 캐릭터든 간에 미워할 수가 없게 만드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 점이 시트콤의 제일 큰 매력이라고도 생각하고요.
그런데 한국 시트콤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소위 주변에서 말하는 정상가족이 주가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주가 되지 않는 캐릭터들을 메인으로 세우면 어떤 반응이 생길까 궁금했던 것 같아요. 재밌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고요. 시트콤에는 항상 웃어야 할 타이밍에 방청객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데요. 제가 웃으라고 넣은 장면에 독자분들이 웃어주시길 항상 바라고 있습니다.
1화 도입부가 너무 강렬해요.(웃음) 자위하는 엄마와 그걸 목격한 딸! 사실 중년의 성생활을 정면으로 다루는 콘텐츠가 아직은 흔치 않잖아요. 이 장면을 첫 장면으로 택한 이유가 궁금하더라고요.
‘이제부터 이런 이야기를 할 거다.’라는 말을 툭 던짐과 동시에 어떻게 보면 방지턱? 같은 존재로 1화를 그렇게 설정한 것 같아요. 이걸 넘는 사람은 계속 달릴 수 있지만 굳이 이 턱을 넘기 싫은 사람들도 있겠죠. 사실 1화에서 이런 내용의 만화는 못 보겠다고 하차 선언을 하시는 분들이 꽤 계셨는데요. 예상했던 반응이었습니다. 하지만 넘지 않으셨던 분들에게도 턱 위에 서서 잠시 고민할 수 있는 타이밍은 됐을 거라 생각해요. ‘중년의 자위가 그렇게까지 거부감이 드는 이야기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자유지만요.
설 특집 편에서 연재 초반 비하인드를 밝히셨죠. 1화를 보고 당황한 교회 분들의 반응이 재밌었는데요.(웃음) 작가님의 어머님은 작품을 어떻게 보셨는지, 주변 40대분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1화가 공개된 이후 엄마의 반응은 “엄마는 좀 그렇다..”였습니다. ‘좀 그렇다’라는 말에는 엄청나게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겠죠? 좀 그렇네요..(웃음) 근데 그때뿐, 뒤로 갈수록 엄마도 엄청 재밌게 봐주셨어요. 매화 피드백을 주시기도 하고요. 사실 주변 40대분들의 반응은 무척 좋았습니다. 1화 때는 말씀을 아끼셨지만 많은 분들이 뒤로 갈수록 너무 재밌다고 응원의 말씀을 보내주셨어요. 이모들 같은 경우는 자기를 모델로 한 게 아니냐고 너무 캐릭터가 자신 같다며 좋아하는 듯 싫어하는 듯 미묘한 표정으로 말씀을 건네주시기도 하고요. 제가 40대의 인생을 살아본 게 아니라서 잘 표현할 수 있을까 했는데 저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면 잘하고 있나 봅니다.
“엄마가 여자일 수 있다는 생각을 그간 하지 못했던 자신을 반성하기도 했다”는 독자 댓글도 있더라고요. 딸보다 더 대책 없는 엄마의 모습도, 그간 사회가 강요해왔던 전형과도 다르고요. 그리시면서 독자가 여기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고민하기도 하셨나요?
사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곳에서는 전형적인 엄마의 모습 이외의 다른 엄마 캐릭터들이 꽤 등장을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남남』과 그 다른 이야기들의 차이점을 꼽자면 주인공이 엄마가 아닐 뿐이라는 점? 그러니까 조연으로만 등장을 한다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매체뿐만 아니더라도, 주변을 조금만 돌아본다거나, 그냥 멀리 안 가고 본인의 엄마만을 천천히 뜯어봐도 내가 지금 엄청난 캐릭터와 함께 살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실 겁니다. 그 점들을 조금씩 모아 증폭시켜 놓은 게 『남남』의 엄마 캐릭터 은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연재하면서 했던 또 다른 고민은 ‘엄마’라고 불리는 인물의 이름을 밝히는 시기였습니다. 개인으로서의 인물로 서게 되는 데에는 이름이 어떤 상징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어요.
물리치료사인 엄마의 직장생활을 보여주신 게 좋았습니다. 엄마의 시점에서 살아가는 사회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해서요. 그런데도 ‘고생하는 엄마’의 프레임에 넣지도 않으시는 것 같아요. ‘일하는 엄마’를 어떻게 그리려 하셨나요?
