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이 끝나고 있습니다. 아직 12월이 남았지만, 아마도 제 차례는 이번이 마지막이지 싶어 다소 이른 시기에 2020년을 정리해봅니다. 주제는 ‘2020년 (내 마음대로) 기억에 남는 인문 교양 4권’입니다.
윤이후 저 | 너머북스
17세기 후반 조선 일상을 담은 기록. 1692년 1월 1일부터 1699년 9월 9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쓴 윤이후 일기 완역본입니다. 무려 1,272쪽 2kg에 가까운 벽돌책인데요. 조선시대 일기 중 이 정도로 일상을 섬세하고 풍부하게 기술한 자료는 없습니다. 17세기 조선 후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일상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기근과 환난, 고통과 절망 사이에서도 삶은 계속되고, 그때와 지금이 그리 많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1696년 7월 22일 병자]맑음
성덕항이 왔다. 팔마로 돌아왔다. 이대휴를 역방했다. 길에서 양득중梁得中을 만났다. 가지개加知介가 13일에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고 한다. 이 사람은 내 유모 소생인데, 작년에 와서 만난 후로 다시 보지 못했다. 굶주린 나머지 사산하고 자신도 역시 일어나지 못했으니, 매우 비참하다. 커서는 용모가 그 어머니와 흡사하여 내가 볼 때마다 눈물을 훔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작년에 와서 만났다가 황원黃原으로 돌아가겠다고 할 때 슬퍼해 마지않기에, 나도 눈물을 삼키며 잘 타일러 보냈었다. 그런데 그것이 영원한 이별이 될지 어찌 알았겠는가. 너무도 애통하다. (693~694쪽)
대런 맥가비 저 | 돌베개
대런 맥가비라는 영국 래퍼의 자전적 기록입니다. 왜 가난은 대물림될까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는 의미는 부모의 소득이 적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부모의 양육 문화, 거주 환경 등 복합적인 요소가 결합됩니다. 술, 폭력, 범죄에 노출된 환경에서 자란 저자의 성장기는 한국의 가난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데요. 우리가 가난과 불평등이라는 문제를 직시하려면, 꼭 봐야 하는 불편한 진실을 담담하게 기록합니다.
엄마는 자기 삶이 비정상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다른 사고방식과 존재 방식이 있다는 사실을 알 기회가 없었다. 엄마에게는 비교 대상이 없었다. 내가 나보다 계급이 높다고 인식한 사람들과 섞일 때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불안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엄마는 술이나 약물에 취해 있지 않은 한,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상호작용으로부터 뒷걸음질을 쳤다. 심지어 자식으로부터도. 엄마가 자신을 낮잡아 본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나는 한때 엄마의 눈에서 증오만을 봤으나 이제 고통, 트라우마, 그리고 연결되길 갈망하지만 방법을 모르는 깊은 절망감을 본다. 엄마의 눈에서, 나는 나 자신을 본다. 짧았던 엄마의 삶에서, 내가 진실을 은폐하는 세계로 돌아가고픈 유혹에 넘어갔더라면 맞이했을 나의 다른 미래를 본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내가 태어났을 때 그들 자신이 아직 아이였던 부모님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해하게 된다. (333쪽)
정아은 저 | 천년의상상
출산 후 육아를 위해 일을 관둔 저자에게 친척 여성 어른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편하게 먹고살잖아."라고. 현실에서 편한 전업주부가 없는데 왜 이런 관념이 존재할까요? 『엄마의 독서』 때처럼 정아은 소설가는 책에서 답을 구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주류 경제학과 사회 통념이 은폐한 여성의 노동과 목소리를 찾아냅니다.
세상에 아내라 불리는 ‘주부’가 없다면, 자본주의는 일거에 무너질 것이다. 주부가 남편인 노동자에게 해주던 온갖 종류의 무상 재생산 서비스가 사라지면 노동자는 그 모든 서비스를 돈을 주고 구매해야 할 테고, 그런 상황은 필연적으로 임금 인상이라는 결과를 낳을 테니. 그렇게 되면 자본이 어떻게 이윤을 취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마차가 굴러가게 하는 것은 ‘노동자’가 아니라 노동자를 무상으로 재생산해주는 ‘주부’이다. 주부가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를 점하는 이유는 이런 원리 때문이다. 자신이 하는 일을 ‘일’로 취급받지 못하고, 하는 일의 대가를 지불받지 못하기에 사회에서 어떠한 자리도 차지하지 못하고,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185~186쪽)
토마 피케티 저 | 문학동네
『21세기 자본』 토마 피케티가 2020년에 오랜만에 내놓은 신작. 불평등을 이데올로기로 정당화해온 역사를 추적했습니다. 불평등의 역사성을 드러냄으로써 불평등이 어느 사회에서든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신화를 부숩니다. 보다 평등한 사회를 원한다면 해낼 수 있습니다. 결국, 답은 정치에 있습니다.
21세기 초 신소유주의 이데올로기는 거대서사들과 견고한 제도들에 의거하며, 여기에는 규제·정보 공유·공동 조세 없는 자유로운 자본 이동체제, 소유 재분배라는 ‘판도라의 상자’에 대한 거부, 공산주의 실패가 포함된다. 하지만 이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체제의 여러 가지 약점에 관해서도 특히 강조해야 한다. 이 약점들은 변화와 극복을 향한 추진력이기도 하다. 금융 불투명성과 불평등 증대는 기후 문제 해결을 상당히 까다롭게 만들고, 더 일반적으로는 사회적 불만으로 이어진다. 점점 더 강해지는 정체성주의적 긴장들의 고조를 방치하려는 것이 아닌 한, 저 사회적 불만의 해법은 더 큰 투명성과 더 많은 재분배다. 모든 불평등주의체제와 마찬가지로 이 체제는 불안정하며 계속 진화 중이다. (766~7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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