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 “한국 사회, 이제 신화에서 깨어날 때”
현재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변화는 ‘가족의 해체’다. 산업화, 민주화와 맞먹는 엄청난 사건이다. 결국, 개인들이 다양하게 관계 맺는 방식을 배워가야 한다.
글ㆍ사진 김윤주
2021.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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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위기, 신화가 무너졌다.” 선진국 중심의 질서가 깨졌다는 박노자 교수의 진단은 우리가 더 이상 기존의 사회를 믿으며 살 수 없음을 알렸다. 전염병과 경제 위기에 직면한 이 시점에,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당신들의 대한민국』 이후 20년, 한국 사회를 진단하는 『미아로 산다는 것』의 메시지는 더욱 절박하게 다가온다. 박노자 교수는 그간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교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며 꾸준히 비판적 목소리를 내왔다. 그에게 한국 사회의 현재를 물었다.



코로나 위기 이후 세계는

2주간 격리를 마치고 한국에 왔다. 오랜만에 보는 한국의 모습은 어떤가.

외국이나 한국이나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아마 단기간에 끝나진 않을 것이다.

노르웨이 상황도 궁금하다. 코로나19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북유럽이라고 체계적으로 대처하는 건 아니다. 노르웨이는 한국처럼 추적을 치밀하게 하지 못하고, 자가 격리도 자율에 맡긴다. 다만, 의료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장점이 있다. 감염자가 늘어도 치료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는 거다. 인구가 몰려 있지 않으니까 비교적 유리하기도 하다. 서울의 인구가 노르웨이 인구의 거의 2배니까.

지난해 3월에 쓴 칼럼 「코로나가 무너뜨린 신화들」이 화제가 됐다. 선진국 중심의 신화가 팬데믹 상황을 맞아 깨졌다고 봤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도 이번 코로나19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그만큼 위상도 꺾이고 경제적 타격도 만만치 않다. 이번 위기를 계기로 더 이상 미국, 유럽이 옛날처럼 중심 역할을 못 할 거다. 더 다양한 중심이 있는 세계로 가는 길목이라 본다.

이번 책에서 사회의 전반적인 변화를 포착하려는 태도가 느껴졌다. 10년 전에 비하면 말을 건네는 방식이 친근해졌다는 느낌도 든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큰 그림을 보려는 욕심이 생긴다.(웃음) 사회가 어떻게 발달하는지 큰 변화를 그려보고 싶다. 최근 한국 사회의 진영 논리를 보면서, 누군가는 거리를 두고 객관적인 위치에서 큰 그림을 그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완벽하게 객관적인 것은 없겠지만, 객관성을 향해 노력해야만 전체 사회에 유익할 것이다.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해지도록 말을 건네려다 보니, 자연히 말투도 부드럽게 느껴진 게 아닐까?



우리는 미아가 되었다

‘미아로 산다는 것’이라는 제목이 인상적이었다. ‘미아’라는 키워드는 러시아에서 태어나 ‘박노자’라는 이름의 한국인이 되고 지금은 노르웨이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는 교수님의 위치와도 연결되는 것 같다.

내 상황이 미아 같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다. 태어나고 자랐던 소련 사회가 갑자기 없어졌고, 한국에서 살다 유럽에서 20년을 산 셈인데 여전히 이질감을 느낀다. 그건 역사적인 경험이 달라서인 것 같다. 노르웨이는 내 체질에는 지나치게 편하다. 러시아에서는 공동체와 개인이 공멸할지 모른다는 긴장감 속에서 살았고, 한국도 굉장히 파란만장한 사회였지 않나. 그런 면에서 노르웨이는 공유하는 것이 적다. 물론 몸은 편하지만.(웃음)

‘미아’는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되지만, 결국 사회적인 의미와도 연결된다. 젊은 세대 전체가 공동체를 잃고 미아처럼 될 것이라고 했다.

요즘은 미아처럼 ‘뿌리 뽑힌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예전처럼 평생 직장도 없고, 미래에는 젊은 세대 전체가 일을 해도 ‘워킹푸어’ 계층이 될 거다. 현재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변화는 ‘가족의 해체’다. 산업화, 민주화와 맞먹는 엄청난 사건이다. 기존 가족 형태가 허물어지고 새로운 가족이 생겨나기도 한다. 50년 후면 한국에서 전통적인 가족은 없어지지 않을까? 철저하게 혼자가 되는 엄청난 수의 개인들이 쏟아져 나올 거다. 

그렇다면 앞으로 가족을 잃은 개인들은 어떻게 공동체를 이루고 외롭지 않게 살아갈까.

이제 개인들은 안정적인 가족과 직장이 사라지고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노르웨이에서도 젊은이들은 대부분 미혼을 택한다. 같이 살아도 동거 형태지 결혼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대부분이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국보다는 사정이 낫다. 결국, 개인들이 다양하게 관계 맺는 방식을 배워가야 한다. 과거의 수직적인 공동체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 권위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수평적인 공동체가 필요하다.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계약을 맺는 플랫폼 노동자들이 많아졌다. 이 변화를 어떻게 보나.

