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월의 '천국'은 달고도 씁쓸하다. 또한 행복하다가도 불시에 불행한 불협화음을 담고 있다. 즉 이 작품은 복합적인 감정들이 치열한 줄다리기를 벌이는, 마냥 밝지도 마냥 어둡지 않은 복잡다단한 지상 낙원이다. 사랑과 미움, 분노와 용서 등 모든 감정을 정교하게 풀어낸다.
그는 '천국을 노래하고 있지만 사실 천국이란 건 없다'라 외치고 싶었다 말한다. 이 모순적인 외침이 앨범 내내 일관되게 자리한다. '오늘 밤'의 '귀엽고 잔인한 사람', '가장 불행한 사랑'으로 사랑의 양면성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내가 사랑할 그 사람은'의 '너무나 따뜻할 거야 / 정말로 냉정할 거야'라는 가사는 이질적인 모습 앞에서도 무력하게 사랑에 빠지는 모습을 노래한다. 극적으로 대비되는 단어로 달콤할 수만은 없는 사랑의 본질을 날카롭게 묘사한다.
앞서 언급한 불협화음은 음악적으로도 자유로이 표현된다. 록 사운드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상처 주는 키를 우리는 모두 가지고 있다(사상키)'는 간주 구간에 무아지경의 기타연주가 코드와 대립하며 '평생 괴롭고 싶은' 난해한 노랫말에 불안정함을 더한다. '나방'은 피아노 연주로 시작되는데, 불협화음으로 알려진 증 4도 화음과 둔탁한 소리의 스네어를 사용해 기괴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노란 오후'와 '노란 불빛의 술집'은 결국 과거의 찰나를 회상하는 상징적 의미로 작용한다. 노이즈 섞인 사운드로 빛바랜 추억을 장식한다.
문학적인 노랫말과 세련된 멜로디로 인정받아온 김사월은 그 밖의 영역까지 침투한다. 전곡을 홀로 편곡하고 프로듀싱한 <헤븐>은 훌륭할 정도로 매혹적이다. '기쁨이란 잠깐' 스쳐 지나가는 삶의 일회성을 노래하는 '일회용품'은 워킹 베이스 형태의 베이스라인으로 재지(Jazzy)함을 더하고, 예상치 못한 구간에 드럼이 치고 빠지며 감상에 짜릿한 쾌감을 선사한다. 대단히 순종적이나 대단히 경멸적인 '스테이지'는 분노에 분투한다. 무미건조한 전자 사운드와 날카로운 기타 솔로, 가득 찬 코러스로 섬뜩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앨범의 전곡을 다 듣고 나면 한 편의 누아르를 본 듯한 여운을 남긴다. 불투명한 멜로디는 예상할 수 없기에 클리셰를 파괴하고, 직설적으로 표현된 마음의 조각들은 아플 정도로 정곡을 찌른다. <헤븐>은 사랑해서 미운 것, 미워서 원망스러운 것, 그런데도 사랑하는 우리의 알 수 없는 마음들을 대변한다. 반짝이는 금은보화도, 날개 달린 천사도 없는 김사월의 천국은 그렇게 가장 낮은 곳에서 손을 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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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