저희 가족 같은 경우는 밖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가족들이 TV를 보면서 그날 있었던 그지 같은 일들을 미주알고주알 서로에게 터놓는데요. 저는 항상 집에서 똑같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할 말이 없어서 항상 듣는 입장이거든요. 근데 이게 가만 보면 서로 얘기를 하고 있고, 들어주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결국에는 아빠 엄마 동생 모두 다 자기 힘든 얘기만 공중에 하고 있는 거예요. 서로 아무도 안 듣고 있구나, 근데 알면서 이야기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게 재밌더라고요. 딱 그 정도. 하루의 일을 푸념하는 정도로만 느껴지도록 건강하게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엄마라고 힘들게 표현하기에는 너무 다들 각자의 일을 하고 있잖아요?
엄마와 딸의 티키타카를 보고 정말 많이 웃었어요. 모녀가 여러 개의 말풍선으로 주고받는 대화장면들도 놓칠 수 없는 매력 포인트 같은데요. 특히 좋아하는 대화 장면과, 대화를 쓰실 때 신경 쓰시는 부분이 있다면요?
지금은 진희가 독립을 해서 소파 장면을 그릴 순 없지만, K소파답게 소파 위에 앉지 않고 소파를 등받이 삼아 바닥에 앉아 얘기를 나누는 장면들 모두를 좋아합니다. 되도록이면 그냥 대화하지 않고 뭔가를 먹으면서 대화하게끔 일부러 그리기도 해요. 대화를 쓸 때 신경 쓰는 부분은 미리 짜놓은 콘티 속의 대사 외에 식자 작업을 할 때 머리를 갑자기 스치고 지나가는 대사들이 가끔 있는데요, 그때 원래 대사를 삭제하고 지금 당장 떠오른 저 새로운 대사로 교체하느냐, 검증된 원래 대사를 그대로 쓰느냐 이 갈림길에서 어떻게 선택할지. 이 부분을 가장 신경 쓰고 있어요. 던지는 대사 하나만 바꿔도 흐름이 너무 달라지니까요.
가족뿐만 아니라, 친구나 연인 관계도 뻔하지 않아요. 주인공 진희와 친구 진수 모두 각자 지지부진한 연애담을 이어가는 게 공감되기도 하더라고요. 어떤 ‘연애’와 ‘우정’의 모습을 그리고 싶으셨는지요?
망해도 되는 연애와 망하지 않는 우정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사실 우정은 망하지 않는다기보다도 이미 성공적이죠. 진희나 엄마나 정말 좋은 친구들을 곁에 두고 살아가고 있어요. 저는 우정이란 언제 꺼내 봐도 재밌는 앨범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하는데요, 보통 앨범이란 존재는 어쩌다가 한번 들춰보게 되는 건데. (저는 그만큼 친구들한테 연락을 잘 안 합니다.) 이 친구들은 정말 자주 사진을 찍고 수시로 앨범을 여는 인물들이에요. 연애관에 있어서는 진수와 진희, 이 두 캐릭터를 정반대로 설정해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사랑에 목마른 캐릭터 진수와 사랑 따윈 아무 상관 없는 진희인데요. 누가 어떻게 성공하게 될지는 2시즌에서 밝혀지게 됩니다. 기대해 주세요.
“항상 ‘이게 돼?’와 ‘왜 안돼?’의 사이에서 재밌는 이야기를 그려보도록 하겠다”고 하셨어요. 앞으로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앞으로 남은 『남남』에서는 캐릭터들의 다른 방식의 사랑과 새로운 시작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남남』 완결을 내고 다른 작업을 시작하게 되면 그때는 청소년 시기의 불안함을 솔직하게 말하는 만화를 꼭 그려보고 싶어요. 영화 <벌새>를 정말 감명 깊게 봤거든요. 그 나이에만 가질 수 있는 불안과 우울함, 외로움 등을 아무렇지 않게 그리고 싶어요. 그때는 제가 아니라 캐릭터를 “야, 이건 너무 힘드냐?”와 “아니, 이 정도면 괜찮지 않냐?” 라는 질문 사이에 세워두고 있을 것 같네요.
*정영롱 "언젠가는 여름나라에서 만화를 그리는 게 꿈입니다."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 2015년 웹툰 『알아집니다』로 데뷔, 2019년부터 DAUM웹툰에서 『남남』을 연재하고 있다. 『남남』으로 <2020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수상했다. twitter @J_figure instagram @jungyr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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