자본이 세게 선수 친 거다. 자본은 개인을 유사 ‘자영업자’로 만드는 게 꿈이다. 사람을 쓰고 싶을때만 쓰고 책임을 질 필요가 없으니까. 그런데 실제로 플랫폼 노동자는 등록은 자영업자이지만 노동자성을 부정당한 노동자다. 휴가비, 의료보험, 연금 등 아무것도 보장받지 못한다. 

산업별, 기업별로 뭉치던 개인들은 앞으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을까?

혼자로는 불가능하다. 수평적으로 모이는 노동자들의 집단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부터 반격을 시작해야겠지. 아마 긴 과정이 될 거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뜨거운 이슈인 성 평등의 문제도 적극적으로 언급했다. 여성에 분노를 표출하는 일부 한국 남성들을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일부 한국 남성들이 여성을 비난하는 걸 보면, 백인이 유색인종을 차별하는 게 떠오른다. 미국 트럼프 정권하에서 백인 하층민들이 시스템을 탓하지 않고 유색인종에게 분노를 쏟아내는 것처럼. 현재 한국에서는 인종보다 젠더 문제가 더 뜨겁다. 20년 전만 해도 여성들이 사회 진출이 쉽지 않았다. 공무원 사회에서 국회에서 여성들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최근에야 조금씩 평등이 실현되고 있는 건데, 왜 자꾸 여성 탓을 하는지 모르겠다. 



불평등한 사회, 희망을 찾는 법

최근 출판계의 키워드 중 하나는 ‘차별’이다. 그만큼 차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불평등한 사회를 유지하면 할수록 다수가 고통받는다는 자각이 강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차별에 분노하고, 그게 출판 시장에도 반영되는 게 아닐까. 그렇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이 성장 신화를 믿고 있다. 경제가 성장하면 개인에게도 이익이 돌아갈 거라는 믿음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더 이상 외형적인 성장이 대부분의 사람에게 부를 가져다주지 못하지 않나. 부자들만 돈을 버는 구조고, 부동산 가격만 오르고 있다.

한국을 ‘급의 사회’라고 봤다. 학벌, 나이, 성별 등 모든 면에서 등급을 매기고 거기에 따라 대우가 달라진다. 그중에서도 ‘재력’의 힘이 가장 세다고 했다.

신자유주의의 큰 원칙 중 하나는 국가 위에 자본이 있는 거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대기업의 이해관계를 국가가 알아서 봐주는 시스템이다. 이 구조에서는 자본가만 승리하고, 대다수는 노동을 하면 할수록 가난하고 병든 삶을 살게 된다. 노동은 더욱 값싸지고, 자본가들은 부동산 투자로 돈을 번다. 지금은 세금을 강하게 매기고 있다고 해도 큰 흐름을 바꾸진 못할 것이다. 국가 시스템은 자본가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학벌’이 한국 사회의 중심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학벌 중심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한국 사회에서 학벌은 부의 세습을 합리화하는 수단이다. 한국에서 명문대를 졸업했다는 건 곧 사회의 상류층에 속하게 된다는 뜻이고, 명문대 출신들은 대학 시절의 경험을 배경 삼아 그들만의 리그를 만든다. 그리고 실제로는 부모의 재산이 자녀의 학벌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능력의 결과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지배층의 명분이 되는 것이다.



현재 사회는 비관적으로 보지만, 한국 사회에 거는 믿음을 잃지 않는 것 같다. 

한국은 신자유주의로 전환된 것이 큰 비극이었지만, 아직은 낙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30년 동안 한국의 인권 의식은 급속도로 성숙했다. 내가 1991년 처음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의식 있는 대학생들조차 성소수자,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조롱하고 혐오했다. 소수자를 인간답게 존중해야 한다는 인식이 없었던 거다. 그런데 최근 성소수자들이 사회로 나오고 있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위해 대체복무제도 신설됐다. 90년대에 비하면 정말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평등한 시민으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실현될까.

단기적으로는 쉽지 않을 거다.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집단은 쉽게 뭉치지만, 그렇지 않으면 일단 밀어내기 때문이다. 이런 배타성 속에서 비정규직, 외국인 노동자는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그럼에도 낙관을 잃지 않는 이유는 촛불집회 이후 시민사회가 꾸준히 성숙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극단적인 세력이 잠시 집권한다 해도, 저항적인 시민 의식 덕분에 기본적인 권리는 보장되리라고 믿는다. 내가 한국 사회에 희망을 거는 이유다. 


(장소 제공: 서울콜렉터)



* 박노자 

2001년 한국인으로 귀화하기 전까지 본명 '블라디미르 티호노프'.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에서 태어났다. 한국과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영화 [춘향전]을 보고 받은 충격 때문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동방학부 한국사학과를 졸업한 그는 이후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고대 한국의 가야사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러시아 국립 인문대학교 강사를 거쳐 학생과 강사의 신분으로 한국에서 대학 생활을 보냈던 그는 '박노자'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귀화한다.

박노자를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외국인', 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난 한국인'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귀화한 것은 스스로 한국사회에서 국적, 또 외국인과 내국인이라는 장벽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리트머스지가 될 것을 결심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한국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아로 산다는 것
미아로 산다는 것
박노자 저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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